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영국의 대표 구두 브랜드 에드워드 그린

에드워드 그린은 파티나 공법, 꼭 맞는 피트, 굿이어 웰티드 제법으로 유명한 구두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timeless’와 ‘classic’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정진하는 영국의 대표적인 구두라는 사실. 에드워드 그린의 오너 힐러리 여사를 만났다.

프로필 by ELLE 2010.08.13


남성 패션이 재미있는 것은 알면 알수록 점점 메이드 인 이탈리아나 브리티시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넘어 궁극의 품질과 놀라운 철학을 가진 브랜드나 제품들을 직면하게 되고,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브랜드들이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메시지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떤 역사를 통해 당대 마켓의 거인으로 성장했는지, 혹은 특정 카테고리에서 정말 뛰어난 품질이란 과연 무엇인지 등에 관심을 두는 새로운 인종들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패션의 축은 메가 브랜드들의 마케팅과 패션쇼에서 도출되는 매뉴얼화된 룩이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거칠고 세련되진 않아도 철학을 갖고 실력을 갖춘 클래식 브랜드는 특유의 생명력으로 그에 대한 모종의 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한국 시장에 아직도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을 뿐이라 생각하지만.
물론 소개 방식이나 브랜드를 이해하는 접근법이 럭셔리 브랜드와는 여러 각도에서 다른 것도 한 이유겠다. 태생은 달랐지만 날렵한 남부 이탈리아의 수트와 단단한 영국의 수제 구두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피렌체의 귀족들은 영국 신사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내면화했는지 등의 이야기들은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도 필요하고, 그것을 시도해보는 경험도 뒷받침되어야 할 테니 부담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남자의 클래식이란 바로 그 맛이다. 어느 정도의 공부를 통해 워밍업을 하고, 다시 실질적인 경험으로 옥석을 가리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구도의 길인 동시에, 사람과 사회를 지켜온 역사와 예절을 내면화하는 인문학이 클래식이다.
‘에드워드 그린’이라는 걸출한 구두를 신으면서 마음속에 자리 잡은 하나의 걱정은 역시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면, 혹은 가치를 반영하는 가격의 의미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 면에서 클래식 브랜드들을 소개하는 것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가치를 알아주는 그날을 위해 누군가는 씨를 뿌려두어야 한다는 심정.
런던에서 1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노스햄프턴(Northhampton)은 영국 구두의 본산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실은 초원에 양 떼가 방목되고 굴뚝이 거의 없는 소박하고 작은 마을이기도 하다. 좌우가 역전된 도로, 풍성한 나무들, 오래된 것이 그대로 보존된 건물들을 찬찬히 둘러보는 중에 에드워드 그린의 오너이자 우아한 영국식 레이디인 힐러리 여사의 아름다운 표정이 서서히 나타난다. 영국식 구두의 자존심, 에드워드 그린의 공장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고, 차를 마셨고, 직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전혀 심각하지 않게 그러나 진지한 내용들을.

에드워드 그린이 명성만을 얻기 위해 구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브랜드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오너께서 직접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에드워드 그린은 120년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영국 브랜드이고, 좋은 품질의 구두를 만들기 위해 한 곳만 바라본 회사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오랫동안 비즈니스를 해왔지만, 한국은 아직도 생소한 느낌일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구두는 창업자 에드워드 그린이 1890년, 이 노스햄프턴에 작은 구두 작업실을 내면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개인용 구두에서 출발해 1930년대에는 가장 큰 군화업체로 성공하며 탄탄한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지요. 에드워드 그린은 당시 어니스트 헤밍웨이, 윈저 공 등이 사랑해주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나의 파트너였던 존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더욱 발전해나갔습니다.
여성으로서 남성 구두 브랜드의 오너가 된 특별한 스토리를 가지고 계시잖아요. 에드워드 그린이 전형적인 영국식 구두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계기였죠.
우리 공장이 있는 노스햄프턴에는 구두 공장이 참 많았어요. 전성기에는 약 60개의 구두 공장이 나름의 제품들을 부지런히 생산했지요. 지금은 다섯 개 정도만 남아 있으니 많이 변했지요. 세계대전까지는 모든 구두 공장이 군화를 생산하느라 아주 바빴습니다. 하지만 1940년대에 접어들어 전쟁이 끝나면서 군수품을 조달했던 영국 구두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쇠퇴할 수밖에 없었어요. 많은 구두 브랜드가 사라지고, 에드워드 그린도 70년대까지 부채가 폭증해서 몹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구두에 필생을 건 존이 단 1파운드에 에드워드 그린을 인수했습니다. 물론 엄청난 부채와 직원들을 모두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말이죠. 동구권 출신이었던 존은 이탈리아에서 구두를 공부했답니다. 구두 디자이너로서 존은 노스햄프턴의 다른 구두들과 에드워드 그린이 분명하게 차별화되기를 원했고, ‘파티나’라는 앤티크 공법을 브라운 컬러 구두에 최초로 도입했죠. 에드워드 그린을 완전히 탈바꿈시켰어요.
에드워드 그린이 결국 영국과 이탈리아의 랑데부에서 나온 작품이라는 멋진 이야기네요.
존이 에드워드 그린을 인수하기 이전의 영국 구두는 거의 블랙 일색이었어요. 튼튼하지만 너무 보수적이었다고 할까요. 존이 구두 컬러를 투톤으로 브러시하는 방식이나 다채로운 컬러들을 도입하면서 신사 구두의 기초가 브라운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죠. 그건 그가 생각이 자유롭고 다양한 컬러가 존재하는 이탈리아에서 교육받고 생활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난 지금도 영국 남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같은 영국인으로서 그들은 예절 바르고 정중하지만, 아주 멋지거나 귀엽진 않다고. 영국 남자들 중에 이탈리아 수트들을 제대로 입는 남자들이 정말 멋진 거 같아요. 이탈리아의 멋진 남자들이 영국 구두를 신듯이. 
항상 힐러리 여사의 우아함을 보아왔지만, 무엇보다 당신의 러브스토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와서 굉장히 기대되는데요.  
내가 존을 만난 건 1983년이었어요. 난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 갔죠. 나를 위한 많은 것이 파리에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랬죠. 대형 마켓의 마케팅을 하던 시절이었는데, 친한 친구의 결혼식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어요. 존은 자신을 구두 디자인을 하면서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그는 분명 매력적이었고, 미술이나 음악에 대한 취향이 나하고 무척 잘 맞았어요. 수트와 구두를 완벽하게 매치해서 입는 사람이었고, 타인의 말을 친절하게 듣는 사람이었죠. 그렇게 자주 만나 대화하고 각자의 도시로 돌아간 다음 다시 재회하면서 우리는 연인이 되었어요. 나는 파리에, 그는 노스햄프턴에 있었기 때문에 결국 존이 같은 공간에서 지내자고 제안했어요. 연인에서 동업자 관계로 변화되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망설이고 사양했지만, 너무나 끈질긴 요구에 승낙할 수밖에 없었어요. 존은 저에게 특별한 존재였으니까요.
그 특별한 인물의 사진이 당신 책상 바로 뒤에 걸려 있잖아요. 당신이 에드워드 그린을 잘 이끄는지 아닌지 매일매일 살펴보는 건가요.
매일 나를 쳐다보고 감시하는 거죠. 하하. 그가 에드워드 그린을 인수했을 무렵, 직원의 수는 50명쯤 되었어요. 하지만 그는 내게 자신이 50명만 책임지는 게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합쳐 적어도 150명은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라고 항상 말해줬어요. 우리가 하는 일은 그만큼 책임감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죠. 그렇게 함께 일했고, 멋진 구두를 만들어냈지만, 10여 년 전 그는 불행히도 이 세상을 떠났죠. 하지만 나는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어요. 존이 말했던 직원과 그 가족에 대한 책임을 이미 나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결국 내가 존의 자리를 이어받았고, 에드워드 그린의 오너로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신으신 그 구두도 에드워드 그린인가요?
제가 신은 구두는 에드워드 그린을 새롭게 인수해서 오프닝을 할 때 존이 저에게 와서 “구두 한번 맞춰 볼래요?” 하며 프러포즈 했던 것입니다. 그게 벌써 15년이나 지났네요. 당시 저는 “고마워요 존~ 조금 전에 페라가모 한 켤레 샀지만 하나 더 가질게요”라고 했답니다.(웃음) 그는 정말 구두만 생각했던 사람답게 구두로 프러포즈를 한 거예요.
2010년, 에드워드 그린은 창업 120주년을 맞았습니다. 에드워드 그린만의 문화 같은 것이 있을 듯합니다.
우리는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퉁명스럽게 만들어내는 구두도 아닙니다. 이미 충분히 느꼈겠지만, 에드워드 그린 공장의 모든 작업자는 당신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습니다. 전통에 충실한 작업을 하지만, 작업대에 고개를 푹 숙이고 인상 쓰면서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지나가는 우리에게 밝게 인사하고 농담도 건네며 자신의 작업을 즐겁게 설명하는 게 에드워드 그린 공장 사람들의 특징이에요. 물론 구두를 제작하는 프로세스에 관해서는 엄격하죠. 시간을 줄이기 위해 혹은 구두 생산량을 더 늘리기 위해 타협하는 일은 없습니다. 나도 공장을 더 크게 만들어서 더 많은 구두를 생산할 생각이 없어요. 지금처럼 좋은 품질의 구두를 일관되게 제작하되, 더 멋진 컬러와 디테일을 가진 제품들을 꾸준하게 실험하고 추가할 뿐이죠.




에드워드 그린은 차별화된 파티나(빈티지 채색작업) 공정과 다양한 사이즈 체계에서 나오는 꼭 맞는 피팅감, 그리고 구두 윗 부분과 바닥을 직접 꿰매는 굿이어 웰티드 제법으로 유명하다.

“에드워드 그린은 1890년, 노스햄프턴의 작은 구두 작업실에서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군화업체로 자리를 잡았지요. 1970년대에 나의 파트너였던 존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더욱 발전해나갔습니다.”



에드워드 그린의 노스햄프턴 공장. 에드워드 그린은 마케팅을 잘하는 회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고리타분한 사람들이 퉁명스럽게 만들어내는 구두도 아니다. 

다른 구두와 비교되는 에드워드 그린만의 강점이 있겠지요. 특히 존롭과 많이 비교되지 않습니까.
존롭과 에드워드 그린은 같은 국적을 가진 구두지만 그 안은 많이 다릅니다. 이건 구두를 직접 신어보면 알 수 있어요. 어떤 게 좋다고 입으로 직접 말할 순 없지만, 신어본 사람이라면 금세 안다니까요. 에드워드 그린이란 구두를 관통하는 철학은 ‘Timeless’와 ‘Classic’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압축됩니다. 좋은 제품은 과거와 미래를 따지지  않는 법이니까요. 과거에 정말 좋았던 건 앞으로도 사람들이 좋아할 게 분명하고, 한 사람이 젊은 시절에 발견한 최고의 구두는 그가 원숙함을 발할 때도 멋진 구두일 테죠. 에드워드 그린에서는 20년 전의 모델들도 ‘헤리티지’라는 모델로 지금도 변함없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의 고객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재의 에드워드 그린을 좋아하는 젊은 고객들 역시 20년, 30년 후에도 지금과 같은 디자인의 구두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브랜드의 구두를 신지만, 개인적으로 에드워드 그린은 제 발에 맞는 정확한 사이즈와 피트를 발견하는 데 도움이 된 구두였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드 그린의 강점이라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네요. 첫째, 차별화된 파티나(빈티지 채색 작업) 공정입니다. 버건디 컬러가 특히 유명한 에드워드 그린의 구두는 가죽이 원단 상태일 때 색상을 입히지 않고, 전체 구두를 완성한 후 채색합니다. 70여 개의 공정을 거쳐 구두가 완성되면 밑창과 굽을 직접 문질러서 손질한 뒤 세심하게 채색하고 다시 광을 내는 작업을 반복하여 가죽에 깊이 있는 색감을 입히는 것이죠. 둘째, 에드워드 그린은 구두의 피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발볼이 넓으면 본래 사이즈보다 큰 구두를 신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올바르지 않은 방법입니다. 큰 구두를 신으면 결국 앞등이 휘어지게 되니까요. 에드워드 그린에서는 자신의 발에 꼭 맞는 길이는 물론 볼의 너비에 정확히 맞는 구두를 신을 것을 제안합니다. 그래서 개인 고유의 발 모양에 맞는 다양한 사이즈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끈 묶는 방법조차도 철저하게 피트를 고려하여 반영합니다. 셋째, 웰트 가죽을 덧대어 구두 윗부분과 바닥을 직접 꿰매는 굿이어 웰티드 제법은 에드워드 그린의 특별한 구두 제작 공정 기술입니다. 우리 구두는 밑창이 닳았을 때, 밑창만 따로 분리하여 교체할 수 있어 구두를 더욱 오래 신을 수 있습니다. 이런 리페어 서비스를 통해 최대 20년 넘게 신을 수 있는 것이죠.
구두를 깊이 알아가기 위해서는 직접 신어봐야 한다는 문제를 넘어 정확한 사이즈를 신어야만 그 구두와 어울리는 옷의 분위기를 맞출 수 있겠군요.  
이를테면 내가 잰 당신의 발은 영국 사이즈로 5.5가 나옵니다. 그러면 에드워드 그린 구두로는 사이즈 6에 E나 F 중에서 맞는 넓이를 선택해 신어야 하죠. 영국 사이즈 6이면 이탈리아 사이즈론 6.5가 되지요. 그런데 이탈리아 구두를 즐기는 사람들은 6.5보다 더 큰 사이즈를 신는 경우가 많아요. 이탈리아 구두가 일반적으로 아주 부드러운 편이기 때문에 신을 때의 착용감에서 무리를 느끼지 않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에드워드 그린과 같은 영국 구두의 제대로 된 사이즈를 신으면 처음에는 발에 어느 정도 압박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다른 구두보다 조인다고 생각하거나 한 사이즈 큰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에드워드 그린의 구두는 신을수록 조금씩 조금씩 가죽이 미세하게 발에 적응하면서 결국에는 최적의 피트를 내는 구두가 됩니다. 구두에 시간이 결합하면서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제품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죠. 그렇게 제대로 된 사이즈의 라스트와 피트를 찾아야만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바지의 실루엣이 따라오는 겁니다.
대량생산이 미덕인 시대에도 여전히 수작업(Hand-Sewing)은 클래식 브랜드들의 핵심 철학이고 중요한 작업 방법이지 않습니까.
에드워드 그린은 지금도 빳빳한 돼지 털로 만든 바늘을 사용해 손으로 직접 가죽을 재봉합니다. 베스트셀러 구두인 도버(Dover)와 창립 120주년 기념 구두인 샌드허스트(Sandhurst) 역시 구두를 접합하는 부분을 손바느질로 완성해요. 재봉 담당자는 돼지 털의 뿌리 부분을 잘라내고 사포로 닦아 끝을 날카롭게 만드는 한편, 다른 한쪽 끝부분은 실과 연결하죠. 돼지 털의 갈라진 틈에 실을 꼬아 벌꿀 왁스로 매끄럽게 바르면, 이윽고 왁스가 녹으면서 돼지 털과 실이 단단하게 고정되도록 가죽으로 강하게 문지릅니다. 여기서 벌꿀 왁스는 구두 위의 스티칭을 봉합하는 데도 주요한 도구가 되죠. 구두 위의 스티칭을 새기는 데도 정교한 재봉틀을 쓰지만, 숙련된 작업자가 직접 두 번에 걸쳐 왕복하면서 균질한 스티칭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그런 과정들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진 않지만, 에드워드 그린을 신는 분들은 말없이 그 과정들을 느끼고 있을 거예요.
한국은 이제 고급 구두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한국 시장처럼 구두의 이해에 관해 출발 단계에 있는 곳에서는 어떤 자세로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요.
우리도 피티워모에 항상 참가하기 때문에 각국 바이어들을 보며 전 세계 시장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하게 축소된 미국 시장은 아주 서서히 회복의 흐름이 있어요. 원래 랄프 로렌 퍼플 라벨의 구두를 우리가 제작했는데, 지난 경제 위기 때 중단되었다가 다시 오더를 시작했거든요. 일본은 여전히 구두에 대한 이해가 매우 높아서 에드워드 그린 마니아가 아주 많죠. 최근 한국 남성복 시장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주한 영국 대사관을 통해서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구두를 최대한 많이 팔고자 하는 사람들은 아닙니다. 무엇보다 우리 구두를 정확히 이해하고 고객에게 브랜드 철학까지 알릴 수 있는 파트너와 함께 구두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구두를 다루는 사람들이 먼저 그 구두의 본질을 이해하고,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대로 알릴 수 있어야 합니다. 교육이 필요하단 얘기입니다.
동감입니다. 좋은 것이 왜 좋은지를 누군가가 설명하지 못한다면, 소비자들이 어떻게 공감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나눈 우리들의 대화도 결국은 ‘왜?’라는 질문의 연속이겠지요. 이번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정확한 표현입니다. 토마토와 초콜릿을 함께 먹지 않듯, 구두와 옷은 같은 철학을 가진 것들끼리 통하는 게 있어요. 에드워드 그린은 영국 클래식의 기준을 보여줄 것입니다. 에드워드 그린의 대표 시그너처 모델인 82E를 포함, 창립 12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제작된 버건디 컬러의 윙팁도 공개됩니다. 에드워드 그린 구두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한국 고객들이 좋아하는 구두 모델이 나오면 그것을 반영한 구두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을 한 분 소개해 주신다면. 그러니까 120년 동안 만들어졌던 에드워드 그린의 구두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구두 말입니다.
영국은 축구의 나라잖아요. 축구에 빠지는 걸 보면 남자들은 나이를 먹어도 어린애라니까요. 영국 프로축구 클럽 아스널의 팬인 어느 고객은 에드워드 그린 중 아스널의 라이벌 팀과 같은 이름을 가진 첼시(Chelseas) 모델이라면 질색을 했어요. 그런데 가장 좋아하고 매일 신는 구두가 하필 첼시란 말이에요. 그래서 첼시 구두에 아스널의 컬러인 레드로 줄을 긋고 그 위에 ‘Edward Green Arsenal’이라고 써달라고 요구했어요. 결국 메이드 투 오더 서비스로 그런 구두를 만들어줬더니 그가 매우 좋아했어요.
그 구두 신고 축구 안 한 게 다행이네요. 고맙습니다. 이제 공장을 좀 더 둘러볼래요. 여기서 보고 배운 것을 머릿속에서 절대 잊지 않도록 말이죠.
얼마든지요. 영국 속담에 부지런한 건 누구에게도 해를 주지 않는대요(Hard work never hurts anybody).
인터뷰, 글 남훈(란스미어 브랜드 매니저)



란스미어 매장을 찾은 힐러리 여사는 마치 자신의 자식을 자랑하듯 에드워드 그린의 모든 것을 설명하고, 가르쳐주었다.

“우리는 지금도 빳빳한 돼지 털로 만든 바늘로 가죽을 손으로 재봉합니다. 베스트셀러인 도버와 120주년 기념 구두인 샌드허스트 역시 손바느질로 완성해요.”


*자세한 내용은 루엘 본지 8월호를 참조하세요!

Credit

  • 에디터 송원석
  • 포토 심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