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르>가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여성 2 || 엘르코리아 (ELLE KOREA)
SOCIETY

<엘르>가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여성 2

<엘르>가 짚어본 올해의 빛나는 여성들.

ELLE BY ELLE 2020.12.15
 
 최지원, 세 사람의 대화, 2019.

최지원, 세 사람의 대화, 2019.

젊은 회화의 물결

최지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작가였다. 전시장으로 들어가자 불투명한 흰색 눈물 줄기가 쏟아져나오는 여인의 옆얼굴, 핑크 풍선과 기념촬영을 하는 듯한 두 여자 등 아리송한 서사의 화면이 펼쳐졌다. 도자기 인형 같은 여자들은 어떤 존재이며, 얼굴 부분은 붓 터치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맨질하고 나머지 부분은 슥슥 대범하게 표현한 대비는 의도적인지, 갖가지 호기심이 일었다. 갤러리 관계자에 따르면 20대 중반인 최지원 작가가 ‘아름답고 찬란한 이미지로 각인된 채 익명의 관계망에서 고립된 일상을 영위하는’ 오늘날의 청춘, 동시대의 정서를 회화로 기록한다는 설명이었다. 이후 회화 작업을 하는 밀레니얼 세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속속 눈에 들어왔다. 만취 상태의 여성을 그린 그림으로 통쾌한 미감을 선사하는 이은새, 강렬한 컬러의 색과 면으로 회화의 운동성과 경계를 탐구하는 배혜윰, ‘디지털 이미지의 가벼움과 그것이 지닌 공허함에 대한 멜랑콜리적 감수성’을 담는 정희민….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활용한 휘황한 작품 속에서 인간의 손에서 탄생하는 회화의 가치를 대변하는 젊은 작가들의 실험이 계속되길 바라고 응원한다.
프리랜스 에디터 안동선 

 

올해의 발견, 윤단비 감독

윤단비 감독의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코로나19로 극장에 관객이 끊기다시피 한 상황에서 개봉했고, 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지를 알게 한 수작이었다. 아이맥스, 3D, 4D를 비롯해 극장이 테마파크의 ‘라이드’ 같기를 요구받는 시대에 불 꺼진 적막한 극장에서 과거로 타임슬립하는 경험은 화려하기보다 은근하다. 90년대생 감독이 만든, 옛 대만영화를 추억하게 하는 이 영화는 사회 전반에 불고 있는 뉴트로 열풍과도 닮은 데가 있다. 과거의 이미지와 정서를 환기하되 과거의 가치를 되살리거나 섣불리 그리워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사는 낡은 양옥집이라는 시간적 공간은 ‘유년기의 추억’이 사는 곳이다. 손때 묻은 공간, 낡은 물건들이 있는 조부모의 집 말이다. 특정한 시대에 대한 복고가 아니라 우리 관념 속에 있는 ‘어릴 적 그 집’을 재현해 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남매의 여름밤〉은 2020년 이야기다. 어릴 적 자신을 새롭게 감각하게 하는 윤단비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해진다. 작가, 〈씨네 21〉 기자 이다혜 


새로운 이야기, 강화길  

‘아는 것은 힘’이라는데, 여자들끼리 아는 것은 힘도 권력도 되지 않는다. 큰일 하는 남자 식구들에게는 가능한 한 알리지 않는 집안 중대사는 여자들 어깨 위에 내려앉고 마음에 영영 가라앉는 짐이 된다. 아들에게 너그럽고 딸에게 모질게 구는 가족애의 세계를 〈화이트 호스〉에 수록된 〈음복〉은 절묘하게 포착해 낸다. 그 자리에 머무는 결정을 하는 여자의 마음을 그려내는 데 소설가 강화길은 실패하는 법이 없다. 여성에 대한 폭력 이슈에 대응하는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작품으로 흐르는 관심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이야기들이 가진 힘을 시류에 기댄 덕으로 평가절하할 위험성이 있다. 〈오물자의 출현〉은 코미디와 고딕 장르를 능숙하게 다루는 강화길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고, 〈서우〉는 그의 여전한 장기인 공포-스릴러 장르에 빠질 수 있는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2020년의 강화길이 〈화이트 호스〉 속 단편으로 보여준 한국 여자들의 분열적 초상은 훗날 더 높이 평가될 것이다. 작가, 〈씨네 21〉 기자 이다혜 


용기의 증거, 환불원정대

엄정화, 이효리, 제시, 화사. 네 명의 이름만으로도 시원한 마음에 박수 친 여성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만옥, 천옥, 은비, 실비가 되자 신나는 일이 생겨버렸다. 대체 ‘센 언니’가 무엇이길래 그동안 우리는 이들의 속내를 알지도 못하면서 진한 메이크업이 잘 어울린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오해를 했던가. 환불원정대를 결성한 네 여성 연예인이 각자가 지닌 커리어를 바탕으로 자신감 있는 워킹과 스타일을 보여주고, 젊은 여성은 그런 ‘언니’들의 모습을 보며 환호했다. ‘센 언니’ 하면 떠오르는 ‘신경질적인’ ‘화 잘 내는’ 등의 편견 어린 형용사는 이제 던져버려도 좋다. 친구와의 우정을 이야기하며 우는 엄정화 앞에서, 언니들에게 적은 다 무찔러주겠다는 제시 앞에서 우리는 따뜻하고, 든든했고, 뭐든 해도 될 것 같은 용기를 얻었다. ‘Don’t touch me’의 음악적 완성도는 다소 아쉽지만 ‘나도 평화를 원해’라는 한 줄의 효용은 분명하다. 망설임을 용기로 바꿔주는 마법의 한마디라는 점 말이다. 대중문화 저널리스트 박희아 


언니의 플렉스, 박세리

대한민국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스포츠 스타 박세리가 예능 대세로 돌아왔다. 13억 원짜리 요트 앞에서도 “안 될 건 없지”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리치 언니’. 〈나 혼자 산다〉에서 플렉스가 뭔지 제대로 보여준 박세리는 시청자들의 호응 속에 〈노는언니〉에 출연 중이고, 독자적인 웹 예능 〈쎄리박〉까지 시작했다. 누구도 깎아내리거나 부정할 수 없는 명예와 부, 권위를 지닌 인물인 그는 카메라 앞에서도 지극히 여유롭고 자연스럽다. 본인의 취향대로 설계하고 꾸민 저택에서 부족함 없이 독립적인 중년의 삶을 즐기는 모습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많은 여성에게 대리만족을 전한다. 후배 운동선수들과 함께 출연하는 〈노는언니〉에서도 넉넉한 품을 지닌 박세리는 프로그램의 중심 역할을 한다. 다이어트 대신 근력운동을 하고 싶게 만드는 단단한 근육과 힘을 지닌 여성들이 어떤 일이든 합심하여 척척 해내는 장면들. 나무처럼 서서 “괜찮아” “잘했어”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 주는 ‘큰언니’의 존재감이 더없이 반갑다.  피처 에디터 김아름 


올해의 목소리, 장혜영  

“지금의 정의는 불평등과 기후위기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반짝 불이 켜지는 듯했다. 9월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던진 말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세상은 더 혼란하고 어지러워졌다. 차별과 혐오가 자행되고, 논점 없는 불공정 시비는 분열을 낳았으며, ‘N번방’ 사건은 충격과 절망 그 자체였다. 그 속에서 희망이 된 것은 연대하고 분투하는 여성들이다. 그중에는 새내기 정치인 장혜영도 있다. 여러 사회 문제의 본질을 ‘불평등’이라고 본 그는 지난 6월 여성·장애인·외국인·비정규직·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엘르〉 8월호에 관련 인터뷰가 수록됐다). 원피스 출근 룩으로 국회의 권위주의를 깨뜨린 류호정 의원, ‘그린뉴딜 기본법’을 발의한 민주당 이소영 의원 등 젊은 여성 초선 의원들의 ‘뭔가 다른’ 행보는 새로운 기대를 품게 한다. 미국의 첫 여성 부통령이 된 카멀라 해리스를 보며 누군가는 우리에게도 저런 여성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읊조리던 그 순간, 이미 머릿속에 몇몇 이름이 떠올랐던 건 나뿐 아닐 것이다. 내게는 먼 나라의 우상보다 지금 여기서 나와 우리를 대변해 싸우는 이름들이 더 애틋하다. 피처 에디터 김아름 


최고의 캐릭터, 안은영

올해 9월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의 주인공 안은영. ‘젤리’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 안은영은 가히 전 세계 영화시장에 내놓아도 꿇릴 게 없는 개성 만점 히어로다. 플라스틱 마법봉과 비비탄 총을 이토록 박력 있게 휘두르는 히어로를 본 적 있는가.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 씨발.” 운명에 ‘맞서는’ 게 아니라 ‘당하는’ 안은영은 ‘씨발’이라는 추임새로 자신의 박복한 팔자를 한탄하면서도 끝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히어로다. 그런 점에서 능력이 콤플렉스이기도 한 ‘엑스맨’들과 멀고 먼 핏줄로 엮일 수도 있겠는데, 다른 건 몰라도 괴이함과 유머에서는 안은영이 단연 한 수 위다.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의 소설에서 잉태되고 이경미 감독의 취향에서 재조립된 인물이지만, 그것을 잠시 잊을 만큼 정유미 특유의 아우라와 전형적이지 않은 개성이 캐릭터에 절대적 지분으로 작동하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런 안은영을 연기한 정유미가 지난해 ‘가장 보통의 존재’인 김지영 씨였다는 사실. 접점이라곤 1도 찾기 힘든 안은영과 김지영 사이에 정유미가 이물감 없이 앉아 있다. 영화 칼럼니스트 정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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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에디터 김아름
    사진 @ThisWeekendRoom / 정우리 / 박현구 / 맹민화
    / GETTYIMAGES KOREA
    courtesy of mbc / jtbc
    디자인 이유미
    기사등록 온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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