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사랑스러운 홀리데이 모멘트!

“당신의 사랑스러운 홀리데이 모멘트를 보여주세요!” 미국 라스베이거스, 인도 고아, 호주 멜버른,<br/>영국 런던, 러시아 모스크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곱 명의 사진가가 보내온 크리스마스 사진을 소개합니다. 소중한 하루에 담긴 찰나의 순간부터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까지.

프로필 by 정소진 2023.12.20

Jesse Rieser

수천 명의 산타클로스가 러닝 레이스를 펼치고, 빨간 모자가 바다를 이루는 기쁨의 크리스마스! 라스베이거스의 연례기금모금행사 ‘Las Vegas Great Santa Run’의 한 장면이다. 이 행사는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지역자선단체 ‘Opportunity Village’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 사진가 제스 라이저는 2012년 행사의 가장 뜨거운 장면을 포착했다. “산타클로스 복장을 입은 참가자들이 5km 마라톤에 나서기 전에 공연을 즐기는데요. 그해 공연을 펼친 스타는 당시 MTV에서 방영한 <아메리칸 베스트 댄스 크루> 시즌1 우승 크루인 자바워키즈였죠! 저는 무대에 함께 올라 이 따뜻하고 열정적인 관중의 얼굴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Jesserieser

 

Shin Hyun Bin 

사진가 신현빈은 따뜻한 멜버른에서 총 네 번의 ‘서머 크리스마스’를 즐겼다. 그중 마지막인 2022년 크리스마스를 보낸 곳은 퀸 빅토리아 마켓. 이곳에서는 주로 라이브 공연과 게임 행사가 펼쳐진다. 사람 사이를 걷던 신현빈은 우연히 음악을 트는 DJ를 발견했다. “LP를 플레잉하는 멋쟁이 아저씨를 보곤 사진을 꼭 찍고 싶어 주변을 맴돌았는데 어쩌다 눈이 딱 마주쳤어요. 그는 씨익 웃더니 ‘내가 너무 멋있어서 주위를 맴도는 거야? 찍고 싶으면 얼른 찍어!’라고 ‘쿨’하게 외쳤습니다(웃음).” 신현빈은 네 번의 크리스마스 중 이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멜버른의 겨울은 그에게 앞으로도 유쾌함 그 자체로 기억될 것이다.
 
@chalkak.film
 

Alexander Coggin

런던에서 활동하는 사진가이자 영상제작자 알렉산더 코깅에게 가장 매력적인 크리스마스 사진을 보여달라고 하자 루돌프로 변신 중인 아이들의 모습을 보내왔다. “사실 여름날에 찍은 사진입니다. 이 친구들은 ‘오페레타’ 무대에 출연하기 위해 분장하고 있었죠.” 미국 미시간에서는 극장을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해 ‘홀리데이’라는 주제의 오페레타 공연을 열었다. 백스테이지에 잠입한 알렉산더가 공연을 앞둔 이들의 모습을 포착한 것. “공연 준비부터 끝날 때까지 이 친구들을 쫓아다니며 촬영했어요. 루돌프로 변신 중인 모습이 제법 사랑스럽죠?” 
 
@alexandercoggin 
 
 

Brice Dossin

매년 인도 고아 지역에서는 히피들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연다. 하지만 2021년 행사 당일, 파키스탄과 긴장 상태였던 인도 정부는 테러 위험 때문에 모든 행사를 취소했다. 사진가 브라이스 도신은 이 사실을 모르고, 고아의 안주나 해변으로 향했지만 말이다. “해변을 따라 걷다 한 남자를 발견했어요. 엽기적인 산타클로스 복장에 하의는 속옷만 입은 채 코코넛을 먹고 있었죠. 사람들이 관심조차 주지 않는 게 신기했어요. 그 옆에는 소가 코코넛을 핥아 먹고 있었고요. 너무 이상하지 않아요?” 브라이스는 다시 걸었다. 크리스마스 기간 동안 고아 지역은 35℃에 육박해 해변가서에는 낮에는 태닝, 밤에는 광란의 파티가 새벽까지 이어진다. 다시 걸음을 옮기던 브라이스는 또 다른 풍경과 만난다. “무더운 날씨에 산타클로스 분장을 한 사나이와 태닝 중인 소녀와 마주쳤어요.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모습, 신기하죠?” 세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결국 친구가 됐다고. 브라이스가 전한 기이하고 뜨거운 크리스마스 현장이다.
 
@bricedossin 
 

Toma Gerzha

사진가 겸 영상감독 토마 게자는 친척집에서 우연히 이모 ‘마리아’가 찍힌 크리스마스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당시 이모의 나이는 네 살. 러시아 산타클로스 ‘파더 프로스트’와 전설 속 ‘눈처녀’로 불리는 ‘스네구로치카’가 개최한 파티였다(사실 어른들이 분장한 것)! 토마는 기대에 잔뜩 부푼 이모의 표정이 귀여워 이 사진을 스캔했다. 이날 모든 아이에게 분장은 필수였다. 가족들은 마리아 이모가 입을 의상을 고르느라 며칠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남자아이들은 보통 산토끼나 곰, 여자아이들은 눈꽃이나 여우, 다람쥐 의상을 입는데 마리아 이모는 틀을 깨고 산타클로스 의상을 입었더라고요(웃음).” 의상은 할머니가 한 땀 한 땀 손수 만들었다. 그러니 이 사진은 사랑스러운 이모의 유년기를 온 세상에 보여주고 싶었던 토마가 보내온 귀여운 홀리데이 기프트다. 
 
@tomafotograaf 
 
 

Emma Diaz Santiago

세 쌍둥이 아들의 엄마 엠마 디아즈 산티아고는 아마추어 사진가다. 그는 아들들의 마법 같은 순간을 포착하는 일에 푹 빠져 있다. 이 사진은 2022년 크리스마스이브 밤과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에 찍은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날, 집을 완전히 개조했어요. 이날은 개조를 마친 지 이틀이 지난 후라 매년 해왔던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미흡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크리스마스트리와 선물 상자는 잊지 않았죠.” 엠마 가족의 크리스마스 연례행사는 산타클로스를 위한 쿠키 굽기, 코스프레,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다. 지난해에는 둘째 리키가 ‘그린치’로 분장했고, 엠마는 아침부터 쿠키를 구웠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선물 상자를 기대하며 잠든 아이들 모습이 천사 같았어요.” 엠마 가족은 올해 크리스마스도 성대하게 보낼 계획이다.
 
@emmapigsandroses 
 
 

Diana Markosian

이 사진은 진짜 가족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작가 다이애나 마르코시언의 지극히 사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다. 다이애나가 일곱 살이 되던 1996년, 소련 붕괴로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방영된 미국의 시리즈물 <산타바바라> 속의 단란한 가정 모습에 환상을 품은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미국 샌타바버라로 이민을 갔다. 작가 또한 샌타바버라에서 진정한 가족의 환상을 꿈꿨다. 그리고 예술로 재현했다. “<산타바바라>의 원작 작가와 협업하고, 가족 역할을 맡을 배우를 캐스팅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어린 시절에 살았던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 아침을 재현했습니다." 작가의 사진은 그저 사진이 아니라 역사이자 꿈 그 자체다.
 
@markosian 

Credit

  • 에디터 정소진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