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기운





한편 전 세계를 주름잡는 억만장자들의 우주적 행보와 패션 디자이너들이 최근 같은 궤도를 그리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을 바탕으로 MZ세대와 소통하며 미래를 설계 중인 디자이너들에게 앞서 언급한 억만장자들과 같이 우주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설계할 수 있는 테마로 각광받고 있다. 이미 과거 피에르 가르댕과 파코 라반, 앙드레 쿠레주가 우주를 향한 열망을 미래적인 컬렉션으로 풀어낸 바 있으며, 후세인 샬라얀과 알렉산더 맥퀸, 티에리 뮈글러 또한 우주를 주제로 참신한 컬렉션을 선보여 패션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런가 하면 그랑 팔레에 커다란 로켓을 띄운 샤넬, 데뷔 쇼를 기념해 우주복을 입힌 흑인 모델로 피날레를 장식한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 쇼 등…. 미래를 향해 한 발 내디딘 디자이너들의 참신한 시도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이번 시즌, 새 시대와 마주한 패션 하우스들의 ‘멋진 신세계’는 또다시 명징한 빛을 발한다.
가상현실과 메타버스를 겨냥한 버추얼 게임으로 승부수를 띄운 발렌시아가 컬렉션에서 화제가 된 건 바로 나사(NASA)와 협업한 우주복인데, 이는 아폴로 발사를 예고한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연설 50주년을 기념한 결과물. 물론 ‘진짜’ 우주복과 동일한 기능성은 기대할 수 없지만, 나사 우주복 디자인을 완벽하게 재현한 아우터웨어는 우주와 일상의 접점이 과거보다 급격하게 가까워졌음을 시사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리감이 비로소 좁혀지고 우주가 더 이상 실체 없는 가상이 아닌, 우리 현실에 밀접하게 침투하고 있음을 또 다른 디자이너들의 컬렉션을 보며 깨닫는다. 시종일관 미래적 키워드를 적극 반영한 메탈릭 스페이스 룩과 로봇을 런웨이에 등장시킨 돌체 앤 가바나부터 당장이라도 우주로 향해야 할 것 같은 발망 런웨이, 루이 비통의 사이파이 무드 드레스를 보면 비로소 우주 친화적 패션이 코앞의 현실로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매번 클래식하고 우아한 이탤리언 무드를 고집해 온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가타카〉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SF영화적인 패션 필름과 컬렉션으로 파격적 변화를 꾀한 폴 앤드루는 젊은 MZ세대는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미래와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주산업에 대한 이야기가 필수라고 말할 정도니까. 때마침 도쿄올림픽 폐막식을 장식한 2024년 프랑스올림픽의 홍보 영상 속 유럽우주국(ESA) 소속 프랑스 우주인 토마 페스케의 색소폰 연주가 전 세계인에게 뭉클한 여운을 남겼다. 경이로운 우주 공간에서 무중력 상태로 부유하며 색소폰 연주를 선보이는 장면을 감상하고 있자니 아주 멀게만 느껴졌던 우주라는 시공간이 보다 가깝고 친숙하게 다가온다. 더불어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던, 비현실적이라 여겼던 옷들도 동시대인의 일상과 기민하게 발걸음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52년 전 닐 암스트롱이 내디뎠던 ‘작은 한 걸음’이 비로소 ‘인류의 위대한 도약’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2021년 현재의 우리는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