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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인은 못 지웠지만, 다 같이 살린 '하이파이브'

베테랑들이 말아주는 '약한 영웅' 다섯 명의 판타지 액션 코미디.

프로필 by 라효진 2025.05.27

이제 드문 이야기는 아니지만, 2021년에 찍은 영화가 2025년에야 관객과 만나게 됐습니다. 영화 <하이파이브>에게 코로나19 팬데믹과 OTT의 득세보다 더 잔혹했던 건 주연 중 한 명인 유아인 이슈였습니다. 넷플릭스 공개와 극장 개봉을 두고 이쪽저쪽 방향을 틀어 보던 영화 <승부>가 결국 영화관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둔 건 <하이파이브>에게도 고무적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는 30일 드디어 극장에 걸립니다. <스윙키즈> 이후 <하이파이브>의 개봉을 기다리던 강형철 감독에게는 사실상 7년 만의 작품입니다.



감독은 26일 열린 <하이파이브> 기자간담회에서 이 오랜 공백을 깬 후의 벅찬 심경을 숨김 없이 전했습니다. 그는 "개봉하게 돼서 더 없이 기쁘다. 사실 이전까지 제가 만든 영화를 극장에 건다는 게 이토록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던 것 같다"라고 밝혔는데요.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개봉하는 한국 영화 <소주전쟁>과의 정면 승부에 대해선 "모든 한국 영화가 다 잘 됐으면 한다. 극장이라는 마법 같은 공간에서 모두 건승하시길 바란다"라고 했습니다.


영화는 신원이 불분명한 기증자로부터 심장, 폐, 신장, 간, 각막, 췌장 등 각기 다른 장기를 이식받은 후 초능력을 얻게 된 여섯 명이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립니다. 그 전에는 이들의 신체 일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겠죠. 보통 이하의 신체 능력으로 살던 이들이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힘을 얻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힘 써 본 적 없는 이들에겐 초능력도 무용지물입니다.



하지만 여섯 명 중 한 명은 다릅니다. 수많은 신도들을 거느린 사이비 종교 교주인 영춘(신구)은 췌장을 이식받은 후 줄곧 누워 있던 병상을 박차고 일어납니다. 뭔가를 가져 본 적이 있는 그는 더 강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죠. 그래서 나머지 장기를 이식받은 다섯 명의 능력을 탐냅니다. 초능력에 눈독을 들이는 건 영춘의 교주 자리를 빼앗으려는 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이에 앞서 영춘을 제외한 다섯 명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팀으로 뭉치기로 해요. 또래 지성(안재홍)과 기동(유아인)이 만나기만 하면 다투는 바람에 금세 팀은 와해되지만요. 그러나 영춘이 초능력을 뺏으려 독한 수를 쓰기 시작하자 팀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결속합니다. 서로의 초능력을 합치고, 또 나누는 과정에서 다섯 명 중 누구의 서사도 들어낼 수 없습니다. 영화가 유아인을 지울 수 없던 이유입니다. 지성과 기동의 키스신(?)은 작품 속에서도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고요.



이날 간담회에서도 유아인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거의 은퇴 수순을 밟고 있는 주연 배우는 예비 관객들이 극장으로 향하기 전 만날 가장 큰 장벽이기 때문이죠. 이를 두고 강형철 감독은 힘겹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한 명의 영화가 아니고,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인생의 한때를 바쳐서 노력한 작품"이라며 "빛나는 배우 분들이 큰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는데요. 많은 이들의 시간과 노력, 진심이 담긴 진정성 있는 영화라는 점은 자부한다는 거였어요. 감독은 "영화 자체의 즐거움으로 불편함과 염려를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을 거라고 감히 말씀 드리겠다"라고도 했습니다.


주연 다섯 명 가운데서도 극의 중심에 있는 태권소녀 완서 역을 맡은 이재인 역시 비슷한 소회를 전했습니다. 그는 간담회 말미 "오늘 영화관에서 <하이파이브>를 보는데, 크레딧이 정말 오래 올라가더라"라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한 작품에서 너무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여름 모두가 힘을 다 해서, 초능력을 발휘해 찍은 영화이니 만큼 많은 분들이 보러 와주셨으면 한다"라고 관람을 당부했어요.



사실 <하이파이브>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비해 세계관이 헐겁게 느껴지는 대목도 적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관객의 상상력이나 선해를 요하는 부분도 있어요. 영화의 전체적인 톤에 비해 무거운 주요 인물들의 서사가 풀기 버거워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미덕은 분명해요. tvN <응답하라 1988> 이후 10년 만에 재회한 라미란과 안재홍을 비롯해, 김희원과 오정세의 노련한 코믹 연기는 강형철 감독 특유의 디테일한 유머 코드와 만나 빛을 발합니다. 살짝 귀띔하자면, 라미란의 노출 연기(?)는 백발백중 관객석을 뒤집어 놓을 거예요. 자칫하면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를 '약한 영웅'들이 다 같이 만들고 살린 영화입니다.



영화적 설정과 어울리는 과장된 액션 및 효과와 섬세하게 선정된 장르 음악들은 <하이파이브>를 극장에서 봐야 할 이유입니다. 특히 삽입곡들은 투박하게 던져진 각 캐릭터의 거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어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를테면 '힙스터 백수' 기동이 핑거스냅을 하며 나타날 때 Corey Hart의 'Sunglasses at Night'이 입혀지며 그가 어떤 인물인지를 더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식이죠. 영화 <엑스맨: 아포칼립스>의 퀵실버가 Eurythmics의 'Sweet Dreams'와 만났듯이요. 아버지의 과보호에 답답해 하던 완서가 초능력을 쓰며 해방감을 느끼는 장면에선 Smashing Pumpkins의 'I Am One'이 나옵니다. Rick Astley의 'Never Gonna Give You Up'의 세련된 사운드는 아직 덜 익은 히어로들의 모습과 대비돼 오락적 쾌감을 선사해요. <하이파이브>는 30일 개봉합니다.

Credit

  • 에디터 라효진
  • 사진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