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 걸음의 용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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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걸음의 용기

미투,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전하는 팀 ‘상-여자의 착지술’을 기획한 마민지는 오늘도 용맹한 걸음을 내딛는다.

조민교 BY 조민교 2023.06.14
팀 ‘상-여자의 착지술’을 기획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민지.

팀 ‘상-여자의 착지술’을 기획한 다큐멘터리 감독 마민지.

 
팀 이름과 활동에 ‘착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사건이 발생했던 시점은 과거이며 지금은 안전한 곳에 있음을 온몸으로 상기시키는 ‘그라운딩(Grounding)’이라는 트라우마 치료법이 있다. 이 기법이 착지 자세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착지를 위한 연습과정이 성폭력 피해 후 일상 회복을 위해 나아가는 여정과 닮았다고 느꼈다.
 
어떻게 무용계 · 출판계 · 미술계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팀원들을 모아 ‘일상 회복 프로그램’을 탄생시킬 수 있었나
 
문화예술계 미투 관련 법정 공방이 한창이던 2020년 무렵, 미투 운동 생존자로서 안전한 공간과 공동체가 필요했다. 마침 연대 활동을 하며 만난 다른 분야의 예술인들과 뜻이 맞아 빠르게 팀을 구성할 수 있었다. 이후 각자의 전문성을 활용해 개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제안하면 생존자 모두 참여해 보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식으로 뼈대를 잡아갔다.
 
프로그램은 주로 신체 감각과 타인에 대한 신뢰 회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참여자로부터 포착한 변화가 있다면
 
코로나19로 인해 1년 가까이 활동이 중단됐던 적 있다. 그럼에도 다음 해 첫 워크숍에 전원 참석했더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안전한 공간이라는 인식이 들었다고 한다. 한 참여자는 워크숍 센터가 피해 장소 근처였음에도,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얻은 위로와 용기를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과 마주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팀의 연대기록을 모은 책 〈여자를 일으키는 여자들〉.

팀의 연대기록을 모은 책 〈여자를 일으키는 여자들〉.

 
지난 4월 〈여자를 일으키는 여자들〉을 출간했다.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미투 이후의 생존자와 연대자가 여전히 어떤 문제에 직면하고 있는지, 일상 회복을 위해 어떤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지 기록하고 싶었다. 이 기록을 읽을 또 다른 생존자가 공감과 위로를 얻길 바라면서. 혼자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지 않겠는가. 점점 잊히고 있는 사건을 재조명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약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몇몇 공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니까.
 
많은 예술인의 노력 끝에 제정된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 후 변화를 체감하는가
 
다들 예전보다 경각심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가해자들의 창작활동을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어 하나둘 업계로 복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문화예술계 미투 운동이 한창이던 시기보다 대중의 관심이 줄어든 만큼 사회적 감시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지금도 어디선가 착지를 연습하고 있을 여성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을 도와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늘 가까운 곳에 있으며 우리도 언제나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 줬으면, 착지를 위해 딱 한 발자국만 떼는 용기를 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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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조민교
    사진 김태구
    아트 디자이너 박한준
    디지털 디자인 장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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