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씨 남매와 시멘틱 에러, 케이팝과 환승연애를 우리 모두 사랑한 이유. 엘르 에디터들의 2022 컬처 비하인드씬(3) || 엘르코리아 (ELLE KOREA)
FASHION

구씨 남매와 시멘틱 에러, 케이팝과 환승연애를 우리 모두 사랑한 이유. 엘르 에디터들의 2022 컬처 비하인드씬(3)

올 해 우리가 보고 듣고 추앙한 것들.

이마루 BY 이마루 2022.12.18
 

BODY FOREVER HOME

전가영이민조
‘러브 유어셀프’ 신드롬에서 파생한 슬로건. ‘내 몸을 긍정하자(Body Positive)’는 확실히 많은 한국 여성들이 몸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일조했다. ‘보디 포지티브’를 뛰어넘은 몸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고민하던 여름, 〈엘르〉는 7월호를 통해 다채로운 몸의 ‘이미지’를 전하기로 했다. 여성전용운동공간 샤크짐의 열혈 회원들이 웹툰 〈여성전용헬스장 진달래짐〉의 캐릭터들과 만나고, 예술가들이 응시한 여성의 몸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며 큰 근육, 살, 털, 반점, 튼살, 주름, 비대칭의 특징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신체에 카메라 렌즈를 가져다 대는 방식으로 말이다. 역설적이지만 ‘몸’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보여지는 몸과 기능하는 신체 양쪽에 엄청나게 미세한 검열과 교정이 끝없이 존재한다는 것을 재확인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할 때도 제모와 와이존에 대해 생각하거나, 기껏 비뚤어진 내 코를 받아들이게 됐나 싶다가도 미간 주름에 보톡스를 맞을 궁리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평생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친구이자 나의 집인 몸. 이 몸을 그저 몸으로 볼 수 있는 미래가 도래하길 바라며.  〈엘르〉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이마루
 

〈시맨틱 에러〉가 쏘아올린 BL월드

이토록 모두 ‘BL(Boys Love)’이란 키워드를 대놓고 쏟아내던 때가 있었던가? 오랜 BL 마니아로서 반갑기도, 약간 부끄럽기도 한 신드롬의 중심에는 〈시맨틱 에러〉가 있다. 〈시맨틱 에러〉는 컴공과 ‘아싸’ 상우(박재찬)와 디자인과 ’인싸’ 재영(박서함)의 캠퍼스 로맨스를 담은 2018 리디북스 BL 부문 대상작인 동명의 웹 소설을 원작으로, 왓챠의 콘텐츠 순위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여준 웹 드라마다. 이 기세를 응원하던 찰나, 비주류를 주류로 단숨에 끌어올린 대담한 93년생 김수정 감독과 마주하게 됐다(6월호). 한창 ‘함찬’ 커플에 과몰입해 있던 나는 종이 속에서만 팔랑이던 두 남자를 이토록 생생히 현실로 재현해 준 ‘선생님’을 위해 내가 시킬 수 있는 가장 맛있는 간식을 주문했다. 호들갑에도 그는 담담했다.  “이 모든 건 배우들 덕분이다. 연출자로서 자질이 있을지 의심 가득했던 내게 〈시맨틱 에러〉는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줬다”며. 90년대생 또래로서, 콘텐츠업 동료로서 혹은 지독한 팬심으로 나는 촬영 후 술 한 잔 기울이고, 함께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는 내내 이 반가운 ‘변화’에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욕망을 더해 “시즌 2가 나오나요?”라고 슬쩍 물었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며 웃기만 했던 감독님. 그러면서 “재찬이 화보 너무 잘 봤어요!”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사실 인터뷰에 앞서  ‘엘르 재찬’이라는 대명사를 얻은 화보(5월호)를 진행한 송예인 에디터를 붙잡고 셀렉트 컷과 B컷 모두 미리 볼 수 있는 특권을 강요했다. 로맨스 장르와 결은 같지만 성별에 따라 부여되는 고정관념이나 역할 강박 없이 주인공을 바라보게 된다는 점에서 BL에 매력을 느끼는 나. 안녕, 10대 시절 독서실에서 함께 책을 돌려보던 내 오랜 BL 친구들아. 놀랍지? 이제 BL 화보를 대놓고 찍을 수 있는 날이 온 것 같아. 전혜진


장애를 넘어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관한 이슈로 떠들썩하다. 시위가 계속되는 이유에 대한 질문보다 ‘출근길 불편함’이 미디어에 노출되는 나날들 사이에서 지난 3월, 나는 4인의 장애 여성 크리에이터와 마주했다. ‘휠꾸(횔체어꾸미기)’ 하는 뇌병변장애인 구르님, 수어로 노래하는 청각장애인 하개월, 서툰 요리 실력을 뽐내는 시각장애인 우령, 머슬 마니아에 도전한 지체장애인 현링까지. 결핍을 극복하는 초월적인 존재 혹은 누군가의 ‘짐’처럼 여겨졌던 이들은 하나의 카테고리적 덩어리이자 양극단에 선 존재로 장애인을 그리는 미디어가 더는 필요치 않은 MZ세대 여성들이다.
 
이 네 개의 다채로운 세계를 맞은 나는, 인터뷰 준비 과정 내내 새로운 세계에 눈뜬 어린아이였다. 늘 가던 스튜디오의 엘리베이터 너비는 휠체어가 들어가기에 충분한지, 인터뷰 시 수어 통역사의 통역 타이밍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투박하고 멋진 의족과는 어떤 스커트가 어울릴지 고심했고 컨셉트 시안은 물론, 자신의 인생 화보를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이에게는 어떻게 멋진 디바의 모습을 말로 표현해 줄지 고민했다. 우려와 긴장은 하개월과 BTS 콘서트에 가기로 약속하고, 안내견 브이로그 주인공인 하얀이의 실물에 감탄하고, 현링의 화보 촬영 브이로그에 등장한 내 ‘못생김’을 보고 낄낄대며 무뎌졌다. “실패할 기회가 없는 사람도 있다. 저는 맘껏 실패하고 싶다”며 책을 낼 거라고 말한 구르님의 산문집 〈하고 싶은 말이 많고요, 구릅니다〉를 서점에서 반갑게 마주하면서도. 매달 네 편의 에세이를 소개하는 ‘엘르 보이스’ 또한 ‘장애’를 우리 주변 이야기로 가져왔다. 최지은 작가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전지민 작가는 차츰 시력을 잃게 된 아버지 이야기를, 백세희 작가는 아토피 치료를 위해 바른 스테로이드제로 인해 한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로부터 반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적어도 대화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무엇이든 소통해야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전혜진
 

남의 연애

2021년 9월, 헤어진 연인과 다시 한 집에 모이고, 연인이 아닌 다른 상대와 데이트를 즐기는 등 우후죽순 쏟아지는 요상한 연애 리얼리티에 관한 칼럼을 쓴 적 있다. 비혼이나 연애 포기자들이 속출하는 현실과 반대로 남의 연애담에 과몰입하는 현상이 과연 합당한지 야심 차게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해당 글의 결론은 ‘열렬한 관음은 시청자인 우리 모두의 특권이기도, 남의 연애에 울고 부는 당신은 여전히 뜨거운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니까!’로 종결됐다. 글을 쓰고 사례를 조사하는 동안 내가 바로 그 ‘미친 과몰입자’가 돼버렸으므로. 과몰입은 ‘과과몰입’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올해 더 강력하게 쏟아진 연애 예능프로그램! 〈솔로지옥〉 프리지아의 매력에 허우적대다가 〈돌싱글즈2〉 윤남기&이다은 커플의 결혼 소식에 아직 세상은 아름답다는 걸 실감했다. 〈나는 솔로〉 10기의 주역인 ‘그대라이팅’의 대가 영식의 모습에 학을 떼다가도, 더 강력하게 돌아온 〈환승 연애2〉로  1년치 눈물 콧물 다 뺐다. 내 연애와 이별 앞에서  이 정도로 울었던 적 있었나? 미련 가득한 출연자 해은의 입 모양이 ‘ㅅ’이 될 때마다, 희두가 나연에게 못된 말을 할 때마다, 규민이라는 일면식도 없는 남자를 욕하다가 이해했다가 사랑했다가…. 처음엔 “난 그거 잘 안 봐.  왜들 이렇게 난리야?”라며 허세를 부렸지만, 몰래 새벽 네시까지 꺽꺽 우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마지막 회 방송이 지연됐다는 소식에 시청자들이 그 정도로 극대노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그 장본인도 나예요). 지난해 12월호 〈엘르〉에서 일찌감치 만났던 이진주 PD는 〈윤식당〉 〈삼시세끼〉 등의 히트작을 탄생시켰지만 연애 프로그램 연출은 〈환승연애〉가 처음이었다. “사소한 감정과 디테일에 집중하면서도 흡인력 있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기회가 왔다. 예능의 유일한 기능이 ‘웃음’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번 시즌의 출연진 섭외 기준 또한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밝히기도. 그래서 우리는 친구의 연애를 보듯 출연자들의 소소하고 찌질한 구석까지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나 보다. 만드는 사람도, 출연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7년치 연애를 한 듯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함께 탔지만 그럼에도 증명받아서 좋다. 우리는 여전히 사소함에 울고 부는 인간이자, 뜨거운 가슴을 지닌 청춘이라는 것을. 전혜진
 

나의 해방일지

추앙. 누군가는 ‘오글거린다’지만 나는 올해 이만큼 가슴 뛰는 단어를 만나지 못했다. “하는 일 없이 지쳐. 그래도 소몰이 하듯 어렵게, 어렵게 나를 끌고 가요.” 공허한 눈의 염미정(김지원)은 미스터리한 옆집 구 씨(손석구)에게 대뜸 “사랑으로는 안 돼. 날 추앙해요”라고 지시한다. 추앙이라는 무조건적인 지지. 이 시대 염미정들에게 필요했던 낮뜨거운 말. 일찌감치 〈엘르〉는 〈나의 해방일지〉 팀과 마주했다(8월호). 진행한 이경진 에디터에 따르면, 원래 손석구를 포함한 촬영이었으나 촬영 전 코로나에 걸린 탓에 아쉽게도 3인만 촬영하게 됐다고. 시안도 그에 맞춰 급히 바뀌었고 로맨틱하기보다 3남매의 애틋한 분위기가 담기게 됐다. 방영 이후 구 씨의 추앙에 미쳐버린 나는 “선배…. 구 씨는 있어야 했어요. 마지막 퍼즐이라고요!”라며 ‘광광’ 울었다(손석구는 이후 초절정 관능적인 주얼리 화보로  〈엘르〉와 만났지만). 구 씨가 빠진 건 아쉽지만 사실 내가 ‘추앙’한 건 염미정이다.
 
다양한 여성상을 쫓아온 〈엘르〉 에디터로서 사랑해 마지않는 용감한 여자. 고요해 보이지만 타성에 젖은 대화를 거부하고 ‘좋은 유모차를 끄는’ 이야기보단 ‘집으로 향하는 논길에 본 배가 터진 개구리들’을 얘기하는 동물 같은 여자, 관성을 거부하는 날것의 사람. 미정이 ‘해방’되고 싶었던 건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나 서울까지 힘겹게 출퇴근하는 일 혹은 사랑이란 이름으로 돈을 떼먹은 전 남친이 아니다. 그 관계들이 지닌 공허함이다. ‘추앙’에 열광한 우리 또한 움츠러들었던 걸까. 전보다 많은 말을 하지만 알맹이는 없고, 안전한 것들만 뱉고 싶어 몸 사리는 시대. 미정은 추앙의 힘으로 밤길을 내달리고, 날 선 말을 마구 쏟아낸다. 사람이 진절머리 나게 싫지만 동시에 연결돼 있기를 바라는 우리의 민낯을 대변하며. 화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정은 기정과 창희, 두 사람을 안고 있다. 선배에게 “장녀도, 장남도 아닌 미정에 왜 두 사람을 엄마처럼 안고 있나요?”라고 물었는데 당시 세 남매가 “미정이 우리를 안아주는 것이 좋겠어”라고 했다고. 그런 염미정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 미정의 동물 같은 다정함이 담긴 이 컷이 나는 좋다. 전혜진
 

이찬혁의 이유 있는 마이 웨이 

지난해 리빙 브랜드 ‘세이 투셰’를 론칭하고, 첫 소설 〈물 만난 물고기〉를 출간해 자신만의 예술을 펼치기 시작한 이찬혁이 올해는 보다 자유롭고 대담한 예술가로 돌아와 흥미로운 존재감을 뽐냈다. 어느 날 갑자기 개인 인스타그램의 게시물을 지우고, 얼마 후 개설한 개인 유튜브 채널에 영문 모를 오픈카 드라이브 영상을 업로드했을 때도 다 그럴 만한 이유 있을 거라 믿었다. 논란 아닌 ‘지디병’ 논란과 ‘힙합은안멋져’ 패러디 돌풍 사이였던 지난해 8월, 이찬혁과 마주했다. 악뮤의 새 앨범 〈Next Episode〉를 소개하며 당시 이찬혁은 “내 안의 자유를 찾고 싶다”는 말을 했다. 출근 시간에 서울 한복판에서 온갖 여유를 즐기는 모습으로 행위예술 같다는 평가를 받은 영상을 보며 그날의 대화가 복선처럼 스쳤다. 그리고 10월 17일. 이찬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첫 솔로 앨범 〈Error〉가 나왔다. ‘난 언제 죽어도 상관없어’라던 지난날의 ‘멋진 척’을 인정하고 그는 타이틀곡 ‘파노라마’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 몸에 와인을 쏟고, 삭발을 감행하는 퍼포먼스보다 중요한 것은 메시지다. ‘왜 안 돼?’라는 질문 끝에 펼쳐질 모든 가능성을 긍정하는 이찬혁의 진심. “제가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거대한 자연의 사이클에 기여하는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해요.” 조금 느끼하지 않냐는 의견 때문에 막판까지 삭제를 고민했던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 여기엔 단 1%의 과장도 들어 있지 않다. 그는 예술보다 삶을 사랑하므로. 류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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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이마루/ 전혜진/ 류가영
    디자인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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