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을 정복한 고양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고양이는 그간의 모진 박해에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호랑이가 사라진 도시에서 영역을 확장하며 우리의 공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씩 고양이 중심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젊은 건축가로 구성된 비유에스건축은 2014년 문을 연 이후, 고양이가 사는 집을 다섯 채나 지었다. 사무소의 두 축을 이루는 박지현, 조성학 소장이 특별히 애묘인이 아닌데 말이다. 박 소장은 이런 일련의 요구들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고 여긴다. “저희가 젊다 보니 건축주들도 젊은 축에 속해요. 그중 결혼한 부부들은 합의하에 아이를 낳지 않는 대신 반려동물을 기르는 경향이 강했어요. 그들은 반려동물 중에서도 ‘도심 속 협소 주택’이라는 특수한 주거 환경을 고려해 반려묘를 선호했고요.” 미국의 과학 전문 매체 〈라이브사이언스닷컴〉에 따르면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고를 때 자신의 성격에 맞는 동물을 택한다고 한다. 한편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은 규칙에 순응하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언급했다. 즉 아파트라는 안정된 선택지 대신 협소 주택을 고른 이들은 근본적으로 개보다 독립성이 강한 고양이에게 더 끌렸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일본은 반려묘가 반려견보다 더 많다. 2017년 사상 최초로 순위가 역전된 후 격차가 점점 벌어지는 추세다. 고령인구가 증가하며 실내에서 기를 수 있는 동물을 선호하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18년 KB금융그룹이 발표한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양육 중인 반려동물 중 개와 고양이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75.3%와 31.1%다. 반려견이 반려묘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하지만 이 수치 또한 최근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대폭 호전되면서 격차가 한층 좁혀진 결과다. 그전에는 간극이 더 컸다. 지구상에서 고양이는 늘 개의 인기에 밀렸다. 전 세계적으로 고양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견고했고, 그 이면에는 이를 부추기는 대중 매체가 있었다. 만화영화만 봐도 그렇다. 〈개구쟁이 스머프〉에서 호시탐탐 스머프를 잡아 수프를 끓여 먹으려는 가가멜은 ‘아즈라엘’이라는 고양이를, 〈형사 가제트〉에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악당 클로 박사는 ‘매드 캣’이라는 고양이를 길렀다. 한편 개는 가제트의 조력자로 등장했고, 이름도 ‘브레인’이었다. 악당의 친구로 대중 매체에 자주 등장하던 고양이가 최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긍정적 요소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성과 아기, 동물을 앞세우면 성공한다는 ‘3B 법칙’이 광고계에서 오래전부터 통용됐음에도 고양이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에는 광고에 고양이가 아무 맥락없이 왕왕 출연한다. 사상 최초로 고양이 예능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애묘인으로서 이렇듯 신장된 묘권에 감개무량할 따름이다.

이케아는 2017년 반려묘 가구를 일찌감치 선보였다. 국내 가구 브랜드 한샘은 지난해 ‘반려묘와 신혼부부를 위한 아파트 인테리어’라는 주제하에 59㎡짜리 공간을 매장에 선보이며 앞으로 이런 가족 구성의 비중이 높아질 것을 예견했다. 우리 부부 또한 아이 없이 반려묘를 기르는 ‘펫팸족’이다. 서울 외곽에 자리한 낡은 연립주택을 수리해 들어갈 때만 해도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집을 다 짓자 고양이 한 마리가 기다렸다는 듯 집에 들어왔다. 70㎡짜리 근사한 고양이 집을 지은 기분이었다. 설계 당시 고양이를 고려하지 않았던 만큼 고양이 가구를 추가로 들여야 했다. 캣 타워, 해먹, 고양이 전용 화장실, 장난감 수납장 등을 놓고 나니 가뜩이나 작은 집이 더 좁아졌다. 그런 면에서 비유에스건축이 건축주와 함께 설계 과정부터 고양이를 배려하여 지은 집은 1000만 펫팸족에게 좋은 본보기다.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두 소장은 건축주들이 자신의 고양이를 대변하여 요구하는 사항을 통해 고양이의 습성을 차차 배웠다.
“특히 창을 계획할 때 생각지 못한 요구사항이 많았어요. 고양이가 점프해서 한 번에 오를 수 있는 높이에 창을 내길 바랐고, 앉아서 밖을 구경할 수 있도록 넉넉한 너비의 창틀을 요구했어요. 또 환기는 원활하되 고양이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조건을 늘 유념하며 창의 위치와 크기, 종류를 결정해야 했어요.” 영역 동물로 한평생 집에서 생활하는 고양이에게 창밖 풍경은 TV와 같다. 앉아서 구경할 수 있는 창문이 없거나 창밖 풍경이 거의 변화가 없는 집에 사는 고양이들은 무기력증에 빠질 확률이 크다. 집사들은 새들이 많이 찾아오도록 일부러 창가에 쌀을 뿌리기도 한다. 근사한 창을 확보하지 못하면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충분히 풀 때까지 놀아주느라 집사 팔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박 소장은 고양이가 사는 집을 다섯 채 설계하며 공통된 습성을 발견하는 동시에 고양이도 사람 못지않게 각자 개성이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례로 쌍문동에 지은 ‘쓸모의 발견’의 고양이는 노묘로 점프력이 떨어져 그만큼 창의 높이를 낮게 설계해야 했다. “쓸모의 발견 건축주들은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있어 집과 서점을 분리해서 설계했어요. 서점을 지키는 동안 집에 남은 고양이가 외로울까 봐 고양이가 자주 왕래하는 계단 사이에 작은 창을 내 사람과 고양이가 수시로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했어요.” 그 작은 배려에 사람과 고양이 모두 안정감을 찾았다.

고양이가 사는 집에서는 바닥 재질도 창문의 종류만큼 세심하게 배려해야 할 요소다. 박 소장은 여러 시도 끝에 고양이의 보행감과 인간 편의를 두루 고려했을 때 원목 마루가 최선책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원목 마루가 덜 미끄러워 고양이 관절에 무리가 덜 가면서 고양이 모래에 물이 묻어 바닥에 들러붙어도 쉽게 닦인다고 한다. 고양이는 인간과 함께한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존재인 만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집의 구조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다. “협소 주택은 공간을 수직으로 확보해야 하는 만큼 계단이 필수 요소예요. 건축주들이 새집에 입주하며 기존에 쓰던 캣 타워를 가져갔는데 고양이가 계단을 신상 캣 타워로 활용하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됐대요. 또 쌍문동의 경우 계단이 차지하는 공간이 커 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계단참을 만들었는데, 삼각형으로 한쪽 모서리가 점점 좁아지는 구조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양이가 매일 거기에 몸을 우겨넣고 낮잠을 잔대요.” 고양이는 참으로 신비한 존재다.

비유에스건축이 설계한 ‘쓸모의 발견’ 공간 다이어그램. Ⓒ B.U.S Architecture비유에스건축이 설계한 ‘쓸모의 발견’ 공간 다이어그램. Ⓒ B.U.S Architecture비유에스건축이 설계한 ‘쓸모의 발견’ 공간 다이어그램. Ⓒ B.U.S Architecture
“효창동 ‘첫 집’의 건축주들은 원래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어요. 좁은 부지에 협소 주택을 짓고 1층에 꽃집을 운영했는데, 꽃집을 하려면 흙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집 앞에 흙포대를 쌓아놓으니 길고양이들이 신나서 모여들기 시작하더래요. 그때 그들은 길고양이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았대요. 아파트 살 때는 잘 모르다가 주택으로 이사해 길목에서 집 앞까지 계속 마주치며 도시 동물의 존재를 깨달은 거죠. 도시 환경이 길고양이에게 그다지 유익하지 않잖아요. 일종의 책임의식이 생겨 밥을 주다가 정이 들어 집에 들여 키우기 시작한 게 벌써 세 마리째라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길고양이를 입양하도록 주변에 적극 권하는 진정한 애묘인으로 거듭났어요.” 이는 집이 1차로, 고양이가 2차로 사람을 변화시킨 흥미로운 사례다. 또 다른 고양이 집사인 양평 ‘브리사’의 건축주는 1층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만큼 위생을 중시해 옷방에 대한 요구사항이 특히 많았다고 한다. 결국 옷방을 현관 바로 옆에 두어 고양이와 마주치지 않고 외출복을 입고 벗을 수 있는 구조를 짰다. 집을 수리해 들어갈 계획을 지닌 애묘인에게 더없이 좋은 ‘꿀팁’이다. 박 소장은 고양이가 사는 집을 또 의뢰받으면 기둥을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목조 주택을 설계하면 나무 기둥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 기둥들을 고양이가 발톱을 긁을 수 있는 수직 스크래처로 활용하면 따로 스크래처를 들일 필요가 없으니 그만큼 공간이 확보되면서 고양이도 스트레스를 충분히 풀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말에 귀 기울일수록 고양이가 젊은 건축가를 점점 차별화된 능력을 지닌 전문가로 성장시키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인 중에는 고양이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바뀐 이도 있다. 결혼에도 아이에도 도통 관심 없던 지인은 집 앞에서 죽어가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하고 덜컥 품에 안았다. 단지 약한 존재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오직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을 오가며 돌봤지만 바쁜 그녀에게는 역부족이었다. 어쩔 수 없이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자신이 없는 동안 집에 와 고양이를 돌볼 것을 부탁했고, 그 과정에서 연인 이상의 친밀감을 느껴 결혼을 결심했다. 둘을 부부의 연으로 엮어준 고양이는 목숨은 부지했지만 사료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생식을 시작했다. 정육점에나 있을 육중한 고기 분쇄기를 사서 집에서 토끼, 사슴, 오리, 메추리, 닭을 갈아 먹인다. 비위가 약한 그녀는 껍질을 벗겨 시뻘건 토끼 사체의 목을 따며 ‘내가 이런 정성이면 애도 키우겠다’고 악에 받쳐 울부짖더니 오기인지 용기인지 모를 감정에 이끌려 아이를 덜컥 낳았다. 현재 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누나 고양이의 캣 타워를 오르내리고 있다.

고양이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오랜 시간 좋은 친구로 곁을 지켰다. 고양이가 심심찮게 등장하는 조선시대 민화만 봐도 알 수 있다. 책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를 보면 고대부터 한반도에서 고양이는 벽사(僻邪) 기능을 했을 거라고 한다. 조선 왕실과 고양이 사이의 훈훈한 사연도 여럿 전한다. 예불을 드리러 절을 찾은 세조의 목숨을 구해 공로를 치하받았는가 하면, 숙종이 생전에 예쁘게 여긴 고양이 ‘금손(‘치즈태비’ 종으로 추정된다!)’은 주인이 죽자 스스로 굶어 죽었다고 한다. 이는 이익의 〈성호사설〉에 실린 이야기다. 반면 태곳적부터 고양이를 귀히 대했을 것 같은 일본은 원래 고양이를 사람 잡아먹는 요괴로 여겼다. 두려움의 대상이던 고양이를 메이지 유신 이후 긍정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그 역사가 오히려 짧다. 우리 조상이 길조로 여긴 고양이는 그간의 모진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후손에게 행복과 평안을 안기고 있다.
고양이는 그간의 모진 박해에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호랑이가 사라진 도시에서 영역을 확장하며 우리의 공간,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을 조금씩 고양이 중심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