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 그 가난한 추억 낭만식객의 맛집놀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세상에 두루치기랑 뭐가 달라. 제육볶음이랑은 또 뭐가 다르냐고. 순대볶음이나 떡볶이나 다 한 두릅 아닌가? 보물찾기하듯 수북한 야채 사이를 헤집어야 몇 점 나오고 마는 닭갈비를 원망스레 쳐다봤다. 닭갈비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먼 달을 응시하고 있었다. ::닭갈비,춘천,상호네 닭갈비,맛집,엘라서울,엘르,엣진,elle.co.kr:: | ::닭갈비,춘천,상호네 닭갈비,맛집,엘라서울

지난 월드컵 때 씨가 말라버릴 위기에 처했던 온 나라의 닭들이 위기를 거치고 다시 맹활약하고 있다. 사실 뭐, 월드컵뿐이랴.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밤에 치맥 없이 잠 못드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래주기도 하고, 야구공이 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갈 때 손에 든 맥주컵과 닭다리는 하늘을 향해 포효하지 않았던가. 안동찜닭, 교촌치킨 같은 먼 이국땅의 소녀 이름처럼 아련한 닭요리에서 최근 불 붙은 파닭까지. 대한민국은 정말 닭고기 없으면 못 사는 나라다. 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은 삼계탕, 닭도리탕, 치킨, 닭강정, 닭가슴살샐러드까지 무한변주가 가능하지만 기억하는가? 닭갈비에 얽힌 추억을.대학시절, 회는 일년에 한 두 번, 갈비는 취직한 선배가 출몰했을 때, 그 외에는 거의 크게 산처럼 쌓아올린 감자탕이나, 종잇장처럼 얇은 대패 삼겹살, 아니면 온갖 아사리 잡탕 수준의 야채 듬뿍 들어간 닭갈비였다. 그것도 머릿수 맞춰 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충 한 두 사람 빼고 2~3인분이나 3~4인분 시키면 떡볶이 사리 추가하듯이 야채 고기 당면 추가하고, 나중에 스텐리스 밥그릇에 고봉 담긴 밥 한그릇 넣고 양념 뿌려 쓱쓱 볶아주면 늘 허기졌던 청춘의 배가 배꼽도 안보일 만큼 동그랗게 부풀어올랐다. 닭갈비의 별미는 볶음밥에 있다면서 아귀처럼 달려드는 숟가락을 쨍쨍 소리나게 걷어내며 누룽지처럼 노릇노릇 익을 때까지 닭갈비 볶음밥을 사수하던 나의 믿음직한 선배들은 다 어디갔는지.... 나에게 닭갈비는 떡볶이 양념에 갈비는 조금, 야채는 많이 들어간 참 가난한(?) 음식이었다. 그래서일까. 전쟁을 거친 나이 드신 어른들이 신물나게 먹었던 수제비나 칼국수에 진저리치 듯 가난한 대학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닭갈비를 난 왠지 모르게 피해다녔던 것 같다. 결정적으로, 남동생을 군대 보내며 환송한 곳이 춘천이었는데, 이곳에서 먹은 맛대가리 없는 닭갈비가 이후 닭갈비에 대한 바람에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게 만들었다. 춘천 102보충대에 살점 같은 동생을 떨어뜨려놓고 오면서 시린 바람에 얼음장처럼 몸이 차가워지는 그 순간에도 뜨거운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어디 죽으러 가나.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아직 고등학생 티도 벗지 못한 것 같은 어린 녀석이 추운 전방에서 혹독한 겨울을 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져왔던 것이다. 자고로 터미널 앞과 부대 앞 음식점들은 맛 없기로 유명하다. 맛 때문에 먹는 곳이 아니라 필요 때문에 먹는 곳이기 때문에 단골을 만들 필요 없는 뜨내기 상대 장사니까 말이다. 그곳에서 춘천의 명물 닭갈비를 시켜먹었으니 얼마나 맛이 없었겠는가. 더구나 눈물인지 콧물인지 짭짜름한 것이 계속 섞여들어가니 맛이 있었어도 그 맛을 제대로 느꼈을 리가 없었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닭갈비는 알게 모르게 나의 기피대상 1호 음식이었다. 헌데.지난 여름 끝물.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지 않고 이 여름을 보낼 수 없다는 친구의 강력한 주장에 가까운 계곡을 찾았다. 춘천에 있는 지암리 계곡이라고. 아실란가 모르겠다. 춘천에서 좀 논나는 고교생들이 시크하게 놀러왔다 가는 곳. 로컬 주민들만 쉬쉬하고 남 안 알려주는 은밀한 계곡. 흔한 워터파크나 캐리비안베이를 가면 얼마나 좋을까. 사다 놓고 몸매 때문에 몇 번 입지 못한 비키니 수영복도 입어보고 물 좋은 풀사이드에서 몸에 기름칠도 하고. 속으로 연신 투덜거렸지만 결국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우당탕탕 흐르는 계곡물 소리에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고 계곡에 들어가 일곱 살 배기 아이들처럼 물장구치며 놀았다. 그때 옹기종기 모여앉아 피워 문 담배 맛이란.... 아마 대마초가 그런 맛이겠지? 이 순간만큼은 어느 것과도 누구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은 엑시터시의 순간.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계곡물은 뚝뚝 떨어지고 몸은 바들바들 이는 덜덜 떨리는데 온몸의 세포는 '쪼아쪼아'를 외치고 있었다. 대체 닭갈비 얘기는 언제 하려고 이렇게 사설이 길어지는지 모르겠다. 그 절정의 순간에 맛본 것이 바로 상호네 닭갈비다. 코딱지 만 한 가게가 너무 유명해져서 사실 가게 안에서 닭갈비를 구워먹는 건 엄두내기 힘들게 된 곳. 다행히 잘 재운 양념닭갈비를 넉넉하게 팔아 고기를 구울 마음의 준비만 되어있다면 굳이 그 좁은 가게 안에서 매운 연기에 눈물 흘려가며 구워먹을 필요가 없다. 물론 고기를 사오면 가게에서 주는 별미 된장국수를 먹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지만. 닭갈비는 굽는 게 예술이다. 양념이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에 서툴게 굽다간 숯 검댕이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고깃덩어리를 먹게 된다. 애기 다루듯 조심스럽게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않은 적당한 숯불에서 정성스럽게 구워야 한다. 화초도 그렇고 물건도 그렇다. 정성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반항하고 죽어버린다. 하물며 그럴진대 사람이야 오죽할까. 사람처럼 어려운 동물도 없다. 너무 잘해줘도 너무 무심해도 탈이 난다. 자신 안의 결핍이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외연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 들어가보지 않은 이상 사람 속을 어찌 내 마음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단 말인가. 진심은 통한다는 단순한 발상이야말로 자기식대로 관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비장의 무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지나치게 정성스럽게 닭갈비를 굽는 선배를 보면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실 춘천닭갈비는 왠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여서 별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춘천 시내 모 씨가 제육볶음을 해야하는 데 그만 돼지고기가 떨어져서 대신 닭을 넣고 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춘천닭갈비가 되었다느니 돈 없는 서민들이 소나 돼지 갈비대신 닭고기를 야채와 함께 먹는 데서 유래했다느니 원래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다느니 설이 너무 분분해서 본 식객의 깜냥으로는 정확한 유래를 밝혀내진 못하겠다. 다만 모든 것에 시작이 있듯 춘천에 성업 중인 '원조' 집들 중에서 춘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원조라고 쳐주는 곳이 바로 상호네 닭갈비라는 것. 그리고 그 맛이 정말 깜짝 놀랄 만큼 맛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양념의 배합과 시간을 두고 숙성해 고루 배인 양념과 부드러운 육질. 일체의 야채나 다른 부가 재료를 첨가하지 않고 오로지 닭의 고기만을 가지고 그런 환상적인 맛을 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좀 놀랍다. 거기에 은은한 숯불향이 배면 호화 레스토랑의 어떤 닭요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지존의 맛이다. 실제 상호네 닭갈비는 드럼통 몇 개 대충 엎어놓고 빨리 빨리 구워먹고 나가는 옛날 대학가 주변의 서서갈비 풍경이다. 물론 개업 이후로 한 번도 갈지 않은 것 같은 장판과 입구부터 쌓여있는 술 음료 박스가 무심한 듯 시크해 보이지만. 그런 데 가서 대접 받을 생각은 애당초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좋은 고기 시커멓게 태워서 굽다간 주인 아주머니에게 타박이나 듣지.그날 밤, 우리 일행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엄청난 양의 닭갈비를 남김 없이 먹어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몇 점 먹고 나면 그만 물려서 더 이상 손이 안가던 나의 닭갈비에 대한 편견이 그 순간 저 먼 우주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인간의 위장 안에 그렇게 많은 닭갈비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새삼 알았다. 입에 들어가면 솜사탕처럼 녹는다는 말의 사전적 의미도 몸으로 느낀 것 같다. 아마도 그건 함께 있었던 정다운 벗들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놀러가서 먹는 건 왠만하면 다 맛있으니까. 그렇게 의심되는 분들은 한번 몸소 검증해 보시라. 대신 굽는 재주 없는 건 남 탓하지 말고. Information031-251-1170 상호네 닭갈비. 웬만한 네비게이션에는 거의 등록되어 있다. 춘천시 근화동 709-2. 이십년 전 그대로 아무 것도 손 안 댄 것 같은 벽이며 장판이 컬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원한다면 자욱한 연기 사이로 닭갈비 굽는 것도 좋지만 부지런히 뒤집을 자신 없으면 사다가 고수에게 맡겨 구워먹는 것도 좋겠다. *자세한 내용은 엘라서울 본지 10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