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LIFE

쉐프가 추천하는 코리언 허브, 봄나물

향을 먹는 봄나물이 바로 이 땅의 허브다.

BYELLE2021.04.19
 

SO KOREAN!

 
로즈메리, 파슬리, 딜, 타임, 민트 등 식물의 잎과 줄기, 뿌리, 꽃 등을 아우르는 허브는 우리에게 낯선 향취와 함께 이국적 정취를 와락 안겨준다. 이것들로 요리에 향미를 더하는 걸 즐기던 누군가는 한국에 이토록 향긋하고 개성 넘치는 허브가 없음을 개탄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허브가 있다. 아니, 많다. 산이나 들에서 자라는 야생 식용 식물을 뜻하는 나물이 바로 ‘코리언 허브’다.
 
나물의 맛은 일단 나는 계절에 따라 크게 나뉜다. 그중 채 다 자라지 않아 나긋나긋하고 풋풋한 봄나물의 향과 맛이 가장 좋다. 냉이, 달래, 쑥, 미나리, 두릅, 취나물, 방풍나물, 머위, 전호나물, 씀바귀, 곰취 등이 풍기는 청신한 향미는 겨우내 떨어진 입맛을 기막히게 돋운다. 풍부한 비타민과 무기질로 봄철 물먹은 솜뭉치처럼 나른한 몸을 깨우기까지 한다. 깃 모양의 잎과 길쭉한 뿌리로 이뤄진 냉이는 겨자과에 속하는 풀이다. 쌉싸래하면서도 끝 맛이 고소해 살짝 데쳐 깨소금에 버무리면 풍미가 바질 페스토 부럽지 않다. 한편 영양부추를 연상시킬 정도로 가는 줄기에 마늘처럼 동그란 미색의 알뿌리가 달린 달래는 닮은 모습이 무색하지 않게 줄기에서는 부추 맛이, 알뿌리에서는 마늘 맛이 난다. 톡 쏘는 알싸한 매운맛이 매력적인 달래는 파나 부추, 마늘 대신 어디에 넣어도 맛이 찰떡이다. 향이 그윽한 쑥은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유구한 역사를 지닌 허브다. 곰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찾는다는 곰취는 잎이 곰 발바닥만큼 큰데, 한 입 가득 욱여넣으면 아삭거리는 식감과 함께 상쾌하면서 쌉싸래한 풀 내음이 차오른다. 동면에서 깬 곰의 가뜬한 심정을 잠시 느낄 수 있다. 들과 언덕, 산기슭의 돌 틈에서 주로 자라는 돌나물의 맛은 실제로 와인의 테이스트 노트에 자주 등장하는 부싯돌과 스톤, 미네랄리티 등의 뉘앙스를 닮았다. 두릅도 빠질 수 없다. 봄나물다운 향미에 통통한 살집까지 갖춰 이로 어석어석 씹으며 짓이길 때마다 생기는 변칙적인 식감이 재미있다.
 
역삼동의 미쉘린 원 스타 레스토랑 ‘에빗’의 조지프 리저우드 셰프에게 나물은 한국에 흥미를 느끼게 해준 식재료 중 하나다. 국내 식재료에 양식 조리법을 결합한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조지프 셰프는 전통의 틀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봄나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장아찌의 재료로 널리 알려진 명이나물을 날것으로 즐기면 그윽한 마늘 향을 더 잘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는 봄나물을 연구하던 중 두릅이 시트러스한 맛과 잘 어울린다는 뜻밖의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조지프 셰프는 두릅을 구워 같은 철에 나는 금귤을 얼린 후 껍질을 잘게 갈아 뿌려 먹기를 권한다. 상상만으로도 봄이라는 지독하리만큼 아름다운 감옥에 갇힌 기분이 드는 앙상블이다. 신사동의 와인 페어링 바 ‘위키드와이프’는 봄 메뉴로 유채꽃을 올린 봄나물 파스타를 선보인다. 최선 셰프가 어릴 적 어머니가 해준 미나리 오일 파스타를 응용하되 유채 꽃대와 미나리를 활용해 제주도의 탐스러운 들판을 접시에 옮길 생각이다. 유채의 아삭한 식감과 싱그럽고 고소한 참나물 페스토의 조합은 누군가에게 올봄 서울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 또는 계절적 감각을 남길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어느 봄날 귀한 유채 꽃대를 구했다면 반죽을 입혀 튀겨보자. 궁극의 별미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유채는 공심채처럼 줄기 속이 비어 있어 볶으면 아삭아삭하니 맛있다. 물론 공심채보다 값도 싸다. 이제 더 이상 무턱대고 데치거나 무치지 말자. 봄나물의 맛을 탐미하는 길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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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 우창원
  • 글 이주연
  • 웹디자이너 한다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