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유기견을 입양했다. 내 세계와 그의 세계가 뒤섞인 약 한 달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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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게 ‘밤비’와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어떤 ‘여건’과 ‘자격’을 운운하는 마음에 덜컥 들어선 두 살짜리 믹스견. 취재차 보호소와 유기견 관련 계정을 팔로잉하다 우연히 그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밤비의 원래 이름은 자두. 시골길에 버려져 있던 아기 자두는 한 살 때 입양이 확정돼 켄넬 훈련도 하고, 목욕하고, 새 가족 만날 날을 기다렸지만 입양 당일 크기가 크다는 이유로 취소된 채 약 1년을 더 유기견 보호소에 있게 됐다. 그의 까만 털과 동공, 못생긴 이빨은 내 심장을 뛰게 했지만 정작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 매일 고심했다. 한 달에 두 번씩 DM으로 ‘자두… 입양됐나요?’라고 문의하면서 말이다. 6개월 내내 받은 답변은 ‘아직 보호소에 있어요’였다. 내가 입양하지 않으면 밤비는 계속 그곳에 있을 거였다. 늘 기계처럼 똑같이 돌아오는 답변은 어떤 큰 용기를 불러일으켰다.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고, 운전할 줄 아는 동거인이 생긴 영향도 있지만 책임감 있는 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난 것이다. 이 결심에는 반려견 구조와 입양기를 다정하게 기록한 유튜버부터 명확한 논리로 변화를 촉구하는 행동가까지, 내가 보고 듣고 취재한 수많은 사람의 반려견 문화에 대한 인식과 태도 개선의 노력이 스며 있다. ‘애완견’에서 ‘반려견’으로, ‘주인’에서 ‘보호자’로 호칭이 바뀌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고 믿게 만든 작은 소리들을 세상에 전달하는 자로서 일종의 ‘정당성’을 의심했던 나였지만, 적어도 스스로는 변화 시킨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면서 더 큰 용기가 생긴 것이다.
입양 절차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서면으로 질답을 작성하고 전화 상담을 한 뒤 입양이 확정되면 직접 데려오는 수순이었다. 다른 유기견이 아니라 왜 자두여야 하는지, 주로 돌볼 사람은 누구인지, 가족구성원의 변화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건지, 실내 배변 실수를 하면 어떡할 건지…. 이력서 이후 이렇게 열심히 적어본 질답서가 있었을까. 그래도 나름 취재하며 배운 지식 덕분인지 금방 연락이 왔다. ‘데려가실 줄 알았어요’라는 말과 함께. 곧장 강릉으로 향했다. 보내준 영상 속에서 무척이나 활발해 보였던 밤비는, 보호소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한참 쳐다봤다. 마치 탐문이라도 하듯, ‘네가 제대로 나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조용히 묻는 것 같았다. 유기견 입양의 무수히 아름답고 감동적인 환상을 제치고 실제 눈앞에 있는 작은 존재와 마주하니 ‘과연 너도 나와 함께하고 싶은 걸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애써 긴장을 숨긴 채 처음으로 생명 앞에 사인과 서약을 했다. 준비해 간 켄넬에 얌전히 들어간 밤비는 강릉에서 서울까지 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꼭 강제로 그를 납치한 도둑놈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혹여 그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지, 그를 데려오는 것이 맞는지 그때야 비로소 의심하며 나는 2시간 내내 밤비처럼 말이 없었다.
그로부터 한 달, 밤비는 아직도 어리바리한 나를 가만히 꿰뚫어본다. 가끔 산책이 귀찮을 때 내 발걸음이 느려지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노려본다. 입술을 핥는 것도 부담스러울 때가 있어서 고개를 돌리면 이내 중단하고 자기 자리로 간다. 겁이 많고 소심해서 눈치를 보는 밤비는 로봇청소기와 건조기 소리에도 깜짝 놀라고, 어떨 때는 허공에 혼자 으르렁댄다. 배변 패드에 배변을 잘 하다가도 귀가가 늦어지는 날에는 보란 듯이 소파 위에 자기 똥과 오줌을 자랑한다. 함께 살기 위한 규칙은 필요하기에 어설프게 훈련하면서도 그가 ‘이 규칙은 너만을 위한 규칙 아냐?’ 하고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나를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으르렁댄다. 쓰다듬으면 피할 때도 있다. 그 행동에 서운함을 느끼다가도 행여 나는 나를 행복하게만 해줄 개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 심각한 자기검열에 빠지기도 했다. 가끔 밤비를 처음부터 데려왔으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고, 반대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어땠을지 상상하기도 한다. 동시에 그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직면한다. 낯설고 이상한 밤비는 자꾸 나를 흥분시키고 자문하게 만든다.
계절이 한 차례 바뀌어서일까. 밤비가 꼬리를 흔드는 속도가 빨라졌다. 산책 나가면 여전히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지만, 요즘은 가끔 돌아보며 내 발걸음을 맞춘다. 아침에 일어나면 깰 때까지 내 얼굴을 바라보고, 조용히 다가와 내 허벅지에 가만히 자기 엉덩이를 붙인다. 밤비에게도 분명 나는 이상한 사람일 텐데, 그 낯선 세계에 엉덩이를 붙이는 작은 용기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착각에 빠트린다. 겨우 한 달.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이쪽 방에서 저쪽 방으로 발걸음을 함께 옮기거나 발을 씻겨주는 내 손을 가만히 핥고 간식 봉지 까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는, 내 작은 영향력 아래 웃고 또 기가 죽는 밤비에게만큼은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졌다. 생에 한 번도 어른인 적 없었던 것 같은 내가 말이다. 귀찮은 티를 내도 오해하지 않는 밤비. 어떤 말도 털어놓을 수 있고 눈곱을 떼지 않고 나체로 마주해도 아무 말없는 밤비. 엘리자베스 마셜 토머스의 책 <개와 함께한 10만 시간>에서 “인간의 레이더는 인간의 신호를 감지하며, 개의 레이더는 개의 신호를 감지한다. 바로 이것이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저질러도 개들이 불평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이유이며, 개가 다른 개들이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는 일을 저질렀을 때 사람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는 이유다. 이런 식으로 사람과 개는 서로 판단하지 않고 함께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로이 전적으로 우리 자신으로 있을 수 있으면서 여전히 높은 수준의 교제를 이어간다”라는 표현이 비로소 실감 났다.
사실 내 유기견 입양기에 특별히 쓸 말은 없다. 감동이나 극적인 깨달음, 혹은 어떤 방법론도 없다. 그저 기대하고, 불안해하고, 실망하고, 흥분하고, 귀찮아하는 나와 밤비의 상태만 존재할 뿐. 길을 걸을 때 먼 산만 보던 나는 이제 땅과 굴러가는 낙엽을 본다. 그의 까만 동공을 가만히 바라보면 이용되고 소유되다 버려지는 존재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오래 하게 된다. 밤비가 좋아하는 개미 떼와 정면으로 마주치면, 으르렁대는 길고양이를 상대하다 보면 그들과 내 존재가 연결되는 듯한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를 쓰다듬거나 그의 손톱을 깎을 때 힘 조절하느라 손끝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는 것도, 때에 맞춰 누군가의 밥을 챙기고, 산책을 위해 몸을 일으키는 일은 내 삶이 더 확장되는 생경한 감각과 ‘기쁜 짜증’을 안긴다. 내가 그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코를 내밀고 베란다 창밖 냄새를 함께 맡는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귀여운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지금도 이 원고를 쓰는 내 옆에서 잠자다 타다다닥 타자 소리에 귀를 쫑긋하는 내 소중하고 낯선 친구에게. 너의 미래는 내가 선택해 버렸는데, 너는 너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니. 나는 너 덕분에 적어도 이 세계의 이야기, ‘동물을 데려오는 일’에 관해 더 용기 있게 글을 쓸 수 있게 됐단다. 입양 소식을 전하면 누군가는 불편함은 없는지 묻는다. 대견하다며 칭찬도 한다. 하지만 유기견을 입양하는 일은 별로 특별하지도, 불편한 일도 아니다. 새 가족을 만난 일이 특별한 것일 뿐. 물론 나는 아직도 내가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다. ‘직장 다니면서 키운다고?’ ‘그거 방치 아니야?’ ‘내 몸도 간수하기 힘든데 동물까지?’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자격을 앞선다. 상념을 접고, 그저 최선을 다해 밤비와 부대끼려 한다. 그러니 이제 누군가 ‘입양 후기’ 같은 걸 물으면 그냥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분명 태어나서 처음 사랑하고 있다.
Credit
- 에디터 전혜진
- 일러스트레이터 KAY MCDONAGH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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