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엄마와 40대 엄마는 뭐가 제일 다를까?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20대 엄마와 40대 엄마는 뭐가 제일 다를까?

저마다의 지점에서 출산을 결심한 엄마들의 이야기에서 엄마가 되기 '적당한' 나이를 가늠해 보다.

류가영 BY 류가영 2022.01.23
 
출산을 결심하는 것은 결코 ‘준비됐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니다. 
 
생리가 3주째 계속됐다. 학창시절부터 생리불순은 일상이었지만 ‘이러다 말겠지’ 하고 넘어가기엔 생각보다 기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결국 몇 해 전 같은 증상으로 꾸준히 드나들다 슬금슬금 거리를 뒀던 산부인과를 오랜만에 방문했고, 의사 선생님께 한 소리 듣고 말았다. 이번 부정 출혈의 원인 역시 다낭성 난소 증후군. 전 세계 20~30대 여성의 열 명 중 한 명이 겪는다는 ‘현대병’으로,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처음 진단받았을 때 이미 뿌리 뽑기를 포기했다. 자극적인 식단과 스트레스, 불규칙적인 생활이 원인이라는 말은 평생 병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말처럼 들렸으니까. 일단 주사를 맞고, 약 먹으면 나아지겠지 싶어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뜨려던 찰나, 선생님의 마지막 한 마디가 크게 다가왔다. “잠시 귀찮다가 말 일처럼 느껴지더라도 계속 방치하면 배란 장애와 자궁내막증, 난임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불임이 되기도 하고요. 당장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 좋아요.”
 
물론 서른을 목전에 둔 나에게 출산은 아직 먼 이야기다. 하지만 출산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과 출산이 불가능해지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로 느껴진다. 평균 결혼 · 출산 연령은 매해 조금씩 늦춰지지만 대한민국의 출산율을 책임지는 건 여전히 25세 이상 34세 미만 여성들. 이들은 평균 30.5세에 첫아이를 출산하고 그로부터 평균 4.55년 뒤에 둘째를 낳는다. 산부인과에서는 만 나이로 35세가 넘은 여성은 곧바로 고령에 의한 고위험 산모로 분류한다. 이 점이 나보다 산부인과에서 내 병을 더 걱정하는 이유였다. 선택은 자유지만 선택 가능한 생물학적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도 분명했다. 브런치에서 ‘빛나는 새벽맘’으로 활동하며 노산 경험담을 꾸준히 나눠온 A씨가 들려준 얘기는 이런 우려를 다시 한 번 뒷받침했다.
 
“39세에 첫아이를 나을 때도 별 문제가 없어 다행히 튼튼한 몸을 타고났나 싶었는데 웬걸요, 41세에 둘째를 가졌을 때는 임신 7개월 때부터 조기 출산 징후를 비롯해 각종 이상 증상으로 장기간 입원 신세를 져야 했어요. 태아 크기가 너무 작다길래 출산 직전까지 의사 선생님과 마음을 졸였죠.” 외국계 금융사에 재직 중인 A 씨는 둘째를 출산하며 첫째 때보다 7개월 길게 육아휴직을 써야 했다. 40세에 시험관 시술로 첫아이를 낳은 우리 이모가 떠올랐다. 2년 가까이 이어진 시험관 시술 끝에 연년생 딸과 아들을 낳은 이모는 늦은 나이에도 얼마든지 출산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지만 언뜻 봐도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과배란주사와 배란억제주사, 배란주사를 연이어 맞고 체외에서 배양된 배아를 다시 자궁 내로 이식하기까지 면역주사, 착상주사, 혈전주사를 맞는 일이 이어졌다. 늦은 밤, 복수가 차올라 가족을 걱정시키기도 했다. 난자를 추출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어 보통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기 전에 권유받는 인공수정의 경우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임신을 계획 중인 40대 여성에게 시간은 금이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지만 여전히 40대 임신은 위험 부담이 컸다. 나처럼 난임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초조함을 잊고 지낼 수 있는 건 당장 엄마로서 삶을 꿈꿀 상황이 아니라는 현실적인 판단에서다. 삶의 형태가 다양해진 지금도 여전히 출산은 결혼 후의 일로 상상하게 되니까. 혼자 계획한다고 될 일도 아니니 말이다. 이런 나와 달리 20대 중반에 출산한 친구 B와 C는 모두 일찍이 결혼한 케이스였다. 이른 나이에 결혼한 터라 주변에 출산과 관련된 고민을 나눌 친구는 없었지만 배우자의 든든한 지지와 양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어렵지 않게 출산을 계획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많았다. 출산 전까지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던 B가 “조금 더 나이가 있을 때 아이를 가졌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이제 든다”며 운을 뗐다. “마침 출산 시기가 정규직 전환기와 겹치며 타이밍을 놓치게 됐는데 ‘경단녀’라 재취업을 할 수 있을지, 나 같은 애 엄마를 누가 써줄지, 스스로를 엄청 깎아내리는 시간에서 벗어나는 게 제일 힘들었어. 입사 동기의 승진 소식을 듣거나 TV에 멋진 여자들이 나오면 괜히 울컥하기도 하고.”
 
 통계청에 따르면 여전히 기혼 여성의 39.6%만 출산 후 경력을 유지한다. 열정 가득한 사회초년생 시절을 그리워하며 최근 다시 자격증 공부를 시작한 B를 나는 진심으로 응원했다. 네 살 아들과 두 살배기 딸의 엄마이자 프리랜서 학원 강사로 일하는 C가 털어놓은 것은 감정 기복에 대한 당혹감이었다. “아이 때문에 엄청 행복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도 크게 느끼는 것 같아. 제때 못 자고, 못 먹는 날이 이어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한테 짜증 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들거든. 우리 세대는 솔직히 내가 느끼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잖아. 또 다른 존재로 인해 내 감정에 충실하지 못하는 순간이 아직 낯설고 어려워.” 아무리 주변 환경이 잘 갖춰졌더라도 커리어를 향한 뜨거운 열망과 풍부한 감수성의 범람을 겪고 있는 20대에 출산을 경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30대는 조금 나을까? 결혼 4년차에 출산한 30대 지인 D의 이야기는 또 다른 생각 거리를 던져줬다. 남다른 학구열의 소유자인 그는 현재 출산을 기점으로 다니던 통번역대학원을 휴학한 상태. “출산 후 지금까지 꾸준히 복학 타이밍을 보고 있는데 별로 여유가 없어요. 생계를 맡고 있는 남편에게 ‘반반 육아’를 강요하는 것도, 친정 어머니께 아이를 한두 시간 더 부탁하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아쉬운 소리 한 번 안 하고 살았는데 뭔가 계속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도 영 불편하고요.” 계획적인 스타일인 D에게 삶은 더 이상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로운 문제의 연속이었다. “출산 후 모유수유를 하는데 가슴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게 너무 당혹스럽더라고요. 그 다음은 뇌가 나날이 둔해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찾아왔고요. 꾸준히 하던 운동도 못해 스트레스가 쌓이자 심리상담 직전까지 갔어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남편이나 엄마한테 낱낱이 털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일매일이 수련하는 과정이에요.”
 
자식으로서 언제나 받기만 해서, 타인을 위한 무조건적 희생이 어떤 건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나에게 출산의 기쁨보다 슬픔이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각자의 기로에서 출산을 경험한 네 명의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제각각이지만 똑같게 느껴지기도 했다. 출산을 결심한 것은 결코 ‘준비됐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고, 모성애는 답이 아니라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 틈틈이 마음을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선물 같은 거라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 결국 엄마가 되기 ‘적당한’ 나이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된 셈이다. 가임기 여성에 대한 통계는 개별적 이야기를 잇는 하나의 선일 뿐. 나에게는 내가 출산하는 때가 제일 적기라는 것. 우리는 우리의 점을 찍는 데 집중하면 된다. 적당한 기회가 왔을 때 내 몸과 마음에 신경 쓸 수 있게, 나는 일단 치료를 꾸준히 이어갈 생각이다. 그 다음 일은 그때의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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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류가영
    사진 stocksy
    디자인 이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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