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 그의 연주와 삶에 대해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그의 연주엔 감정은 있으되 감상은 없다. 눈부시지만 터무니없는 묘기는 없다. 논리적이지만 현학적이지 않고 긴장에 차 있으되 강박적인 것은 아니었다.” 19세기 낭만주의 피아니스트 루빈슈타인에 대한 <뉴욕타임스> 수석 음악비평가 숀버그의 평을 이 남자에게도 적용하고 싶다. 피아니스트 임동혁, 그의 연주와 삶에 대해.::데이트, 기념일, 생일, 스페셜데이,감상,문화, 카페, 파티, 행사, 축제, 임동혁, 뮤직, 엘르, elle.co.kr:: | ::데이트,기념일,생일,스페셜데이,감상

flashObject2('winTop','/elle/svc/elle_admin/etc/Sub_Video_Player.swf', '100%', '320', 'flvpath=rtmp://movie.atzine.com/vod/REPOSITORY/2010/07/14/MOV/SRC/01AST022010071493474015766.FLV',','transparent'); “나는 ‘삶의 고뇌에 시달리는 천재’ ‘성마르고 신경질적이며 괴팍한 예술가’라는 상투적인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천재나 위대한 예술가의 삶에서 그런 이야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칼럼니스트인 AJ 제이콥스는 에서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에 대해 이렇게 썼다. 우리가 예술가들을 떠올릴 때 으레 대입하는 시선이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명제다. 임동혁을 생각하는 마음도 같다. 나긋나긋함과 격정을 오가는 연주, 곡의 감정에 따라 아주 세밀하게 움직이는 얼굴 근육들을 보며 그가 성마른 예술가일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게다가 그의 얼굴과 몸의 선은 너무 여리고 가늘다. 50kg이 채 되지 않는 몸무게조차 천재들 특유의 성마름에서 오는 저체중으로 보이기 십상이다.재작년 여름이었다. 더위에 지쳐 괴괴하기 짝이 없던 도시를 가로질러 그의 공연을 보러갔다. 유럽연합 청소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다. 그때까지도 임동혁은 저 먼 곳에 사는 예술가였다. 그런데 지난가을, 그 공연의 백스테이지 비디오 클립을 보게 됐다. 무대에 서기 직전, 백스테이지는 컴컴했다. 문틈으로 빼곡한 객석이 보였다. 임동혁은 어깨를 풀고 물을 마시며 서성거렸다. 그는 무대 밖을 내다보지 않고 문을 등지고 있었다. 누군가(오케스트라 지휘자인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로 보인다) 그의 등을 두드렸고, 임동혁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무대로 걸어나갔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예술가가 맞기도, 아니기도 하다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그리고 오늘. 그를 기다리는 마음은 복잡했다. 부서지는 볕을 비집고 임동혁이 나타났다. 길고 가느다란 이 청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촬영을 준비하는 1시간여 남짓, 피아노 줄을 팽팽히 당긴 것 같은 느낌이 계속됐다. “무대울렁증이 심해요. 어릴 때 동네 콩쿠르에 나갈 때부터 있었어요. 긴장감까지 즐기고 그런 거 아니에요. 없으면 좋겠어요. 내가 아는 소수의 피아니스트들은 빨리 무대에 나가고 싶어 안달하고 신이 나서 뛰어나가기도 해요. 하지만 ‘Fragile’한 그런 섬세함은 없죠. 긴장할 줄 아는 사람이 섬세한 연주를 할 수 있다 생각해요. 난 불안정한 거 맞아요. 예민한 것도 맞아요. 하지만 바늘 같은 성격은 아니에요. 일부러 예민함을 유지할 필요는 없어요. 내면과 생활이 안정되면 오히려 예술에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요.”팽팽하던 피아노 줄이 살짝 느슨해졌다. 그는 계속해 ‘아니야, 예술가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야’라는 말을 쏟아냈다. “극단적이고 괴팍한 예술성을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예술가라는 걸 방패 삼아 그 안에서 모든 게 허용되는 것도 싫어요. “난 아티스트니까!” 그래서 뭐요? 아니, 아티스트는 사람 아닌가요? 흔히 생각하는 것, 예를 들면 “반 고흐는 자기 귀를 잘랐대! 역시 예술가야!” 이건 아니죠. 내가 가장 예민하다고 느낄 때는 연주회 전 그리고 연습을 너무 안 했는데 연주회가 다가올 때예요. 한때 나는 연습을 엄청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긋지긋한 감정이 들어요. ‘아! 또 연습?’ 이런 거죠. 연습에 대해 어떤 이미지가 남아 있는 거예요. 막상 피아노 앞에 앉으면 열심히 하는데 앉기가 힘들죠. 나는 물리적으로 성실한 사람은 아니에요.” 그의 연주를 들으며 했던 불경한 생각,‘과연 모든 음표, 모든 악장에 혼신을 다할 수 있을까? 연주하며 딴 생각이 들 땐 없을까?’ 를 떠올렸다. “내 모든 걸 바칠 수 있는 연주는 적어요. 그러려고 노력하고, 자책도 하죠. 하지만 내가 죽는다는 마음으로 임하는 연주가 있고, 솔직히 좀 말아먹어도 된다 싶은 경우도 있어요. 순간적으로 집중하지 못하는 때는 분명히 있죠.” 이 고백은 임동혁이어서 유의미하다. 천재가 때로 온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무랄 순 없다. 오히려 그의 해석을 입혀 재건축 되는 곡들의 미세한 변화들을 감지하지 못하는 자신의 귀를 탓할 수밖에. 그에겐 연주 공간 내의 요소들 중에서도 안 중요한 것이 없다. “따뜻해야 돼요. 손가락이 풀려야 하니까요. 음향 상태는 드라이하면 안 돼요. 소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 발가벗겨진 느낌이거든요. 피아노 상태는 치명적이에요. 너무 새 것이어도 안 좋고 먹먹한 소리가 나도 스트레스를 받아요. 관객이 꽉 안 차면 맥이 빠지고, 관객과의 교감도 중요해요. 미묘한 애티튜드가 있다니까요. 앞자리에 앉아서 팝콘을 먹거나 축농증에 걸려서 중간중간 ‘스읍!’ 소리를 계속 내면 미치죠!”데뷔 10년, 7번의 콩쿠르, 3장의 앨범. 열세 살에 쇼팽 콩쿠르 수상으로 이름을 알린 그에겐 항상 ‘최초’ ‘최연소’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10대 시절을 비정상적으로 보냈죠. 고무줄처럼 팽팽히 당겨만 가다가 아예 ‘팡!’ 하고 튀어 버린 것 같아요. 극에서 극을 오갔죠. 지금은 좀 정리가 됐어요. 술도 많이 줄였고 오늘이 금연 첫날이에요. 그보다 걱정인 건 이제 미래예요. 어릴 땐 뭐든지 이상적으로 봤어요. 그때는 변명과 이유가 통하잖아요. 지금은 초조해져요. 아직 젊고 어린 연주자라고요?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현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에요.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인종 차별도 있어요. 실력이 전부도 아니고요. 예전에는 잘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미래를 대비해야겠다 싶어요.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고요. 글쎄, 꼭 취업을 준비하는 마음이랄까요?” 임동혁은 현실에 대해 얘기했지만 그는 여전히 이상주의자다. 꿈을 얘기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다짐을 얘기한다.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어떤 이정표들을 빨리 세워야겠다는 건 아니에요. 다른 연주자들의 활동을 유심히 보진 않아요. 자존심 상하잖아요. 물론 더 열심히 하는 계기는 돼요. 그보다 내가 의식하는 건 나 자신이에요. 나는 내가 만족스럽지 못해요. 내가 원하는 연주자 상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어요. 직업란에 ‘피아니스트’라고 쓰지만 어디 가서 피아노 연주자라고 얘기하지 않아요.” 그는 쇼팽 스페셜리스트라 불리지만 재작년 바흐 앨범을 냈고, 이번 6월 26일 디토 페스티벌에서는 라흐마니노프 곡을 시도할 예정이다. 그는 계속 피아노를 치고, 피아노를 탐험한다.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아주 난해해요. 피아노 콘체르토보다 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러면서 가슴을 건드려요. 좀 더 일찍 이런 곡을 느끼면 좋았을 텐데 왜 이제야 할까 싶어요.” 임동혁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모던하게 살아가는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자크 바전이 에서 “20세기 초반의 예술가는 상상할 수 있는 현실로부터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영토를 맹렬히 탐색했다.”고 말한 것처럼 계속 새로움을 탐색해 나가고 있으니까.촬영 세트를 바꾸는 사이, 임동혁이 동그랗게 등을 말고 의자에 앉았다. 무심히 앞을 보고 있는 그에겐 그가 얘기한 ‘fragile’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그의 옆모습을 은근하게 관찰하는데 성글게 짠 화이트 니트 소맷단 아래 작은 손이 보였다. 작은 손, 마치 여자 손처럼 작고 가느다란 손이다. “왼손은 피아노 건반 10도를 비교적 짚을 수 있고, 오른 손은 9도밖에 못 짚어요. 사람들이 내 손이 길다는데, 사실 손 자체는 매우 작은 편이에요. 가늘어서 길어 보이는 거겠죠? 내 신체 중 제일 잘생긴 부분이라 얘기하고 싶어요.” 천재의 면모를 가진 범인, 범인을 가장한 천재. 그는 어느 쪽일까? 판단은 쉽지 않지만, 분명한 건 우린 그가 계속 ‘fragile’ 하도록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HIS HIGHLIGHTS●1996 국제 청소년 쇼팽 콩쿠르 2위 입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함.●2001 프랑스 롱-티보 콩쿠르 우승, 솔로 리사이틀 상, 오케스트라 상, 프랑스 작곡가 해석 상, 파리음악원 학생상, 마담 가비 파스키에 상 등 5개 상 수상. ●2002 ‘피아노의 여제’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후원으로 EMI클래식 ‘젊은 피아니스트’ 시리즈에 추천받아 데뷔 음반 출시.●2003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편파 판정에 불복해, 수상 거부. ●2005 국제 쇼팽 콩쿠르 3위 수상. ●2007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없는 공동 4위 입상. ●2008 바흐 골드 베르크 변주곡 전국 투어. ●2010. 6. 26. 공연 예정.*자세한 내용은 엘르 본지 7월호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