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체인지데이즈? #환승연애? 요즘 연애 리얼리티에 과몰입 중인 당신에게

헤어진 연인과 다시 한 집에 모이고, 연인이 아닌 다른 상대와 데이트를 즐기고···. 우후죽순 쏟아지는 요상한 컨셉트의 연애 리얼리티. 연애 포기자들이 속출하는 현실과 반대로 남의 연애담에 과몰입하게 되는 이유.

BY전혜진2021.09.21
 
유구한 역사를 지닌 인류의 ‘짝짓기’ 콘텐츠. 국내 최초의 남녀 맞선 프로그램 〈사랑의 스튜디오〉로 시작해 뛰어난 비주얼에 음악과 그래픽으로 감성 한 스푼을 더한 〈하트시그널〉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불문하고 ‘썸’은 늘 사랑받아 온 소재다. 최근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상단에는 야수의 가면을 쓴 채 대화를 통해서만 상대를 고르는 〈섹시 비스트〉나 다수의 남녀가 리조트 방 하나를 공유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투 핫!〉이 자리를 차지한다. 보다 보면 더한 걸 보고 싶은 게 인간의 심리라고, 우후죽순 쏟아지는 국내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어쩐지 알콩달콩함이나 설렘의 수준을 넘어 극한으로 치닫는 출연자들의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오랜 연애 기간이나 성향 차이 등 각기 다른 이유로 이별을 고민하는 커플이 서로의 연인을 바꿔 데이트해 본다든지(〈체인지 데이즈〉), 이미 결별한 커플이 한집에 모여 자신의 ‘X’를 숨긴 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다든지(〈환승연애〉) 혹은 내 남사친, 여사친이 다른 이성과 데이트하는 걸 참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학적으로 실험하기까지(〈러브&조이〉)! 이게 바로 요즘 Z세대의 연애 감성일까? 관찰 연애 프로그램 마니아인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 소재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오간다. 10년째 모태 솔로인 친구 A는 “나는 쟤랑 쟤가 제발 잘됐으면 좋겠어”라며 하트 뿅뿅 눈을 빛내고, 뼛속까지 ‘유교 걸’인 B는 “작가나 감독이 사이코패스인 게 분명하다”고 시뻘게진 얼굴로 역정을 낸다. 연애 6년 차에 늘 헤어질 궁리만 하던 C는 “나라도 저럴 수 있겠어…”라며 공허한 눈으로 읊조리기까지 반응은 제각각이다.
 
관점은 저마다 달라도 유튜브에서든 SNS로든 이 리얼리티의 매운맛을 일단 한번 맛보면 어느새 밤새워 정주행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극한의 심리 상태에 처한 선남선녀의 감정선에 빠져 울고불고 과몰입하는 것은 기본, 출연자의 사소한 손짓이나 눈짓 하나로도 수백 가지 해석을 꺼내놓는 ‘심리학 박사’가 되는 지경에 이른다. 카카오TV 〈체인지 데이즈〉는 공개된 12편의 본편 에피소드의 누적 조회수가 3000만 뷰를 돌파했고, 〈환승연애〉는 TVING의 모든 콘텐츠 중 조회수를 비롯해 다시 보기, 인기 순위 등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며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는 중. ‘너랑 데이트하면 남친 생각이 안 나’라고 적힌 썸네일의 클립 영상 댓글에는 해당 발언의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저 XX가 쓰레기다 아니다”의 갑론을박으로 뜨겁다. 커뮤니티에는 볼 꼴 못 볼 꼴 다 본 저마다의 연애담과 추억 팔이로 2차 논쟁이 벌어진다. 마치 수순인 듯 출연자들은 스타덤에 올라 팬덤을 형성하기도, 어쩌면 같은 시간대에 방영 중인 멜로 드라마의 주인공 스타보다 더 사랑받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이런 사생활까지 공개한다고?’ 싶을 정도로 자신의 얼굴과 직업은 물론, 내밀한 연애사까지 가감 없이 공개하는 출연자들의 생각도 궁금해진다.
 
우리는 대체 왜 이런 연애 리얼리티에 열광할까? 연애, 결혼 관련 심리학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차희연 교수 심리TV〉의 차희연 동국대 심리학 교수는 이 프로그램이 ‘대리 쾌감’과 ‘타인과의 비교에서 오는 안정감’을 동시에 선사한다고 분석한다. ‘죽고 싶지만 연애는 하고 싶고, 연애는 하고 싶지만 집 밖에는 나가고 싶지 않은’ 까다로운 요즘 세대의 과몰입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달까?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까지 더해지면서 주변에는 연애 포기자나 비연애 선언자들이 쏟아진다. 연애 리얼리티는 연애 감정이라는 쾌락과는 한동안 멀어질 거라 생각하는 시청자들에게 마치 슈팅 게임이나 전쟁 게임에 참여하는 듯한 짜릿함을 선사한다. 출연자 A가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이유로 결별한 X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즐기며 X에게 하지 못했던 속말을 꺼내 공감을 얻는다거나, 장기간 연애에 지친 나머지 “헤어지고 싶지만 ‘건덕지’가 없어서 차라리 바람이라도 펴줬으면 좋겠다”는 필터 없는 말에 속 시원해하는 등 현실에서는 도무지 시도하기 두려운 말이나 행동을 대신 실현해 주는 데서 ‘대리 쾌감’을 느낀다. 차희연 교수는 “과거에는 멜로나 로맨스 드라마가 이 감정을 채워줬다면, 요즘 사람들은 드라마의 판타지성이나 인위적 측면을 정확히 인지하기 때문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연애 리얼리티가 그 부분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오랜 기간 실제로 추억과 경험을 쌓은 출연자들의 사정에 픽션보다 더 몰입하게 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얘기다. 이별을 앞둔 연인 혹은 이미 헤어진 연인과 한집에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도 모험인데 다른 이성과 데이트를 즐기고, 공개된 곳에서 속마음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은 보편적으로 일어나기 힘들기에 쾌감은 배로 다가온다. 심지어 그곳의 모두가 암묵적으로 합의한 ‘금기’라니! 현실의 연인 사이에서 같은 속사정을 공유하더라도 직접 나서서 감정을 부딪치긴 두렵거나 솔로일지라도 그저 안전하게 소파에 누워 타인의 위태위태한 ‘러브 게임’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어 하는 이들의 가려운 부분을 벅벅 긁어주는 것이다.
 
소재 또한 행복과 헌신 같은 긍정적 감정보단 이별과 다툼 등 부정적 감정을 다루며 자극적으로 변모해 갈 수밖에 없다. 차희연 교수는 그간의 상담 사례를 살펴봤을 때 “남의 연애를 지켜보는 것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실제로 잘 풀리는 연애보다 잘 풀리지 않는 연애를 보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위로하려는 성향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덧붙인다. 외모나 스펙 모두 완벽해 보이는 출연자들이 무너진 감정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울고, 지난 실수에 절절히 후회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지만, 한편으론 ‘내 현실만 팍팍한 것 아니다’라는 일종의 위안을 받기도 한다는 것. “맞아, 생각났어. 연애가 저렇게 힘든 거였어. 걔 다시 안 만나길 잘했지”라고 B처럼 합리화하기도, “저렇게 심각한데도 여태 안 헤어진 걸 보면 내 연애는 아직 괜찮은 것 같다”며 C처럼 위로 아닌 위로를 받기도 한다. 격한 상황에 놓인 출연자들을 ‘밸런스 게임’을 하듯 바라보며 나라면 어떨까 상황을 가정해 보는 재미도 있다. “연애를 상담해 오는 대부분이 자기 연애의 행방은 몰라도 남의 연애가 나아갈 종착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는 차 교수의 말처럼 마치 전지적 관점에서 실시간으로 그들의 표정과 몸짓을 관찰하며 결과를 예측해 보는 행위의 재미 또한 상당하지 않을까.
 
연애 포기자들과 달리 연애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들의 헛헛함을 충족시키는 장치로도 소구되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유튜브든 예능이든 어느덧 콘텐츠가 대면 인간관계에 쓸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해 버린 시대에서 영화 〈Her〉의 주인공이 AI 스피커 ‘사만다’와 사랑에 빠지듯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차 교수는 “SNS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말을 걸어주는 비디오를 틀어놓는 것이 유행인 때도 있었다”며 “현대인은 갈수록 소외되고 있고, 시공간적 제약으로 요즘 사람들과 함께 술 마시고 어울리는 틈마저 줄어들다 보니 내향적 성향의 사람들이 관계성의 욕구를 해소하려는 방식 중 하나로 콘텐츠 시청을 택한 듯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먹방이나 여행 브이로그, 요리 콘텐츠가 인기를 끌게 되니 어쩌면 연애 리얼리티가 그중 필수 콘텐츠 키워드로 떠오른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공감과 비난의 시선이 공존하는 요즘 연애 리얼리티. 출연자들의 질투와 소유욕, 후회와 열등감 등 온갖 감정과 인간 군상에 실컷 과몰입해 보다 보면 일종의 ‘현타’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텅 빈 마음에 위안을 안긴다면, 윤리의식이나 사회적 타당함은 잠시 내려놓고 맥주 한잔과 함께 즐기면 그뿐 아닐까? ‘관음’하는 게 뭐 어때서? 열렬한 관음은 시청자인 우리 모두의 특권이기도, 남의 연애에 울고불고하는 당신은 여전히 뜨거운 사람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