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부터 세이셜까지 모험가 4인의 흥미로운 여행기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마음에 품고 있던 풍경을 마주하고 돌아온 작은모험가 4인의 이야기 | 여행,모로코,야쿠시마,세이셸,카오야이

   ━  원시의 섬으로 | 야쿠시마   ‘섬’에 로망을 가졌던 적 있다. 육지로부터의 고립을 원하는 자들을 위한 곳! 몇 번 홀로 떠나보고 깨달았다. 운전할 줄 모르는 젊은 여자에게 자연은 뭘 보여줄 생각이 없으며, 동네 아저씨들 이목만 끌다가 진짜 세상에서 고립될 수 있다는 걸…. 야쿠시마로 떠나게 된 건 정확히 앞의 경험들이 선사한 교훈 때문이었다. 자연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을 것. 야쿠시마는 수천 년간 자란 삼나무 숲과 협곡이 잘 보존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섬이다. 그러나 완전히 개발된 관광지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해발 500m의 입구까지 구불구불 올라가야 모습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는 이곳의 자연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원령공주>의 배경으로 삼았을 정도로 태곳적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으니까.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린 탓일까. 협곡과 나무가 어우러진 ‘시라타니 운스이교’ 삼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야쿠스기 랜드’를 걷는 동안 사람도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아주 얕게만 숨을 쉬어도 닿는 숲의 공기와 냄새, 바위와 나무 표면을 감싼 푸른 이끼는 왜 옛날 사람들이 숲과 자연을 ‘신성하다’고 여겼는지 짐작하기에 충분했다. 나조차 천년 넘은 삼나무 기둥을 얼싸안고 기도를 올렸으니까. 굵은 빗줄기가 잦아들 즈음 우비를 벗어 던지고 분무기처럼 분사되는 비를 맞으며 트레킹 코스를 뛸 때의 해방감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런 인간쯤은 익숙하다며 제 할 일을 하던 원숭이들의 모습도. 이마루(<엘르> 피처 에디터)    ━  별을 찾아서 | 모로코     초등학생 때 우연히 마주했던 밤하늘이 기억에 남아 있다. 별이 가득했던 강원도의 밤. 나도 모르게 탄성을 쏟아냈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은 흐릿해도 그 장면은 어제 본 하늘처럼 또렷하다. 언젠가는 고요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꼭 만나고 말겠다는 다짐은 늘 내 안에 있었다. 바람은 사하라 사막에 가는 것으로 이어졌다. 먼저 모로코 마라케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사하라 사막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버스를 이용하는 것뿐. 마라케시에서 사하라 사막 입구인 메르주가까지는 차로 12시간이 걸린다. 왕복으로 치면 버스에서 꼬박 하루를 보내야 하지만, 지금의 내가 앞으로 나의 가장 젊은 나이라고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메르주가의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고 짐을 푼 뒤 다음날 아침, 1시간 동안 귀여운 낙타를 타고 좀 더 깊은 사막으로 들어갔다. 줄지어 가는 낙타에 올라타 사막여우의 발자국을 찾으며  가다 보면 당일 묵을 캠프에 도착한다. 사막에서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지만 비현실적인 게티 이미지 같은 풍경은 넋을 놓고 보게 된다. 바람에 실려가는 모래가 새로운 언덕을 만들고, 아무도 닿지 않는 길에 내 발자국을 새길 때 찾아오는 오묘한 행복은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 밤이 오기 전, 다 함께 모래언덕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보드를 타고 시원하게 내려오면 마치 대자연에 내가 떨어진 기분이 든다. 내려온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길은 험난하지만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그렇게 모래에서 뒹굴다 보면 밤이 찾아온다. 여기까지 온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다. 사막의 밤하늘을 보고 싶다는 것. 수십 시간을 들여 날아간 곳에서 꿈꾸던 하늘을 목도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상상했던 것처럼 새까만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지 못했다. 하필이면 밝은 달빛이 별을 가리는 보름달 시기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가 뜨기 직전 금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완전한 고요 속에서 신비로운 새벽의 어둠을 느끼고, 대자연을 화장실(!)로 사용한 것은 여전히 특별한 기억이다. 서울에 돌아온 지금도 종종 하늘을 바라본다. 그때 본 오리온자리가 지금은 어디에 있더라, 생각하면서. 이혜미(<엘르> 패션 에디터)    ━  안녕, 마리온 | 세이셸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약 1600km 떨어진 이 섬나라는 윌리엄 왕세자 부부나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 가족 등 유명인과 허니무너들을 위한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나를 세이셸로 이끈 건 10년 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였다. 인간에게 붙잡힌 세이셸 코끼리거북 ‘마리온’이 고향을 그리며 120년간 32회에 걸쳐 탈출을 시도하다 끝내 죽음을 맞는 내용. 마음 아픈 내용과는 별개로 화면에 비친 세이셸의 풍광은 본디 신화와 전설이 키운 거북에 대한 내 환상을 부추겼다. 푸른 바닷속에서 거북과 함께 헤엄칠 수 있는 기회! 비록 세이셸 코끼리거북은 멸종됐지만 세이셸에는 아직 지구상에서 가장 큰 거북 종인 알다브라 코끼리거북이 있다. 그렇다면 세이셸을 이루는 115개의 섬 중 어떤 섬에 가야 할까? 누구나 추천하는 주요 섬은 세이셸의 관문이자 수도가 있는 마헤 섬,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프랄린 섬, 소개 책자의 커버 사진을 장식하는 라디그 섬이다. 내 경우 다시 기회가 온다면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은 라디그 섬이었다. 전 세계 여행자를 인구 2000여 명의 작은 섬으로 불러모을 만큼 아름다운 ‘앙스 수르스 다르정(Anse Source d’Argent)’ 해변이 있는 곳. 불쑥 솟아오른 기이한 화강암과 눈부시게 맑고 청량한 바다는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을 선사한다. 자전거를 타고 근사한 해변 사이를 달리며 왜 마리온이 이토록 여기에 돌아오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코끼리거북은 만났냐고? 물론! 스노클링을 하면서 바다거북과 함께 헤엄을 친 것은 물론, 느릿느릿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육지거북과도 알은척을 했다. 그곳의 모두가 안녕하기를. 서다희(넥스트 시티 프로젝트 기획자)  ━  촉디! 카오야이!  | 카오야이   지금 살고 있는 방콕은 산은 물론 작은 언덕조차 없는 완전한 평야라 할 수 있다. 서울에서 30년간 살며 등산과 캠핑을 즐기던 나에게 산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것은 늘 마음 한구석에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다. 그래서 카오야이(Khao-Yai)로 떠났다.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이곳은 태국어로 ‘거대한 산’이라는 의미. 이름만 들었을 뿐인데도 대자연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나?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곳은 세계 5대 자연 생태계 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도 등재됐다. 서울의 3배가 넘는 넓은 면적은 원시림과 강, 폭포, 산, 동굴, 초원 그리고 다양한 동식물을 포용한다. 그곳에서 아주 캄캄한 밤, 트럭 위에 올라타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사파리 투어에 참가했다. 혹시 호랑이가 나타나서 공격하면 어쩌지? 가이드가 허리에 찬 긴 칼과 총이 긴장감을 더했다. 어떤 동물은 트럭이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중에는 호저도 있었다. 호저는 슈퍼사이즈 고슴도치 같은 생김새로, 검색해 보니 ‘산미치광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웃겨 몇 번이나 이름을 되뇌며 웃었다. 야생 호랑이나 코끼리는 발견하기 매우 어렵다고 연신 강조하는 가이드를 보며 반쯤 포기하던 찰나, 갑자기 엄청난 울음소리가 들렸다. 코끼리 가족이었다! 아기부터 어른 코끼리까지 예닐곱 마리의 코끼리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신비롭고 경이로운 장면. 가이드는 우리를 향해 엄지를 들고 “촉디 촉디(운이 좋다!)”를 외쳐댔다. 그렇게 캄캄한 밤, 달리는 트럭 위에서 쏟아질 듯 가까이 떠 있는 별들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야생 코끼리 가족을 만났고, ’산미치광이’와 사슴 무리가 내 뒤를 쫓아왔다.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주이킴(이너프 포 투데이, 0316film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