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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호뎐>의 미워할 수 없는 빌런 김범

김범은 지금이 시작이다.

BYELLE2020.12.02
 
블랙 레더 트렌치코트는 Juun. J. 블랙 레더 셔츠와 팬츠는 모두 H&M.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첼시 부츠는 Ermenegildo Zegna X FOG. 동물의 발을 형상화한 벤치는 Studio 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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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벨벳 후디드 티셔츠는 Saint Laurent by Mue. 블랙 벨벳 팬츠는 Giorgio Armani. 보틀 오프너 실버 네크리스는 Celine Men. 스툴은 Studio H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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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블루 2분의 1 풀오버 터틀넥은 Ports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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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더분한 느낌의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구미호뎐〉의 이랑과 상반된 분위기다. 카메라 뒤의 평소 모습인가 머리를 감고 바로 와서 그렇다. 보통 이렇게 다닌다. 뭔가 바르거나 만지는 걸 못한다. 그래도 이랑 머리는 금방 할 수 있다. 둔갑에 능하니까(웃음). 
 
중국 활동과 소집 해제 후 4년 만의 복귀작인 〈구미호뎐〉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차기작 〈로스쿨〉로 넘어가는 마음이 한결 편하겠다 〈구미호뎐〉을 많은 분이 좋아해주셔서 다행이다. 6개월 넘게 촬영하며 고생도 많이 한 작품이지만 재미있게 나와서 기분 좋다. 맡은 역할이 좋았다. 30대가 되고 처음 참여한 작품이라 남다르게 다가온 면도 있다. 〈구미호뎐〉을 하는 동안 자주 설레었다. 잘하고 싶었고. 
 
〈구미호뎐〉의 대본이 매우 구체적이었다고. 세밀하게 이해하고 연기하길 좋아하는 배우로서 반색했겠다 비현실적 판타지 드라마임에도 어느 한 부분도 의구심이 생기지 않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짜인 대본이었다. 대본만 보면 머릿속으로 그림을 다 그릴 수 있었다. 
 
데뷔작 〈거침없이 하이킥〉 때 서너 줄의 설명이 전부인 캐릭터 ‘김범’을 A4 2장 분량으로 상세하게 분석해 자신의 몫을 만들어낸 일화는 유명하다. 캐릭터의 모든 면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질 때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당신에게 어떤 차이를 만드나 난 이해가 안 되면 표현할 수 없다. 겉모습과 내면의 인상, 가치관 등 그 사람이 총체적으로 그려져야 한다. 한 부분이라도 이해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자신감이 생기지 않거든. 그래서 프리프로덕션 단계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 기간을 오래 둔다. 어떤 시간이 쌓여야 스스로 안정된다. 
 
이랑이라는 캐릭터를 받은 뒤 소화하는 과정에서 구체화시킨 본인만의 아이디어가 있다면 제작발표회에서는 너무 분위기가 무거워질 것 같아 말하지 않았는데, 이랑을 생각하면 ‘타나토스’가 떠올랐다. 타나토스는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반대되는 파괴의 본능이다. 〈어벤저스〉 시리즈의 ‘타노스’가 타나토스에서 따온 이름일 거다. 이랑에게는 그런 공격적인 파괴 본능에서 비롯되는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으로부터 버림받았기에 모든 걸 파괴하고 싶은 감정이 깊이 자리한 인물인 것이다. 
 
뭐든 자세히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은 배우 커리어에 많은 도움을 주겠다 맞다. 나는 내 성격을 좋아한다. 스스로 좀 피곤하게 만들긴 하지만, 이러지 않았다면 나태하고 게으른 사람이 됐을 거다. 성격 덕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 축구를 굉장히 좋아했지만 0:10으로 대패하고 난 뒤 접었다는 일화가 있더라.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여기에도 보인다 내가 노력하는 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했다. 어릴 때부터 타고난 것처럼 보이는 걸 좋아했다. 해가 져서 공이 안 보일 때까지 축구 연습을 했는데, 꼭 다른 학교 운동장에서 했다. 우리 학교 애들이 볼까 봐. 
 
이랑은 보여줄 게 많았던 캐릭터다. 액션도 많고 감정선도 깊고 넓은, 다이내믹한 인물이다. 연기하는 내내 표현에 대한 갈증은 없었겠다 그런데 멜로가 없었지. 그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웃음). 하지만 멜로 라인이 없어서 더 자유로웠던 것 같다. 덕분에 한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내 감정선을 꾸준히 펼치며 연기할 수 있었다. 이런 관계성을 지닌 인물을 오랜만에 만났다.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새롭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랑의 외양과 스타일은 무수한 회의와 테스트를 거쳐 완성했다고. 캐릭터의 비주얼에 특별히 공들인 이유가 있다면 시각적으로 보이는 게 많은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베스트를 찾기 위해 스타일링과 헤어, 메이크업 팀의 디자이너들과 수차례 테스트를 거쳤다. 지금 내 SNS와 포털 사이트의 프로필 사진은 모두 이랑 역을 위한 비주얼 테스트 컷이다. 열 가지 정도의 헤어스타일 중에 고른 것이 이랑의 헤어스타일이다. 
 
이랑은 빌런이다. 하지만 미워할 수 없다. 이 캐릭터를 사람들이 어떻게 봤으면 했나 미워할 수 없는 빌런이라고 생각했다면 성공한 거다. 딱 그걸 원했거든. 미워할 수 없는, 불쌍한, 도와주고 싶은, 악역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악역. 
 
편애하는 영화 혹은 드라마 속의 빌런이 있다면 너무 많다. 아마 대부분의 배우들은 악역이라는 캐릭터에 강하게 끌릴 거다. 나는 그렇다. 악역은 늘 표현하고 싶은 욕구에 불을 지피는 면이 있다. 대개 영웅물을 보면 빌런의 감정 폭이 주인공인 히어로보다 더 크지 않나. 그래서 도전하고 싶은 것 같다.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마음과 비슷한 면도 있고. 
 
〈구미호뎐〉의 본인 분량 촬영을 마치고 SNS에 소회를 밝히며 이랑을 ‘외로운 사람’이라 표현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친숙한 편인지 그런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둔감한 것 같다. 가끔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2006년에 데뷔해 벌써 15년째 연기를 하고 있다. 이제는 뭘 하고 싶고,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지난 15년이 길게 느껴진다. 그동안 이 직업이 나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딜레마에 빠진 지 오래됐다. 그러다 〈구미호뎐〉에 합류해 오랜만에 일했고, 그토록 오랜만에 한 일에 다시 무한한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있다. 요즘 정말 좋다. 
 
자신이 배우라는 직업에 맞지 않다고 느낀 이유는 이 일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온전한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만족스럽고 행복한 시절도 많았지만, 힘든 시기도 길었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계속하면 지금보다 잘할 수 있을지. 모든 면에서 스스로를 의심했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꽃보다 남자〉로 데뷔 초부터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연기 스펙트럼을 착실히 넓혀왔다. 당신을 괴롭힌 건 무엇이었나 20대 초반에 정신없이 일했다. 그때 나는 인생 전체의 계획을 세우지 않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너무 좋은 시간을 앞만 보고 달린 것 같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공허했다. 오랫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막 털고 일어난 상태다. 좀 걸어볼까? 달려볼까? 하면서. 이 세계는 무척 경쟁이 치열하다. 모두의 평가로 둘러싸인 세계다. 한때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평가도 받지 않고, 경쟁도 하지 않으면서 지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 내디딘 한 걸음이 나에게는 무척 의미 있다. 
 
그럼에도 지난 15년 동안 얻은 게 있다면 외로움을 의연하게 여기는 마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여유를 갖는 마음. 힘든 시간을 보내는 방법. 많은 것을 배웠다. 
 
힘든 시간을 잘 보내는 방법을 공유해 준다면 요즘 뇌과학과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처음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려고 시작했는데 책을 몇 권 보다 보니 재미있더라. 공부해서 주변의 불안정하거나 힘든 사람을 도와주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누구에게 무슨 조언을 하겠나. 아주 기본적인 것 하나는 누구라도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김범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없다. 스트레스를 내 업보라고 생각한다. 
 
요즘 빠져 있는 일  다음 작품 〈로스쿨〉과 법 공부. 대사 중 ‘형법 몇 조, 몇 항’이라는 문구만 나오면 법전에서 그 조항을 찾아 읽는다. 조항의 전체적인 내용을 모른 채 입으로만 말하는 건 못하겠다. 이해가 안 되면 못 넘어가는 성격이다. 피곤하지. 그런데 이런 성격이 내 마음의 위로가 된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촬영장에 있을 거다. 다른 분에겐 죄송하지만…. 연말까지 쉬는 날이 없었으면 좋겠다(웃음).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해 만일 쉬는 날이 생겨도 집에서 보낼 거다. 원래 혼자 하는 여행을 무척 즐겼다.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도 힘들어하지 않는 편이라 10시간씩 비행해도 괜찮았다. 편도로 티켓 끊고 딱히 계획한 일정 없이 한 달씩 머무르다 돌아온 때도 많았다. 돌아와서 3일 있다가 다시 여행 짐을 꾸리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지 요원하지만. 
 
2021년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나에게 엄격한 편이라 그런 걸 생각해 본 적 없다. 나를 좀 더 잘 대해주고 싶은 순간이 오면 그때 고민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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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싱글 코트와 화이트 셔츠는 모두 Prada. 블랙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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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 레더 재킷과 화이트 티셔츠, 로퍼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블랙 체인 디테일의 와이드 팬츠는 Yohji Yamamoto by Boonthe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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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사진 김영준
  • 에디터 이경진
  • 스타일리스트 김영진
  • 헤어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은혜
  • 디자인 정혜림
  • 기사등록 온세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