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방영한 드라마 〈살인자의 쇼핑목록〉 이후 꽤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나요
종영 이후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촬영을 바로 이어갔어요. 여름부터 6개월 정도 작품에 몰두하고 지내다가 촬영 마친 지 열흘 정도 됐답니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촬영했는데, 스태프 모두 합이 잘 맞았어요. 지금껏 경험해 본 촬영현장 중 가장 행복한 현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도 많이 들었고, 따뜻했던 분위기가 작품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아 좋아요. 촬영 끝날 때는 너무 아쉬워 눈물까지 났어요.
그러데이션 톤의 재활용 캐시미어 오버사이즈 판초와 재활용 메시를 사용한 플라워 그린 컬러의 나마 스니커즈는 모두 Chloé.
〈엘르〉 11월호를 위해 끌로에 2022 F/W 컬렉션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이전에도 끌로에와 함께했었죠. 다시 만난 소감과 촬영하면서 입어본 컬렉션 중 마음에 드는 룩을 꼽아본다면
괜히 반갑더라고요.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의상들이라 새롭고 흥미로웠어요. 제일 마음에 든 건 화이트 슬리브리스 톱에 레더 팬츠를 매치한 룩이었는데, 제가 슬리브리스 톱을 좋아하거든요. 오늘 날씨와도 잘 어울려서 예뻐 보였어요.
캐시미어와 실크의 시어링 베스트 코트, 벨트, 미디엄 사이즈의 에디스 토트백, 비스코티 베이지 컬러의 나마 스니커즈는 모두 Chloé.
공식 석상에서는 화려한 드레스나 세련된 수트를 즐겨 입는 반면, SNS에는 20대 또래 친구들처럼 편한 옷차림으로 다니는 일상이 눈에 띄더라고요. 쉬는 날에는 무얼 하나요
거의 집에만 있어요. 스케줄 없이 쭉 쉬는 기간이 되면 친구들과 놀러 다니고요. 제가 ‘I’형 인간이라 ‘집콕’이 대부분이에요. 주변에 집에서 꺼내주는 친구가 많아서 ‘여기가 핫 플레이스다’ 하면 같이 탐방을 나서곤 해요. 그렇지 않은 날에는 온전히 집에서 하루를 보내죠. 이틀 연속으로 외출 약속을 잡으면 몸살 난 것처럼 지치더라고요.
재활용 캐시미어로 제작한 크루넥 스웨터와 스커트, 니트 스카프, 비스코티 베이지 컬러의 나마 스니커즈는 모두 Chloé.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눈이 부시게 by 설현’에 종종 등장하는 반려견 ‘덩치’와 최근 어떤 시간을 함께 보냈나요
어떤 순간을 꼽기 어려울 만큼 반려견 덩치랑은 매 순간 행복해요. 지금 생각나는 건 예기치 못하게 덩치의 ‘털 뭉치’가 제 몸에 닿았을 때! 자다가 잠깐 깼는데 갑자기 발에 푹신한 무언가 닿으면 금세 다시 잠들게 돼요. 또 하나는 덩치가 잘 때 ‘꼬순내’ 같은 게 나요. 살금살금 다가가 냄새를 맡곤 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밑줄 쳐가며 기록해 두고, SNS에 별도로 모음집을 마련해 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나요?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밀고’ 싶은 책이 있다면
최근 황정은 작가님의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책을 읽었어요. 공감 가는 구절이 많았고, 저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다수의 사람들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점은 제목만 들으면 에세이 같지만 소설이거든요. 등장 캐릭터들이 현실과 꽤 거리가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마음에 공감이 가는 거예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캐시미어를 더한 탱크톱과 레더 팬츠, 네크리스, 라지 사이즈의 에디스 토트백은 모두 Chloé.
공감 가는 책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 편인가 봐요. 그 외에 영감받는 뮤즈가 있다면
언제나 부모님이죠. 특히 어머니요. 병원에서 일하시는데, 얼마 전 직장을 옮기면서 새롭게 공부할 게 많다고 무척 열심이세요. 나이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게 참 멋져요. 주변 사람들도 잘 챙기시거든요. 전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오지라퍼처럼 보이거나 간섭처럼 느껴질까 봐 머뭇거리는 타입이거든요. 어머니는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어요. 저도 모두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곧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방영을 앞두고 있어요. 주인공 ‘이여름’을 포함해 그간 맡아온 역할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 듯해요. 〈못난이 주의보〉 ‘공나리’처럼 솔직하고, 〈낮과 밤〉의 ‘공혜원’처럼 필요한 순간에 목소리를 내고, 〈살인자의 기억법〉의 ‘은희’처럼 순수한 내면을 지닌 여성이라는 점에서. 자신의 어떤 점이 이런 캐릭터에 투영될 수 있는 것 같나요
이제껏 맡았던 역할 모두 제가 현실에서 가지지 못한 면을 가졌어요. 저는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타입인데,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은 주로 직설적으로 말하고 직선적으로 행동해요. 그래서 맨 처음 대본을 볼 때부터 ‘나도 이렇게 되고 싶다’는 부러움을 가지고, 동경하는 기분으로 연기하는 것 같아요.
재활용 캐시미어 스웨터와 스톤 장식의 레더 스커트, 미디엄 사이즈의 에디스 토트백은 모두 Chloé.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의 주인공 ‘이여름’도 번아웃 상태에 빠져 자발적으로 백수가 됐잖아요. 현실에 지친 청춘들의 이야기 속 이여름을 연기하면서 새롭게 얻은 깨달음은
제가 만났던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여름이는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있어요. 경쟁사회에 지쳐 모든 걸 놓아버렸고, 자신과 친해지며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백수를 선택한 거잖아요. 여기저기서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듣다 보면 가끔 의견과 주관이 흔들리기도 해요. 그러다 쉬는 동안 저에 대해 생각하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 시간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여름이를 잘 표현해 보고 싶었고, 대본을 보자마자 ‘나 이거 아는 감정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름이를 통해 얻은 깨달음보다 여름이도 이런 깨달음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요.
재활용 캐시미어 울 거즈 소재의 튜닉 드레스와 팬츠, 라이트 클라우드 컬러의 나마 스니커즈는 모두 Chloé.
이여름으로서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냈네요.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반드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정말 하고 싶지만 못할 수 있겠다 싶은 게 요리예요. 요리를 굉장히 못하거든요. 혼자 살다 보니 직접 요리하기도 쉽지 않고요. 그럼에도 어떻게든 요리해서 음식을 먹으면 ‘나 아주 잘 살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대접할, 나에게 대접받는 느낌이 들 만큼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 먹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