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눈물의 수상 소감이었습니다. "요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너무 늦게 저한테 이런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것 같다고 말씀을 하시는데 저 스스로는 이만한 얼굴이나 이만한 몸매가 될 때까지 그 시간이 분명히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제40회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이정은. 더없이 진솔한 수상 소감에 보는 이들의 마음마저 울리게 하였죠.
기생충으로 너무 주목을 받게 돼 겁이 났다며 다른 작품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인 이정은. 2019년의 이정은에겐 '대세', '열일' 그리고 '신스틸러'라는 수식어가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한양대학교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이정은의 데뷔작은 1991년 연극 '한여름 밤의 꿈'.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안다'는 배우에서 이제는 흥행 보증 수표 배우로 떠오르며 데뷔 29주년을 맞은 이정은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대세로 떠오른 이유, 함께 알아봐요!
「 김혜자의 멱살을 잡다? 마더(2009)
」 91년 데뷔 후 극단 생활과 단역 연기를 이어갔지만 배고픈 시절과 오랜 무명배우 생활을 겪은 배우 이정은. 영화 '와니와 준하'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딛지만, 카메라 울렁증을 겪었다고 해요. 연극 무대에 집중하며 활동하다 다시 작은 역할을 맡으며 카메라에 대한 두려움도 극복했다고 합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인생작을 만난 이정은 배우와 봉준호 감독의 첫 호흡을 맞춘 작품은 무엇일까요? '국민 엄마'로 불리던 김혜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마더'입니다. 이정은은 죽은 아이의 친척으로 등장해 아이의 장례식장을 찾아온 도준 엄마(김혜자)의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몰아세우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사실 우리 아들이 안 그랬거든요'라는 멘트와 함께 희번뜩 거리는 김혜자의 눈빛(!)을 상대하며 멱살을 잡고 흔들며 울분을 토해내던 바로 그 인물. 이정은 배우라는 사실 아셨나요?
「 송강호도 반했다는 사투리, 변호인(2013)
」 짝짝이 눈화장부터 강렬하죠? 이정은은 천만 영화 '변호인'에서 부동산 등기 변호사로 돈을 번 송우석(송강호)에게 아파트를 파는 집주인 역할로 등장, 현실감 넘치는 사투리로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주스를 '쥬씨'라고 표현하는 디테일에 배우 송강호마저 감탄했다는 후문. 이정은은 서울 토박이 출신으로 마산 출신 감독의 목소리를 녹음해 한 달 반 동안 매일 사투리 연습을 했다고 털어놨었죠.
「 목소리 연기까지 접수, 옥자(2017)
」 '마더' 이후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은 '옥자'로도 이어집니다. 게다가 무려 주인공이라는 사실! 바로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연기 했거든요(지하상가에서 휠체어를 타고 소리를 지르는 역할로도 잠깐 출연하기도). 뮤지컬 '빨래'를 관람하며 이정은과 첫 인연을 맺은 봉준호 감독은 아마 그때부터 이정은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편 옥자라는 여자가 미국으로 가는 로드 무비인 줄 알았다는 이정은은 비밀 서약서를 쓰고 대본을 보니 그제야 돼지인 걸 알았답니다. '그히힝~'이라고 적힌 지문을 바탕으로 내성적인 돼지의 소리를 내야 한다고 해서 동물원과 돼지 농장을 찾아다니며 6개월간 동물 소리를 마스터했다는군요. 청학동에 사는 슈퍼 돼지니까 유기농 돼지 농장을 찾아갔다는 이정은의 연기 열정에 박수를!
「 '함블리'의 등장, 미스터 션샤인(2018)
」 2013년 처음 드라마를 시작한 배우 이정은. 2018년 '미스터 션샤인'을 통해 고애신(김태리)의 유모 역할인 함안댁으로 등장, 애기씨를 지키는 든든한 조력자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어요. 역사적 배경상 슬픔이 몰아치는 상황에서도 함안댁은 시청자들에게 맛깔스러운 사투리와 행랑아범과의 케미로 웃음을 선사했답니다. 덕분에 함안댁 + 러블리라는 단어를 조합해 '함블리'라는 별명도 얻었죠. 이정은은 "다음 세대를 위해 죽음을 택하는 함안댁의 마음이 기억에 남아요"라고 언급하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답니다.
「 '엄마' 그 모습 그대로, 눈이 부시게(2019)
」 '아는 와이프'에 이어 다시 한번 모녀 호흡을 맞춘 한지민과 70대 노인이 된 딸 김혜자와의 따뜻한 케미가 돋보였던 작품 '눈이 부시게'. 이정은은 이 드라마를 통해 갱년기를 겪는 힘든 상황과 그 안에서도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줬죠. 믿고 기댈 수 있는, 언제나 내 편인 우리 엄마가 떠오르게 한 이정은의 연기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담백한 결로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했어요. 진짜 우리 엄마이자 며느리 같은 연기를 보여주며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여자조연상을 받기도 했답니다.
「 만찢배우란 이런 것, 타인은 지옥이다(2019)
」 캐스팅 0순위! 드라마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모두 입을 모아 얘기했죠. 엄복순은 이정은 배우의 것이라고! 배우의 스타일링이 더해진 스틸컷이 뜨자 싱크로율 200%.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의 에덴 고시원 주인 엄복순으로 변신한 이정은은 웹툰 찢고 나왔다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죠. 푸근하고 친절한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면에는 진실을 숨기고 섬뜩한 본색을 드러내죠. 사람 좋은 미소와 싸늘한 무표정의 간극,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정은의 연기는 극에 쫄깃한 긴장감을 선사하며 신스틸러로 맹활약했답니다.
「 배우 인생도 만개, 동백꽃 필 무렵(2019)
」 [7년 3개월이 아니라, 지난 34년 내내 엄마는 너를 하루도 빠짐 없이 사랑했어]
오열주의!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 쏙 빼놓으며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로 등극한 '동백꽃 필 무렵'. 일곱 살 때 동백을 버렸고 치매에 걸린 채 돌아온 엄마 조정숙. 정숙의 과거 사연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시청자들은 뭉클한 진심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죠. 신스틸러가 유독 많은 이 드라마에서도 이정은 배우는 반짝반짝 빛을 발했습니다.
딸을 버렸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지니고 있지만, 딸을 지키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용감하고 당차게, 딸에 대한 절절한 사랑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엄마 그 자체였으니까요. 덤덤한 얼굴로 희로애락을 응축시켜 보는 이의 감정을 폭발시키게 만드는 이정은은 가공된 캐릭터가 아니라 실존 인물처럼 생생하게 시청자들에게 다가왔습니다.
「 신 스틸러 탄생의 신호탄, 기생충(2019)
」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은 뜻깊은 해인 2019년. 지난 5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대상격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낭보가 전해졌죠. '기생충'에서 이정은 배우가 맡은 역할은 박사장(이성균)과 연교(조여정)의 집을 관리하는 가정부 문광. 영화에 함께 출연했던 동료 배우인 이선균은 이정은을 향해 “우주의 기운이 이정은에게 모이고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영화에서 명징한 존재감을 드러냈어요.
띵동! 띵동! "저기... 전에 일하던 사람인데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중요한 걸 놓고 와서요." 세차게 비가 내리던 그 날 밤, 문광의 등장은 단숨에 관객들의 긴장감을 높이며 기생충의 예측 불가한 진행의 신호탄을 쏘아 올립니다. '반전 연기란 이런 것'임을 몸소 보여주듯 집 안에 들어온 장면 이후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관객들이 완벽히 몰입할 수 있도록 이끌죠. 이정은의 소감은 어떨까요? "사실 캐릭터 연기에 어려움이 있었어요. 문광의 목표에 집중하기로 했고, 예의와 품위 유지를 보이는 게 더 무섭다고 생각했어요" 이정은의 예상은 적중했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정은은 '기생충으로 너무 주목받게 되니 겁이 났다'며 자신의 마음이 혹시나 자만할까 싶었다고 토로했죠. 또 '이 상을 받고 나니까 며칠은 쉬어도 될 것 같다'고 울먹이는 이정은의 모습에선 길고 고단했던 무명 생활과 생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교차되며 감동을 자아내기 충분했습니다.
누구보다 찬란하게 2019년 한해 '열일'하며 최고의 한 해를 보낸 배우 이정은. 2020년에도 어떤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을 훔칠지 벌써 기대가 되죠? 자신의 연기를 통해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는 이정은의 바람이 이뤄지길 <엘르>도 응원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