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지 않으며 산다는 것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별 사고 없이 잘만 굴러가던 에디터의 인생에 느닷없이 브레이크가 걸리고 빨간불이 켜졌다. 운전 못하는, 아니 운전하지 않으며 산다는 것이 인생 질주에 급제동이 걸린 이유다.::운전,운전면허,엘르,엣진,elle.co.kr:: | ::운전,운전면허,엘르,엣진,elle.co.kr::

이제껏 차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비애나 무력감을 느껴본 적 없다. 운전할 줄 모르니 차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전 국민의 절반이 가지고 있다는 운전면허증이 없단 얘기다. 면허가 없다는 것이 절대 부끄럽거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면허증 취득이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혹은 남자의!) 의무가 아닌 이상 그럴 수도 있지 싶다. 평소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으로 주민등록증만 있다는 게 그나마 불편한 정도. 오히려 주위에서 더 호들갑을 떤다. 어렴풋이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액셀러레이터 한 번 밟아보지 않았다고 하면 사람들은 경악한다. 게으르다, 그 나이가 되도록 뭘 했냐는 잔소리는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사지 멀쩡한데 왜 운전을 안 배우냐며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고, 애처로운 시선을 던지는 이도 있다. 누군가는 개념이 없다며 사납게 핀잔을 놓기도 했다. 그야말로 운전을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게 고백 아닌 고백이 되고 커밍아웃 수준의 파장을 불러오는 세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운전 못하는 게 ‘금치산자’처럼 취급되는 가장 큰 부분은 바로 운전도 못하면서 어떻게 여자를 만나겠냐는 것이다.차 없이도 잘만 살아운전 못하는 나를 둘러싼 힐난의 수위와 표현은 다양할지언정 그 안에 담긴 뉘앙스들은 하나로 귀결된다. 그 나이에 운전을 못하는 성인, 아니 여자는 괜찮은데 남자라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앞선 독설들의 발원지도 여자들이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니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는 소린데 도통 공감이 가지 않는다. 무슨 근거로 자동차를 남자의 자존심을 가늠하는 잣대로 들이대시는지. 태초에 여자를 만든 것처럼 자신의 갈비뼈로 자동차 엔진을 완성한 것이 아닌 이상 세상 모든 남자들이 바퀴 네 개 달린 복잡한 기계에 목을 매지는 않는다. 단언컨대 남자에게 최고의 장난감이 자동차라는 말은 진리가 아니다. 여자라고 백이면 백 모두가 요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자동차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남자들도 수두룩하다. 나도 그들 중 하나다. 오죽 관심이 없으면 어릴 적부터 눈앞을 지나가는 차와 그 이름을 매치시키는 데 젬병이었을까. 어느 수입차 동호회에서 만난 자동차광은 이런 말을 했다. 차에만 올라타면 훨씬 더 멀리, 더 빨리 달릴 수 있어 경이롭다고. 차에 푹 빠진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말에 공감 백배를 외칠 것이다. 그들과 달리 신차 시승 때마다 운전대를 쥔 선배 옆에서 꾸벅꾸벅 졸기 바빴던 나에게는 질주 본능이 부족한 듯싶다. 예전에 서울 시내 전세값과 비슷한 가격의 최고급 스포츠카 시승에 나설 때였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보기는 난생 처음이었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짜릿한 상황에서 솟구친다는 아드레날린은 구경도 못했고 직접 몰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날 무한 질주의 속도감에 마력적인 전율을 느꼈다면 당장이라도 운전면허 시험장으로 달려갔을 텐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운전 필요성의 부재도 면허 부재의 원인이다. 대다수 비운전자들처럼 나 역시 운전해야 할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끼지 못한다. 거기에는 BMW에 길들여져 있는 것도 한몫한다. 자동차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가끔 해외 출장에서 돌아오면 새삼스레 편리함을 느낄 정도로 서울의 대중교통이 훌륭해 자가용 대신 버스(Bus), 지하철(Metro), 도보(Walk)로 다니는 데 큰 불편함이 없다. 물론 꽉 찬 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 한바탕 곤욕을 치르고 비틀거리는 일도 있지만 일편단심 이들을 이용하는 걸 보면 아직까지 운전해야겠다는 마음이 심하게 동하지 않는다. 생각이 이러하니 시험의 연속인 세상에서 귀한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운전면허 시험을 보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자동차가 천한 자본주의 표상이라고 혐오하거나 운전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등의 비난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차 키를 꽂고 시동을 걸면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신세계가 펼쳐진다는 걸 질리도록 들었고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신세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 걸 어쩌겠나.좌우 눈치 살피고, 이리저리 치이고이렇게 면허 없이도 꿋꿋이 잘 살던 일상에 몇 달 사이 심상치 않은 변화가 생겼다. 운전을 못하는 건 둘째치고 차가 없다는 사실이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걸리적거리고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변화의 조짐이 불거진 건 불과 1, 2년 전만 해도 차 없이 잘도 싸돌아 다니던 장롱면허증 소지자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가용을 장만하면서부터다. 친구란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지금껏 주위 녀석들이 술이나 담배 하는 걸 보며 청소년 딱지를 뗄 나이가 됐음을 눈치챘고, 그들의 청첩장을 받으면서 결혼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가 됐음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요즘 들어 친구들이 자동차 회사 로고가 박힌 열쇠를 자랑하는 걸 보니 어느덧 자가용을 끌고 다닐 연륜이 됐다는 걸 자각했다. 게다가 식당이나 커피숍에서는 원치 않아도 이런 생각에 쐐기를 박아준다. 수시로 직원들이 다가와 “밖에 있는 차 주인이세요?” “혹시 차 가지고 오셨어요?”란 질문을 할 때마다 겉으로 봤을 때 차가 있을 법한 세대가 됐나 싶다. 그러고 보니 어느 설문조사에서 남자는 대부분 20대 후반과 30대 초반 사이에 자가용을 소유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변화는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했던가. 마침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부모님과 친인척들은 면허부터 따라는 이야기를 장가 가라는 소리만큼 자주 한다. 한편으로는 듣기 싫어도 무면허 직장인을 향한 질타는 학생 때의 그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체감한다. 전에는 자가용은 없어도 운전면허는 있어야 한다는 선에서 지적질이 그쳤다면 지금은 비주류, 열패자, 박물관으로 돌아가라는 말들도 종종 쏟아진다. 특히 남자란 이유로 비난의 강도가 더욱 심해지는 건 열거하기에도 지친다. 상황이 이러하니 ‘운전 못하는 남자=루저’란 아이디어를 ‘인셉션’당한 것처럼 평생 운전을 안 해도 잘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차 이야기만 나오면 잘못한 것도 없는데 뜨끔해지는 증상도 있다. 취재, 미팅 약속을 잡으면서 종종 듣게 되는 “위치는 내비게이션에 찍으면 나와요.”라는 멘트나 약속 장소에 도착했을 때 “차는 어디에 주차하셨어요?”라는 상대방의 배려심이 물씬 묻어나는 질문들이 내심 껄끄럽다. 그렇다고 차 키가 없다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에 몸서리를 치는 건 절대 아니다.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할까봐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수준일 뿐이다. 살면서 자글자글해지는 눈가의 주름마냥 마음의 짐이 늘어난다고 자가용을 굴릴 만한 나이가 되니까 전에 없던 걱정이 늘어난 셈이다.연애에 브레이크가 걸려눈을 감으면 세상이 사라진다는데 운전 못한다고 뭐라 하는 세간의 괄시와 차별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꽃다운 이팔청춘에 그냥 넘기기 민감한 부분도 있으니 바로 연애와 자동차의 미묘한 필요충분조건 관계다. 연애를 못하는 원인을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중 주위 여성 동지들은 차가 없기 때문이란 새로운 가설을 ‘확고하게’ 제시했다. 그녀들 왈, “대학생 때는 괜찮은데 성인이 돼서도 데이트하는 데 차가 없는 남자는 구차해 보여.” “차 없는 남자는 운전을 귀찮아하는 것 같아. 기동력도 없어 보이고.” “말해 뭐해. 일단 다니기 불편하잖아.” 아마존 정글보다 더 험난한 연애 전선에서 차 없는 남자는 이 빠진 호랑이란 얘기다. 설마 하는데 한 측근은 차가 없다는 이유로 남자와 헤어진 적 있다며 생생한 증언과 함께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굴리는 자가용이 없어도 괜찮다는 한결 인자한 여자들은 아무리 차가 없더라도 운전면허는 필수라고 속을 긁어놓는다. 그래야 여행 가서 렌터카라도 이용할 수 있다나. 사실 이런 여자들의 말이 전혀 틀린 건 아니다. 자동차를 튜닝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걸 인생의 낙으로 삼는 친구가 말하길 “아들이 스무 살이 되면 차부터 사줄 거야. 그래야 연애를 제대로 할 수 있거든.” 그런 핀잔 섞인 조언들을 듣고 있자니 과거에도 했고 앞으로도 하게 될 뚜벅이 연애에 대한 자신감이 뚝 떨어졌다. 버스, 지하철에서 끈적끈적한 스킨십을 자행했던 호기도 그리워진다. 그래서였을까. 몇 달 전 소개팅 자리에서였다. “출근은 어떻게 하세요?” 서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가 오가던 중 상대방이 물었다. ‘버스 타면 금방 도착해요.’ 모범답안은 이렇게 간단했다. 그런데 목구멍에서 나오던 그 말이 혀 끝에서 얼어버렸다. 입술이 굳어버린 사이 머릿속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왜 물어보는 거지? 차가 있는지 없는지 떠보는 건가? 일전에 만났던 한 연애 컨설턴트의 조언이 머리를 스쳐갔다. 소개팅에서 실례가 될 법한 질문은 표현을 바꿔 물어보는 거라고. 차의 소유 유무를 확인하기 위한 연막인지 진심으로 출근 방법이 궁금해서 묻는 건지 그녀의 의중을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별것 아닌 질문에 괜스레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고 요즘 날씨가 좋아 운동도 할 겸 자전거로 다녀요.” 자전거는 분실한 지 오래, 내딴에 하얀 거짓말을 했다. 그때 떳떳하지 못한 태도가 트라우마가 됐는지 이후 만남의 장에서 “여기 주차하기 어렵네요.” “길이 막힐 것 같아 차는 집에 두고 왔어요.”라며 말문을 여는 여자에게는 깨갱하고 한 수 접고 들어가게 된다. 아무리 분위기나 진도가 좋았어도 헤어지면서 “집에는 어떻게 들어가세요?”란 질문을 받으면 환했던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도 여성 운전자 천만 명 돌파 시대를 살아가는 운전 못하는 남자의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전면허증을 따고 싶은 생각은 지금도 확고하게 들지 않는다. 아직까지 사무치도록 외롭지 않거나, 운전 못하는 남자를 마이너리티로 몰아가는 세상의 쓴맛을 덜 봤거나 아니면 그에 대한 반항심과 객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그런 미련한 남자를 조수석에 태우고 다닐 ‘핫’한 그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거나.*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9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