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가 대나무를 휘었더니 역사가 되었다
단순한 소재를 유산으로 바꾼 구찌의 탁월한 감각.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서 만난 ‘Gucci | Bamboo Encoun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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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cci | Bamboo Encounters>의 전시 전경
뜻밖의 발견은 때로 세상을 새로운 빛으로 물들인다. 구찌 역사상 가장 아이코닉한 백 중 하나인 ‘뱀부 백’도 그랬다. 1940년대 후반 전쟁으로 물자가 부족하던 시기, 경제 제재 탓에 외국에서 자원조차 공급받을 수 없었던 막연한 상황에서 하우스 창립자 구찌오 구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위기를 기회로 극복해냈다. 금속과 가죽 품귀 현상이 빚어지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대나무였다. 아름다우면서 단단한 대나무를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구부리는 방법을 고안해냈고, 마침내 가방 손잡이에 적용해 전례 없는 디자인이 탄생했다. 단순한 대체재였던 대나무는 그렇게 새로운 미학으로 거듭났고, 오늘날까지 시대를 초월해 살아 숨 쉬는 구찌의 상징이 되었다.

립스탑 나일론, 플라스틱, 대나무 소재로 연을 형상화한 네덜란드 아티스트 그룹 카이트 클럽의 <Thank You, Bamboo>.
이 유산을 기념하기 위해 구찌는 2025년 4월 8일부터 13일까지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16세기 건축 유산인 산 심플리차노 수도원 회랑에서 특별 전시 <Gucci | Bamboo Encounters>를 개최했다. 이 번 전시는 1947년 구찌가 처음으로 대나무 손잡이를 적용해 선보인 ‘구찌 뱀부 1947 핸드백’에서 출발한 뱀부의 유산을 재조명했다. 당시 기술적 제약을 미학적 전환점으로 승화시킨 구찌의 선택은 단순한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의 정체성을 구축했으며, 이후 수십 년간 뱀부는 유행과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유지해왔다. 이번 전시는 뱀부라는 상징이 예술, 디자인, 문화 전반에서 어떻게 재해석 되고 확장되어왔는지를 보여주며 전 세계 7명의 아티스트가 레진, 유리, 실크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뱀부의 정신을 표현한 작품을 소개한다. 그중에는 한국 작가 이시산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전통적인 한국 미학과 알루미늄이라는 현대적 소재를 결합해, 대나무의 유연한 곡선과 생명력을 재현하며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탐구했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유산이 동시대의 창작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영감을 줄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장이다. 큐레이션은 스튜디오 2050+와 창립자 이폴리토 페스텔리니 라파렐리가 맡아, 역사적 공간에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는 연출로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4월 8일부터 10일까지는 참여 아티스트들이 직접 관객과 소통하는 토크 세션을 진행해 창작의 배 경과 철학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Gucci | Bamboo Encounters>는 구찌가 디자인을 통해 시대를 해석하고, 전통을 창의적으로 계승하며, 끊임없이 새로움을 제안해온 방식의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하나의 소재가 수십 년간 사랑받으며 새로운 문화적 담론으로 발전한 과정을 통해, 이 전시는 결국 디자인 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뱀부는 단순한 장식 적 요소를 넘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되어온 문화적 코드다. 그 고유한 아름다움과 정신은 구찌가 어떻게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연결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신에게 뱀부는 어떤 의미로 다 가오는가.그 해답을 이번 전시에서 찾을 수 있다.
Credit
- 에디터 김성재(미디어랩)
- 사진 구찌
- 디지털 디자이너 김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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