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에르메스 재단미술상 수상자 류성실이 연 전시 〈불타는 사랑의 노래〉 개막일. 기자간담회에선 작가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현대미술가와 함께하는 질의응답이 긴 침묵으로 채워지는 때가 있는가 하면, 류성실의 경우는 그 반대다. 류성실의 작품을 접한 누구나 그에게 던질 질문을 금세 떠올릴 수 있다. 류성실은 ‘체리장’ ‘이대왕’ ‘나타샤’ 등 강렬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내세우며 현실을 풍자하는 서사를 펼치고, 유튜브와 아프리카TV를 통해 1인 미디어 콘텐츠 생산방식을 차용한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다. 그는 끊임없이 보편 세계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실재하는 세계에 침투시킨다. 전시 〈불타는 사랑의 노래〉는 장례식과 화장장의 절차를 차용한 전시공간에서 펼쳐진다. 관람객은 어느 애견의 죽음을 애도하는 예식에 동참하게 된다.
이번 전시를 두고 평론가 안소연과 나눈 대담 중 “창의성이란 어떤 간절함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가장 창조적이라는 말은 매체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라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기상천외하고 기발한가. 여행사 사장이던 이대왕이 애견상조사업을 하겠다고 판을 벌이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뜬금없는 일일 수 있지만, 이대왕 입장에서는 필연적인 흐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사람이 많이 죽으니 장례식장으로 모여드는 이가 많아진다. 장례업을 해야겠다. 장례업을 하려고 보니 애견의 몸집이 더 작아 회전율이 좋겠구나.’ 그의 입장에선 합리적인 판단이다. ‘돈을 개같이 벌겠다’는 순수한 열정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흐름 아닐까. 이런 기발한 사고의 흐름을 볼 때 경도되는 경우가 있다. 어쩌면 이토록 순수한 열정이 너무도 악한 모습으로, 공공의 선과 멀어지는 방향으로 발전될까. 그런 지점이 섬뜩하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만드는 것 같다.
캐릭터 ‘체리장’은 정보 유통에서 취약한 계층을 상대로 돈을 벌고 ‘이대왕’은 상주들의 감정적 불안을 공략한다. 인간의 취약함을 공략하는 장사꾼적 태도를 다뤄온 이유는
주변에 무엇을 파는 사람이 많다. 그런 집안에서 자라기도 했다. 장사란 대체 무엇이며,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장사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할 기회가 많았다. 장사를 하는 사람과 미술을 하는 사람이 현상을 해석하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그 차이가 새롭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조소를 전공했던 학부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작업세계를 형성할 만한 작가로서의 자아가 이미 싹텄을까
학부 때 선배들 중 작업하는 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양혜규 작가처럼 학번 차이가 많이 나는 어른들은 있지만 가까운 선배 중에 작가로서 삶을 사는 이가 많지 않아 조언을 구할 데가 별로 없었다. 막연히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까?’ 하고 생각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이 기성 플랫폼이 아닌 나만의 아웃렛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결과 온라인 플랫폼에 이르렀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작업하는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미술관에서 ‘타기팅’하는 관객층과 온라인 세계에서 만나는 관객층이 다르다. 후자는 사실상 온라인 유저이고, 둘이 겹칠 수 있지만 겹치지 않는 영역이 더 클 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접하는 관객층은 미술에 그리 친절한 사람들이 아니다. ‘이제부터 미술 작품을 볼 거야’라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보지 않는 사람들에 침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시작했다. ‘침투’라는 맥락에서 조금 더 확장해 ‘대왕트래블’ 사장님인 이대왕의 이름으로 앨범과 뮤직비디오를 선보이기도 했다. 요즘은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지 않나. 전시를 본다는 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작품을 보는 일인데, 스트리밍 음악은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 다음 노래가 무엇일지 모르는 상태에서 침투한다. 내 작업이 침투할 경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뮤직비디오, 음악과 같은 파생이 발생했다.
이대왕이 대왕트래블의 이름으로 발매한 싱글 앨범 〈직진〉(2021)에 피처링한 뮤지션 목록이 놀랍다. 머드 더 스튜던트부터 오메가 사피엔, 릴 체리, 골드부다까지
힙합에 대한 배경 지식이나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저랑 같이 뭐 좀 하실래요?”라고 물으며 접근했다. 밑도 끝도 없는 시작이었지만 그들이 흔쾌히 받아주었고, 재미있게 작업했다. 〈체리-고-라운드〉나 〈대왕트래블〉 시리즈 등의 프로젝트를 만들 땐 이대왕과 체리 장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할지 생각한다. 당시 한창 〈쇼미더머니〉가 방영 중이었고 이대왕이라면 요즘 젊은이 사이의 대세 장르인 힙합으로 뭔가 해볼 것이라는 단순한 판단에서 시작했다. 힙합 뮤지션이 만드는 콘텐츠가 사실 미술관에서 보이는 것과 다를 바 없더라. 말하려는 바를 밀도 있는 뮤직비디오와 같은 시각언어로, 명확하고 ‘팬시’하고 유쾌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이 있었다.
스스로 분한 캐릭터인 체리장은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 방송이후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결정적 순간이 있다면
BJ인 체리장이 있기까지 류성실이 아프리카TV를 하던 이야기를 해야겠다. 학부 때 단순 호기심에 아프리카TV 방송을 틀어놓고 익명의 사람들과 방송을 시작했다. 나는 얼굴을 보여주고, 다른 사람들 얼굴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일상공간에선 하지 않을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되게 이상했다. 얼굴의 견적을 내주기도 하는 등 보통 교양인의 삶에서는 겪어볼 수 없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고 나니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넷 정글을 생각하게 된 계기였다. 얼굴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하는 이야기라 다들 무척 솔직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 그런 피드백이 명쾌하게 와닿기도 했다.
작업세계에 대한 해석이나 피드백 중 우려되는 부분도 있을까
체리장에 대한 사람의 해석이 너무 무거워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과연 체리장 선생님이 그것을 바라실까(웃음). 이것은 현대미술이고, 이런 의도로 제작됐다는 해석을 하는 것이 미술관에서 해야 할 일인 것은 맞다. 하지만 과연 체리장에게 타당한, 합당한 설명 방식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업 그대로 해석되기를 바란다. 해석은 내 몫이 아니지만, 관람자가 과거 온라인 정글에서 만났던 그들처럼 내 작품을 즉물적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면 좋겠다.
가족사와 동시대 한국의 사회적 이슈를 전통성과 조합하고 재구성해 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술가로서 취하려 하는 태도나 관점은
사람들이 내 작업에 호응할 수 있었던 배경은 내 경험에서 비롯된 정확하고 확실한 레퍼런스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건들과 내 팔자가 실제적으로 가깝다 보니 생기는 일인 것이다. 부단히 멀어지고자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수렁 안에서 어떻게든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 작업으로 해소하는 것 같다. 나쁜 의미의 대상화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겪고 아는 것에 한해서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하고 있다. 또 현대미술이라는 아우라로 해석되지 않길 바란다. 간혹 거기에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오늘 인터뷰에서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이대왕과 체리장의 생각을 들려주기도 했다. 캐릭터로 작업하는 방식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을지
나는 대학교를 나왔고, 20대 여성이며,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내가 어떤 주장을 한다면 사람들이 분명 그런 배경을 의식하며 해석할 것이다. 그러면 주장에 제동이 걸리는 느낌이다. 내가 지닌 요소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캐릭터를 운용할 수 있다는 점을 통쾌하게 느낀다. 엘리트주의를 항상 경계한다. 여기엔 내가 하는 말이 현대미술이라는 아우라를 입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함께한다. 그래서 온라인 플랫폼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