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이 고양이처럼 대담해지는 순간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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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선이 고양이처럼 대담해지는 순간

자신과 다른 새로운 캐릭터와 마주할 때, 사랑하는 이들과 실컷 영화를 얘기할 때, 그리고 삶의 슬픔과 기쁨을 기꺼이 껴안을 때. 배우 박하선이 대담해지는 순간들이다.

전혜진 BY 전혜진 2023.07.05
오늘 화보는 친절해 보이지 않는 박하선의 얼굴을 담았어요.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나 다정한 모습 이면에 가장 대담하거나 날 선 순간도 있을까요
 
이것저것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아무래도 연기할 때는 좀 예민해지고, 온몸에 날이 서기도 하는데요. 그게 결과적으로 나와 주변을 힘들게 한다는 걸 알고부터 꽤 둥글어졌죠. 이제 힘을 빼는 법도 알아요.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만큼 계획하고 준비해도 결과가 늘 좋은 건 아니더라고요.
 
재킷은 Alexander McQueen. 이어링과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Alexander McQueen. 이어링과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좀 더 느슨해진 덕일까요? 7월 개봉을 앞둔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낯선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의 얼굴은 처연하면서도 용감해 보였습니다
 
김희정 감독님의 전작 〈프랑스 여자〉가 너무 좋아서 시나리오를 보지도 않고 출연했는데요. 감독님께 왜 제게 이 작품을 건넸는지 물은 적 있어요.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을 봤다더군요. 하늘나라로 간 동생의 이름을 제 이름 대신 쓰는 걸 보고 그 아픔을 아는 사람이 해야 할 것 같았다고요. 사실 이번 작품에서 별로 힘준 게 없어요. 이미 등장인물의 마음을 낱낱이 알 것 같았거든요. 원작에서 남편이 목숨 걸고 구하려던 학생의 누나가 남긴 편지를 읽을 땐 거의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울었어요. 발달장애가 있는 제 동생에게는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같은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편지가 와닿았어요. 3년 정도 지나 이제는 제 감정을 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도움이 됐고요.
 
재킷은 Moschino. 스커트는 Munn. 이너 팬츠와 벨트, 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Moschino. 스커트는 Munn. 이너 팬츠와 벨트, 이어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바르샤바는 아름답던가요
 
나치 침공 때 건축물 80% 이상이 붕괴됐고, 그래서인지 꽤 황폐하고 삭막한 느낌인데요. 또 어떤 곳은 유럽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서 예뻐요. 회식으로 술 한잔하고 거리를 걷는데, 감독님이 총알 자국으로 푹 파인 벽을 보여주더군요. 바르샤바는 그런 것을 그대로 남겨둔대요. 영화 속 주요 장면으로 등장하는 바르샤바 봉기 기념일을 함께 보내며 느꼈어요. 희생자를 기리는 묵념이 시작되는 순간, 도시 전체가 걸음을 멈추고 자동차도 클랙슨을 울리며 함께 울어주는, 그런 곳인 것 같다고요.
 
 이너 톱과 뷔스티에, 글러브는 모두 Dolce & Gabbana. 팬츠는 Essentiel Antwerp.

이너 톱과 뷔스티에, 글러브는 모두 Dolce & Gabbana. 팬츠는 Essentiel Antwerp.

 
명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구하려다 죽은 학생의 누나와 연대를 통해 상실을 딛고 일어서요. 연대가 힘이 된다고 믿나요
 
그럼요. 얼마 전에도 〈동이〉 팀의 지진희, 이소연 등배우들과 만났어요. 1~2년에 한 번씩 꼭 보는데, 그런 팀이 잘 없죠. 얼마 전 회사 배우들과 연극을 봤던 일도요. 가장 힘이 되는 사람은 딸인데요. 힘들어도 등원시키며 ‘그래도 너 때문에 힘을 내야지’ ‘내가 너를 지켜줘야지’ 이런 마음이 들면서 버티거든요. 제 나름의 연대랄지. 아이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베스트 재킷은 Munn. 스커트는 Leha. 체인 벨트와 링은 모두 Bellnnouveau.

베스트 재킷은 Munn. 스커트는 Leha. 체인 벨트와 링은 모두 Bellnnouveau.

 
SBS 파워FM의 〈박하선의 씨네타운〉에서 동료 배우들을 만나고, 작품과 사는 이야기를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죠
 
사실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연기를 잘하지? 직접 물어봐야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웃음). 정답은 얻지 못했지만 동료에게 칭찬을 건네고, 그들을 알아가며 좋은 영향을 받아요. 때론 좌절감도 들어요. 뜨겁게 일하는 배우들을 보면 부럽고,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자각하게 되거든요. 결과적으로는 꾸준한 자극이 돼요.
 
 
〈첫번째 아이〉 〈며느라기〉 〈산후조리원〉은 물론, 이번 작품에서도 기혼 여성의 입체적인 삶을 연기합니다. 현실과 밀착되니 더 진심으로 메시지를 전하게 되나요
 
경험해 본 것이 가장 와닿을 수밖에요. 좀 더 힘을 싣고 싶은 이야기에 마음이 가요. 꼭 여성을 대변하는 작품이라서 한 건 아니에요. 모든 작품에는 다양한 성별과 위치의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 숨 쉬거든요.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표현한 캐릭터 어느 하나 같은 적이 없어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 개구지게 웃던 박선생의 모습이나 〈동이〉의 인현왕후, 〈검은 태양〉의 수연은 태생부터 다른 사람의 표정을 하고 있거든요. 늘 변주를 꿈꾸나요
 
한때는 반복을 싫어하는 성향 때문에 의사를 연기하면 다음에는 경찰을 해야 했고, 경찰을 했다면 다시는 하지 않으려 했어요. 틀에 갇혔던 거죠. 이런 경찰도 저런 경찰도 있고, 직급에 따라 모두 다른 사람인데. 깨닫고 보니 그간 놓친 게 참 많겠다 싶더라고요. ‘나는 이런 사람인데, 왜 이런 면만 보지?’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이제는 그 무엇이든 제가 가진 것으로 제일 잘 어울리는 것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요즘 ‘덕질’ 중인 건요
 
여행을 좋아해서 갈 기회만 궁리 중입니다. 촬영 없을 때 남편과 딸과 후딱 다녀오고 싶어요. 우리 ‘삼총사’가 옹기종기 잘 다니거든요.
 
18년 간 배우로 살며 영화가 가진 마법 같은 힘을 느낀 적 있나요
 
영화는 결국 재미인 것 같아요. 아이가 잠들면 혼자서 혹은 남편과 영화 한두 편 보고 자는 게 낙이거든요. 훌쩍 떠나고 싶을 때,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여러 세상과 마주할 수 있잖아요.
 
영화를 여행하듯 즐기는군요. 영화의 첫 기억을 떠올려보면
 
열아홉 살에 본 〈봄날은 간다〉. 당시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문화생활을 잘 못했어요. 그때 이 영화를 상봉시네마에서 처음 봤는데, 강렬했어요. 그 좋았던 기억으로 허진호 감독님과 연극도 함께 했죠. 세기말 멜로라 할 수 있는 〈시월애〉 〈편지〉는 비디오테이프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평점 ‘7점대’의 영화들. 모두 좋다는 영화는 보통 8~9점인데, 7점대는 볼지 말지 고민하다 결국 보게 돼요. 철저하게 완벽하기보다 제가 끼어들 여지가 있고, 상상력을 자극시키죠.
 
재킷은 Juun. J. 스커트와 슈즈는 모두 Prada. 링은 Bellnnouveau.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재킷은 Juun. J. 스커트와 슈즈는 모두 Prada. 링은 Bellnnouveau. 이어링과 네크리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도 작은 여자의 이야기지만, 결코 울림은 작지 않죠. 한국 독립영화의 매력이에요
 
〈남매의 여름밤〉도, 〈밤의 문이 열린다〉도, 〈메기〉도 좋아요. 라디오에 구교환 씨가 출연했을 때 너무 잘 봤다고 하니 ‘그걸 어떻게 보셨냐?’며 좋아했어요. 사실 〈메기〉는 모두 좋아하는데도요(웃음). 최근 본 〈낭만적 공장〉에서는 박해일 배우를 닮은 듯한 심희섭 배우의 매력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죠.
 
다양한 필드를 오가지만, 독립영화 현장의 매력을 발견했나요
 
제 첫 독립영화가 〈영도다리〉(2010)였는데, 그때만 해도 개념이 생소했어요. 지금은 투자처도 다양해졌고, 상업 영화와 경계가 모호한 부분도 있죠. 배우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른 것보다 작품 자체가 좋아서 참여한 이유가 크다 보니 틀에서 자유로워진 느낌을 받아요.
 
어떤 이야기가 세상에 많아지길 바라나요
 
부동산 문제를 다룬 〈드림팰리스〉를 보며 그런 일을 얘기할 창구로서 영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안 좋은 뉴스는 점점 더 많아지고, 범죄율은 과거보다 증가했죠. 혐오 범죄도 많고, 저마다 각자의 삶이 더 중요한 시대니까. 우리는 좋은 영화를 더 많이 봐야 해요. 따뜻하면서도 재미있는 영화들, 참 좋잖아요. 최근 본 〈리바운드〉의 대사 하나하나가 진짜 힘이 되기도 했고요.
 
끝으로 박하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싶나요
 
오래 쉬면서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었는데요. 그때도 정말 연기를 하고 싶다는 것, 내가 정말 재미있어하는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죠. 촬영장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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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사진 강혜원
    스타일리스트 박선용
    헤어 스타일리스트 박창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준성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디지털 디자인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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