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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한옥을 짓는 연구소, 온지음 집공방
온지음 집공방은 지금의 한옥을 설계할 수 있는 장인을 양성하는 설계집단이자 연구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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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지음 집공방

한옥의 고운 지붕.

만우 조홍제 생가의 단출한 부엌.
얼마 전에 펴낸 <오늘이 깃든 한옥>은 온지음 집공방의 10주년을 기념한 책이다. 집공방의 시작에 얽힌 기억은
한옥연구소 ‘온지음 집공방’은 ‘아름지기’라는 시민문화단체가 모태다.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다양한 활동을 했는데 건축에 대한 접근도 꽤 많았다. 뜻을 품은 사람은 많은데 실현할 수 있는 장인이 부족한 것이 안타까웠다. 목수가 있긴 하지만 창조성이나 현대성 면에서 아쉽고, 현대 작가들은 전통에 대해 잘 모르니까. 연구 없이 ‘한국적’이라는 관념만 가지고 만드니 정확성도 부족했다. 온지음에는 집공방 외에도 맛공방, 옷공방이 있는데 모두 의식주 분야의 장인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학교를 만들자는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맞다. 하지만 학교란 손으로 하는 일보단 생각을 가르치는 쪽이지 않나. 학교가 장인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공방’ 형태로 시작하게 됐다. 실제로 일을 해 나가면서, 각 작업을 통해 창조와 교육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갖춰 나가려고 한 것이다.

현대중공업 영빈관의 야외 욕조.

경주 배동 한옥의 작은 방.
한옥 설계집단이 되겠다는 뜻에 알맞게 집공방 구성원 대부분이 건축과 출신이다
건축은 ‘하이테크’가 아니다. 개발자가 주도하는 산업이 아니라 조정자에 가깝다. 현존하는 기술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취사 선택해서 종합적인 완성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건축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말이다. 한옥에서도 건축 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한국 건축과에서는 한옥을 가르치지 않으니 기본 지식을 바탕으로 한옥을 연구하고 경험을 쌓아 한옥 설계 전문가가 돼야 한다. 이렇게 하는 설계집단이 없으니 시작해 본 것이다.
한옥에 대한 한국인의 뿌리 깊은 오해가 있을까
한옥 전문가라 하면 여전히 목수를 떠올린다. 하지만 현대식으로 따지면 목수는 시공자이지 건축가는 아니다. 퇴계 이황은 본인이 여덟 채의 건물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국사는 누가 설계했을까. 김대성이라는 건축가가 있었다. 직책은 재상급이었다니 꽤 높았을 것이다. 결국 성리학자들 같은 지식인이 연구해 제안하면 석수와 목수들이 협업한 것이 한옥일 것이다. 과거에 지어졌다고 해서 설계를 안 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동서를 막론하고 똑같다. 유럽 중세 성당의 건축가는 결국 신부나 수사들이다. 현대 한옥의 문제는 건축가가 없다는 것이다. 한옥은 원래 불편하다는 말도 무책임하다. 문화재를 수리하던 대로, 하던 대로만 지으니 한옥이 불편한 것이다. 500~600년 전의 건물 구조와 특성을 답습하기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원불교 원남교당 인혜원.

온지음 집공방 한옥에 숨은 기술들.
집공방이 설계한 한옥을 보면 동시대의 필요를 어떤 방식으로 한옥에 적용할지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한옥도 현대 건축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재료가 특수한 현대건축이라고 보면 된다. 한옥을 자꾸 옛날 집이라는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와를 얹는 현대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굉장히 많은 부분이 풀린다. 한옥이 춥고, 비와 눈이 새는 건 당연하지 않다. 지붕에도 방수하고 벽에는 보온재를 써야 한다. 기와가 방수재, 흙이 보온재라는 말이 있어 모두 실험해 봤다. 기와는 완벽한 방수재가 아니다. 흙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현대인이 사는 공간이지 않나. 한옥에 산다고 옛날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한옥과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욕망은 비슷하다. 오히려 한옥 사는 사람이 더 복잡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정신적인 욕망.
한옥과 현대건축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지점은
재료와 구축법이다. 한옥의 장점은 재료와 사용자의 ‘접점’이 많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재료를 만지고 보고 냄새 맡을 수 있는 것들이 한옥의 주재료가 된다.

동락당의 서까래.

전통 한식 창호를 내부에 설치하고 단열과 기밀을 위한 한식 시스템 창호를 외부에 설치하는 방식은 집공방이 개발한 것.

피츠버그대학 배움의 전당 내 한국관의 목구조 모형.
<오늘이 깃든 한옥>에는 한옥을 ‘정신이 풍요로워지는 집’이라고 표현했다
정신을 깨우친다, 정신이 깨어 있다, 그런 의미에 가깝다. 한옥은 공간 제약이 많다. 그래서 공간을 아껴 써야 한다. 밀도 있게, 많은 의미와 역할을 유동적으로 부여하면서. 그러니 정신활동이 자꾸 작동되는 집인 게 맞다. 세계적으로 전통 건축물의 공통성은 상호 교류를 한다는 점이다. 인간과 건축이. 돌보지 않으면 쓰러지고, 나에게 위안이 되기도 하고. 건축에서 아파트는 너무 튼튼하다. 돌볼 이유가 없다. 그러니 나에게 주는 게 없다. 그런 교류성이 사라지는 거다.
경주의 ‘관가정’에서 현대건축 원리의 생생한 실체를 봤다고도 썼다. 당시 450년 된 한옥에서 발견한 현재성이란
‘재료를 싹 소거하면 정말 훌륭한 현대건축물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좀 황당하다. 그 사이 관광지처럼 뼈대만 남은 느낌이다. 처음 봤을 때가 40여 년 전이니까 지금과는 한참 상황이 다르다. 그땐 거의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고, 당시에는 주인들이 잠시 자릴 비우면 숨결이 남아 있는 듯했다. 아주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개성이 있는 집이다. 생각을 하고 만든 집. 명작이라는 한옥은 누군가 설계한 것이다. 사람의 생각이 강하게 반영돼 있기 때문에 눈에 띈다. 한옥에서도 건축가의 생각이 읽힌다.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그것이 오래된 한옥을 보고 감동하는 이유 아닐까. 고전이라는 건 시대에 맞도록 바꾸고 재해석하는 것이고.

집공방이 개발한 한식 창호가 전면으로 적용된 동락당.

현대 건축물과 유리 매스로 이뤄진 동락당의 자연스러운 어울림.
10년간 집공방 활동에서 가장 도전적이었던 부분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한옥이 지닌 한계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은
제일 문제는 창호였다. ‘한옥은 춥다’는 관념에 대한 방책으로 창호를 개발했다. 창호지라는 것은 전혀 보온이 되지 않는 재료이고 유리를 부착한다 해도 그 창호에는 밀폐성이 없다. 그런데 국내에 목재로 된 시스템 창호가 없는 것이다. 덴마크 제품을 수입해 한식 창살을 달아 보니 괜찮았다. 원래부터 한옥은 추운 건물이고 한옥의 창호는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해서 한식 창호를 개발하게 됐고 온돌 바닥과 마루 온돌도 개발했다. 제일 어려운 것이 가구다. 가구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스칸디나비아 가구를 갖다 놓는 것 정도. 그나마 제일 잘 어울린다. 국내 가구산업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옥의 보편화에서 가장 아쉽고, 중요한 부분이 가구다.
한계를 느낀 부분은 결국 대중화에 대한 문제인가
한옥은 이제 명품 건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옥 스테이도 사실은 한옥을 한 번씩 경험해 보는, 명품을 분할해서 소유하는 방식으로 느껴진다. 한옥이 대중이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라는데, 고민이 많다. 명품 한옥을 만드는 작업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편에서는 한옥 건축이 보편화됐으면 좋겠다. 전체를 가질 수 없으면 인테리어 일부를 한옥 구조에서 차용한다든가. 법적으로도 개선할 부분이 많다. 한옥이 아닌 다른 건물은 모두 단열 기준 제한을 받는다. 그런데 한옥은 아니다. 한옥도 현대건축과 동일선상에 놓아야 현대에도 살아남는 건축이 될 수 있는데 ‘옛날부터 그랬다’는 그림자에서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옥도 보편적인 건축의 하나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전 세계 어딜 가든 새로 지어지는 건물은 다 아파트 같은 빌딩이다. 그건 별 수 없다. 그런데 아파트에 방 하나만이라도 한식 방이 있으면 좋겠다. 일본은 최첨단 아파트에도 다다미방이 하나씩 있다. 인도도 명상실을 하나씩 두고.

현대의 재사건축물로 지어진 무중원.

무중원 외부의 콘크리트 루버.

겹문이 연출하는 실내의 다채로운 표정들.

아름지기 사옥 한옥의 툇마루.

대청마루.

경주 배동 한옥의 마당.

어울림채.
지금 착수 중인 프로젝트는
미국 워싱턴 DC 조지 타운 대학 내 큰 강당을 한국적인 디자인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공간을 부분적으로 한옥화하는 실험도 하고. 300명 정도 들어가는 강당인데. 이런 건 대중적인 측면에서 가치 있는 일이어서 도전하고 있다.
집공방의 최근 관심사
<오늘이 깃든 한옥>의 영문판을 낼 예정이다.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 이것을 마치고 준공하면 같이 콘텐츠로 담아 개정판 겸 영문판을 준비하고 있다. 온지음은 온전하게 우리 역할에 충실한 부분도 있지만 업무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작업을 할 때마다 기대한다. 온지음의 한옥 프로젝트가 앞으로 명품이 되지 않을까. 몇 개는 문화재가 되리라 확신한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 표기식
- COURTESY OF ONJIUM
- 아트 디자이너 이소정
- 디지털 디자이너 민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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