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EE 육근해

INTERVIEWER 최인혜


육근해 어릴 적에 시각장애인인 아버지는 늘 점자 책을 읽었습니다. 그야말로 흰 종이에 점자만 있으니, 무슨 책인지 늘 궁금했죠. 그러던 아버지는 직접 점자도서관을 건립했어요. 부유했던 집이 4~5년 만에 재산이 바닥날 정도로 점자 책을 만드는 데 모든 걸 투자했죠. 학교 다녀오면 숙제보다 점자 책 만드는 일이 우선이었고, 버려진 건물에서 점자를 찍다 쪽잠을 잤어요. 아버지는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하셨고요. 그 시절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아버지와 저는 극심한 차별을 겪었지만 우리 점자 책을 읽는 시각장애인이 “고맙다”라고 하면 모든 게 보상되더군요. 전문직 여성이 꿈이었던 저는 결혼하고, 제 일을 했지만 “도서관을 좀 도와야겠다”는 아버지의 말에 기꺼이 달려갔습니다. 엉망진창이던 시스템의 기초 부분을 체계화하고, 홍보도 시작했고요. 1996년, 제가 서른이 되던 해였죠. 그렇게 일을 벌이다 보니 발을 빼지 못하게 됐습니다(웃음). 도서관 설립한 지 38년 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그때 ‘아, 이 길이 내가 평생 걸을 길이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최인혜 저는 뮤지컬과 영화를 좋아했고, 우연히 청각장애인 극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장애인의 문화 향유권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내게 당연했던 즐거움이 타인에겐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문화 복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오랜 기간 당사자들과 함께한 이사장님의 첫 마음가짐은 어땠나요
육근해 저는 늘 아버지를 모시고 다니며 “아버지, 지금 여기에는 하얀 벽이 있죠. 여기 예쁜 색깔의 전등이 있어요”라고 이야기했어요. 지금도 시각장애인들과 동행하면 “크리스마스트리가 예뻐요” “트리에 구슬 장식이 다섯 개 달렸네요”라고 설명하죠. 늘 제게 과제처럼 느껴지는 일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촉감각으로 ‘뾰족뾰족하다’ ‘구불구불하다’ 같은 의성어 혹은 의태어는 물론 어떤 방식으로든 컬러를 느낄 수 있도록 해보려고 했죠. ‘어떻게 설명하면 이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문화복지’와 ‘독서장애’라는 개념을 도입했어요. 우리 사회는 읽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장애 아이들이 ‘책을 싫어한다’고 단정 지어요. 책을 접하게 할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았죠. 그때부터 독서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다양한 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는 비장애인인데 아이가 시각장애인이거나 그 반대의 경우라도 촉각도서, 점자라벨책, 큰그림책 등으로 가족이 함께 읽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생각과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것 같아요.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느꼈습니다.
최인혜 한 청각장애인도 제 일을 ‘사명’이라고 표현했어요. 하지만 저는 당사자성도 없고, 뛰어난 전문성을 지닌 사람도 아니고, 그저 제 욕심으로 일하고 있거든요. 막상 ‘오롯’을 기업화하고 나니 인건비도 메워야 하고, 사업 영역도 확장해야 하고, 사회적 인식도 공론화해야 하는데 이 과정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돼요
육근해 저도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아직 장애와 문화를 연결하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부족하고, 관념의 토대부터 만들어나가야 하니 쉽지 않았죠. 세 가지를 버팀목으로 삼았어요. 첫 번째는 신앙. 두 번째는 아버지가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 세 번째는 당사자들입니다. 장애인의 부모는 “우리 애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라고 하고, 선생님들은 “애들 가르치는 데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얘기합니다. 포기하고 싶다가도 ‘내가 포기하면 누가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최인혜 대표도 일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당사자와 만나면 초심이 생길지도 몰라요. 타인이 쉽게 가지 않으려는 길을 걷느라 힘들어도, 훗날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발자국들, 내가 걸었기에 단단히 다져진 길을 보며 당연하지 않던 누군가의 권리가 얼마나 당연한 것인지 생각할 수 있어요. 분명히 자신을 돌아보고 ‘의미 있는 삶을 잘 살았구나’ 하고 보람을 느낄 날이 올 거예요.
최인혜 말씀대로 독서나 영화 등 장애인의 문화적 권리는 늘 우선순위가 아니더라고요. 일자리나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니 지원받기도 어렵고요. 그래도 2~3년 오롯과 함께한 청각장애인들이 ‘영화 자막이 좋았다’보다 ‘연출이 좋았다’ ‘대사가 좋았다’는 감상을 꺼내놓기 시작했는데, 이제 불편함을 넘어 문화를 즐기는 단계로 넘어갔구나 하는 보람으로 버틴 것 같아요
육근해 동감합니다. 비장애인들 사회에서는 문화가 삶의 코드인데 장애인은 항상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해 있죠. 정부 정책이나 기업들의 후원도 생필 지원에 머무릅니다. 문화의 중요성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 힘들죠. 저는 “도서관에 열 명 중 한 명은 갈까?”라는 질문을 받으면 “도서관에 가도 읽을 책이 없는 그 한 명의 삶에 관해 생각해 봤나요?” “장애인들이 책을 왜 안 읽는지 아나요?”라고 반문해요. 책을 즐길 상황을 얻지 못해 즐거움을 모르는 건데요. 어려운 장애인의 삶을 지원할 수 있는 건 기관이라도 그들이 취향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 건 우리의 영역입니다.

육근해가 입은 화이트 수트는 Massimo Dutti. 골드 링은 Coldframe. 화이트 톱과 블랙 힐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최인혜가 입은 블랙 베스트는 COS. 와이드 팬츠는 Beaker. 실버 링 Arket. 골드 이어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육근해 저 역시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들 때문이겠죠.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같은 마음, 같은 뜻을 지닌 사람들과 결국 한데 모이게 돼요. ‘동지애’라는 게 있달까요(웃음). 독서장애를 연구하면서 시각장애인뿐 아니라 청각장애인, 발달장애인, 지적장애인들과 연결 고리가 있는 동료와도 좋은 관계를 맺었고요. 일에도 시너지를 냅니다. 최근 장애문화복지연구소라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돌봄, 문화와 복지를 융합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고 있어요. 시각장애인의 권리만 고민하지 않게 되죠. 최인혜 대표도 오늘 처음 만났지만 오래 알던 사람처럼 반갑네요.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을 듯합니다.
최인혜 처음 오롯을 시작할 땐 반짝이는 눈과 충만한 마음을 가졌어요.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 실망하다 보니 이제 흐릿한 눈동자와 좁은 마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사장님은 초심을 어떻게 지켰나요
육근해 늘 새로운 계획을 개발했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다음 작업에 착수했죠. 2000년 독서장애라는 개념을 들여오고 2006년에는 법적 용어로 만들었어요. 2002년부터는 국립장애도서관의 모태 작업을, 2003년부터는 촉각도서를 만들었고, 2006년에는 장애 아이들의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2007년부터는 큰글자도서를(웃음)…. 이런 식으로 계속 새롭고 필요한 일을 만들다 보니 주저앉을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가혹하게 들리겠지만 초심을 잃지 않으려면 계속 전진하는 수밖에 없다고 봐요. 새로운 걸 하다 보면 매일 초심이 생깁니다(웃음).
최인혜 사업 모델을 만들고 깨부수고 다시 만드는 과정이 스타트업이더라고요. 말씀하신 ‘초심 방법론’과 맞닿아 있기도 한데요(웃음). ‘이 정도만 하면 되나?’ ‘이 단계엔 뭘 해야 하지?’ 같은 고민이 생겨도 주변에 도움을 구할 여성 선배와 리더, 동료들이 많지 않습니다. 혼자 낯선 길을 간다는 두려움이나 외로움이 들 때는 없었나요
육근해 저는 ‘무대뽀’였어요(웃음). 주변 사람들도 처음에는 점자도서관 일을 반대했어요. 하지만 1, 2년 지나고 올바른 자리를 잡으면 “네가 옳았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겁니다. 조금씩 증명해 보이면 결국 나중에는 ‘뭘 하겠다’고 얘기해도 말리지 않더라고요(웃음). 남들에 비해 성취에 곱절의 시간이 걸릴지도 몰라요. 누가 뭐래도 내 동기가 충분하고 목표가 확실하면 되는 거죠. 물론 전진하기 전까지 정말 필요한 일인지 내가 해낼 수 있을지 여러 관점에서 현실적으로 고려하고요.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만드는 일이나 점자책을 찍는 일도 처음에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저었지만, 결국 제가 옳았다고 생각해요. 힘들고 어려운 마음은 타인에게 있어요. 스스로 극복해 나가면 어떨까요.
최인혜 스스로 만든 길 위에서 헤매는 것이 즐겁기도 하지만 롤 모델이 없다는 건 막막하기도 해요. 이사장님에게도 멘토 같은 존재가 있었나요
육근해 이 또한 아버지죠.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군가에게 늘 도움이 돼야 한다고 하셨어요. 가족이 굶을 때도 “우리도 살아야지 어떻게 그 사람들만 생각하냐”는 핀잔에 “우리 자식들은 그래도 눈이 보이잖아. 어떤 사람들은 눈으로 책을 읽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요. 저 또한 이 마음으로 평생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최인혜 또 다른 고민은 주변에서 ‘좋은 일 한다’는 말을 듣는 거예요. 장애인 문화 인권을 위한 일이 시혜적이고 선의를 베푸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죠. 시각장애인이 책 읽을 권리, 청각장애인이 영화 볼 권리 등 당연한 걸 지키는 ‘필요한 일’로 평가되고 싶은데요
육근해 좋은 생각입니다. 사회적으로 보장돼야 할 기본권리들이 사라졌기에 기꺼이 빈 곳을 메우는 ‘필요한 일’을 하는 겁니다.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보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점자도서관을 처음 이끌던 때부터 지금까지, 쉽게 변하지 않는 부분이더라고요(웃음).
최인혜 이사장님이 리더로 첫발을 내디딘 때와 지금, 여성 리더를 향한 시선이 달라졌나요. 여전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남성 리더가 대다수죠. 그들에게 ‘어린 여성 리더’라는 이미지가 저로 인해 고착될까 걱정하기도,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만 우뚝 버티고 서 보려 하거든요
육근해 당시에는 어떤 회의나 미팅에 가더라도 여성 비율은 5%도 되지 않았습니다. 여성 리더라는 관념이 익숙지 않은 시대라 저에 대한 편견도 있었겠죠. 하지만 지금은 최인혜 대표처럼 편협한 생각을 바꿔나가는 훌륭한 리더들이 많아요. 과거보다 나아졌다지만, 아직 사회 저변에는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이 사라지지 않았고, 여성 리더를 ‘구색 갖추기’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그들 생각을 무시하세요. “난 여성이지만 당신들과 다를 게 없고, 리더는 여성과 남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내는 사람이 리더입니다”라고 얘기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