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아티스트, 김담비가 하는 일 | 엘르코리아 (ELLE KOREA)

1990년생 티 아티스트 김담비가 열어젖힌 무한한 차에 세계, 그 한계 없는 묘미.


티 아티스트, 김담비가 하는 일

티 아티스트, 김담비가 하는 일

김담비는 검고 큰 가방에 깊숙이 손을 넣어 투명한 샷 글라스와 유리 주전자, 작은 종이 뭉치를 꺼냈다. “오늘의 재료는 이게 다예요.” 따뜻하게 데운 물을 주전자에 붓고 종이로 말아둔 재료들을 찻물에 풀자 주전자가 파랗게 물든다. “차를 가지고 논 지 5년쯤 됐어요.” 1990년생인 티 아티스트 김담비는 ‘담비스티룸(@dambistearoom)’이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 중이다. 담비스티룸은 찻집도, 티 하우스도, 티 클래스도 아니다. 명상 음악 감상회를 비롯해 오감을 깨우는 체험 위주의 워크숍, 전시 등의 형태로 티 세레모니를 펼치는 무형의 차실이다. 김담비는 서울의 작은 갤러리, 마르세유의 볏짚 위, 베를린의 페스티벌 등 지구 곳곳을 오가며 차를 중심으로 한 흥미로운 순간을 펼치는 중이다.

핀란드의 ‘피스카스 빌리지 아트 & 디자인 비엔날레’에 티 아티스트로 참여한 김담비.

핀란드의 ‘피스카스 빌리지 아트 & 디자인 비엔날레’에 티 아티스트로 참여한 김담비.

베를린의 미술관 마르틴 그로피우스바우에서 열린 그룹 전시 〈벨트 오네 아우센〉에서.

베를린의 미술관 마르틴 그로피우스바우에서 열린 그룹 전시 〈벨트 오네 아우센〉에서.

파란 차는 마셔본 적 없는 것 같아요 아닐걸요. 언젠가 서울에서 블루 레모네이드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잖아요. 물론 같은 재료로 만든 색은 아니에요. 블루 레모네이드에 들어간 건 블루 큐라소라는 리큐어이고, 제 블렌딩 차에 쓴 건 블루 멜로라는 꽃이에요. 꽃은 차를 우린 뒤에 먹어도 돼요. 전 자주 먹어요.
사용하는 모든 티는 직접 블렌딩하나요 원하는 자연 재료를 구해서 직접 만들어요. 주로 서양의 허브와 한약재를 섞어요. 통의동에 잠시 작업실을 두었을 때는 옥상에 텃밭을 만들고 재료를 직접 길러 쓰기도 했어요. 그때 내던 차에는 ‘시골 곳간차’ ‘바다 명상차’ ‘우물 안 풍경차’ 등의 이름을 붙였죠. 제 블렌딩 차는 아직 제품화하지는 않았어요. 가끔 제의가 오기도 하지만요.
차를 제품화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용하는 도구도 최소화해요. 차는 그냥 마시는 거예요. 도구는 중요하지 않아요.
담비스티룸은 고정된 공간을 갖추지 않은 차실이에요 반복적인 것을 싫어해요. 그래서 차실을 무형으로 운영해요. 저의 티 세레모니는 이벤트성으로, 주로 다른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열어요. 함께하는 구성원도, 테마도 계속 바꿀 수 있는 거죠. 저는 사람들이 그냥 저에게 와서 차를 나눠 마셨으면 좋겠어요. 처음부터 차를 어떻게 경험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워크숍과 퍼포먼스, 세레모니 등으로 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된 이유죠.
지난 연말 서촌에 자리한 ‘무목적’에서 진행한 ‘사운드 & 바디’ 워크숍은 신선하고 놀라웠어요. 반응이 좋아서 오픈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했죠. 몸을 움직이며 신체 감각을 깨우는 명상회를 열었는데요 평일에는 예약제로 운영하는 1:1 명상 체험을, 주말에는 움직임과 사운드를 주제로 한 4시간짜리 ‘사운드 & 바디’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앰비언트 뮤직과 클래식 뮤직, 익스페리멘털 뮤직 등을 틀고요. 정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에서 시작해 점차 동적인 음악으로 나아갔어요. 명상 체험과 워크숍은 차를 마시는 일로 시작해요. 그런 다음 향을 피우고, 음악을 틀고, 점차 몸을 움직이는 순서로 진행되죠. 마시고 듣고 느끼고 춤추며 자신의 감각을 가장 원초적인 상태에 놓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참여한 사람들이 잘 움직.이던가요 아니요(웃음). 춤추게 하는 단계까진 갈 수 없었어요. 그래서 누웠다가 일어나서 걷는 정도로 컨셉트를 수정했죠.

바르샤바의 음악 축제에서의 퍼포먼스 워크숍.

바르샤바의 음악 축제에서의 퍼포먼스 워크숍.

마르세유의 한 복합 문화공간에서 열린 티 세레모니.

마르세유의 한 복합 문화공간에서 열린 티 세레모니.

서울 무목적에서의 ‘사운드 & 바디’ 워크숍.

서울 무목적에서의 ‘사운드 & 바디’ 워크숍.

티 세레모니 외에 다양한 방식의 명상회도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열어왔어요 시작은 ‘명상곡’이라는 이름의 명상 음악 감상회였어요. 밤에 친구들과 함께 쓰던 지하 주차장에서 열었어요. 불을 최소한으로 밝혀 시각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한 환경이었죠. 직접 만든 음악을 사용했어요. 어려서부터 음악에 깊이 심취했거든요. 베를린에 머물 때 음반을 핸드메이드로 소량 제작하는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고, 서울과 베를린에서 댄스 음악을 다루는 DJ로도 활동했어요. 저는 도시의 바쁜 일상에 숨이 막히는 사람이에요. 숨을 고르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런 경험을 좋아해요. 그래서 명상이 제 음악 작업의 주된 주제가 된 거죠.
지금과 같은 티 세레모니와 명상회를 여는 데 영감을 준 인물이 있나요 1960년대 미국에서 활동한 폴린 올리베로스(Pauline Oliveros)라는 여성 작곡가가 있어요. 그가 ‘소닉 메디테이션’이라는 이름의, 사운드로 하는 명상을 주창했거든요. 당시 미국은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사회적으로 어수선하던 시기였어요. 폴린 올리베로스는 그때 자신이 만든 사운드로 소규모 콘서트와 모임 같은 걸 열었죠. 그녀의 이야기에서 영향을 받았어요.
베를린과 서울을 베이스로 활동하고 있어요. 지난해에는 특히 더 많은 도시를 방문하며 갖가지 형태로 티 세레모니를 열었고요. 김담비의 티 세레모니는 베를린의 오래된 미술관에서 여는 전시나 오디오 비주얼 페스티벌의 일부가 되기도 했어요 베를린은 유럽 중에서도 제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도시예요. 저는 어려서부터 굉장히 ‘오픈 채널’인 사람이었어요. 어디서 뭘 접하든 모두 강하게 흡수하는 사람이었죠. 베를린에서 저처럼 오픈 채널인 친구를 많이 만났어요. 크리에이티브한 친구를 많이 사귄 덕에 지난해에는 꽤 많은 도시에서 티 세레모니를 열 수 있었죠. 우리 세대에게 차 문화는 아직 시작 단계잖아요.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는 전시나 공연, 퍼포먼스의 형태로 차에 접근하고 싶어 하더군요.
당신의 티 세레모니에선 국적은 안 보이고 시대만 보여요. 요즘 시대의 것 같고 미래적인데 어느 나라의 것인지는 모호하죠 중국의 전통차와 향도 배우고, 일본의 다도 대가 센노 리큐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한 문화에 치우치기는 싫어요. 언젠가는 화성에서 티 세레모니를 해보고 싶네요. 아니면 우주선에서요(웃음). 인류를 구원할 미래 음료로 차를 선보이는 거죠. 농담이 아니에요. 올해는 환경과 과학, 인류학 차원의 컨셉트로 티 세레모니를 열고 싶어요.
올해의 첫 티 세레모니는 어디에서 여나요 프랑스에서 시작해요.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는 스페인의 패션 디자이너 폴라 카노바스 델 바스의 아르누보풍 쇼룸에서요. 올해 저의 첫 블렌딩 차인 ‘디아블로’를 세라믹 아티스트 잭 울리, 파티시에 젤린카와 함께 선보이려고 해요. 잭 울리가 만든 오가닉 형태의 세라믹 잔에 차를 담을 거예요. 파리는 5년 만이에요. 굉장히 기대하고 있어요.
1990년생 티 아티스트 김담비가 열어젖힌 무한한 차에 세계, 그 한계 없는 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