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뭐하고 놀긴. 요즘처럼 바쁜 때 밤에 논다는게 가당키나 하니.” 다음날 출근 걱정에 밤샘 노는 것도 옛말이라는 한 대학 선배의 말처럼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는 이제 불가능한 일일까.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기’라는 국어 사전의 의미처럼 논다는 건 일하는게 아니다. 잘해야 되는 사명감에 불타오를 필요도, 실수는 절대 용납이 안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힐 필요도 없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을, 현재를 즐기면 그뿐이다. 하룻밤 유흥에 자신의 모든 걸 쏟아 붓는 열정적인 사람도 있고 카페에서 음악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고 클럽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태어난 장소와 시각이 각기 다르듯 저마다 노는 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연말연시 흘러가는 이 밤이 안타까워 밤새 노는 자들은 대체 뭘 하면서 노는 걸까.
방구석에서 열심히 놀기
거창하게 노는 것만 노는 건가. 집 근처 카페만 가도 밤 열두 시가 넘은 으슥한 시간에도 삼삼오오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고 가끔 찌뿌드드한 몸을 풀러 들린 찜질방만 가도 하릴없이 새벽에 TV 화면만 넋 나간 듯 쳐다보는 사람들 태반이다. 그러니 방구석에 둥글게 몸을 말고 혼자 시간을 때우는 것도 얼마든지 노는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다. 홍대에서 타투 숍을 운영하는 안건은 “노는 건 어떻게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거다. 난 왜 밤새 클럽에 가서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술을 마시는지 모르겠다.” 되도록 야밤에 나가 노는 문화를 지양하는 편이라고 증언하는 그처럼 밤의 영원한 동반자 술에 대해 강한 거부 반응을 보이는 자들은 대체로 집에서 논다. “한창 마실 땐 석 달 내내 일 끝나고 술만 마신 적도 있다. 지금은 술 마시면서 밤새워 노는 것보다 음악을 듣고 곡을 쓰면서 노는 때가 많다.”(DJ 샤인, 라운지 바 ‘El Bliss’ 운영자) 술로 시작해 술로 밤을 지새우는 문화가 지겨워 혼자서 놀게 된 케이스. 그럼 술 안 마시는 대신 도대체 뭘 하고 노느냐고. “집에 잠자코 앉아 좋아하는 바이오헤저드(Biohazard) 노래나 들으며 하릴없이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편이 더 즐겁다. 그것도 아니면 ‘애마’를 끌고 올림픽 대로를 질주하지. 스피드를 즐기기엔 밤만한 시간이 없다.”(안건, ‘서울타투’ 운영자) 술이 싫어 외로운 은둔자의 길을 선택한 사례는 주변만 둘러봐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술을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안 그래도 피폐해진 내 육체가 저 먼 달나라로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는 은행원 곽수정 역시 혼자 집에서 논다. 혼자 놀기의 고수인 그녀에 의하면 혼자 노는 법에도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상사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듣고 자신감이 바닥을 기고 있을 땐 다시 기분을 업시키기 위해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미친 듯이 웃다 보면 어느새 영화가 끝나 있다는 코미디영화 리스트를 쭉 뽑아 릴레이로 틀어본다. 밤새 엔도르핀을 마구 분출하다 보면 다음날 아침 상쾌한 기분으로 출근할 수 있다. 그저 기분이 울적할 때는 향이 나는 캔들에 불을 붙이고 레드 와인을 따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 직업상 놀이와 문화가 일체가 된 경우도 있다. 집중력이 강해지는 밤에 작업을 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직업을 가진 경우가 태반이다. “주로 집에서 논다. 책을 읽거나 낙서를 하면서 시간을 때운다.”(부창조, 일러스트레이터) “밤새 만화를 그린다.”(이우일, 일러스트레이터) 누가 아티스트들 아니랄까 봐. 하나같이 놀아도 철저히 직업의식을 반영해서 논다.
그래도 둘이 낫더라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다. 밤새 방구석에 콕 처박혀 자발적으로 혼자 노는 타입도 있지만 ‘그래도 둘’을 강력하게 외치며 무리를 지어 몰려 다니는 케이스도 있다. 자고로 놀이엔 가무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클럽 마니아의 증언이다. “워낙 밴드 공연 보는 걸 좋아해서 일 끝나는 밤엔 강남 역에서 홍대로 넘어와 클럽에 가는 때가 많다. 친구와 라운지 바에서 가벼운 칵테일 한 잔으로 목을 축인 후 근처 라이브 클럽이나 뮤직 바로 자리를 옮긴다. 밤새도록 음악에 취해 미친 듯 춤을 추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지.” 병원 PR을 하는 남경미처럼 음악을 ‘매개’로 밤의 활발한 문화를 즐기는 파도 꽤 된다. “친구들과 음악 좀 잘 트는 DJ가 있는 클럽에 가는 걸 즐긴다. 파트너를 만나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고.”(최종운, 커뮤니케이션 디자이너) 음주가무에 외로움까지 동시에 채우는 케이스다. 음악과 함께하는 곳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놀아야 하는 이들에겐 정해진 코스가 있다. “다이닝 레스토랑, 클럽, 나이트, 바 순으로 옮겨 다닐 때가 많다. 일단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든든하게 속을 채운 다음 클럽에 간다. 그 다음엔 다른 스타일의 클럽이나 나이트로 장소를 옮긴다. 특별한 만남을 기대하면서. 만남이 성사되면 그 다음 코스는 당연히 작업하기에 좋은 분위기의 바(Bar).” (정두선, 대기업 재무팀) 외로운 솔로 족들에게 밤은 만남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 밤 시간마저 놀이라는 이름으로 야무지게 활용하는 스마트한 올빼미족도 있다. 주로 밤에 쇼핑을 하는 이들은 밤이 돼야 문전성시를 이루는 동대문에서 논다. “비슷비슷한 규모의 초등학교 앞 문구점들이 경쟁하는 것처럼 동대문에도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잖아. 집집마다 주력하는 메뉴도 다르고 맛도 달라 야식 먹는 재미에 동대문에 온다. 쇼핑 전 워밍업이지.”(김지선, 대학원생) “일단 첫 번째 코스로 일주일에 한 번씩 24시간 내내 영화를 상영하는 동대문 멀티플렉스 MMC에서 영화를 본다. 그 다음엔 맥주를 사서 청계천으로 이동한다. 친구와 하릴없이 앉아 얘기하다 보면 어느 새 새벽 두시. 동대문으로 넘어와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하는 거지.”(강보라, 교사) 매번 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술을 마시러 몇 차례나 장소를 옮겨 다니는 게 귀찮다면 아예 옮길 필요가 없는 레지던스 호텔을 잡아 논다. 스케일 큰 그녀들의 재택 놀이는 릴랙스 함이 관건. “우린 주로 금요일 밤 레지던스 호텔에 방을 잡아서 논다. 신경 써서 치장할 필요도 없고 집에서 노는 것처럼 편하게 놀 수 있으니까. 매번 먹고 싶은 요리를 정해 해먹기도 하면서.”(임지영, 기자)
오, 마이 플레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특별한 밤을 보내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밤, 몇 차례의 클럽 순방, 지적 능력과 감각적인 상상력을 확장시켜 줄 엔터테인먼트 탐독 등 저마다 소소한 방식으로 짧지만 긴 밤을 보내고 있었다. 아래는 본능에 충실한 사람들이 들려준 내용을 정리한 것.
1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밤 술에 집중하면서 노는 경우엔 아예 매번 술자리를 시작할 때마다 그날의 코스부터 정하고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들이 포장마차, 클럽, 나이트, 바 순으로 옮겨 다니며 술자리의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것도 아니면 오직 술집, 술집, 술집, 술집! 어쨌든 든든히 배부터 채우고 본격적인 밤 맞이를 준비하는 건 공통적인 행위. 클럽이나 나이트에서 술을 마시는 경우 음주에 가무까지 동반되지만 주로 술만 마시는 경우에는 자리를 옮겨다니며 말 그대로 ‘찐하게’ 회포를 푼다. 그 와중에 술자리에서 함께한 그 또는 그녀와의 특별한 인연을 기대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잊지 않는다. 가볍게 칵테일이나 와인을 마시며 우아하게 밤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맥주와 소주를 번갈아 마시는 주당들도 있다.
2 술과 음악이 함께 하는 밤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클러버(Clubber)라면 일단 홍대로 발걸음을 떼는 게 좋다. 플레잉 되는 음악의 장르에 따라 마음껏 클럽을 골라 잡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홍대 클럽은 주로 힙합 음악을 틀어주는 ‘NB2’와 ‘코쿤’,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을 많이 틀어주는 ‘M2’다. 앉을 자리 없는 클럽에서 놀기에 지친다면 이태원으로 자리를 옮겨도 좋다. 클럽만큼 떠오르는 라운지 바가 이태원의 밤을 밝힌다. 라운지 바는 클럽과 비슷하지만 식사를 위한 자리를 보유하고 있어서 춤도 추고 밥도 먹을 수 있는 여러모로 유용한 장소. 요즘 분위기 좋기로 소문난 건 라운지 바 ‘B1(B ONE)’. 이색적인 공간에서 즐기고 싶다면 근처 게이바 ‘펄스’나 신사동의 ‘오퍼스’를 방문해도 좋다. 특히 오퍼스는 매일 밤 다양한 컨셉트의 쇼가 진행되는 것으로 유명한데 트랜스젠더, 러시아 무희들의 화려한 춤 사위를 감상할 수 있다.
3 쇼핑과 군것질 거리가 함께 하는 밤 밤과 쇼핑하면 연상되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동대문이다. 밤새도록 쇼핑하면서 놀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준비해야할 필수품은 편한 트레이닝 복과 러닝화. 짧으면 2~3시간, 길면 5시간까지는 잡아야 쇼핑 좀 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동대문을 정복하려면 미리 이 정도는 준비해야 된다. 거대 쇼핑몰이 밀집한 동대문 쇼핑센터에서는 어떤 곳을 먼저 들어갈지 미리 생각해 두는 편이 좋다. 구획 정리가 잘돼 있는 두타는 주로 직장 여성들이 선호하는 아이템이 많고 헬로 에이피엠이나 밀레오레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 전문 쇼퍼들의 충고. 동대문에는 이름난 맛집으로 일대가 가득해 쇼핑 전후에 간단히 배를 채울 수 있다. 붕어빵 모양의 이색 수제 토스트가 시그너처인 ‘해피 소뿡이’와 맛있는 짜장을 단돈 2000원에 맛볼 수 있는 수제 짜장집 ‘옛날 짜장’이 추천 맛집.
4 파자마와 수제 요리와 함께 하는 밤 요즘 같은 연말연시엔 레지던스 호텔만큼 활기찬 곳이 없다. 편안한 마음과 파자마 차림으로 놀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레지던스 호텔은 주로 셋 이상의 여자 친구들 그룹에게 사랑받는다. 일반 아파트처럼 모든 게 세팅돼 있으니 특별히 준비할 것이 없다. 미리 요리할 준비만 해가면 어떤 요리도 직접 해먹을 수 있고 놀다 지치면 그대로 잠들어도 되니 술 마시다 집에 갈 걱정에 막막해 하지 않아도 된다. 밤새 술을 먹고 놀아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불러도 그것도 성에 안 차면 옷을 다 벗고(!) 누드 쇼를 벌여도 눈치 볼 사람이 없으니 특히 오래된 친구들이 즐겨 찾는 장소.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나 바비엥스위트 같은 레지던스 호텔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12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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