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소설가가 된다는 것

단편 <티니안에서>로 갓 등단한 소설가 강보라가 말하는 쓰고 싶은 마음.

BYELLE2021.02.15
 

그 섬에서 

 
배경인 티니안 섬의 어떤 부분에 사로잡혔을까 사이판 옆에 자리한 이 섬을 매년 찾는 지인이 있다. 휴양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썰렁하고, 태평양전쟁 격전지로서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이곳을 2018년에 찾았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자 이곳이 떠오르더라. 이런 섬에 낯선 남녀가 모이면 발생하는 긴장감이 있지 않을까 싶어 우선 인물들을 흩뿌려 두고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친구인 두 한국 여성이 섬에 도착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원자폭탄의 이름이던 ‘팻맨’과 ‘리틀보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수작을 거는 남자들에 대한 어떤 경멸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등장하는 남자들이 다 비호감이다(웃음). 초고에는 여자애들이 강간에 준하는 일을 당하는 장면도 있었다. 쓰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고, 차라리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떨까 싶었다.
실제로 누군가와 ‘잘 것 같아’ 보였던 캐릭터가 아무 일 없이 돌아오는 장면에서 오는 전복이 있다 섹스신을 아무렇지 않게 넣어보고 싶기도 했으나 내게 그런 욕망이 별로 남아있지 않더라. 흔히 말하는, 등장인물이 알아서 움직인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과 일본의 전쟁 사이에서 이용당했지만 그 사실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섬. 과거 상처의 잔재마저 차별당하는 이 배경이 가진 힘이 내가 말하고 싶었던 과거 상처들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은 순간이 찾아왔다. 물론 그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신춘문예 원고 마감일 전날 밤까지 고쳤을 정도니까.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됐다. 수상 소감 기사의 제목이 ‘어린 여성의 성욕, 페미니즘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 대해 쓴 소설’이던데 학창시절에 ‘쟤 노브라래’ ‘남자친구랑 어디까지 갔대’ 같은 자잘한 소문에 시달린 기억이 있다. 어린 여자애였기에 부당하게 겪는 루머들. 마흔 살이 된 지금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런 시선들이 지금 나의 성적 관념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싶긴 하다. 그래서 저 기사 타이틀이 부담스러웠을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았다.
학창시절의 우정과 긴장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얼마 전 어머니의 이사를 돕다가 중학교 때 쓴 교환 일기장들을 찾았는데, 실제로 그런 갈등과 싸움의 흔적이 있더라. 이런 작은 기억과 상처들이 항상 남아 있는 기분이 있었고, 창작하는 사람으로서 ‘필터’를 거쳐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실제로 소설을 쓰고 난 뒤 내가 나아진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진은영의 시 ‘물속에서’처럼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았지만 뭔가가 나를 통과해 간 느낌이랄까.
오랜 시간 잡지 에디터로 일했고, 지금도 프리랜서로 기자 생활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에세이의 시대인 지금 왜 소설을 쓰고 싶었는지 잡지사에 다니며 출근길에 소설을 읽던 시간을 거치며 ‘소설’이라는 틀과 형식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적합하다는 확신이 생겼다. 마치 전구가 ‘탁’ 켜진 것처럼.
역시 에디터인 남편은 일 년 앞선 지난해에 등단했다. 서로를 유일한 독자이자 최고의 편집자라 칭하던데 농담처럼 ‘내 덕인 줄 알아’라고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키운 것은 사실이다. 사이좋은 문학애호가 부부처럼 보이지만 사실 초고를 보여주고 합평할 때는 많이 싸운다. 지난해 남편의 시상식에 함께 갔을 때 현역 작가들에게 직접 글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나도 은희경, 김금희 심사위원들과 뒤풀이를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런 소소한 아쉬움은 있다(웃음).
그리하여 소설가가 된 기분은 내가 서 있는 곳은 그대로인데 바닥이 관람차 유리처럼 투명하게 바뀐 느낌이다. 현실은 여전히 프리랜스 기자가 생업이다. 당선 소식도 아르바이트로 약 50개 개의 상품 소개 글을  쓰던 중에 들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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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 이마루
  • 포토그래퍼 김상곤
  • 디자인 이효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