당신이 알아야 할 '무홍'이란 두글자
신진 디자이너는 많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그 무언가를 가진 신진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깊이 있는 패션적 사유를 입고 싶은 옷으로 풀어내는 김무홍의 첫 컬렉션은 그런 기대감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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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가 가장 좋아하는 책, 로버트 W.콕스의 <Approaches to World Order>.
 
2 첫 컬렉션 보드가 놓인 작업실 한 켠.
 
3 즐겨보는 패션 서적 중 하나인 <A History of Men’s Fashion>.
 
 
 

 
 
4, 6, 7, 8  2014 S/S 컬렉션 룩. 김원중이 입은 드레스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5 현재 진행 중인 2014 F/W 컬렉션의 패턴. 그리고 그의 시그너처 아이템인 동그란 안경과 실버 링.
 
9 빈티지 가구들이 늘어선 아틀리에.
 
 
 
2014 S/S 서울 패션위크 중 이름조차 생소한 무홍의 쇼를 보러간 건 우연히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모델 김원중 덕분이었다. 단지 디자이너의 옷이 마음에 들어 방송 스케줄도 미룬 채, 토요일 아침 쇼에 서기 위해 왔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해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가 무홍의 옷을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그곳엔 어디에서 본 듯한 허세스러운 커팅이나 눈에 띄는 디지털 프린트는 없었다. 낯선 요소들이 충돌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놀라울 만큼 정제된 디자인에 테일러링은 날이 서 있었다! 마침 자연광이 든 IFC몰 54층의 휑한 공간에 맥시 드레스를 입은 기다란 실루엣의 피날레 행렬이 등장했을 땐 가슴 어디선가 ‘쿡’ 하고 감동이 밀려왔다. 뿌듯해할 만한 서울 패션위크 데뷔 쇼를 치른 디자이너 김무홍을 만났다. 백스테이지에서 본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입은 채 낡은 의자가 늘어선 휑한 아틀리에에서 우리를 맞았다.
먼저, 무홍(Moohong)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얘기해 보자. 당신에 대해 아는 건 정치학 박사가 돌연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뿐이다.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나 지금도 해외 학술지 논문을 준비하면서 디자인을 병행하고 있다. 2012년, 영국에서 잠시 귀국했을 때 내가 입을 옷 몇 벌을 만들어볼까 했던 게 시작이 됐다. 어린 시절부터 디자이너인 어머니(그의 어머니는 디자이너 문영희다)가 옷을 만드는 걸 가까이서 봐와서 그런지 브랜드를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딱 내 얘기다.
주변 반응이 궁금하다 굉장히 황당해했다. 특히 전공 분야의 지인들은 나이 들어 사춘기를 겪나 했을 거다. 사실 내게 두 가지 분야는 전혀 상관없는 영역이 아니다. 인문학을 하다가 패션을 해보니 오히려 공통분모가 많은 것을 느꼈다. 표현하고 싶은 걸 글뿐 아니라 패션으로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패션과 인문학의 소통이라는 다소 실험적인 모티프를 바탕으로 브랜드를 시작했다. 그 근간이 돼준 책이 <Approaches to World Order>인데 저자의 관점에서 동시대를 바라보면 현재의 주류 문화나 사회 구조는 여러 체제 중 하나일 뿐이며 변화가 가능하다. 계층이 다른 패션 코드의 소통과 조화, 대립을 통해 제3의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인문학적으로는 제3의 계층화를 갈망하는 게 브랜드를 만든 동기다.
2014 S/S 컬렉션의 주제를 차브(Chav)와 하이패션으로 정한 이유는 내가 살던 코벤트리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차브족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저속한 차브의 코드를 테일러링과 접목해서 럭셔리한 하이패션으로 표현하면 오묘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느낌을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해외 페어에 참가했던 2013 F/W 시즌은 가톨릭과 스트리트 문화를 접목한 ‘스트리트 가톨릭’이 주제였다. 매 시즌 주제가 변해도 변치 않는 요소는 내가 만든 남성복을 보면 여성스럽다고 얘기하고, 여성복을 보면 남성복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중성적인 것을 좋아하는 취향이 자연스레 반영된 것 같다. 쇼에 다양한 실루엣의 팬츠가 등장한 반면, 남자들이 입은 스커트도 아름다웠다. 팬츠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특히 인셋이 달린 여자 팬츠의 경우 스커트 같은 팬츠 실루엣을 연출하고 싶었다. 반대로, 스커트를 입은 남자가 멋져 보여서 대학교 땐 모로코 여행에서 돌아온 후 모로코 전통 원피스를 입고 캠퍼스를 활보했을 정도다.
한국과 프랑스, 영국에서 보낸 시간이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결정적으로 서울을 베이스로 정한 이유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다양하게 섞인 문화적인 경험이다. 그런 다문화적인 요소들을 내 방식대로 표현하고 싶고 특정 주류 문화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앤 드뮐미스터나 하이더 아커만처럼 고향에서 해외 활동을 하는 사례가 흔하기 때문에 베이스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서울을 베이스로 하되 해외 활동을 지속하고 싶었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워낙 바쁘셔서 지금까지 배운 걸 합해도 25분이 채 안될 것 같다. 자문을 구할 때마다 해주시는 말씀은 한결같다. “네가 입고 싶은 걸 만들어라. 입고 싶은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게 분리되면 결국 자신도 행복하지 않으니까.” 그게 정답인 것 같다. 어쩌면 내 옷이 웨어러블하고 정제됐다고 느끼는 이유는 입고 싶은 걸 만들어서일 거다.
 
    
요즘 일상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건 뭔가 며칠 전 봤던 연극 <레드>. 화가 마크 로스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예술가들의 언쟁이 흥미롭다. 틈날 때마다 미술사나 미학, 패션사를 공부하는데 오래전의 패션을 돌아보면 동시대 디자이너들에 대한 환상이 깨질 때도 있다. 어쨌든 돌고 도는 게 패션 사이클이니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세 가지 가족, 시각, 사고.아무도 걷지 않는 길을 걸으며 어려운 점은 정해진 답이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부담이 없다.  꿈꾸는 것은 하나의 주제로 컬렉션과 논문을 함께 진행하고 기회가 되면 전시도 해보고 싶다. 더 다채로운 분야로 넓혀 나가고 싶다.
 
 
 
Credit
- EDITOR 주가은 PHOTO 김정호
- 천영상 COURTESY OF MOOHONG DESIGN 하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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