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세계로 뻗어가는 모멘텀엔 항상 문소리가 있다. 데뷔작 〈박하사탕〉이 공개되자마자 칸 영화제가 주목했고, 두 번째 영화 〈오아시스〉로 베니스 영화제에서는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데뷔 20년 차, 영원히 시대의 아이콘으로 존재할 것 같은 문소리와의 대화는 아주 소탈한 웃음과 함께 시작됐다. 문소리는 하루를 또렷하게 살아내며, 요즘 푹 빠져있는 책과 영화에 대해 두 눈을 반짝이며 기쁘게 얘기하는 사람이였다.
함께 촬영한 스태프들이 서로 가족 이야기를 나눴대요. ‘아버지가 옛날에 이렇게 말한 적이 있는데’ ‘우리 누나는 이랬는데’하고 말이에요. 일하면서 사실 이런 얘기 잘 안 하잖아요. 〈세자매〉는 묻어둔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어제는 극장에서 〈세자매〉를 보고 나오는데, 아쉬가르파라디 감독의 말이 벽에 프린팅이 돼 있더라고요. ‘관객에게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상영이 끝났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서 혼자 속으로 ‘아! 파라디 감독님. 저희 영화가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 같아요’하면서파라디 감독이랑 대화했잖아요(웃음).
정말 삶이라는 게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요. 건강한 생활을 지향하죠. 그건 제가 약하게 태어나서 그래요. 다른 사람보다 어디 하나 그렇게 좋은 데가 없어요. 아, 간이 좀 좋나?(웃음) 저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항상 잘 모아서 써야 해요. 모든 게 약점에서 시작된 거예요. 예능에서 아침에 운동하는 걸 딸 연두가 보고 전화했어요. “엄마, 사람들이 엄마가 맨날 저러는 줄 알잖아. 내가 엄마 술 먹고도 늦잠 자는 것도 많이 봤는데” 얘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촬영 팀이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늦잠을 자느냐. 사람들이 많이 있어. 얼른 촬영해야지. 엄마가 다음엔 꼭 술 먹고 늦잠 잔다고 얘기를 할까?” 했더니 됐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더라고요(웃음).
많이 안 보여주는데요. 아빠가 만든 영화는 아직 하나도 본 게 없거든요. 제가 나온 영화는 〈배심원들〉과 〈리틀 포레스트〉를 봤어요. 〈리틀 포레스트〉를 연두가 엄청 좋아해서 열 번 넘게 봤나 봐요. 극 중에서 제가 찬장을 열면 “어, 수제비다”하고 메뉴를 다 외우고 있어요.
평소에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요리도 해주나요
네. 오코노미야키도 해줬고요. 배추전은 할머니가 자주 해주고요. 아카시아 튀김을 한 번 해달라고 하는데, 그건 아직 못 해줬어요. 봄이 올 때마다 이야기해서 ‘엄마가 튀김이 자신이 없는데, 그리고 요즘은 먹을 수 있는 아카시아가 잘 안 팔아’ 이렇게 설득하고 있어요. 연두는 영화를 봐서 알아요. 영화처럼 엄마가 일찌감치 떠날 수 있다는 걸(웃음). 아마 씩씩하게 잘 자랄 거예요.
그래요? 아휴, 세지 마세요. 숫자는 아무 의미 없어요(웃음). 20대 때는 40대가 되면 삶에 더 여유가 생기고, 커피도 우아하게 마시고 그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할 일이 더 많아졌어요. 톱니바퀴가 안 맞아서 불꽃이 막 튀다가 이제야 점점 맞아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나이 들면서 ‘품위를 좀 지켜야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그 품위라는 게 일요일 오후에 여유로운 티타임 같은 건 아니고, 아주 바쁜 와중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지켜내는 그런 품위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는 어떤 결핍이 있었어요. 영화에 대해서도 연기에 대해서도 별로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나는 더 배워야 한다’ ‘아직 모르는 게 많다’며 스스로 채찍질했죠. 그 결핍이 오히려 삶의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여러 방면에서 배우고 익히려 애썼어요. 돌아보면 학교에서 한 공부는 진짜가 아니더라고요.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움직여야 진짜 나만의 공부가 시작돼요. 이런 공부야말로 인생을 알아가고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경지까지 연결되고요.
화이트 재킷과 팬츠는 모두 Max Mara. 슈즈는 Gianvito Rossi
왠지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천직을 찾았다고 확신했을 것 같아요
아뇨. 저는 그런 스토리의 주인공은 아니에요. 처음 이창동 감독님과 〈박하사탕〉을 함께 작업했을 때 ‘나 좀 하네’ 혹은 ‘이렇게 하면 되나 봐’라고 생각했다면 연기를 관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저는 대충 판단하고 싶지 않았어요. 영화가 뭔지 연기가 뭔지 알아보다 깨지더라도 제대로 승부를 보고 싶었죠.
〈박하사탕〉 〈오아시스〉 등 커리어를 시작하자마자 글로벌 영화제에서 주목했는데도요
그때는 엔터테인먼트 세계를 잘 몰랐어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지만, 휙 돌아서지 못하고 ‘끝장을 보자’ ‘그래서 안 되면 미련 없이 돌아서자’고 생각했죠. 한 작품 끝날 때마다 만약 연기를 안 하면 어떤 걸 할지 계속 고민했어요. 그런데 자꾸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송강호 선배와 연기하면 공부가 많이 될 것 같은데’ ‘이런 장르를 못 해봤는데’ 이러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앞으로 계속해서 연기할 생각이지만요.
여전히 만만치 않아요. 새로운 감독을 만나 새로운 작품에 참여하는 일은 언제나 바닥부터 시작하는 기분이 들어요. 연기는 제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해주는 일인 것 같아요. 대본을 받자마자 ‘아, 이거는 이렇게 하면 되겠다. 금방 답이 나오네’ 이랬다면 아마 금세 관두고 다른 일을 했을 텐데 아직까지 그런 적은 없어요. 이번엔 또 어떻게 할지 여전히 고민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을 고통스럽게 받아들이진 않아요. 긴장과 불안, 헤매는 시간이 모두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고요.
〈세자매〉에 함께 출연한 배우 김선영, 장윤주와 영화 반응에 대해 한참을 이야기하다 나중에 이런 말을 했어요. “그래, 이게 영화 하는 맛이지. 진심이 통하는 맛!” 어쩌면 엔터테인먼트 세계에선 진심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진심보다 출연자나 어떤 흐름이 더 중요할 수도 있고요. 그렇지만 진심이 통할 때만의 깊은 맛이 있거든요. 그게 참 좋은 것 같고요. 어릴 때부터 좋은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맛본 터라 좀처럼 끊기가 어려워요.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1982년 작 〈화니와 알렉산더〉를 다시 봤어요. 영화 첫 장면이 극장인데 극장 현판에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고 쓰여 있어요.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머리를 세게 맞은 기분인 거예요. 극장에서 재미를 추구하지 말라니! 그러니까 재미만 좇지 말라는 말이잖아요. 진짜 언 강에 도끼질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눈이 번쩍 뜨이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미세스 아메리카〉도 재미있게 봤어요. 이런 이야기를 드라마 시리즈물로 제작할 수 있는 풍토가 너무 너무 부러웠죠. 우리도 빨리 이런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쉽지는 않겠죠. 한국에 여성들의 이야기가 별로 없구나 싶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자매〉를 보고도 불편하다는 평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봤죠. 뭐가 불편했을까, 왜 불편했을까. 불편이라는 단어가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처럼 쓰이곤 하잖아요. 우리가 어떤 걸 편안해 하고, 불편해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한국에는 더 불편한 영화들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걸 엄청 접해온 관객이 불편함을 느꼈다니 놀랐어요. 〈세자매〉가 아니고 〈삼형제〉였다면 허벅지 좀 긁고, 술 먹고 소리 지르는 정도로 영화가 안 끝났을 텐데 말이죠. 중년 여성들에게 다양한 캐릭터를 부여하는 영화가 많지 않으니까 조금 낯설 수는 있어요. 그렇지만 ‘이게 왜 불편하지’ 생각하면서 보다 보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분명 올 거예요.
다양한 영화들이 등장해 편안함과 불편함의 경계를 지워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관객에게 ‘재미있었지! 안녕! 잘 가 !’하는 영화보다 재미도 있지만 자기 전에 또 생각나는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요. 저 역시 그런 작업을 더 많이 할 수 있길 바라요.
〈미치지 않고서야〉라는 드라마를 배우 정재영과 함께해요. 긴 시간 동안 배우로 일하면서 한 번도 함께 연기해 본 적이 없어요. 이제야 고백하지만, 로카르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도 남우주연상을 정재영 씨에게 줘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좋아하는 배우라 함께 연기하는 걸 굉장히 기대하고 있고, 재미있는 오피스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