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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레이 셔츠와 그래픽 패턴의 쇼츠는 프라다, 라피아 소재의 햇은 랑방 by 무이, 꽃 모양으로 연출한 스카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나 아사무사한 것 좋아해요.” 성글게 짠 밀짚모자에 꽃을 잔뜩 꽂은 채 속을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을 짓던 남자가 말한다. 건조하면서도 싱싱한 음성이다. 지금 스튜디오에 있는 이 남자는 송중기다. 영화 <쌍화점>에서 조인성의 호위무사로, 드라마 <트리플>의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로 우리에게 얼굴을 알렸다. 최근엔 드라마 <산부인과>에서 레지던트로 출연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작품, 어떤 캐릭터보다 해사한 얼굴로 먼저 기억된다. 따지고 보면 딱히 캐릭터와 겉돈 적도 없고 연기가 준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건 다 지나친 미모 때문이다. 미모는 송중기에 대한 오해를 만든다.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표정으로 시키는 대로 척척, 야들야들 감기는 스무 살 언저리의 미소년일 거라고. 그래서 별것 아니란 표정으로 ‘아사무사’를 발음하는 송중기는 낯설다. 스튜디오에 성큼성큼 들어와 안면 있는 스태프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인사하는 송중기. 컨셉트를 보면서 “아, 오늘 좀 ‘언니’처럼 하면 되겠구나.” 하고 얘기하고 샌드위치를 큼직하게 베어먹는 송중기. 같은 소속사 조인성 담당 매니저가 들리자 “어차피 오늘 머리 내려서 눈도 잘 안 보이는데 ‘조인성 휴가 나와서 촬영하다’ 이렇게 기사 내도 되겠네!” 농담 치는 송중기. 촬영을 마친 후 녹차를 타더니 후후 불며 마시는 송중기. 하나를 물으면 망설임 없이, 하지만 거칠지 않고 정갈한 단어를 술술 풀어놓는 송중기. 이거 정말 하나도 생각지 못했던 송중기라 혼란스럽다고? 지난해 11월, 자선 캠페인 ‘쉐어 해피니스’ 촬영을 위해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엘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스물여섯,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성장하는 남자다. 우리는 어쩌면 자세 다시 잡고 바로 앉아 그를 처음부터 다시 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생각은 있었어요, 연예인에 대해. 물론 구체적인 건 아니었고 그 나이에 으레 그렇듯 그냥 한번 해보고 싶다는 거였죠.” 하지만 스스로 표현하듯이 ‘지르는’ 성격의 송중기에겐 ‘그냥 한번’이 아니라 ‘업’이 됐다. 그의 첫 결과물은 영화 <쌍화점>이었다. 여기서 그는 연기와 촬영에 대해 알게 됐고, 배우 조인성과 임주환을 얻었다. 조인성은 사진 촬영도 연기도 가장 많이 참고하는 배우요, 좋아하는 형. 나이나 커리어 시작점이 비슷한 임주환과는 서로 대화하고 격려하고 공부하는 동지가 됐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를 통해 학생 송중기는 연기자 송중기가 됐다. 아름다운 남자들이 한 무더기로 출연한 <쌍화점>, 고만고만한 새 얼굴들 사이에서 송중기가 살아남아 대중이 인식하는 범주로 들어온 비결은 뭘까? 미모, 연기, 열정 등이 모두 해당되겠지만 자기 확신과 의지를 첫 손에 꼽아야 할 것 같다. “시작이 늦은 편이죠. 주변 반응이 미적지근했어요. 학교 잘 다니다 왜 그러냐, 그냥 한번 해보는 거냐 등등. 그런데 내 생각이 잡히니까 흔들릴 게 없더라고요.” 지난 11월에 만났을 때 “본인이 잘생긴 걸 아는지, 워낙 유명한 동네 스타 아니었는지”를 질문했다. 하도 줄기차게 물어대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는 수긍했다. 이런 말을 덧붙이며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했죠.” 그 연장선상에서 배우 일을 택한 건 아닐까? “배우라는 존재를 화려하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물론 실제로 화려하게 사는 이들도 있죠. 하지만 내 경우엔 데뷔해도 생활은 그냥 내 생활이더라고요. 학교 갈 때 버스도 타고 그래요. 내 중심을 가지고 가니까 기대나 예상과 달라 충격을 받거나 당혹스러움에 시달리고 그러지도 않았어요. 배우도 하나의 직업이잖아요. 그보다 가장 생각지 못했던 부분은 이거예요. 내가 작품을 많이 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운 좋게 신인치고 단시간에 작품을 많이 했어요. 아니, 작품이 많다기보다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는 말이 맞겠네요.” “사무실에서는 ‘안 하면 어떠냐’는 얘기도 있었죠. 하지만 죽이는 것도 해보고 싶었지만 살인당하는 느낌도 경험해 보고 싶었어요.” 엥? 무슨 소리냐고? <이태원 살인사건> 얘기다. 그는 잠깐 얼굴을 비추자마자 바로 죽는 피해자로 등장했다. 의외의 선택이긴 했다. 마침 ‘엄친아’ 바람도 있었겠다, 어디 하나 모난 곳 없이 호감으로 등장한 배우의 행보치고는. <산부인과>도 좀 ‘다른’ 선택이었다. 이번에도 송중기 스스로 하겠다고 결정한 작품이었고 결론적으로는 잘한 작품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