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수선하는 사람, 재영 #책수선가 || 엘르코리아 (ELL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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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수선하는 사람, 재영 #책수선가

책 수선가'라는 낯설고도 고유한 이름. 재영이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전시를 펼친 이유.

전혜진 BY 전혜진 2022.02.01
독립서점 땡스북스 쇼윈도에 펼쳐진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전시 전경.

독립서점 땡스북스 쇼윈도에 펼쳐진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전시 전경.

합정동 땡스북스의 볕 잘 드는 쇼윈도에는 책 수선가 재영의 ‘일’이 전시돼 있다. 본 폴더, 붓, 망치, 프레스 등 수선에 필요한 소도구부터 수선을 통해 점차 변화하는 책의 모습, 추억을 먹고 죽은 책벌레들의 유골함까지. “세상에 있는 다양한 책 수선가들 중 ‘나’라는 수선가의 취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 사랑하는 도구들, 망가진 책의 흔적까지도요.” 지난해 11월 책 수선가로서 채집한 이야기를 엮은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발간한 그는 크고 작게 훼손된 책을 복원하거나 더 튼튼하게 엮어내 새로운 책으로 탄생시키는 사람.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BI 디자이너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201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북 아트와 페이퍼 메이킹이라는 생소한 부전공을 택하며 인생이 바뀌었다. 학교 도서관 내 지류 보존 연구실에서 책을 수선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연남동의 개인 작업실을 이끌게 된 지금까지 책의 흔적을 보는 일은 그를 무한 매료시킨다. “대부분 책을 망가지지 않도록 다루려 하고, 또 망가진 책은 버려지는 경우도 많기에 일상에서 파손된 책을 보기란 쉽지 않죠. 하지만 책 수선가는 세상 누구보다 망가진 책들을 마음껏 관찰할 수 있어요. 그것에 담긴 기억과 추억까지 알게 되면 그 책으로 쓰여진 또 한 권의 책을,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들어요.”
 
책 수선 작업 과정의 기록.

책 수선 작업 과정의 기록.

이 기쁨을 책으로 엮기로 결심한 건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다. “리디셀렉트에서 글을 조금씩 연재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쓰기 시작했어요. 이야기가 하나씩 모이다 보니 결국 단행본으로 탄생하게 됐죠. 타인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책의 이야기를 잘 풀어낼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내 손을 떠난 이후로는 어쩌면 다시는 보지 못할 책들에 관해, 나를 위해 기록한다는 마음으로 써 내려갔어요.” 이번 전시 또한 이 마음을 관람객에게 가까이 전하기 위해 마련했다. “방문자들이 파손된 책에서 파생되는 여러 가지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 그는 “영상과 디지털 등 새롭고 빠른 것을 원하는 시대이지만, 그만큼 오래된 유산을 보존하고 아끼려는 사람도 많다는 걸 이 일을 통해 느낀다”고 말한다. “몇 세기에 걸쳐 이어져온 종이와 책을 향한 사람들의 애정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그 오랜 증거들을 계속 확인하고, 모으고 싶습니다.” 전시는 2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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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전혜진
    사진 BVLGARI THANKSBOOKS
    디자인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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