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스타일이 확고해지는 느낌이에요. AOMG에 7년째 몸담으며 얻은 영향일까요
당연히 그런 영향도 있죠. (박)재범 오빠를 필두로 다들 자신의 스타일과 취향이 명확하니까요. 20대 때는 줄곧 스트리트 무드의 보이시 스타일을 선호했는데 AOMG에 들어와서 여성적 실루엣이나 과감한 디테일이 있는 옷이 저에게 더 잘 어울린다는 걸 알았어요.
첫 레이블인 이곳에서 음악적으로 어떤 영향을 제일 많이 받았나요
음악적으로 보고 배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말 빨리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에요. 처음에는 무게감이 엄청났죠. AOMG 식구들과 함께하는 무대에 설 때면 환호하는 관객을 보면서 기뻐하는 게 아니라 ‘내가 AOMG가 아니어도 사람들이 내 공연을 보러 와 줄까?’란 걱정을 더 많이 했어요. 2018년 첫 단독 콘서트에서 티켓이 1분만에 매진됐을 땐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죠.
니트 톱은 Bottega Veneta. 네일 피스는 Ezo.
니트 머플러와 톱, 스커트, 부츠는 모두 Bottega Veneta. 네일 피스는 Ezo.
하지만 편안하면서 세련된 후디의 음색과 멜로디는 분명 독보적이에요
평소 제 노래를 듣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데 그 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꼭 뭔가 느끼지 않아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음악 있잖아요.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어 매번 가사보다 멜로디에 더 집중하면서 작업해요.
오랜만에 새 앨범 〈D-Day〉로 돌아왔어요. 네 곡의 트랙 중 기리보이와 작업한 동명의 타이틀곡은 쌀쌀한 날씨에 드라이브 송으로 ‘딱’이더군요
처음 비트를 들었을 때부터 이 곡은 ‘두근두근’ 그 자체여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파란 바람 속에 우리. 너무도 완벽해. 걱정은 멀리멀리 다 날아가는 듯해’ 가사도 그런 컨셉트에 맞춰 편안하게 느끼도록 만들었고요. 의외로 접점이 없었던 기리보이 씨와 첫 협업이었는데, 특유의 가사와 래핑으로 들뜬 무드를 잘 살려준 것 같아 만족스러워요.
이번 앨범을 만들며 의외의 즐거움을 느낀 순간이 있었다면
마지막 트랙 ‘비가 그치면’은 실험적인 스타일과 은근한 화법을 선호하던 평소 음악 취향과는 상반되는, 어찌 보면 조금 뻔한 발라드 곡인데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거기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따뜻한 감정이 좋더라고요. 뒷부분에서 코드가 전환되는 부분은 아직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려요.
‘꿈속에서(Feat. 구원찬)’에서 보여준 포근한 목소리의 R&B 싱어 구원찬과의 합도 좋던걸요
2절에서 남자 보컬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당연히 구원찬이란 아티스트 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구원찬 님과 이 곡의 프로듀서인 피셔맨의 합작 앨범 〈Format〉을 너무 좋게 들었거든요.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져 겨울과 잘 어울리는 곡 같아요.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R&B 음악을 즐겨 듣고, ‘최애’ 영화는 1996년 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꼽더군요. 과거 유산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딴 얘기지만 오래전부터 우주에 대한 로망과 환상이 있었어요. 그 광활함을 상상하기만 해도 가슴속이 웅장해지고(웃음). 한때는 죽기 전에 모아둔 돈 탈탈 털어 우주행 티켓을 산 다음 거기서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 저에게 우주만큼 신비하고 매력적인 곳이 과거인 것 같아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왠지 이상하게 느껴지고, 그때 음악이나 영상을 볼 때마다 ‘나도 한 번 이때를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재킷은 Mina Chung. 링은 A.Resto.
생경한 환경에 대한 호기심이 독특한 장소에 대한 판타지가 느껴지는 ‘MIRO’나 ‘잠수함(Submarine)’ 같은 곡을 탄생시킨 걸까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장소에서 받는 영감이 엄청 크긴 하거든요. 평소에도 인상적인 장소를 방문하면 꼭 ‘북마크’를 하는 편이에요. 우연히 갔는데 정말 좋았던 곳은 물론이고 슬픈 기억이 각인된 장소까지 다 저장해 두죠.
AOMG 유튜브 콘텐츠 ‘후디의 요리 모음집’이 최근 막을 내렸어요. 직접 요리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개인적으로 얻은 것은
우스갯소리로 이 콘텐츠가 ‘후디 인싸 만들기’ 프로젝트 같다는 얘길 했었어요. 워낙 ‘집순이’인데 타인에게 선뜻 다가가는 스타일도 아니라서요. 심지어 그레이 오빠, 코드 쿤스트, (우)원재처럼 회사 식구가 출연하는 경우에도 막상 초대하려니 떨리는 거 있죠? 그런 저를 ‘인싸’로 만들어준 제작진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 편인 8화에 출연했던 유겸과 뱀뱀 씨요. 뱀뱀 씨는 그날 처음 만났는데 정말 발랄하고 귀여운 분이더군요. 손수 MC를 보겠다며 순식간에 분위기를 띄우는데…. 보면서 감탄했어요.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수 있었죠.
어릴 때부터 요리 만화책을 즐겨본 탓인지 마트에 가면 엄마한테 사달라고 보채는 것들이 베이킹파우더나 버터 같은 식재료였어요. 게다가 대학교에서는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으니 나도 언젠가 나만의 식당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지만….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보면서 무턱대고 덤비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저는 술자리보다 술 자체가 더 좋아요. 와인이든 위스키든 알면 알수록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알코올의 힘으로 맨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나 표현이 영감이 될 때도 많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라면 그런 걸 잘 활용해야죠.
든든한 술 친구 소금을 포함해 이하이, 드비타 등 그간 AOMG에 합류한 여성 아티스트도 많아졌죠. 든든한 변화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늘 ‘AOMG 홍일점’이란 타이틀이 버거웠는데 비슷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여자들이 주변에 많아져서 좋아요. 여자끼리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여자 솔로 보컬리스트로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나와 다른 매력으로 사랑받는 친구들을 보면서 얻는 자극도 많고요. 비슷한 시기에 앨범을 낸 소금이랑은 이번에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같이 나갔는데 의지도 되고 너무 좋았어요.
벌써 12월이에요. 연말에는 어떤 감상에 사로잡히나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연말 분위기에 취하는 스스로를 독려하는 스타일이에요. 집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며 조금 우울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또 봅니다. 그러다 한 번씩 마음 맞는 친구를 초대해 술을 홀짝이는 긴긴 겨울밤도 즐기고요.
페이던트 소재의 뮬은 Osoi. 반지는 Maison De Kig. 의상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