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혹감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그 후로도 계속 그녀와의 대화가 문득문득 생각나고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느낄 권리가 없는 걸까? 마른 여자는 ‘뚱뚱(F-word)’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건가? ‘보디 포지티브 시대’를 사는 요즘, 스스로의 몸에 대해 적절하게 말하는 방법은 뭘까? 나는 스무 살 이후 평생 다이어트를 했다. 사실 내 다이어트 여정은 그 전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반복 중이다. 2018년 1월 래핑카우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인은 평생 189번의 다이어트를 하고 실패한다. 영국심장재단이 2016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영국 다이어트 산업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면 20억 파운드에 달한다. 체중 감량을 보장한다며 우리를 유혹하는 갖가지 다이어트 방법은 수십 년 동안 우리 지갑을 털어왔다. 영양치료사이자 작가인 이언 마버는 “처음 시도한 다이어트가 무엇인지 말하면 나이도 맞힐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내가 처음 시도한 다이어트가 ‘레모네이드 디톡스’라 이야기하자 그는 내 나이를 ‘30대 중반’이라고 정확하게 맞췄다. 숨기든, 대놓고 광고하든, 모든 다이어트 방법의 궁극적 목표는 체중 감량이다. 다이어트를 하면 살이 빠지고, 날씬한 것이 살찐 것보다 더 낫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한다.
그러나 지금, 이런 프레임에 격렬하게 맞서 싸우는 세력이 등장했다. 본인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장려하는 운동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몸에 대한 긍정 마인드는 단순히 사이즈뿐 아니라 장애와 젠더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에 도전한다. 여성이 주도하는 이 운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몸에 대한 생각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우리는 여성들에게 사이즈, 다이어트, 건강 상태, 보디라인에 상관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인플루언서 로렌 스미츠와 함께 플러스 사이즈 여성들이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 ‘컨피던스 코너’를 운영 중인 캘리 소프의 설명이다. 이 운동은 과거 소셜 커뮤니티에서 배제된 여성들이 채팅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들고, ‘비만공포증(Fatphobia)’에 대해 알려주며 건강은 어떤 사이즈로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또 신체를 주제로 한 대화에 담긴 성차별적 발언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던 많은 것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는 증표인 셈. 이 운동의 대표 메시지 중 하나가 몸집이 크다고 덜 건강하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임상심리학자이자 ‘런던 섭식장애 및 신체 이미지 센터’ 설립자 브리오니 뱀포드 박사는 “몸집, 체중 또는 체질량지수(BMI)를 기준으로 누군가의 신체적 또는 심리적 건강에 대해 함부로 추측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며 “그런 기준에 집착하지 않고 그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면 체중공포증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버는 영양학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가장 먼저 자신의 사이즈부터 걱정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다이어트는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 하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여기서 정당한 이유인지 아닌지를 과연 누가 결정할 수 있겠는가? 최근 한 친구가 결혼식을 위해 살을 빼고 싶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최고’로 보이고 싶었고, 드레스를 입었을 때 핏이 잘 맞는 보디라인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 말인즉슨 조금 더 ‘날씬하게’ 보이길 원했던 것. 그러나 그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진 못했다. 비만 공포증이 있는 여자라고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걱정됐기 때문. 나는 그녀에게 살을 뺄 이유가 정당하다면 그 일을 하는 것이 옳다고 대답했다. 특별한 날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올바른’ 이유가 아니라면 대체 뭐가 올바르겠는가?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지난해 말 가수 리조가 10일 동안 주스 디톡스를 시도한 경험담을 SNS에 공유했다가 대중에게 질타를 받았다. 사람들은 플러스 사이즈 여성을 대표하는 ‘포스터 걸’인 그녀가 다이어트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녀가 세상이 정한 미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것 아니냐며 크게 분노했다. 이에 리조는 건강상의 이유로 위 세척을 위해 몸에 있는 독소를 제거한 것이라 반박하며, 자신이 정한 식단에 대해 남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자신의 계정에 이렇게 올렸다. “빅 사이즈 여자가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 사람들은 바로 살을 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요. 실제론 그런 목적이 아닌데도 말이죠.”
최근 다이어트와 함께 뚱뚱함에 수치심을 느끼는 것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오랜 시간 고착된 미적 이상향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이런 이상향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논쟁이 확장되고 있다. 로렌은 이번 스캔들에 대해 “리조가 그 일로 이렇게 논란의 중심이 되는 건 옳지 않아요. 그녀가 모든 ‘빅’ 걸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고, 이런 식으로 그녀를 압박하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죠”라며 비난했다. 만약 리조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체중 감량을 원했다면? 우리 중 누군가가 살을 빼고 싶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컨피던스 코너’의 채팅방에서는 다이어트 대화를 허용하지 않지만 로렌과 칼리는 “체중 감량을 결정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아요. 우리 스스로 삶의 변화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라며 신체 자율성을 강조했다. 개개인이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마버는 “누군가가 체중 감량을 원한다면 우리는 단순한 숫자를 넘어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성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데, 우리가 뭐라고 그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나요? 자신의 몸에 대해 무언가를 선택할 결정권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쯤 되니 케이트에게 다시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내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타인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더 신경 써야 했다. 하지만 나는 내 몸을 자랑스러워하는 만큼 불편함을 느낄 자유도 있다. 이번 일을 통해 나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에 깊이 있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사고를 지배했던 세상의 가치는 아니었을까. 어쩌면 케이트의 말이 옳았다. 내가 ‘뚱뚱한’이란 단어를 부정적 방식으로 사용한다는 그녀의 지적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내 몸에 붙은 살을 문제로 인식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살도 문제라고 생각한 건 아니다. 나는 그저 내 불안감을 토로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몸에 어느 정도 타협하며 살아간다. 그와 동시에 불가능한 미적 기준을 강요하는 사회에 맞서 집단적으로 투쟁한다. 내 몸과 마음은 전적으로 내가 주인이지만, 개인적 의견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나는 요즘 살을 빼는 동시에 내 몸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살찐 내 모습에 자기혐오를 느끼거나 인스타그램에 내 생각을 공유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평소 입는 것보다 한 사이즈 큰 청바지를 구입했는데, 착용감도 편하고 기분이 한결 좋았다. 단언컨대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더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