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을 빛낸 한국의 여배우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그날 밤, 칸의 레드카펫은 동양에서 온 작은 체구의 여배우를 위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전도연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2007년 칸 영화제 시상식장에 울려 퍼지던 순간 객석에 앉아 있던 송강호와 이창동 감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한국 여배우 최초의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금빛 드레스를 입고 감격에 찬 수상소감을 하던 전도연의 모습은 어느 나라 어떤 여배우보다도 빛났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올해 칸 영화제는 어느 때보다 황금종려상을 둘러싸고 세계각국에서 날아온 작품들로 경쟁이 치열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국 영화 세편이 칸을 찾았다. 하나 같이 참 예쁜 여배우들이 나온다. <하녀>의 전도연, <시>의 윤정희, <하하하>의 문소리다. 비록 여우주연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여배우들이 있어 칸이 다시 한번 빛날 수 있었다. ::영화, 한국영화, 하녀, 시, 하하하, 전도연, 윤정희, 문소리, 임상수, 이창동, 홍상수, 엘르, 엣진, elle.co.kr:: | ::영화,한국영화,하녀,시,하하하

전도연은 평범하다. 여배우치고 출중한 외모의 소유자가 아니다. 조금 호감가는 외모 정도로 보인다. 강렬한 이미지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배우들에 비하자면 전도연은 옆집 사는 누나 같다. 그런 그녀가 한계가 없는 듯 매 작품마다 연기 변신을 하며 칸에서 여우주연상마저 수상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성향이 좀 다르긴 하지만 전도연은 프랑스의 이자벨 위페르와 비교할 만하다. 위페르도 출중한 외모와는 거리가 먼 얼굴을 지녔다. 그녀는 시종일관 무표정하다. 그럼에도 그녀가 놀라운 것은 그 무표정 안에 온갖 감정을 담아낼 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전도연은 작품 속에서 위페르만큼 무표정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전도연의 얼굴에는 그녀의 연예계 데뷔작인 부터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 가득하다. 전도연도 위페르와 유사하게 앳된 소녀의 감성 속에 온갖 감정을 녹여낼 줄 안다. 그렇게 전도연 특유의 소녀 감성을 고수한 채 복합적인 연기가 가능했다. 이번 신작 에서도 그녀는 ‘은이’라는 쉽지 않은 캐릭터를 그녀만의 감성으로 잘 소화했다. 1960년 원작 에서 하녀 역의 이은심의 연기가 무표정함 속에서 서늘함을 담고 있다면 리메이크작 에서의 전도연은 변화무쌍하다. 그녀는 은이를 통해 소녀적인 감성 속에서 순진무구함을 표출하면서도 매끈한 육체의 관능성을 지니고 있다. 눈빛의 미세한 변화만으로 욕망에 충실하며 후반부엔 주인집 남자 훈에게 배신당한 뒤 복수에 불타는 여인의 모습까지의 다채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여인의 모습을 거침없이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던졌던 전도연은 여기엔 없다. 대신에 좀 더 미묘하고 제스처 하나, 눈빛 하나로 복합적인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보다 원숙한 그녀가 있다. 욕조 속에 들어가 물 속으로 사라졌다가 관능적인 육체로 매끈하게 튀어오르는 의 이미지는 어떤 캐릭터든지 장애물이 없는 것처럼 매끈하게 소화해내는 그녀를 닮았다. “선생님, 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 영화 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대사는 윤정희가 연기한 미자의 캐릭터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찬 표정으로 사물을 들여다보는 미자의 모습은 육체의 나이는 육실 육살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소녀적인 감수성으로 충만한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소박한 질문에는 ‘시’라는 인생의 회환과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열망이 포함되어 있다. 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진리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자는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가녀린 육체로 세상을 버티며 만만치 않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시에 대한 질문에 답하는 것도 힘겨울 터인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손자가 끔찍한 사건에 연루되어 그 도덕적 책임도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자는 연기하기가 까다로운 캐릭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복잡한 상황에 처한 여성의 내면을 16년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원로배우 윤정희가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그것도 전혀 과잉되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이 영화에서 윤정희는 마치 그녀 자신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 너무나 자연스럽다. 놀랍게도 극중 이름 미자는 윤정희의 본명이기도 하다. 미자는 내적으로 손자로 인해 자살한 여중생에 대한 책임을 느끼는 등 심한 갈등을 겪는 여인이지만 외적으로는 언제나 산뜻한 옷차림에 화사한 미소를 짓고 엉뚱한 발언도 하면서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범하게 행동한다. 윤정희가 표현한 미자는 그러한 평범함을 잃지 않으면서 그 속에 온갖 삶의 표정들을 담아낸다. 너무나 평범해서 그녀의 겉모습만 보면 그녀가 직면해있는 심각한 상황을 감지하기 힘들 정도이다. 미자가 직면한 상황들은 너무나 극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초연한 듯 보인다. 윤정희의 연기는 과장됨과는 거리가 멀며 그런 면에서 그녀는 이전 이창동의 여인상과도 다르다. 그녀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말투에는 호기심 많은 순박함과 순수함이 묻어있다. 그녀는 무엇을 지긋이 응시하거나 의문이 가득한 눈망울로 감정을 표현한다. 에서 윤정희의 연기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박함’일 것이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순수한 열망이 가혹한 세상을 견디어내고 마침내 인생의 시를 완성하였을 때 그녀의 소박함은 그것을 뛰어넘어 일본 영화감독 미조구치 겐지의 여인들과도 닮은 숭고함으로 승화된다. 그렇게 그 자체로 시를 닮은 윤정희의 ‘미자’는 고결한 존재로 남는다. 홍상수식 표현을 빌리자면 의 문소리는 ‘예쁘다’. 에서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예쁘다’라는 단어는 여러번 등장하는데 그 단어가 반복될수록 ‘예쁘다’는 통상적인 의미를 넘어서 (의미가 확장되어) 다른 언어적인 아우라를 획득한다. 에서 문소리가 예쁘다면 바로 그런 특별한 의미에서이다. 에서 문소리가 하는 모든 행동이 예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흔히 우연과 아이러니에 기대어 벌어지는 상황들 안에서 등장인물들에게 마음껏 자유를 부여하고 있다면 문소리는 홍상수가 만들어놓은 운동장 안에서 그 어떤 홍상수의 인물들보다 물 만난 고기마냥 가장 잘 뛰어논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문소리라지만 홍상수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펄떡대는 희극적인 문소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에서의 문소리는 그야말로 ‘발견’이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다. 데뷔작 의 청순하고 조용한 ‘순임’과 의 장애인 ‘공주(이창동의 여인들)’부터 이나 에서의 거침없이 벗어제끼는 과감한 도발녀, 의 억척아줌마, 에서의 솔직하고 섬세한 연기까지 그녀의 연기 변신에는 한계가 없었다. 이제 문소리가 뭘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의심을 할 즈음 그녀는 우리의 뒷통수를 내려치며 홍상수의 여자 캐릭터들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할 만한 ‘왕성옥’을 완성시켰다. 통영의 관광 해설가로 일하면서 그녀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때, 사귀는 남자 친구의 외도를 목격하고 갑자기 그를 업어주겠다는 말을 할 때, 한 움큼 풀을 뽑아들고 문경(김상경)에게 찾아가 따질 때, 표준어와 섞여서 튀어나오는 통영의 사투리를 구사하며 문경에게 ‘살찐 뱀’이라는 말을 할 때 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생동감으로 가득한 엉뚱녀를 사랑하지 않을 재간은 없어보인다. 성옥의 4차원 캐릭터는 시종일관 폭소를 자아낸다. 그녀는 흡사 하워드 혹스의 에서의 캐서린 헵번의 엉뚱함이나 르느와르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성들의 생동감을 닮아있다. 문소리는 대책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옥을 연기하면서 한편으로 그녀가 정호(김강우)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을 하며 천상 여자의 모습을 보이는 순간의 섬세함도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마치 그녀 자신이 왕성옥이 된 양 천연덕스럽게 연기한다. 자연스러운 연기 속에서 우리는 이 엉뚱녀의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의 발견, 문소리는 정말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