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살 때 프랑스 남부 지역을 거닐며 프로방스 풍경과 세잔,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들이 어떻게 이 풍경을 담아냈는지 공부했습니다. 이 경험은 피카소를 포함한 수백 명의 아티스트를 만나게 해주었고, 피카소는 영화감독 앙리-조르주 클뤼조(Henri-Georges Cluzot)와 함께 ‘피카소의 미스터리’를 촬영하고 있던 빅토린 스튜디오에 저를 초대했습니다. 저는 그곳에 완전히 매료돼 몇 번 더 방문했죠. 제가 예술가의 삶을 선택한 것은 한 작품이 아니라 한 사람의 태도였습니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 혹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은
1976년 기점으로 작품은 작업공간의 중요성에 기반을 뒀습니다. 프로방스에서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으면서 말이죠. 그들 작품이 스튜디오에서 파리 갤러리로 옮겨졌을 때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사라졌다고 확신했습니다. 같은 시기에 멕시코혁명 이후 20세기 벽화가들을 공부하기 위해 멕시코로 떠났습니다. 작품들은 모두 직접적으로 정치, 문화, 역사, 지리적 환경을 반영하고 있었어요. 이런 경험은 작품이 창조되는 공간과 작업의 본질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답은 명확했습니다. ‘거리’입니다. 이후 제 작업은 어디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한 ‘환경’에 집중했습니다. 더 이상 스튜디오가 필요하지 않았죠.
이중 디자인의 개념을 아티카퓌신 백에 적용했다.
작품의 어떤 요소가 아티카퓌신에 영감을 줬나요
아티카퓌신을 작업하면서 주제로 삼은 건 평소 작업의 핵심이었던 특정 공간이나 환경이 아닌, 제가 ‘구성’하는 물건입니다. 카퓌신은 사다리꼴의 보디와 원호 형태의 핸들로 매우 심플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초안은 다소 추상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물의 기능은 명확했습니다. 핸들을 정확한 반원 형태로 만들고 이를 카퓌신 보디에 연결하면서 사다리꼴과 원, 이 두 형태가 합쳐 새로운 오브제가 탄생한 것입니다.
루이 비통 장인들과 협업해 컨셉트를 정하고 아티스트의 작품 미학을 카퓌신 백에 담는 과정은 어땠나요
단시간에 최고의 해결책을 구현해 내는 루이 비통 장인들에게 감명받았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제가 간략한 스케치를 보여준 지 3 주 만에 장인들은 저에게 제품 향상의 기반이 된 시제품을 제시하더군요.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 혹은 패션,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하는 작업을 예술인 척하지 않겠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실용품일 경우에는 더더욱. 아티카퓌신이 아름다움과 패션 영역에 도달하는 가방, 그 이상으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은 시작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연필을 잡았고, 세 살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후 건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 진학했지만, 처음에는 조각과 라이프 드로잉, 페인팅 등에 관한 수업을 찾아 들었어요. 어린 시절에 토요일마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사무실에 가서 엔지니어링을 배웠고, 도면 설계 같은 기초지식을 쌓은 덕분에 대학교에서 수월하게 건축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서적과 아트 작품이 함께 놓인 아틀리에.
처음 구매한 현대미술 작품 두 점! 건축가로서 첫 직장이던 스키드모어 오윙스 & 메릴(Skidmore Owings & Merrill) 건물 모퉁이에 있는 페이스 갤러리에서 구입한 루카스 사마라스(Lucas Samaras)의 작은 폴라로이드 두 점입니다. 갤러리에서 첫 수표를 쓴 기억이 남네요.
중세시대의 클래식한 잠금 장치를 적용한 아티카퓌신 백.
디자이너의 삶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준 중요한 계기나 인물이 있을까요
뉴욕에서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클라스 올든버그(Claes Oldenburg) 그리고 앤디 워홀(Andy Warhol) 같은 아티스트들의 스튜디오를 자주 방문했습니다. 20년은 앞서나가는 팝 아티스트들의 예술을 보며 과연 그런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죠. 저에게는 건축이 더 가까웠고, 자연스럽게 회화 대신 건축을 추구하게 됐습니다. 회화보다 건축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서적과 아트 작품이 함께 놓인 아틀리에.
작품에 담겨 있는 스토리텔링이나 반복되는 요소가 있나요
빛과 물질, 공간입니다. 모든 프로젝트에는 공간, 빛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프로젝트를 위해 300여 명이 넘는 예술가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이를 파이돈(Phaidon) 출판사와 함께 저서 〈피터 마리노 아트 아키텍처 Peter Marino Art Architecture〉를 쓰기도 했습니다. 저에게는 예술과 건축의 조화로운 만남이 중요합니다.
카퓌신 가방과 작품을 어떻게 접목해 아티카퓌신으로 재탄생시켰나요
회장직을 맡은 베니스유산재단(Venetian Heritage)에서 14세기 건축물 스쿠올라 그란데 디 산 조반니 에반젤리스타(Scuola Grande di San Giovanni Evangelista)를 재건하기 위한 모금을 진행 중이었는데, 한번은 기념비 계단 근처에서 이탈리아 건축가 마우로 코두시(Mauro Codussi)가 디자인한 중세시대의 트렁크를 발견했습니다. 이 트렁크의 스트랩과 중세 열쇠 디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아티카퓌신 가방을 재해석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는 예술 혹은 패션, 어디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