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토니 바카렐로는 생 로랑을 어떻게 바꿔놨을까?
관능과 절제 사이, 안토니 바카렐로가 10년에 걸쳐 생 로랑에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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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인 옷은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을까요? 안토니 바카렐로의 생 로랑을 돌이켜보면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2016년 부임한 이래 10년에 걸쳐 그는 이브 생 로랑의 유산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대신, 하우스가 지닌 도발적인 기질을 지금의 언어로 다시 쓰는 데 집중했죠.
바카렐로의 세계에는 상반된 두 인물이 공존합니다. 이를테면 낮에는 완벽하게 재단된 재킷을 걸치고 밤에는 가장 대담한 드레스를 입는 여성이나, 남성복의 엄격한 구조를 빌려오면서도 그 안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여성처럼요. 그는 서로 다른 두 얼굴을 하나로 화해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간극을 키우며 생 로랑의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었죠.
유행을 좇는 대신 자신이 발견한 것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생 로랑의 욕망을 현재형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그가 남긴 가장 분명한 유산일지 모르죠. 가죽으로 포문을 연 데뷔 컬렉션부터 하우스의 역사를 다시금 불러낸 테일러링 그리고 마지막 컬렉션을 장식한 찬란한 금빛 룩까지, 안토니 바카렐로의 지난 10년을 대표하는 순간을 모았습니다.
가죽으로 쓴 데뷔
2017 봄 여름 컬렉션
」바카렐로가 써 내려 간 첫 문장은 가죽이었습니다. 생 로랑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그가 선보인 데뷔 컬렉션에서 단연 눈에 띈 건 어깨를 한껏 부풀린 검은 가죽 미니드레스였죠. 깊게 파인 네크라인과 코르셋을 연상케 하는 몸판과 드라마틱한 퍼프 슬리브는 1982년 이브 생 로랑의 아카이브 드레스를 참조했습니다. 빈티지의 낭만에만 마냥 기대지 않은 채, 방금 막 재단한 듯한 날카로움도 놓치지 않았죠.
선명한 1980년대의 향수
2017 가을 겨울 컬렉션
」두 번째 시즌에서 바카렐로는 1980년대의 생 로랑을 한층 노골적으로 끌어왔습니다. 반짝이는 페이턴트 가죽 드레스와 팬츠, 드레시한 러플, 한쪽 어깨를 드러낸 실루엣까지, 옷차림은 훨씬 과감해졌죠. 이브 생 로랑의 화려한 이브닝웨어와 강한 어깨, 남성복의 구조를 빌려온 여성복에 스팽글, 몸에 밀착하는 팬츠를 섞어 당대의 대담한 클럽 문화와 록 스타의 이미지를 다시금 불러냈습니다.
라텍스가 테일러링을 만날 때
2020 가을 겨울 컬렉션
」우아함에 불온한 기운을 더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붉은 타탄체크 재킷과 블라우스, 피부처럼 몸에 달라붙는 검은 라텍스 팬츠는 단정한 실루엣과 페티시적인 광택을 충돌시키며 익숙한 우아함을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컬러와 소재를 과감하게 뒤섞으면서도, 특유의 날카로운 긴장감을 유지했죠. 각진 어깨와 정교한 테일러링, 클래식한 체크 사이에서 라텍스는 의복의 규칙을 충실히 뒤집었습니다.
팔로마 피카소의 소환
2022 봄 여름 컬렉션
」바카렐로는 생 로랑의 뮤즈였던 팔로마 피카소를 무대 위로 불러냈습니다. 남성복의 구조를 빌려오면서도 장식과 비례를 과감하게 비튼 실루엣은 피카소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거침없는 태도를 떠올리게 했죠. 특히 눈여겨볼 건 재킷의 비율이었습니다. 바카렐로는 당시 유행하던 오버사이즈 재킷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대신, 어깨와 소매의 길이를 정교하게 조절해 새로운 균형을 만들었습니다. 단정함과 도발, 남성성과 여성성을 굳이 구분하지 않는 태도는 생 로랑이 오래전부터 탐구해 온 주제죠.
조용한 관능
2022 가을 겨울 컬렉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때로 가장 조용한 법입니다. 이 컬렉션의 첫 룩이 그랬죠. 몸을 따라 길게 흐르는 은빛 바이어스 컷 드레스와 검은 더블브레스티드 피코트는 별다른 기교 없이도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길고 유연한 실루엣과 절제된 컬러 팔레트, 정갈한 오버코트가 이어진 컬렉션은 이전보다 한층 차분해진 생 로랑을 보여줬죠. 검은 턱시도로 마무리한 피날레까지, 설명할 것이 적어질수록 외려 실루엣은 또렷해졌습니다.
길게, 더 길게
2023 봄 여름 컬렉션
」2023년 봄, 바카렐로는 생 로랑의 강인한 여성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려냈습니다. 발끝까지 길게 늘어지는 드레스와 몸을 감싸는 드레이프, 어깨선을 강조한 재킷과 거대한 오버코트가 한데 놓였죠. 땅에 닿을 듯 길고 넉넉한 옷으로 몸을 감쌌지만 실루엣은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와 1980년대의 이미지를 오가며 만들어낸 긴 실루엣과 날카로운 코트는 바카렐로가 꾸준히 다듬어온 테일러링의 연장선에 있었죠.
돌아온 우아함의 시대
2023 가을 겨울 컬렉션
」‘우아함’이라는 단어가 케케묵은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도 바카렐로는 그 단어를 정면으로 꺼내 들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남성복 소재로 만든 스커트 슈트가 있었죠. 넓은 어깨의 재킷과 날렵한 펜슬 스커트 위로는 슬링백과 묵직한 골드 뱅글이 더해졌습니다. 클래식한 슈트의 형태를 빌려오면서도 비례와 스타일링을 통해 생 로랑 특유의 날카로운 긴장감을 유지했죠. 시폰 블라우스와 길게 늘어진 타이, 드레이프 톱처럼 예상 밖의 유연함마저 놓치지 않았고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 가장 생 로랑답게
2026 봄 여름 컬렉션
」2026년 봄, 바카렐로는 생 로랑의 관능을 다시 한번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끌어올렸습니다. 반투명한 소재 아래로 몸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나는 얇은 나일론 레인코트는 바람에 가볍게 흩날리며 시시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줬죠. 뒤이어 등장한 풍성한 소매와 러플의 이브닝드레스는 한층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남겼습니다. 로맨틱한 실루엣에 다채로운 색을 입혔지만, 얇디얇은 나일론 소재 덕분에 움직임은 가벼웠죠.
골드에서 블랙까지
2027 봄 여름 컬렉션
」바카렐로의 마지막 컬렉션은 이브 생 로랑이 사랑했던 골드로 시작해 블랙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파리 트로카데로에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펼쳐진 쇼에는 금빛 사하리엔 재킷과 트렌치코트, 브로케이드 재킷과 이브닝드레스가 줄을 이었죠. 메탈릭한 소재와 주름진 텍스처, 금속 실로 짠 레이스는 런웨이 전체를 하나의 색채로 엮었습니다. 골드의 화려함과 블랙의 엄격함, 장식적인 디테일과 정교한 테일러링처럼 서로 다른 두 얼굴은 하나의 생 로랑을 향했습니다.
Credit
- 에디터 박지우
- 사진 GettyImages ∙ Launchmetrics Spot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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