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사주 믿으시나요? | 엘르코리아 (ELLE KOREA)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답을 찾으려 점과 사주, 타로를 전전한 어느 운명론자의 고백::점,사주,타로,타로카드,운명,궁합,결혼,예식,결혼식,결혼준비,엘르 브라이드,엘르,elle.co.kr:: | 점,사주,타로,타로카드,운명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했던 25년 전의 나는 격렬한 질풍노도 중2병을 앓고 있었다. 위인전 100권을 독파하고, <소피의 세계>를 읽으며 자못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미래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충격적인 신문 기사와 마주했다. ‘신이 선택한 여자, 김일성의 죽음을 예견하다.’ 기사 내용을 더듬어보면 어느 신문 기자가 대한민국에서 이름 깨나 날린다는 점술가들에게 유명 인사들의 사주를 익명으로 넣어 점괘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중 한 무당이 김일성의 죽음을 예견했는데 정확히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생년월시만으로도 운명을 점칠 수 있다니! 당장 동네 서점으로 달려가 그 무당이 쓴 책을 구입했고, 단숨에 독파한 후 한 달 용돈 3만원을 몇 달간 탈탈 털어 모아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좌절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은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됐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큰 규모의 여대였는데, 서울에서도 음기가 강하다는 소문이 자자한 동네에 있었다. 1만 명이 넘는 여학생이 다니는 학교이다 보니 다른 대학가에 비해 유독 사주 카페나 무당집이 많아 호기심을 자극했다. 어렵게 캐낸 첫사랑 오빠의 사주를 들고 학교 정문 앞 사주 카페에 찾아갔다.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딱히 인상적인 결과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사주 카페 방문이 앞으로 펼쳐질 내 사주 & 점괘 인생의 시발점이었다는 것 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이후로 학교 주변의 사주 카페는 모두 휘젓고 다녔으니.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홍대 앞 오피스텔에서 만난 사주쟁이였다. 그는 자신을 서울대 나온 드라마 작가 출신의 박사라고 소개했다. 얼마 전 결혼을 앞둔 최진실과 조성민이 찾아왔는데, 그들의 궁합이 좋지 않아 결혼을 만류했다는 이야기도 했다   (당시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직전이었다). TV에서 보이는 최진실 커플의 모습이 너무나 다정했기에 나는 반신반의하며 그의 사주풀이를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남자사람친구의 사주를 넣고 궁합을 보았는데 연락이 끊긴 짝사랑 오빠와는 잘될지 안될지 알 수 없지만 몇 년 후 다시 연락이 닿을 것이란 이야기를 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 마음이 동하지 않아 무산될 것이며, 남자사람친구는 대화가 잘 통하지만 그의 상황이 어딘가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3년 후 갑작스럽게 연락이 와서 종종 친구처럼 편하게 만나는 사이가 됐고, 남자사람친구는 당시 군대에 간 상태였으며 이후에도 친하게 지냈다. 여러 사주 카페를 전전하다 문득 홍대앞 박사님이 생각나서 다시 찾아가보니 이미 그의 사무실은 사라지고 없었다. 수십여 곳의 사주 카페를 다녀보면 대부분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였다. 모든 사주쟁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결혼은 늦게 하고, 외국은 자주 다니고, 일은 평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고 강력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용기를 내 친구에게 추천받은 무당집을 예약했고, 두 달 후에 내 순서가 됐다는 연락이 왔다. 경복궁에서 열린 큰 굿판에서 작두를 탄 용한 무당이랬다. 강남 한복판의 허름한 상가에 자리 잡은 무당집은 사주 카페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느껴지는 신당은 알 수 없는 신의 모형들과 울긋불긋한 부적으로 가득했고 초와 향이 타는 냄새가 뒤섞여 등골이 오싹했다. 그 한 편에 화장을 한 무당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 목소리를 내며 이름과 사는 동네와 생년월일을 묻고 앞에 놓인 자그마한 상 위에 쌀을 던졌다. 가족관계에 대해 소름끼칠 정도로 정확한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내더니 34세에 결혼할 거고, 결혼 직전까지 엄마랑 사이가 안 좋을 거라고 했다. 더 늦게 결혼하면 부적을 쓰라 하겠는데 34세면 나쁘지 않다며 복비 5만 원만 내고 가라 했다. 딱히 사연 없는 젊은 여자이니 이런 데 다니지 말라는 말과 함께.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무당에게 가는 마음은 사뭇 가벼웠다.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굴지의 여배우가 단골로 찾는 무당이라 했다. 그는 놀랄 만큼 미남이었고, 젊었다. 내가 처음 찾아간 무당에 대해 묻더니, 그는 자신의 스승과 같은 사람이며 중학교 때 신내림을 받아 나랏일 하는 분들이 자주 찾는 용한 무당으로 수십 년 지냈으나 이제는 ‘신빨’이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그 무당이 점친 내 결혼 나이 34세는 정확한 것으로 보이고, 남편 될 사람은 능력이 부족하다며,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결국 결혼할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 신령들이 지금 나를 지켜보며 예쁘다, 착하다, 칭찬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행여 귀신이 붙을까 싶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성경책을 펼치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딱 한 번 더 무당에게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근처에 돌직구로 점괘를 읊어준다는 아주머니 무당이 있다기에 친한 언니와 함께 갔다. 주택가 한복판에 있는 그곳은 예약을 받지 않아 10명 내외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돌직구 무당은 나같은 운을 가지고 조선시대 때 태어났다면 소박맞았을 거라며 앞으로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 했다. 직업운도 이렇게 나쁠 수가 없다고 했다. 돌직구가 아니라 악담 대잔치였다. 행여 중요한 코멘트가 있을까봐 수첩에 열심히 메모했으나 무당집에서 나오자마자 찢어버렸다. 이제 내 인생에 무당과의 만남은 없다고 다짐하며. 어느새 나는 34세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용하다는 두 무당의 점괘가 모두 틀렸음을 확인하자 문득 미래와 사랑에 대한 고민을 사주풀이나 점쟁이의 말만 믿고 의지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넘게 수백만 원을 쓰고 나서야 얻은 교훈이었다. 이제 점과 사주를 끊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려는 찰나, 회사 팀장님이 대기업 오너에게 받은 사주풀이집 번호를 선심 쓰듯 던져주었다. 그길로 당장 반차를 내고, 택시로 서울 외곽의 철학원을 찾아갔다. 사주쟁이 할아버지는 나를 보자마자 본인이 만났던 기업 총수들 이야기를 1시간여 늘어놓더니 정작 내 사주는 35세를 기점으로 나쁠 것 없이 평탄하게 흘러간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해 주었다. 아마 내 사주에서는 사주쟁이를 혹하게 할 만한 재물 복이나 사모님이 될 복은 보이지 않았나 보다.언젠가는 유럽에서 배워온 별점을 봐주는 아저씨를 만난 적도 있다. 어마어마하게 복잡해 보이는 별자리 그림을 보여주며 1시간 남짓 설명해 주었지만 이해가 쉽지 않았다. 다만 모든 사람은 태어난 날짜와 시간에 따라 특정한 기운을 갖고 태어나며, 그 기운이 잘 맞는 사람은 처음 만나도 편안하고, 기운이 잘 맞지 않으면 수년을 만나도 불편하다고 했다. 30대 후반이 되어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블로그에 유명 연예인 사주를 올리며 노이즈성 인기를 얻고 있는 사주쟁이에게 이메일 사주를 의뢰했다. 꽤 비싼 복비를 입금했고, 며칠 후 짤막한 이메일이 도착했다. 내 결혼운은 34세에 이미 지나가서 앞으로 오지 않을 수 있다며 주변에 누가 있을 때 소중히 하라는 내용이었다. 열심히 삶을 헤쳐나가는 사주라고도 했다. 그가 악담으로 휘갈기듯 쓰는 연예인 사주와 비교하니 내 사주는 파도 없는 호수같이 평범하고 잔잔하게 느껴졌다.  첫사랑의 사주를 들고 학교 앞 사주 카페에 찾아간 것이 벌써 19년 전의 일이다. 올해 나는 38세가 됐다. 수백 명의 점쟁이를 만나며 제일 많이 물었던 건 “그래서 저는 언제 결혼하나요? 하긴 하나요? 누구랑 하나요?”였다. 그 누구도 내가 38세의 여름에 결혼할 거라고 알려주지 않았지만 올해 찬바람이 불기 전에 결혼을 한다. 친구가 물었다. “그래서 이제 점 보러 안 갈 거야?” 아마 난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용한 사람을 수소문할 것이다.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면 믿고, 아니면 잊으면 되니까. 내가 얻고 싶었던 건 결국 내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닌, 내 고민에 대한 위로와 격려, 희망 아니었을까. (익명을 요구한 가을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