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무튼 듣기 생활

듣는 콘텐츠의 세계가 심상치 않다. 5인의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지금 듣고 있는 것들의 목록.

BY이경진2021.07.21

LISTEN

UP 

 

귀로 듣는 에로티시즘, ‘딥시’

 
코로나19 이전, 일본 편의점에서 잡지를 사고 〈실크라보〉 DVD를 사은품으로 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남성 중심의 폭력물이 아니라, 훈남이 등장하는 ‘찐한 연애물’인 어덜트 비디오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이후, 나는 딥시(Dipsea)의 등장으로 또 한 번 놀랐다. 데이트도 비대면으로 하는 이 역병의 시기에 ‘귀로 듣는 에로티시즘’이 나올 줄이야. 두 명의 여성 창업자는 ‘여자들이 정말 원하는 섹스는 뭘까?’를 방향으로 잡고 딥시를 출시했다. 에디터와 작가들이 여자가 원하는 섹스에 관한 스토리를 만들어 10~20분 분량의 오디오 콘텐츠를 제공한다. 아직 한국 계정에선 들을 수 없지만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도 들어간 상태라 곧 한국 여성들도 새로운 에로티시즘에 귀가 트일 듯. 자기 전에 들으면 숙면을 보장하는 편안하고 무해한 섹스의 세계가 펼쳐진다. 
서동현 · 카카오 브랜드미디어 콘텐츠 에디터
 

사운드 드라마의 매력, 오디오 시네마

영상제작이 업이라 점차 시각 이미지에 대한 피로감이 생긴다. 소리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사운드 콘텐츠의 매력을 느껴 최근 스릴러 오디오 드라마를 기획 중이다. 소리만으로도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 그게 소리의 매력이다. ‘오디오 시네마’는 네이버 오디오 클립에 업로드되는 사운드 드라마다. 네이버에 연재된 웹툰과 웹소설을 오디오북 형태로 재가공해 만든다. 이제훈, 유인나가 목소리 출연한 〈그대 곁에 잠들다〉, 김동욱과 강소라가 참여한 〈남과 여〉, 찬열과 이세영의 〈두근두근 두근거려〉까지. 쟁쟁한 출연진의 목소리로 이뤄지는 데다 러닝 타임과 에피소드 개수도 적당한 편이라 듣는 콘텐츠에 처음 입문하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김하민 ·  광고 연출가, AIM스튜디오 디렉터
 

식물 듣기 생활, 〈임이랑의 식물수다〉

직업인으로서 연차가 쌓이며 얻은 것 중 하나는 듣는 콘텐츠의 목록이다. 마감에 치이는 시즌이면 팟캐스트를 켠 채 폰을 들고 샤워실로 향한다. 플레이리스트를 고르는 몇 개의 기준도 확립됐다.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고음이거나 말이 빠르지 않은 사람이 진행하는 이야기 콘텐츠일 것, 감성적인 내용보다 정보 위주로 건조하게 진행될 것. 이야기 콘텐츠는 음악과 달리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다. 주제를 나지막이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면 일상이 한결 정돈되는 기분이다. 밤새 빙빙 돌며 해결되지 않던 문제가 불현듯 술술 풀리기도 한다. 요즘 플레이리스트는 밤에는 노래를 만들고 낮에는 이파리를 가꾸는 디어클라우드 멤버 임이랑이 들려주는 식물 수다. ‘식물 덕후’ 선배 역할로 나선 임이랑이 식물에 관한 수다를 시시콜콜 나누는 오디오 콘텐츠다. 초보 가드너는 물론이고 가드닝과 식물 생활에 진심인 식물 덕후, 일상을 조금 더 촉촉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본격 식물 이야기. 임이랑의 부드러운 중저음 목소리도 매력적이다. 
한지완 ·  드라마 작가
 

과거의 목소리,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2004년, 서른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정은임 MBC 아나운서가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아직 팟캐스트로 남아 있다.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방송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은 팟캐스트와 스포티파이가 등장하지 않았던 2000년대 초 젊은 영화 팬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전설이 된, 전위적인 오디오 콘텐츠다. 박찬욱 감독도 게스트로 함께한다. 90년대에 영화 〈파업전야〉를 다루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틀었다.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소개하고, 음악을 틀고 비평했다. 영화감독, 기자, 영화평론가들의 추모사를 찾아보면 정은임이 얼마나 뜨겁게 영화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오래전 종영된 라디오 프로그램, 뜨겁게 빛났던 과거의 목소리를 팟캐스트로 들으며 90년대 영화와 영화음악을 만나는 기묘한 경험. 
신우석 ·  돌고래유괴단 대표
 

원격 힙합 수업, 〈넉살의 Hip한Rap슨〉

‘본업존잘’인 현업 래퍼, 넉살의 1:1 실용 힙합 강의다. 넉살이 따발총처럼 콕콕 박히는 딕션과 목소리로 가사 쓰는 노하우부터 라임과 플로 짜는 법까지, 힙합의 A부터 Z까지 다 알려준다. 전국의 모든 힙합 꿈나무들, 힙합 왕초보를 위한 기초반이랄까. 래퍼의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인 자신만의 플로를 갖기 위한 연습 방법부터 멈블랩, 트랩, 올드스쿨 등의 장르, 핫한 슬랭, 현업 래퍼들의 음악 스타일까지 다 파헤쳐준다. 청취자들의 랩을 첨삭해 주는 ‘피드백 랩슨’과 특강도 진행하는 열정 넘치는 넉살 선생님과 함께라면 어쩐지 언젠가 〈쇼 미 더 머니〉 오디션에도 참가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는다. 더 콰이엇, 팔로알토 등 특별 출연하는 래퍼들의 라인업도 매력적이다. 듣는 콘텐츠의 외연이 확장돼 별걸 다 듣기로 배우는 지금, 래퍼를 꿈꾸는 일이 멀기만 했던 과거를 종식시키는 힙합 콘텐츠.
이민경 ·  프리랜스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