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의 대모' 아녜스 바르다를 추억하다 | 엘르코리아 (ELLE KOREA)

누벨바그의 대모이자 진짜 여성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인. 마지막 순간까지 새롭기를 멈추지 않았고 유머를 잃지 않았던, 벌써부터 그리운 그 이름 아녜스 바르다. | 프랑스 영화감독,아녜스 바르다,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영화,누벨바그의 대모

    젊은 시절의 아녜스 바르다.   포토그래퍼 JR과 함께 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두 사람은 나이차가 무색한 호흡과 교감을 보여줬다.   프랑스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3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누벨바그의 대모’라고 불렸던 그는 죽기 전까지 활동을 쉬지 않았다. 올해 1월 파리 시네마테크에서는 아녜스 바르다의 전작전과 마스터클래스가 있었고 2월에 열린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유작이 된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를 발표했다. 아녜스 바르다는 영화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과거의 감독이 아니라 여전히 흥미로운 신작을 발표하는 영화감독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포토그래퍼 JR은 바르다의 사진을 실물 크기로 만들어 풍선에 달아 하늘에 날려보내는 짧은 영상을 만들어 SNS에 공유했다. 마지막까지 살던 집 앞에는 사람들이 놓고 간 꽃다발들이 쌓였고 칸영화제 위원장을 지냈던 프랑스 영화인 질 자코브는 “지혜롭고 생생하며 다정하고 영적인, 크게 소리내 웃고 재미있으며 종잡을 수 없는”이라는 말로 아녜스 바르다를 그리워했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은 25세에 첫 영화를 발표했다. 1955년에 만든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첫 번째 누벨바그 영화로 평가받는데, 프랑스어로 ‘새로운 물결’을 뜻하는 이 영화 사조의 시작은 1958년 클로드 샤브롤의 <미남 세르주>라고도 한다. 기존의 영화 언어를 깨고 만들어낸 새로움으로 따지면 아녜스 바르다가, <카이에 뒤 시네마> 출신의 비평가 출신 영화감독들이 연출한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이라는 뜻으로 따지면 클로드 샤브롤이 누벨바그의 첫 순간을 장식한 셈이 된다. 영화평론가도 시네필도 아니었지만, 아녜스 바르다는 문학과 예술사에 빠져 있었고, 책처럼 읽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실제로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야생 종려나무>의 구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가지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며 갈등과 긴장을 고조시킨다. 프랑스 영화사가 조르주 사들은 이 작품이 ‘프랑스 누벨바그의 진정한 첫 번째 영화’라고 평가했다. 헤어질 위기에 처한 두 남녀가 라 푸앵트 쿠르트 근처에 있는 남자의 고향인 어촌 마을을 찾는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죽음과 결혼, 사람들의 다툼 등이 연인의 여정과 번갈아 보여지며 그들의 내면의 갈등 과정을 드러낸다. 인간의 내면과 외부 사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결말로 나아가는 방식은 저예산 작품에 데뷔작임에도 새로운 영화적 재능의 탄생을 생생히 보여줄 수 있었다. 아녜스 바르다의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은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여성을 영화에 담아내는 방식에 있다. <히로시마 내사랑>(1959) <네멋대로 해라>(1960)를 비롯한 누벨바그 대표작들은 여성들을 ‘아름다운 대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여성의 내면을 영화적으로 구현하기로는 아녜스 바르다를 따라올 연출자가 없으리라.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는 암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여성 클레오가 파리 거리를 2시간 동안 서성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영시간 90분은 ‘5시부터 7시까지’라는 제목처럼 실제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혹은 아직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 초조한 기다림을 담아낸다. 클레오는 병원 근처를 불안한 발걸음으로 맴돌고, 초조한 마음에 쇼핑을 해보려 하거나 옛 친구와 수다를 떤다. 사랑의 예감도 그녀를 스쳐간다. 많은 영화들이 편집해 버리는 2시간을 아녜스 바르다는 영화의 전면에 내세운다. 여기에 낯섦과 새로움이 있다. 2시간 동안 클레오는 심경의 변화를 겪는데, 그것은 검사 결과 때문이 아니다. 5시의 클레오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면 7시의 클레오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무엇이 클레오를 바꾸었는가. 근심과 초조를 달래기 위해 파리의 길을 배회하던 클레오는 삶의 가능성을 음악과 새로운 만남, 대화를 통해 수집해 간다. 매 순간 우리를 지상에 붙들어놓는 작고 분명한 행복의 가능성이 영화에 담긴다. 아름답고, 사랑에 죽고 살고, 울부짖고, 신경질적이고, 불안으로 다른 이를 괴롭히는 식으로 어떤 단면이 극대화한 여성들의 모습이 아니라, 진짜 여자의 모습이 여기 있다.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에는 두 여성이 등장한다. 젊은 페미니스트인 여성과 가족을 꾸린 아이들의 어머니인 여성. 그들이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을까. <방랑자>(1985)의 여자는 끝없이 걷는다. 외로움과 분노가 그녀가 걷는 길에 있다. 그리고 철저히 혼자다. <방랑자>는 제4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동사한 변사체로 등장하는 떠돌이 모나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모나의 이름도 생사 여부도 알려주지 않은 채 살아생전 모나를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 기억을 묻는다. 여성에게 기대되는,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규범을 전부 거부한다면 어떤 삶이 펼쳐질까. 무엇을 착취하거나 착취당하며 살게 될까. “움직이는 한, 난 괜찮아”라는 모나의 말을 우리는 어디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패션 아이콘이던 제인 버킨이 등장한 <아녜스 V에 의한 제인 B>(1988)는 제인 버킨의 얼굴을 그저 아녜스 바르다와 마주보게 만듦으로서 무수한 사진 속 이미지로 익숙하던 제인 버킨과 다른 이미지의 주인공을 포착해 낸다. 아녜스 바르다가 이런 인물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비결은 ‘수집가’로서의 면모에 있다. 아녜스 바르다는 “나도 사람의 만남과 감정을 ‘줍는’ 여자”라고 말한 적 있다. 중요한 것과 쓸데없는 것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수집가의 눈이 무엇을 보는가에 달려 있다. 다른 이가 필요 없다고 평가한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으로 영화를 만든다면, 다른 영화들과는 무엇이 다를까. 다큐멘터리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 역시 마찬가지다.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의 줄거리는 이렇다. 파리의 시장 상인들이 문을 닫고 청소부가 청소하기 전까지 시장 바닥에 떨어진 곡식이나 과일들을 줍는 사람들이 있다. 아녜스 바르다는 이 영화에 대해 “이제는 정치, 철학, 사회 문제 등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주제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어떤 느낌을 나누고 연대감과 동지애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는데, 영화의 제목과 첫 이미지는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이라는 유명한 회화 작품과 관련 있다. 좋은 결실을 따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중문화가 주로 다루는 것이라면, 이 작품은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서 잔여물을 줍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추수가 끝난 대지에 남아 있는 농산물이나 과일을 줍는다. 도시의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줍는다. 버려진 물건을 모아서 작품을 만든다.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8)은 삶과 예술이 분리될 수 없음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게 전한다. 우연히 만나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떠올리고 포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우리가 삶에서 놓치고 있는 예술적 영감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30대 남성 사진작가 JR과 80대 여성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는 여정을 함께하며 어떤 다른 것을 발견해 갈까. 두 예술가의 동행을 담은 다큐멘터리라 더욱 선명하게 주관적 성찰이 드러난다. 아녜스 바르다는 근작으로 오면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중심으로, 자신이 직접 등장하고 말하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그를 향한 애도는 그렇기에 카메라를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아녜스 바르다를 만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하리라. 5월 2일부터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마지막 영화 <아녜스가 말하는 바르다의 마지막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며, 지난해 개봉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도 강력 추천한다. 나이 든 여성의 자연스러운 얼굴과 삶, 관심사를 이렇게 본 일이 있었던가. 여기에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