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에루샤’ 열풍에 대한 우리의 자세_선배's 어드바이스 #66

에르메스·샤넬·루이비통, 불패라는 ‘명품’브랜드 꼭 장만해야 할까?

BY송예인2021.05.24
주말 오전 남자 지인과 통화하다 새벽부터 샤넬 부티크 앞에 줄 서 있단 얘기를 들었다. 웃음이 날 만큼 패션 쇼핑과는 관계없는 사람인데 가방 선물을 꼭 사야 해서 여러 매장을 돌며 번호표를 받아 놓고 기다리는 중이란 것이었다. 그러면서 받을 사람이 더 원하는 건 에르메스 가방이지만 그건 아예 ‘영접’할 수도 없어 그나마 샤넬 사정이 낫다고 했다. 전에 내가 든 가방이 오래된 에르메스랬더니 놀라며 “옛날 책가방 스타일이던데? 한 십만 원인 줄 알았어!” 라는 치명타를 날렸다. 관심 없는 사람들은 샤넬 클래식 백의 퀼팅 디테일을 보고도 누비이불 같다는 독설을 서슴없이 한다.
 
사진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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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에루샤’, 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은 어느 틈에 부티크 입장만 한나절 이상 기다려야 하고 인기 모델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브랜드가 되어 버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줄 선 사람 중엔 상품이 눈에 띄는 대로 사 ‘프리미엄(웃돈)’을 붙여 되파는 전문 ‘리셀러’가 원하는 것만 사려는 소비자보다도 많다. 잘 모르는 사람 눈엔 평범해 보이는 패션 상품이 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됐을까?
 
 
사진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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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공급은 크게 늘지 않았는데 수요가 폭등해 투자 가치마저 생겼기 때문이다. 
창업 초기 튼튼한  가죽 승마용품을 주로 만들었던 에르메스, 쿠튀리에가 아닌 모자 판매상으로 시작했지만, 여성의 독립성에 집중했던 샤넬, 어떤 귀한 물건도 손상되지 않게 담는 왕족과 귀족의 여행용 트렁크 장인이었던 루이비통은 품질과 정체성을 백 년 넘도록 올곧게 유지하면서도 시대마다 트렌드 감각을 접목해 브랜드 이미지가 노쇠해지는 걸 막았다. 또, 잘 팔린다고 생산량을 무한정 늘려 단기간에 큰 이익을 취하지 않고, 일정 수준 내에서 유지하며 대중에게 희소가치를 각인시키는 전략을 펼쳐 왔다.    
 
Hermes birkin bag.

Hermes birkin bag.

에르메스 버킨 백이 2백만 원대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아는지? ‘90년대 중반 환율이 1달러당 7백~8백 원이었고 평범한 가죽 버킨은 아직 2천 달러 대였기 때문에 평범한 직장인도 해외 출장길에 한 달 월급 조금 넘는 금액을 투자하면 살 수 있는 가방이었다. 그래서 버블 경기로 먼저 ‘명품’ 쇼핑에 빠진 일본인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물량 많은 파리 부티크 앞에 줄을 서는 기현상이 놀림거리로 보도되기도 했다. 현재 버킨 백은 열 배 자금을 갖고도 평소 비인기 제품 구매 실적이 많고 담당 셀러와 친분도 있어야만 하나 등장했을 때 연락이라도 받을 수 있는 유니콘 같은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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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계속 금리가 낮아 대출된 돈이 넘쳐나고 팬데믹으로 부익부 빈익부 현상이 심화하며운 좋게 소득 수준을 유지한 사람들, 투자로 더 부유해진 사람들은 환금성, 투자 가치 있는 현물을 보유하는 게 현금을 쥐고 있는 것보다 차라리 낫다고 판단했다. 패션 브랜드로선 그런 조건을 드물게 충족시키는 거로,‘에루샤’가 당첨된 것이다.    
 
사진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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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해외여행이 막힌 사이 ‘보복 소비’에 꽂힌 사람이 많다. 
여행 경비뿐 아니라 해외에서 쇼핑하던 예산까지 국내에서 쇼핑으로 써 버리니 한국에서 인기인 브랜드, 모델들은 유난히 품귀현상을 보인다.
 
 
사진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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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정이 이렇다 보니 “30대가 되니 결혼식에 가 봐도 다들 샤넬, 루이비통 가방 하나쯤 있는 분위기더라고요. 저도 장만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을 가끔 받는다. 기본적으로‘내돈내산’에 있어 부화뇌동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패션의 본질이 무엇인가? 고 가브리엘 샤넬은 “패션의 목적은 두 가지다. 편안함과 사랑.”, “옷으로만 패션을 완성할 수는 없다. 옷을 입은 사람의 가치가 살아 있어야 한다.”, “패션은 드레스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패션은 하늘, 거리에도 있으며 사상, 삶의 방식, 현상과 함께해야 한다.”등 발언을 통해 패션은 개인의 철학을 담은 것이어야 함을 여러 번 강조했다.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목적이며, 스스로 아름답다 느끼게 하고 그걸 위해 돈, 시간, 노력을 들여도 아깝지 않은 것이 패션이다. 오직 남의 이목 때문에 별로 원치도 않는 고가품을 사고 걸쳐야 한다면 그런 비극이 없다. 별로 끌리지도 않고, 한 번 안 사기로 했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러는 게 좋다.
 
사진 언스플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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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에루샤’ 상품 중 어떤 것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저축해서라도 언젠가 살 예정이라면? 다른 데 들일 돈을 당겨 쓰더라도 최대한 빨리 사는 게 낫다. 특히 인기 모델은 가격 오름세가 물가 상승률보다 높으며 은행 금리보다는 훨씬 높다. 마침내 돈을 다 모았을 땐 더 큰 폭으로 올랐을 거고 더 사기 힘들어질 거란 얘기다. 실제로 올해 사야지, 내년엔 사야지 하다 너무 가격이 오르고 귀해지기까지 해 못 사게 된 사람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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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모델을 간절히 원하는데 도저히 살 수 없다면 20년 이상 된 빈티지 급을 노려 보자. ‘명품’브랜드들의 본산인 파리에선 과거의 감성을 간직한 빈티지도 고가에 거래되고 특유의 아름다움을 살려 스타일링 하니 패션을 사랑한다면 현명한 선택이다. 반면 아시아 소비자들은 중고라도 새것 같은 상태를 선호해서, 정품은 확실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보이거나 보증서, 더스트 백 등 구성품이 빠진 물건은 훨씬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다행히도 이들 브랜드 제품엔 생산연도가 암호처럼 각인돼  현재보다 현저히 쌌던 당시 가격이 중고가에도 반영돼 있다.
 
순전히 좋아서 매일 쓰고 싶은, ‘에루샤’ 아닌 다른 물건을 발견한다면 ‘대란’이며 ‘프리미엄’, ‘리셀가’ 따윈 신경 쓰지 말고 과감하게 장만해 최대한 오래 쓰자. 뭐든 오래 쓰는 게 친환경이기도 하고 자신만의 시그너처 아이템을 만들어 가는 게 스타일을 완성하는 방법이니까…. 세계적인 환경 보호 운동 열풍과 팬데믹 이후 모임 제한으로, 심지어 에코백 하나만 가지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중인 미니멀리스트도 많다. 나 역시 오래전 한눈에 들어 샀지만 단종됐고 되팔기도 어려운 물건들을 지금껏 쓸 때면 진정 내 물건 같고 스타일링 하기도 편하며 잘 어울린다고 느낀다. 간혹 “이 가방은 뭐예요?” 하며 예쁘다는 Z세대를 만나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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