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버사이즈 재킷과 와이드 팬츠, 콤비 베스트는 모두 C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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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여 년 경력의 배우도 애니메이션 더빙은 처음이지요. 완성작을 봤을 때 기분은
예상보다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림이 하는 연기도 있다는 것, 같이 연기하는 거라는 사실을 차츰 깨달았죠. 실존 인물 연기에 대한 부담감도 조금은 상쇄됐어요. 애니메이션 속의 푸근하고 사랑스러운 이소선 여사 뒤에 숨을 수 있었으니까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시 기억되는 역사도 있습니다
영상 매체가 가진 힘이죠. 일련의 사건들이 영화 한 편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우리가 몰랐던 이면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그런 메시지를 가진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어떻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가진 특권이 아닌가 해요.
〈태일이〉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지난해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힘을 보태 크라우드 펀딩으로 제작됐습니다. 작품에서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부각되지만 이소선 여사는 이후 스스로 평생 노동운동가로 사신 분이기도 해요
작품을 통해 책을 읽고 연구하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요.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소선 여사는 큰 사건을 통해 삶이 송두리째 바뀐 분이죠. 본인이 원한 삶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후 수많은 이들에게 현장에서 따뜻하게 기댈 곳이 됐고요. 전태일 열사가 내 뜻을 어머니가 이어달라고 유언을 남긴 걸 보면 아들도 어떤 씨앗을 본 게 아닐까 해요. 삶에 대한 강한 의지와 강인함 같은.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인물 하면 〈경이로운 소문〉의 추매옥이 떠올라요. 악당을 혼쭐냈다가도 이내 치료해 주고 ‘세상에는 악귀만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들도 부대끼며 산다’고 말하는 캐릭터죠
나이가 들수록 ‘사회 속의 나’라는 존재를 체감해요. 예전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이고, 보통 사람은 거기에 휩쓸려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덧 뭔가 할 수 있고, 해야 할 것 같은 나이가 되니까 사회 속 개인으로서의 내 존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더라고요. 나이를 먹을수록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더 커져요. 그리고 관계를 통해 또 위로받죠. 사람은 서로 기대고 주고받기 마련이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부대끼며 사는 것이 조금 편해졌어요.
92년생인 장동윤 배우와는 열네 살 차이가 납니다. 모자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세대가 다른 배우들과 함께 일하며 갖게 되는 감정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연기하는 후배들을 보면 멋있어요. 저 나이 때의 나와 비교했을 때 위축되거나 주저하지 않는 당당함이 있죠. 장동윤 배우가 그렇듯 자기소신도 있고요.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너 웨어로 입은 니트는 Prendang. 코트는 MaxMara.
지금은 각자가 처한 현실을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커졌습니다. 현실은 달라진 게 없다는 말과 그럼에도 세상은 더 나아진다는 말. 어느 것을 믿고 나아갈지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비롯한 사건이나 암울한 뉴스에 좌절도 하지만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고 믿고 싶죠. 촬영현장에 처음으로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을 때 모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이라면 밤을 새우는 것도 마다해야 하지 않나, 그런 이중적인 마음도 있었는데, 보세요. 몇 년 만에 그걸 안 지키는 것이 이상하게 됐잖아요. 가는 길이 더디고 어렵지만 방향은 확실히 달라지고 있어요. 앞으로의 세대는 또 다를 테고요.
자식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나요.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포용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지
매체가 그리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이 있죠. 자식의 꿈을 응원하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마지막까지 든든한 존재로 그려지는. 그런 어머니상이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을 줄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연기하는 입장에서 때로는 부담스러워요. 엄마도 실패할 수 있고, 부족한 면이 있는 존재라는 걸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데 이런 묘사가 현실의 어머니를 더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람은 나를 응원해 주는 존재를 필요로 하잖아요. 마지막까지 나를 믿어주는 어떤 상징적인 존재로 엄마를 치환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빠도, 친구도 될 수 있고요.
실제 딸이 있으시죠. 어떤 엄마가 되고 싶나요
올해 열 살이거든요. 있는 그대로 아이의 모습을 사랑하고 지켜보는 게 정말 어려워요. 또 워낙 저를 많이 닮았다 보니 ‘나도 저랬는데’ 싶으면서 자꾸 개입하고, 도와주고 싶은 거죠. 엄마로서 아이와 대면하는 게 요즘 저한테 되게 중요한 문제예요. 하필이면 내 안 좋은 점만 왜 다 닮았지 싶고(웃음).
10여 년 전 인터뷰를 봤어요. ‘나는 아줌마 연기의 스펙트럼을 완성할 거다’ ‘지겹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그런 인물들이 사랑스럽고, 어떻게든 그런 역할을 만나서 표현해 주고 싶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당시의 마음은 지금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 같나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했던 인터뷰로 기억해요. 당시 저희 엄마를 떠올리며 말했다면 지금은 제가 그 아줌마가 됐잖아요. 아이 덕에 순간순간 행복하고 보람찬 한편 확실히 육아는 성취감을 얻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일하는 사람에게는 ‘최고다’ ‘잘했다’ 소리를 해주는데, 육아는 삼시세끼부터 교육까지 모든 걸 책임지면서도 그런 말 듣기가 쉽지 않잖아요. 반면 소홀하면 티는 ‘팍팍’ 나고요. 그래서 연민은 여전합니다. 내 나이대의 다양한 아줌마, 다채로운 모성애를 표현하고 싶어요. 실제로 다양해지고 있기도 해요. 지금 촬영 중인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도 경찰이지만 아이가 있거든요.
한석규, 정유미와 같이 하는 작품이죠. 라미란 배우와 함께한 영화 〈시민 덕희〉 소식도 궁금합니다. 실제 보이스피싱 범인들을 소탕한 주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어요
〈태일이〉 다음에 〈시민 덕희〉로 모습을 보여드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작품들이 몇 있는데, 예전에 비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니까 진짜 내 작품 같고, 내가 좀 더 티켓 파워가 있는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빛과 철〉 때도 관객 1만 명이 언제 넘을까, 얼마나 찾아봤는지(웃음).
필모그래피를 보다가 〈국가부도의 날〉(2018)의 ‘희원’이 영화에서 당신이 처음으로 가진 배역 이름이라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어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진주댁’도 끝내 이름이 없었나요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어요. ‘진주댁’이 내 이름이구나 생각했지요. 마침 얼마 전 영화계 성평등에 기여한 배우로서 ‘벡델데이 2021’에서 상을 받았는데요. 벡델 테스트라는 기준이 있다는 게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웠어요. 이 기준을 충족하는 한국영화가 많지 않다는 것에는 충격을 받았고요.
관객 염혜란의 취향은 어떤가요. 최근 놀라움을 선사한 작품이 있었을지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이정재) 캐릭터가 쌍용차 해고노동자에서 차용했다는 것을 알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심지어 “동료가 그 자리에서 죽었어!”라는 대사가 있었음에도 왜 그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을까요. 우리에게는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 있었는데요. 요즘 좋은 배우들, 재능 있는 이들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을 자주 느껴요.
새로 이사한 집 근처 산책로에 화원이 쭉 펼쳐져 있어요. 계절마다 꽃이 바뀌는데요, 지금은 국화가 제철이랍니다. 항상 어릴 때부터 남들같이 멋진 취미가 없는 게 쑥스러웠거든요. 국화를 사서 화분에 옮겨 심고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걸 보며 ‘난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새삼 생각했어요.
‘내 새끼’라는 표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지
제 딸에게도 ‘내 새끼’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표현일 수 있어요. 자식을 소유물로 보는 듯한 느낌도 있고요. 〈태일이〉에서는 의도적으로 그 대사를 많이 썼어요. 죽을 때도 ‘내 새끼’라고 부르며 울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도 ‘내 새끼’라며 토닥이죠. 단어가 선사하는 원초적인 어감, 오장육부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 제게는 그 모든 게 담긴 말이에요.
장동윤이 입은 블랙 코트는 Transit by Coevo. 이너 웨어 톱과 블랙 팬츠는 모두 Valentino. 염혜란이 입은 레더 롱 코트는 COS. 와이드 팬츠는 Prendang.
장동윤이 입은 블랙 코트는 Transit by Coevo. 이너 웨어 톱과 블랙 팬츠는 모두 Valentino. 염혜란이 입은 레더 롱 코트는 COS. 와이드 팬츠는 Prendang.
염혜란이 입은 점프수트는 Son Jung Wan. 장동윤이 입은 더블 코트와 브이넥 니트는 모두 Bottega Veneta.
11월 개봉을 앞둔 〈태일이〉로 홍준표 감독과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어요. 오랜만에 찾은 부산은 즐거웠나요
제작 과정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이에요. 더빙으로 참여한 터라 실사 연기한 작품에 비해 제가 전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을지 고민했어요. 막상 현장에 서니 그저 영화와 영화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기분 좋더라고요. 즐겼어요.
장동윤의 실제 모습과 애니메이션 속 전태일의 그림체가 꽤 닮았다는 반응이 많아요
그렇게 닮았나요(웃음)? 감독님도 주변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나 봐요. 장동윤을 염두에 두고 그린 게 아니냐고. 제 목소리가 덧입혀지니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전태일이라는 노동 투쟁 역사의 상징과 같은 사람을 연기하기로 마음먹게 된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사실 별다른 고민은 없었어요. 캐스팅을 제안받자마자 하겠다고 곧바로 결정했고요. 그저 ‘전태일이니까’가 가장 큰 이유였어요. 물론 관객의 머릿속에 그의 행동과 목소리, 성격, 가치관까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상태일 거라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죠. 그래도 전태일의 목소리를 연기한다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고, 부담을 느끼기보다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배우는 자신의 몸을 써서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에 더 익숙하잖아요
주변 선배들에게 더빙이 도전해 볼 만한 작업인지 여쭤봤는데 다들 할 만하다고 했어요(웃음). 그래서 덜컥 녹음에 들어갔는데 와, 어렵더라고요. 실사 연기할 땐 표정과 몸짓, 에너지나 기운까지 동원할 표현 수단이 다양하잖아요. 목소리만으로는 감을 못 잡겠더라고요. 특히 누군가에게 반했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때 말과 표정이 아닌 ‘와아’ ‘흐음’ ‘크엄’ 같은 의성어로 표현하는 게 어려웠죠. 연기와는 또 다른 영역이었어요.
염혜란 배우와 목소리로 호흡하는 것은 어땠나요
목소리만으로도 진정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걸 느낀 귀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목소리 톤이나 기술적인 부분과 씨름하고 있을 때, 인물의 깊은 감정이나 속마음이 오롯이 드러나게끔 몰입해서 연기하는 모습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죠. 아버지 역의 진선규 선배나 재단사 신씨 역의 박철민, 한미사 사장 역의 권해효 선배도 마찬가지고요.
두 배우 모두 경상도 사투리 연기에 능숙해서 깜짝 놀랐어요. 장동윤은 실제로도 전태일과 같은 대구 출신이라지만, 염혜란은 전라도 ‘네이티브’임에도 불구하고요
고향이 대구라 그런지 이상하게 경상도 사투리로 대사하는 걸 듣거나, 제가 직접 사투리 대사를 할 때 감정적으로 더욱 깊고 진하게 와닿는 무언가가 있더라고요. 염혜란 선배는 저도 ‘네이티브’로 착각할 정도였어요. 함께 사투리로 모자 간의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에서는 울컥하더라고요.
전태일과 이소선은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모자 관계입니다. 서로의 뜻을 지지하는 든든한 동반자 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연기하면서 저희 엄마와 제 관계가 문득 오버랩될 때가 있었어요. 아들이라는 단일한 이름의 존재보단 한 명의 인간이자 인격으로 대우하고 존중해 준다는 점이 비슷했죠.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한 관계지만, 보통의 모자 관계를 뛰어넘어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의 뜻과 소신을 존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당신 또한 부모님으로부터 배운 특별한 삶의 가치나 태도가 있을까요
분명 있어요. 아버지는 저를 자유롭게 내버려두는 편이고, 어머니의 성숙한 면모를 닮은 것 같아요. 흔들릴 때 잡아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삶을 유지하는 태도에 대해 배울 점도 많아요. 〈태일이〉에 관한 조언도 구했어요. 어머니는 이미 대학생 때 〈전태일 평전〉을 닳도록 읽으셨고, 그때 벌어진 일을 더욱 가깝게, 몸소 겪어 알고 계시니까요. 대부분의 청년들이 거리로 나가 자신의 마땅한 권리를 주장하던 시기였으니 더욱 잘 이해하고 계셨죠.
아버지요, 하하. 아버지의 고등학교 졸업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쌍꺼풀도 진하고 장국영을 닮았다고 해야 하나? 제가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객관적으로 잘생기셨거든요. 우리끼리 제가 아빠를 더 닮았으면 분명 할리우드는 그냥 갔을 거라고 농담할 정도로요(웃음).
민트 베이지 컬러 셔츠는 Lemaire.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지금도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평범한 청년 태일의 모습을 조명하는 서사와 감정선을 따라가면서 장동윤 또한 한 청년으로서 그의 선택이나 행동에 공감했나요
물론이에요. 어떤 현실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그에 저항하는 건 정치적인 게 아닌, 올바름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청년 태일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삶을 선택해 나갔느냐는 것, 그가 처한 상황에 공감하고 그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에요. 그 누구라도요.
당신 또한 소신 앞에서 과감히 행동하는 편인가요? 편의점 강도를 잡고 뉴스에 출연하게 된 데뷔 일화나 생각지도 않던 배우의 길로 과감히 전향한 모습에서 그런 용기를 짐작할 수 있기도 한데요
그 일화는 평생 동안 저를 따라다닐 것 같아요(웃음). 좋게 말하면 화끈하고, 호불호도 강해요. 어릴 때부터 그랬고, 자라면서 그게 제 가치관이 됐고요. 분명한 장점이지만, 부작용을 일으킬 때도 많아요. 원치 않는 적도 생기고요. 이제는 제가 지닌 추진력이나 실행력을 더욱 현명한 방식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나가고 있어요.
〈조선로코-녹두전〉을 마치고 진행한 지난 〈엘르〉와의 인터뷰에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과감하게 내리고, 밀어붙여야겠다 싶으면 불도저처럼 덤벼든다”는 발언에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겠네요
아주 패기가 넘쳤네요(웃음). 뭐랄까, 조금씩 타협해 나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하면 어떨까요?
배우 활동도 소위 ‘사회생활’이란 걸 엄청나게 요구하는 직업이에요. 감독과 작가, 제작진, 선후배 동료는 물론 더 넓게는 시청자, 그리고 대중과도 소통해야 하고요. 이 흐름에서 알게 된 건 사람들은 늘 정답만 원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원하는 걸 쟁취하는 과정에서는 오답이 정답이 될 때가 있다는 걸 30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배워나가고 있죠. 이제는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결코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유연함은 데뷔 5년 차에 다양한 작품 스펙트럼을 꾸릴 수 있게 만든 동력이 됐을까요. 조선과 현대, 여장과 남장을 넘나들고, 또 노동운동가와 군견병을 아우르죠. 차기작 〈롱디〉에서 인디 뮤지션 여자친구를 둔 사회초년생으로 변신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작품 선택 기준 1순위는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지예요. 물론 배우가 단 하나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는 것도 훌륭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무기를 갖는 것도 그 배우만의 힘이죠. 그런 마음으로 로맨스와 액션, 누아르와 코미디를 아우를 수 있도록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 온 것 같아요. 하지만 외부 평가와는 달리 저라는 배우는 아직 굉장히 한정적이죠. 한참 멀었어요. 앞으로 영역을 더 넓혀가면서 적절한 밸런스가 잡힌 저만의 무기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달리기와 등산. 또 요리하는 것도 좋아해요. 최근 복숭아로 만든 상큼한 소스를 곁들인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만들어봤어요. 제가 생각보다 요리를 잘 해요(웃음). 영화도 대부분 챙겨 보는데, 최근 넷플릭스에 빠졌어요. 특히 〈D.P〉를 인상깊게 봤죠. 어제는 잠이 오지 않아서 제이크 질렌할 주연의 스릴러 〈더 길티〉를 무심코 봤는데, 원작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더라고요.
지금 장동윤에게 가장 필요한 것, 또 지키고 싶은 건
화가 에곤 실레의 말들이 참 와닿아요.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훌륭한 사람과 앞으로 훌륭하게 될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내 훌륭함이 마음에 듭니다”라는 말. 필요로 하는 말이기도 하고, 제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비슷한 것 같아요.
물론이요. 인간으로서 드러나지 않은 부분도 많고, 배우로서도 아직 한참 남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