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와의 로맨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이토록 매력적인 슈퍼히어로와 연애한다면? | 디즈니,마블,연애

  얼마 전 디즈니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페이즈 4 라인업과 페이즈 5의 대략적인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인피니티 스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페이즈 1부터 3까지의 ‘인피니티 사가’를 마무리하고 2020년 개봉하는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다. <토르: 러브 앤 썬더>나 <닥터 스트레인지: 인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처럼 이미 알던 영화의 후속편도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도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가장 큰 관심을 끈 건 마동석이 출연하는 <이터널스>, 리부트되는 <블레이드> 그리고 최초의 동양인 히어로 무비 <샹치>. 무엇보다 캐스팅이 압권이었다. 관능적이면서도 어딘지 슬퍼 보이는 마허샬라 알리가 반인간 반뱀파이어 ‘블레이드’라니. 검은 가죽 코트에 선글라스, 긴 칼과 총을 쥔 두툼한 손,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마허샬라 알리의 야릇한 저음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양조위가 연기하는 <샹치>의 빌런 ‘만다린’은 또 어떤가. <아이언맨 3>에서 다소 시시하게 등장했던 만다린 대신 첨단과학과 외계 기술, 동양 무술을 접목한 끝판 왕 격 진짜 만다린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높다. 아니, 다 제쳐두고 양조위다. 지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우아하고 치명적인 미중년, 중국어를 섹시하게 발음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게 해준, 사디스트를 연기해도 미워할 수 없었던 그 남자 말이다. 마동석의 ‘길가메쉬’ 또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엔 “차 빼! 이 XX야” 대신 당장 우주선 빼라고 소리칠 것 같은 박력과 병아리를 무서워하는 사랑스러움을 동시에 갖춘 그의 매력은 <이터널스>의 헐크라 불리는 ‘길가메쉬’ 그 자체였다. 아무리 영화가 형편없더라도 나는 마블 페이즈 4와 5의 모든 영화를 몇 번이고 관람할 것이다. 반 정도는 팬(덕후)으로서의 의리고 나머지 반은 앞서 열거한 캐릭터들의 몸짓과 대사에 ‘심쿵’하고픈 소녀적 감성 탓이다.     애초부터 슈퍼히어로에겐 연애 감정을 자극하는 지점이 있었다. 너무 ‘덕후’스럽다고? 글쎄, 슈퍼히어로를 연기한 배우들이 얼마나 수많은 ‘남친짤’을 양산해 냈는지 생각해 보자. 한 발 더 나아가 <어벤져스>나 <저스티스 리그> 개봉 직후에는 늘 패러디 포르노가 발매되지 않나(그렇다고 내가 코스프레 포르노 애청자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냥 평범한 게 좋다). 내 ‘최애’는 무조건 토르였다. 첫 번째 시리즈 <토르: 천둥의 신>부터 그랬다. 찰랑이는 금발, 푸른 눈동자, 시원한 미소, 복잡함이라고는 1도 없는 단순한 성격, 압도적인 육체미는 영화의 엉성한 만듦새 따위는 무시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세 번째 시리즈 <토르: 라그나로크> 개봉 후, 그러니까 크리스 헴스워스가 머리를 자른 이후엔 더했다. 트위터 타임라인은 일명 ‘헴식이’를 앓는 이들로 넘쳐났고, 하물며 내 외국인 친구 중 한 명은 올해 65세인 자신의 엄마조차 토르를 흠모한다고 알려왔다. <뉴요커> 칼럼니스트 리비 겔먼-왁스너는 크리스 헴스워스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비록 ‘라그나로크’는 스웨덴의 전통 나막신 이름처럼 들리지만, 그럼에도 토르는 무척 유혹적이다. 그는 매우 나이스한 호주 서퍼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 섹스 후에 기꺼이 당신을 혼자 내버려둘 것 같은 남자다.” 뒤끝 없이 ‘쿨’할 것 같다는 얘긴데, 욕인지 칭찬인지 잘 모르겠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사실 그는 연애하고 싶은 남자보다 섹스하고 싶은 쾌남에 가까우니 장점인 것도 같다. 일단 그는 직진밖에 모르는 전사 아닌가. 본래 전사와는 몸의 대화만 가능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소셜 뉴스 웹사이트 ‘톤즈 오브 버즈’는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슈퍼히어로로 아이언맨을 꼽았다.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토니 스타크는 건방지고 천재적이며 억만장자인 과학자다. 2. 날카로운 기지와 냉소적인 유머를 갖췄다. 3. 결정적으로 그는 어딘가 망가졌다. 요약하면 세상 최고의 부와 명예, 지성을 갖췄기 때문에 오히려 미성숙한 남자, 그 완벽함 속에 감춰진 결핍과 불안함이 몹시 매력적이라는 거다. 15년 전이라면 내심 이 말에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면의 위태로움을 가진 남자의 동의어가 실은 그냥 정서불안장애 환자라는 걸, 나는 결코 그 사람을 치유하거나 성장시킬 수 없다는 현실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지금은 코웃음만 나올 뿐이다. 굳이 ‘나쁜 남자’가 취향이라면 토니 스타크 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장난의 신’ 로키, 순수한 미친놈 데드풀, 확실히 잘났지만 누구보다 본인이 그걸 제일 잘 아는 닥터 스트레인지…. 이 경우엔 판타지라는 단어를 들먹일 것도 없다. 그냥 아스가르드가 아닌 서울에 살고, 목숨이 한 개뿐이며, 마법을 부릴 줄 모른다는 것뿐 엉덩이도, 마음도 가벼운 이기적 유전자를 이미 한 타래쯤 알고 있다.     사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가장 판타지 그 자체인 남자를 꼽으라면 단연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다. 애국심과 정의, 신념으로 똘똘 뭉친 데다 누구에게나 예의를 갖추고 멍청할 정도로 순박하다. 게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히어로의 영광을 포기하는 선택을 하지 않았나.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신이자 ‘It’s been a long, long time’을 BGM으로 페기 카터와 춤추는 장면에서는 절로 눈물이 나왔다. 캡틴 아메리카의 첫 번째 시리즈인 <퍼스트 어벤져> 때부터 약속했던 춤이니 정말 BGM 가사 그대로였다. 물론 그렇게 자기가 내뱉은 말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극도로 고지식한 성격 탓에 연애 내내 좀 많이 답답하긴 하겠지만 말이다.     나 같은 덕후가 아니라도 모두 나름의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슈퍼히어로에 별 관심 없는 친구 A는 마블 드림 데이트 리그 멤버로 당당히 배트맨을 꼽았다(친구야, 배트맨은 DC 코믹스 멤버란다). 슈퍼맨은 쫄쫄이 수트에 팬티를 밖으로 입는 스타일이 싫다고도 덧붙였다. 아는 히어로가 배트맨과 슈퍼맨 둘뿐인 것 같았지만 어쨌거나 배트맨을 꼽은 이유는 굉장히 본능적이었다. 단단한 블랙 배트맨 수트와 저음, 벤 애플렉의 다부진 턱 때문은 아니고, 이런저런 도구가 많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비밀 많고 대궐 같은 집을 어두컴컴하게 꾸며놓은 게 어딘지 페티시가 있어 보인다면서 말이다. 취향이니 존중한다. 역시 마블에 시큰둥한 또 다른 친구 B는 닥터 스트레인지와 스파이더맨, 전혀 반대되는 매력의 두 캐릭터를 골랐다. “아예 고전적이거나 아예 비글미에 젖비린내 나는 애 같거나.” 실제로 스파이더맨 역의 톰 홀랜드는 마블 스타들의 남친짤 중 가장 높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닥터 스트레인지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공식적으로 어떤 역이든 섹시하게 소화해 내는 배우 중 한 명이니 뭐, 그럴 만하다. 둘 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 위엔 묠니르를 든 토르 피겨가 우뚝 세워져 있다. 그만큼 내 슈퍼히어로로서 ‘원픽’은 늘 토르였지만 상상 연애로 접근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음… 아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가 적당할 것 같다. 그에겐 마블이라는 별세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함이라는 미덕이 있다. 그에겐 특별히 잘난 점이 없다. 그렇게 미남도 아니고,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인간다운 체질이며, 몸이 좀 불은 것 같다는 소리에 연연하고, 화려한 수트나 재주도 없다. 바꿔 말해 이해 가능한 인간형이라는 뜻이다. 실없는 유머를 즐기는 점이나 그의 ‘죽여주는 믹스테이프(Awesome Mixtape)’에 담긴 음악 취향도 마음에 든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리더지만 결코 권위적이지 않고 급박한 상황에서 춤추는 식의, 인생을 즐길 줄 아는 태도까지 갖췄다. 우주에 사는 것만 빼면 우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나지 않은 성격의 그저 그런 남자. 그런데 문제는 이런 남자가 더 찾기 어렵다는 거다. 일단 지구에서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