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반듯한 교정을 넘어선 학교들 #지금우리학교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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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반듯한 교정을 넘어선 학교들 #지금우리학교는

학교가 더 나은 사회적 장소일 때, 학생들은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시끌벅적한 시장 같은 학교부터 따뜻하고 친밀한 감성을 품은 박공지붕의 학교까지.

이경진 BY 이경진 2022.03.19
 

햇빛 속으로, 공항고등학교

지금껏 보편적인 학교는 교실과 복도로 이뤄진 1차원 선형 구조였다. 공항고등학교는 ‘몰(Mall)’ 같은 입체의 3차원 공간으로 계획됐다. 아트리움의 커다란 천창으로 쏟아지는 풍부한 자연광, 개방적인 공간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긍정에너지를 불어넣는다. 아트리움을 기준으로 모든 동선은 위아래를 가로지르며 여러 방향으로 흐르도록 계획됐다. 입체적인 동선은 학생들의 다양하고 우연한 만남을 촉진하고 교감을 나누게 한다. 공항고등학교 설계는 ‘이집건축’이 맡았다.
 
국내 기후에서 커다란 천창을 갖는 아트리움은 자칫 고열의 온실 공간이 되기 쉽기에 많은 우려가 있었어요.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인 아트리움을 구현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교육청 담당 주무관들의 많은 노력이 따랐죠. 에너지자립형 시범학교이기도 한 이곳의 아트리움은 일반 공립학교 건축물에서 시도하기에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어요.
 
지열을 이용한 바닥 복사식 냉난방, 상부에 고이는 열을 배출시키는 센서 감응 배기 덕트 등 다채로운 패시브, 액티브 녹색기술이 동원된 이유다. 그러나 공항고등학교의 아트리움이 지닌 가치는 단지 에너지 효율성 같은 정량적인 면이 아니다. 풍부한 자연 채광과 훤히 보이는 하늘이 학생들에게 불어넣을 수 있는 긍정적인 기운이다. 아트리움은 학생과 교직원이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다목적 공간이 됐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그림을 전시하고, 드론을 띄운다. 개교식에서는 위층 복도와 브리지에 학생과 학부모들이 둘러 앉아 아트리움 1층에서 기악반이 연주하는 음악을 감상하기도 했다. “공항고등학교는 이전해서 개교한 학교입니다. 준공한 지 2년이 흘렀을 때 교장 선생님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공간이 바뀌니 학생들의 태도가 달라지더라’라고요.”
천창으로 쏟아지는 자연 채광이 아트리움 전체를 밝힌다.

천창으로 쏟아지는 자연 채광이 아트리움 전체를 밝힌다.

 
여러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입체적인 동선.

여러 방향으로 가로지르며 흐르는 입체적인 동선.

 
공항고등학교 외관.

공항고등학교 외관.

 
 

투명한 세모의 꿈, 동화고 삼각학교

칠판만 바라보는 교육 환경은 얼마나 변화할 수 있을까. 남양주의 동화고등학교는 1950년에 설립돼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반영하듯 무질서한 주변 도시 풍경과 함께 성장했다. 마스터 플랜 없이 건설된 전체 캠퍼스 중 구조 안전성에 문제가 있던 학습동을 철거하고 지은 새 건물이 바로 삼각학교다. 설계를 담당한 ‘네임리스건축’은 북쪽에 비워진 운동장이 있고 동쪽에 뒷산, 서쪽에 중학교 건물이 있는 대지에, 북측은 열고 서쪽은 닫고 동쪽은 열고 닫을 수 있는 세 개의 입면을 지닌 삼각 건물을 세웠다. 중앙부에는 하늘을 향해 열린 중정이 있고, 중정을 중심으로 360° 순환하는 동선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2.4~5.5m까지 다양한 폭으로 완성됐다. 떠들고 어울리면서 배움과 놀이를 확장할 수 있는 복도다. 학교가 더 나은 사회적 장소일 때, 학생들은 더 큰 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건축가의 믿음이 담겼다.
 
시끌벅적한 시장 같은 학교를 상상했어요. 학교에서는 구성원들이 부딪히고 떠들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하죠. 학교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일자형 건물부터 생각나잖아요. 일직선의 복도와 나란히 배치된 교실들. 감시하고 통제하기 좋은 구조예요. 교도소 평면도와 다를 바 없죠.
 
삼각학교는 열린 중정뿐 아니라 운동장과 면한 전면 파사드를 최대한 투명하게 구성했다. 초기에는 학생들이 집중하지 못하고 창문 밖을 바라본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한 달 후에는 답답해서 커튼도 닫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넓은 지점의 폭이 무려 5.5m에 달하는 복도.

넓은 지점의 폭이 무려 5.5m에 달하는 복도.

 
학생들은 건물 안에서 빛과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안마당에 쉼없이 드나든다.

학생들은 건물 안에서 빛과 바람을 만날 수 있는 작은 안마당에 쉼없이 드나든다.

 
경험의 차이를 만들고자 시도한 건축은 학교의 다양성과 투명성, 공공성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경험의 차이를 만들고자 시도한 건축은 학교의 다양성과 투명성, 공공성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

 
 

즐거운 나의 집, 신길중학교

따뜻하고 친밀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박공지붕의 학교는 이곳을 기능 중심의 공간이 아닌, 정서적 편안함을 주는 생활공간으로 만들기로 마음먹은 ‘이집건축’의 의지에서 출발했다. 신길뉴타운의 빽빽한 아파트 숲속에 건설된 신길중학교는 오밀조밀한 마당을 낀 여러 채의 박공지붕 집이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한 모습으로 지어졌다. “설계공모심사에서 이 계획안을 뽑은 심사위원의 결정이 프로젝트의 가장 결정적이며 도전적인 요소였어요.” 세금으로 짓는 공공건축물의 설계공모심사에는 막중한 책임과 부담이 따른다. 이런 심사에서 새롭고 흥미롭지만 전례 없는 계획안을 선정한다는 건 엄청난 도전이며 이례적인 일이었다. “색다른 학교 모습과 다양한 내외부 공간을 가진 학교에 대한 호기심, 이곳 학생들에 대한 주변의 부러움이 상당한 것으로 알아요. 마당처럼 만든 크고 작은 중정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죠. 하지만 모든 건축물이 그렇듯 신길중학교 역시 학생과 교직원이 여전히 만들어가고 있는 미완의 공간이에요.” 완공 이후 학교에는 열정과 애정을 지닌 교직원과 학생들에 의해 댄스연습실이 신설됐고, 공용공간에는 학생들이 직접 만든 소품으로 채워지고, 알록달록한 색의 집기도 비치되고 있다. 신길중학교는 새로운 학교공간구조 유형을 보여주기 위해 건축된 사례다.
 
단지 교습공간이 아니라 집처럼 정서적인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생활공간으로 기능하는 학교를 꿈꿨습니다. 학창시절이란 단순히 좋은 미래를 위해 유예된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니잖아요. 청소년기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보장하는 공간이어야 하죠.
 
이 건물은 앞으로 어떻게 안착되고 진화하게 될까.
교실 안쪽 천장도 박공지붕 형태다.

교실 안쪽 천장도 박공지붕 형태다.

 
작은 앞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는 중정이 곳곳에 계획됐다. 중정과 교실은 내외부를 순환하도록 설계된 동선으로 연결된다.

작은 앞마당처럼 사용할 수 있는 중정이 곳곳에 계획됐다. 중정과 교실은 내외부를 순환하도록 설계된 동선으로 연결된다.

 
여러 채의 닮은 집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 모양의 학교.

여러 채의 닮은 집이 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룬 모양의 학교.

 
 

마을이 된 학교, 하늬중학교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학교 건축은 한국전쟁 후 늘어나는 학령인구 수용을 위해 ‘싸고, 빠르게, 많이’라는 목표 하에 지어졌다. “군대 막사나 감옥이 그러하듯 ‘수용’이라는 1차적 목적을 기준으로 학교의 표준설계도가 제정됐어요. 1962년의 일이죠. 이 안이 1992년에 폐지될 때까지, 30년 동안 모든 학교가 천편일률적으로 지어졌어요. 기존 학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다양성이 결여돼 있고, 학생과 교직원을 비롯한 학교 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공용공간이 없다는 사실이었죠.” 하늬중학교를 설계한 ‘서로아키텍츠’는 단위 교실의 집합이던 공간의 틀을 깨고, 학교에서 생활하는 구성원들이 공동체로서 상호작용하며 함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개방적 성격의 공간을 만들었다. “하늬중학교는 마을결합형 학교를 지향했기에 마을과의 경계 담장도 없앴어요.” 건물 내부에 마련된 거대한 커뮤니티 광장은 학교 구성원과 지역민이 사용 시간대를 나누는 ‘타임 셰어’ 방식으로 공유하는 공간이다.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도서관과 식당, 체육관, 시청각실 등 공동이용시설이 순환 동선을 따라 배치돼 공간을 사용하는 모든 학생과 교직원이 입체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학교는 누구나 특정 시기에 일정 기간을 지내게 되는 시설이에요. 보편복지정책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죠. 학교에서 지내는 시기가 한 인간의 기초 교양과 품성을 기르고 평생 간직할 추억의 배경이 되니까요.
 
기존 학교에 비해 상당히 개방적인 구성이기에 안전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 오히려 열린 공간에서 모두 서로의 안전감시자가 돼 공동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커뮤니티 광장을 에워싼 2, 3층 복도에서는 소원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커뮤니티 광장을 에워싼 2, 3층 복도에서는 소원을 적은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이벤트가 열리기도 했다.

 
마을결합형 학교를 지향하는 하늬중학교.

마을결합형 학교를 지향하는 하늬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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