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과제용 리서치를 하고 있는 듯한 어느 여성이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남자들은 퍼(Fur) 코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퍼 패션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죠? 남성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하니, 댓글을 남겨주세요!” 지극히 평범하고 통념적인 사고 수준의 남성들이 실시간으로 댓글을 달았다. “가지고 있지도 않고 갖고 싶지도 않아요. 코스튬 파티에도 안 입고 갈 거고, 그렇다고 다른 남자가 입은 걸 보고 비웃지는 않겠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여자 옷 입기를 좋아한다거나 부를 과시하는 듯이 보인다는 거죠.” “치렁치렁한 퍼 코트를 입은 흑인 남자는 한때 내 인생에서 하나의 ‘세계’와도 같았어요. 형제 중 두 명이 디트로이트에서 마약상이었답니다. 뒷골목의 불법 판매상은 전부 퍼 코트를 입고 있었죠. 성공한 길거리 인생의 상징이었거든요. 사실 흑인 사이에 퍼 코트를 유행시킨 건 전부 포주와 마약 판매상들이라고요!”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위해서 최초로 코트를 만드셨다죠. 분명 그건 동물의 털을 벗겨 만든 퍼 코트였을 겁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우리 죄를 씻기 위해 희생하셨지, 우리를 전통에 묶어두진 않으셨습니다.” 잠깐 사이의 실시간 댓글로 마녀사냥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작은 해프닝의 이슈는 바로 퍼 코트. 명동 한복판에서 화형식이라도 치러야 사그질 듯한 분노의 댓글들은 퍼 코트가 남성 옷장에서 퇴치해야 할 기생충, 멸종시켜야 할 바이러스와도 같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국의 극작가 세이무어 힉스도 남자가 여자에게 퍼를 사주는 이유는 그녀를 따뜻하게 하기보다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여성에게는 풍요로움과 우아함의 상징이자 로망인 퍼가 남성 패션에서 터부시되는 것은 전 세계의 공통이다. 왜 안 되냐고 묻는다면, 그런 당신은 왜 퍼를 입으려 하냐고 되묻겠다. 대답은 삼지선답형. ‘보기 1: 사치스러울 정도의 화려함 때문에. 보기 2: 돈과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서. 보기 3: 그냥 좋다.’ 어떤 선택도 한심하지만 보기 3번이 가장 위험한 선택이다. 그건 마치 복장도착증을 공개하는 것과 동일한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킬 테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성 패션의 기본이 되는 암묵적인 룰은 절제의 미학에 있다. 점잖고 간결한 취향, 간접적인 표현 방식에서 오는 우아함과 엄격한 실용성,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적절함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 바지 아래로 살짝 보이는 양말의 패턴과 재킷 사이로 보이는 벨트의 경쾌한 컬러, 라펠에 꽂힌 작은 부토니에로 그 남자의 패션 감각을 점쳐보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상대방을 압도하고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퍼는 그래서 남성답지 못하고 비도덕적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없다. 아직도 패션의 자유를 부르짖는 소수가 원한다면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물어봐도 좋다. 다음은 남성용 롱 스웨터에 앙증맞은 라쿤 꼬리를 달아놓은 톰 브라운의 대답이다. “퍼를 아주 많이 사용하진 않죠. 글쎄, 컬렉션의 전체적인 컨셉트를 잡을 때 참고하는 정도?” 당신의 조급해진 마음이 느껴진다. 특별히 컬렉션에 가죽과 퍼를 많이 사용하는 토드 린에게 물어보겠다. “남자가 전체가 퍼로 된 옷을 입기란 쉽지 않죠. 저도 컬렉션을 위해 퍼를 사용하는 건 좋아하지만, 실제로 입으면 포주나 리버라치(1950~60년대를 풍미한 미국의 엔터테이너이자 피아니스트. 화려한 의상의 TV쇼로 유명하다)처럼 보이기 십상이거든요. 사실 남자들이 열망할 만한 건 아니죠.” 결론은 간단명료하다. 그리고 달라진 것도 없다. 드라마틱한 퍼 코트는 어느 실력 있는 힙합 가수가 입은들 너그러이 평가받은 적이 없었으며, 여전히 뒷골목 마약상과 고약한 포주들이 선호하는 그들만의 유니폼이자 록 스타들의 퇴폐미를 부각시키는 데 일조해왔다. 그 자체로 입기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와 역사가 너무 많은 퍼 코트는 위험천만하다. 풍성한 퍼 코트를 걸친 사진 속의 돈 킹도 엄청난 음모를 꾸미는 악당처럼 보일 정도로.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12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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