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레이스 셔츠는 Pushbutton.
신화 속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러플 셔츠는 Niche for Groom.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다. 샤넬 홍보 팀에서 엄격한 컨피덴셜을 강조하며 은밀한 제안을 해왔다. 오는 9월, 샤넬에서 ‘보이 드 샤넬’이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남성 메이크업 라인이 출시될 예정이고, 전 세계에 릴리즈될 모델로 이동욱이 선정됐다는.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알리는 데 <엘르>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이 초특급 제안을 수락한 후부터 이동욱의 지난 행적을 더듬기 시작했다. 드라마 <학교>의 풋풋한 소년부터 <도깨비>의 비현실적인 저승사자, <라이프>의 비밀스러운 예진우까지. 배우 이동욱, 남자 이동욱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샤넬 파리 본사의 기대와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데다, 소식을 들은 아시아권 <엘르>에선 이미 그들의 에디션에 화보를 싣겠노라 성화였으니. 대체 이동욱의 무엇이 한류 팬들은 물론 까다로운 프랑스인까지 사로잡았는지, 그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통해 샤넬이 진취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현대 남성성은 어떤 것인지 <엘르>의 시선으로 새롭게 정의하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뒤, 샤넬 홍보 팀과의 미팅. 그들은 막 파리의 샤넬 팀과 광고 캠페인 촬영을 하고 왔다고 했다. 샤넬 본사도, 코리아도 그리고 이동욱 팀까지 모두가 만족스러웠던 작업이었다며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말간 피부, 입체적인 이목구비, 무엇보다 드라마가 가득 깃든 눈빛과 깊은 연기력까지. 지금 샤넬이 그리려는 현대 남성성의 아름다움을 이동욱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본래 입술이 너무 붉어(그 유명한 이동욱 자연 틴트) 립 메이크업을 지워달라고 요청했다는 해프닝을 들려주기도! ‘보이 드 샤넬’이 말하고자 하는 남성성은 이렇다. “컬러, 애티튜드, 제스처…. 그 어떤 것도 여성성과 남성성을 절대적으로 구분 지을 수 없다. 아름다움은 결코 성별에 관한 것이 아니라 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화장하는 남자는 말 그대로 충분히 남자다울 수 있다.” 이 신선하고도 진보적인 비전을 위해 <엘르> 카메라는 이동욱의 심연 속 자아를 끄집어내기로 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신도 인간도 아닌, 소년도 남자도 아닌, 이동욱의 새로운 페르소나. 드라마 촬영으로 한창 바쁜 와중에도 그는 이 다소 낯선 컨셉트에 몰입해 주었고, 우리는 이를 지켜보며 새로운 남성상의 시대가 열렸음을 확신했다.
블랙 터틀넥은 Lanvin by Mue.
타이 디테일의 아이보리 셔츠는 Caruso.
BEAUTY NOTE
자연스러운 피부 보정 필터 효과가 있는 르 뗑으로 피부를 고르게 완성했다. 깔끔하고 강인한 눈썹은 펜슬 타입으로 정교한 연출이 가능한 스틸로 쑤르씰을 사용한 것. 입술은 매트한 모이스처라이징 립밤인 르 밤 레브르를 간편하게 터치해 마무리했다. 사용 제품은 모두 Chanel.
블랙 레이스 셔츠는 Pushbutton.
처음 ‘보이 드 샤넬’의 캠페인 모델 제안을 받았을 때 기분은 “샤넬 뷰티에서 나를?” 당황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죠. 남자를 위한 메이크업 라인을 최초로 론칭하는데, 이를 처음 알리는 얼굴이 저라니 감사한 마음이었죠. 파리 본사 팀의 외국 스태프들과 작업하는 것도 좋은 경험일 거라 기대했고. 막상 가보니 확실히 우리네 작업 스타일과 정서와는 다른 점이 있어 처음엔 우왕좌왕했지만, 곧 서로에게 적응하고 결과적으로 즐겁게 임했어요. 안 그래도 결과물을 좀 전에 봤는데, 다들 멋지다 하니 다행이죠.
단순히 남성 메이크업 라인이라고 하기엔 이번 ‘보이 드 샤넬’ 론칭은 그 의미와 상징성이 깊다. ‘BE. ONLY. YOU.’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기존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규칙을 창조하는, 남성을 위한 새로운 뷰티 스타일링을 제안한다는 점이. 더구나 샤넬에서 말이다. 어쩌면 동시대에서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여성성 그리고 남성성에 대한 질문까지 던진다는 생각까지 든다 맞아요. 촬영하기 전에 이에 대해 들었을 때 ‘생각보다 묵직한 이야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엔 남자 메이크업 라인이라니 ‘피부에 신경 좀 써야겠네’ 정도였지만, 하하. 제가 모델이 된 이유 중 하나가 화장하는 남자가 그저 소수를 위함이 아니라, 모든 남성에게 해당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Simply be Yourself, Only Better’라는 문장이 확 와닿았죠.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남자 이동욱은 화장하는 남자인가 아무래도 직업상요. 전 뷰티 케어를 단순히 외모를 가꾸는 개념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시도해 보라고 남성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요즘처럼 햇빛이 뜨거울 때 선블록을 챙겨 바르는 것만으로 피부를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지, 립밤 바르는 습관만 들여도 입술이 갈라지고 피가 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는 걸 말이죠.
입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비결이 뭔가(근거리에서 본 이동욱의 피부와 입술은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입술색은 타고나길 원래 이렇고, 밤에 잠들기 전에 립밤을 충분히 바르고 자면 좋아요. 추워지면 입술이 잘 트는 남성분들, 참고하세요. 미관상을 떠나 무척 아프거든요.
촬영 들어가기 전, 다소 어려운 주문을 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신도 인간도 아닌, 소년도 남자도 아닌…. 그 간극의 아름다움을 연기해 달라’고.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보니 정말 그런 외모다 아, 아니에요, 다 화장발이에요. 하하. 저는 아무래도 자기관리를 할 시간이 많잖아요. 자연스럽게 꾸미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고요. 사실 제가 술도 즐기고 먹는 것도 좋아해요. 그렇지만 직업상 긴장을 늦출 순 없으니 운동도 하고, 절제하는 거죠.
이번 ‘보이 드 샤넬’은 파운데이션과 립밤, 아이브로 펜슬, 이 세 가지 에센셜 아이템으로 구성됐다. 직접 써보니 어떤가 일단 파운데이션이라 하면 남성들이 어렵게 느낄 수 있지만, 요즘 BB크림 많이 쓰잖아요. 비슷해요. 무척 가볍고 자연스럽게 발리는 데다, 제가 좀 전에 강조한 선블록 기능까지 있죠. 립밤은 남성이 사용하기 좋게 번들거림 없이 매트하게 발려요. 그리고 케이스가 참 멋지지 않나요?
메이크업 시 신경 쓰는 게 있다면 특별히 그런 건 없지만…. 잘 지우는 게 중요해요. 예전엔 그냥 한 번 쓱 세안만 했다면 요즘엔 클렌징 워터나 크림으로 1차, 2차 세안까지 꼼꼼히 하죠. 이제 나이가 있으니 피부에 신경 써야죠.
10대 소년, 20대 청년 그리고 30대와 40대 남자 이동욱을 설명한다면 10대의 이동욱은 착했어요. 일탈도 반항도 없었고, 12년 내내 개근상을 받은 평범한 학생이었죠. 그러다 배우라는 꿈을 가지게 되면서 19세에 데뷔한 후 평범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시절을 열었고, 20대 이동욱은 앞만 보고 달렸어요. 딱 10년 열심히 일하고 29세에 군입대를 했거든요. 입대하고 뒤돌아보니 여러 책임감에 정말 일만 했더라고요. 30대 이동욱은 스스로를 찾아가는 길인 것 같아요. 내가 뭘 좋아할까, 뭘 싫어할까, 뭘 잘할까…. 20대의 불안을 떨쳐내고 40대를 준비하는. 40대의 이동욱은, 글쎄… 그냥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클린한 화이트 셔츠는 Kimseoryong.
블랙 레이스 셔츠는 Pushbutton.
오늘의 주제는 ‘페르소나’였다. 대중이 보는 나와 실제의 나가 많이 다른가 글쎄요, 대중은 제 꾸며진 모습만 보니까. 사실 전 잘 꾸미지 않는 집돌이예요. 스케줄 없을 땐 집에 있는게 제일 편하고. 밖에 나갈 때 굳은 마음을 먹고 나간 김에 서너 가지 일을 한꺼번에 보고 들어오는 스타일.
최대 며칠까지 있어봤나, 집안일도 잘하겠다 한 8일? 요리, 청소, 뭐 곧잘 하죠.
지난해 <도깨비> 종영 후 파리 패션위크에 가서 패셔니스타라는 타이틀이 추가됐다. 현지 반응도,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국내 반응도 대단했는데 저도 놀라웠어요. 현지 사진기자들도 처음엔 동양인 셀러브리티 정도로 여겼는데,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지니 플래시 세례를 한 몸에 받았죠. 표정은 시크했지만 속으론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환호하고, 알아봐주시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 여유 있게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어주고.
패션 아이콘이란 수식어가 어떤가 좋아요. 패션에 관심이 있는 편이고, 아무래도 이쪽은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오니까 좋죠. 신기하기도 하고. 이젠 뷰티 아이콘이란 타이틀에 익숙해져야겠네요.
내가 가장 남자답다고 느낄 때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낼 때? 제가 투덜거리기도 잘하고 볼멘소리를 좀 하는 것 같지만….
쭉 지켜보니 그래도 다 들어주는 ‘츤데레’ 스타일이더라 그런가요? 아무튼 결국 주어진 일을 잘해내고, 결과에 모두 만족해하는 게 남자답고, 저답다고 생각해요. 화면에 보이는 건 저 혼자지만 그 뒤에 많은 스태프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곧 <라이프> 촬영도 끝날 텐데, 새 계절에 하고 싶은 건 미뤄둔 것들. 팬도 만나야 하고 이런저런 촬영도 해야 하고요. 운동도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여행을 갈까 해요. 지난해에도 2주 정도 다녀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낯선 곳에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편안함이요. 보통 촬영으로 해외에 가면 몇 시에 일어나서 몇 시까지 준비하고, 촬영하고… 타이트하잖아요. 그런데 나가기 싫으면 온종일 호텔에서 뒹굴거려도 되고. 아, 얘기하다 보니 결국 또 집돌이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