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파리, 슬픈 미망인들의 도시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파리를 낭만적으로 찬양하는 영화나 책들을 싫어하는 편이다.

프로필 by ELLE 2010.12.08

핀잔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파리를 낭만적으로 찬양하는 영화나 책들을 싫어하는 편이다. 파리는 욕망의 도시가 아니라 실패한 혁명가나 심각한 내상을 입은 국외자들이 머물고 숨을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시인 폴 엘뤼아르는 파리를 ‘고뇌의 수도’라 말했다. 보들레르는 가족도 없는 늙은 독신자들, 타인으로부터 잊힌 자들, 낙오된 자들, 단지 과거의 찬란한 날들만을 기억하는 자들 같은, 파란만장하고 폐쇄된 영혼이 찾아드는 산책로 같은 곳이 파리라 말한다. 장 뤽 고다르가 흑백필름에 담은 시적 풍취가 그러하다. <국외자들>은 활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회색빛의 파리 교외, 클리시 광장에서 리베르테역으로 향하는 미제라블들의 파리한 얼굴이 가득한 지하철, 뱅센느 항구 근교의 작고 평범한 카페, 파리의 중심부와 마른 강변의 경계를 이루는 주앙빌 르퐁의 쓸쓸하고 황폐한 집들을 담아낸다. 고다르에게 이방인들은 파리가 잃어버린 일상어휘의 신선함을 되찾게 해주는 자들이다. <알파빌>의 여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파리는 사랑을 잃어버린 미래의 도시예요. 우리는 파리가 지닌 어휘의 풍부함을 잃어버렸죠. 아마도 파리가 갖는 창조의 역할은 끝나고 정보가 그것을 대신하겠죠.’ 파리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언제나 한가한 자들, 즐거운 자들의 시선으로부터 멀리 물러나 인생의 불구자들, 좌절된 자들이 찾는 장소를 찾아간다. 시는 그런 장소를 노래한다. 
진동선의 <올드 파리를 걷다>는 보들레르의 우울을 따라 서글픈 발자국을 되밟아간다. ‘시간’, ‘공간’, ‘사물들’이라는 세 챕터에는 몰락하는 파리의 흔적이 잿빛 사진으로 담겨있다. 파리는 팔색조 같은 도시다. 한 가지 모습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도시의 꿈을 찾아, 외잔 앗제의 시선으로, 혹은 브랏싸이의 시선에 의지해, 진동선은 변한다는 것 외에 확실한 것이 없는 파리의 밤을 노래한다. 반면 정수복의 <파리의 장소들>은 센 강이 가로지르는 도서관의 거대한 열람실과도 같은 파리를 입체적으로 보고한다. 이번에는 발터 벤야민의 <파샤쥬>가 그의 충실한 도우미가 됐다. ‘파리의 장소들’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힘을 지녔다. 파리의 거주자들은 담배 속의 니코틴과도 같은 파리진에 중독되어 16세기의 몽테뉴처럼 파리를 부드럽게 사랑한다. 장소들을 기억에 품는다. 잘 알려진 장소들을 다르게 보고, 피하고 싶은 장소를 일부러 찾아다니고, 장소에 숨은 뜻을 읽어나가고, 한가로운 장소를 마음대로 걸어보아야 파리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지로두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은 강가를 따라 산책할 때 가장 고귀한 자유를 느끼는 법이다. 도시를 제대로 산책하기 위해서는 길을 잃어봐야 한다. 그럴 때 외지인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파리는 거대한 미로와도 같다. 마찬가지로 신이현은 <에펠탑 없는 파리>에서 벨빌 거리, 몽수리 공원, 작은 알자스, 아스날 항구, 파리의 북역, 그리고 마레 골목길의 옛 흔적들 사이를 산책한다. 파리의 뒷골목에 서린 사소한 이야기들은 거대한 역사의 흔적들이기도 하다. 또한 파리는 밤의 도시이고, 위대한 빛의 도시이자 미친 꿈들의 도시다. 이곳에서 인상주의의 마지막 화가인 뤼미에르가 영화를 발명했다. 김량의 <파리가 영화를 만나다>에서 우리는 ‘파리 스코프’를 사들고 생 미셸 뒷골목에 자리한 예술영화관에 숨어드는 영화광들의 아지트를 만날 수 있다. <사브리나>에서 험프리 보가트는 “파리는 연인들의 도시야. 나 같은 사람과는 상관없지”라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수많은 이방인들은 고향이 아닌 그곳에 발목을 잡힌다. 파리는 세계의 유명 영화인들이 조국을 버리지 않으면서 영화 사랑의 시민이 기꺼이 되고자 하는 곳이다. 타란티노가 자신의 영화 개봉을 위해 파리를 찾았던 때가 기억난다. “파리에서 무엇을 할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파리지앵처럼 파리 스코프를 사서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영화를 보겠다”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파리는 그렇게 영화인들의 고향이자 영화가 꿈꾸는 도시다. 다시 보들레르로 돌아가 보자. 그는 자신의 몽상을 같이 나눌 수 없는 어린 것을 손에 이끌고 있는 미망인과 전혀 혼자인 미망인 중 어느 쪽이 더 슬프고 외로운가를 질문한다. 파리는 슬픈 미망인들의 도시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파리에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것이 된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2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WORDS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PHOTO 이용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