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ETY

한국에서 오직 40대 출산율만이 꾸준히 증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 출산, 결정할 수 있을까?

프로필 by 이마루 2025.05.02

‘펜스 시터(Fence-Sitter)’. 펜스 위에 걸터앉아 자꾸 결정을 미루며 이쪽저쪽 상황을 살피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출산할 것이냐 말 것이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교착 상태에 놓인 여성을 가리키는데, 이보다 더 적절한 단어가 있을까?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이 거의 구전설화처럼 느껴지게 된 지는 이미 오래. 출산과 육아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여성들이 ‘각성’한 이후, 출산 여부를 둘러싼 고민은 한층 더 깊어졌다.

사실 불과 10~15년 전만 해도 사회도, 심지어 여성도 35세가 넘은 여자의 첫 출산 가능성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노산’이란 단어는 훨씬 쉽고 무자비하게 쓰였고, 결혼한 여성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훌쩍 넘겼음에도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부부’라고 으레 짐작하곤 했다. 하지만 힘차게 밀레니엄 시대의 문을 열었던 2000년만 해도 남성 평균 29.28세, 여성 26.29세였던 한국의 초혼 연령은 2023년 기준으로 각각 33.97세, 31.45세로 아예 앞자리 숫자가 바뀌었다. 결혼과 첫 출산 사이에 평균 2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30대 중반에 첫아이를 낳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 셈이다. 실제로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출생·사망 통계’의 연령별 출산율을 보면 출산율 1위에 빛나는 30대 초반의 뒤를 잇는 것은 20대 후반이 아닌 30대 후반의 산모다. 그뿐인가, 20대 초반 출산율(3.8명)보다 40대 초반(7.7명)의 수치가 훨씬 높다!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발표한 연령별 전체 산모 현황 자료는? 2023년 기준으로 40대 이상 초산 산모 비율은 지난 5년간 24.5% 증가했다. 합계출산율 0.75명으로 세계 1위의 저출산 국가인 한국에서 유일하게 초산 비율이 높아지는 연령대가 40대라는 통계는 마치 임신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간간이 들려오는, 늦게 부모가 된 주변인의 사례는 물론 40대에 출산한 연예인들의 경험담도 임신이 나이 든 이후에도 어느 정도 가능한 일처럼 ‘느껴지게’ 하는 데 일조한다. 실제로 그들이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 엄마아빠가 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막연히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2007년 이후 지속적인 저출산율을 경신 중인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리서치 센터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35세 이하의 미국 성인 중 3분의 1은 아이 출산에 관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한 증거라도 되듯 틱톡과 인스타그램에는 #childfreebychoice, #MomTok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아이의 유무에 따른 삶의 장단점을 논하는(혹은 과시하는) 게시글이 넘쳐나고, 커뮤니티 성격을 띤 소셜 뉴스 사이트인 레딧에서는 “엄마가 되는 게 내 성향에 맞을까(Will being a mom suit my personality type)?”라는 질문 아래 달린 글과 코멘트를 7만3000명이 팔로하며 지켜보는 형국이다. 하지만 정말 내 몸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 오래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걸까? 2025년 현재, 임・출산을 둘러싼 현대 의료기술은 내가 개인적인 상황과 성향을 고려해 최종적 결정을 원하는 만큼, 유예할 수 있을 만큼 발달했을까? 미안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다. ‘그렇지 않다’이다.


“100세 시대라고 하면 생애 주기가 한창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죠. 요즘은 자기관리에 열심이다 보니 40대에도 혈관 나이와 건강 나이 수치가 좋은 분이 많아요. 하지만 생식능력은 별개입니다. 건강하지 않은 20대가 건강한 40대보다 생식에 훨씬 유리해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33~37세에는 2세에 대해 진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36년간 난임을 연구해 온 서울 마리아병원의 김영주 산부인과 전문의의 조언이다.

33~37세라니! 언제부터일까, 현대 사회는 30대를 충분히 어린 나이로 취급해 왔다. “동안이시네요” “20대인 줄 알았어요”라는 인사치레는 기본. 성수동 핫 플레이스에서 넉넉하게 와인을 보틀로 주문하거나 VIP 티켓을 구입해 페스티벌 앞자리를 선점하고, 무신사 대신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주문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입는, 약간의 경제적 여유를 제외하면 20대 때와 크게 변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즐겨도 괜찮은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바로 그 30대 초중반이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을 내려야 하는 마지노선일 수 있다니. 더 나쁜 소식은 아직 남아 있다. 바로 조기 폐경을 의미하는 조기난소부전을 비롯한 난소기능저하 현상이 젊은 여성 사이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젊은 남성의 정액 양과 정자 운동성 감소, 생식호르몬 수치 역시 나날이 저하되는 추세다. 문제는 임신・출산의 주체인 여성이 자신의 몸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대해 어떤 고지도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매년 정기 건강검진 때마다 하는 혈액검사를 통해 난소의 활동성을 알 수 있는 난소기능검사(AMH)가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그 기회를 흘려보내는 것이 가장 단적인 예다. 대표적인 여성 검진으로 각인된 유방암검사와 자궁검사는 추가 비용까지 내며 빼놓지 않고 받으면서 말이다.


“사회적으로 결혼이 늦어지는 원인에 대해 의료기관이 할 수 있는 일은 없겠죠. 하지만 간단한 난소기능검사를 통해 내 난소의 상태를 수치로 확인하고, 몸 상태를 진단하는 것만으로도 인생 계획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정보에 여성들이 노출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에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후회하는 여성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해요.” 김영주 전문의의 이런 문제의식은 지난해 8월 마리아병원이 ‘지금 저장소’라는 이름의 냉동 난자 팝업 스토어를 연 이유와 직결된다. 다소 파격적으로 느껴지는 이 기획은 당시 9시 뉴스를 비롯해 일본과 홍콩 등 외신에 보도될 만큼 화제였다. 2주 동안 팝업 스토어를 찾은 방문자 수는 1만4000명 남짓. 정확한 전환율 트래킹을 체크하지는 않았지만, 그중에는 이후 실제 상담받고 난자 냉동을 결심한 이들도 있다는 것이 재단 측 설명이다.

지자체도 적극적이다. 서울시는 2023년부터 20~49세 여성 1인당 최대 200만 원까지 난자 냉동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보통 시술 비용이 1회 기준 300만~500만 원임을 감안하면 절반 가까운 비용을 지원해 주는 이 사업을 통해 실시 1년 만에 746명이 시술을 받았다. 경기도도 올해 4월부터 이 흐름에 합류했다. 결혼 유무와 상관없이 난자 채취를 위한 사전검사비와 시술비의 50%, 최대 200만 원을 생애 1회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기혼자(사실혼 및 예비부부 포함) 대상이긴 하지만, 지난해부터 국가에서 난소기능검사와 부인과 초음파검사를 1인 최대 13만 원까지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무적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의료계의 상술이자 음모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여성들의 선택권을 괘씸하게 여긴 정부가 의료계와 결탁해 안 그래도 노화에 민감한 여성들을 더욱 초조하게 구석으로 몰아넣는 것일지도! 아무리 임신 주체가 여자라지만 왜 이런 구체적인 고민과 실천의 무게가 여자들에게만 가중되는지 억울한 마음도 슬쩍 든다. 그러나 아이를 가져야 할 이유와 딩크(혹은 싱글)로 살아야 할 이유를 끝없이 열거하고 고민을 반복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 또한 고통이라면 의료적 ‘실천’이 그 고통을 종식하는 결정의 실마리가 돼줄 수 있다는 것은 꽤 솔깃하다. 게다가 지금 여성들은 그 어떤 세대보다 자신의 신체는 물론 인생에서 주도권을 쥐는 것에 익숙하다. 평생 주도적으로 살아왔으나 ‘나이’ 때문에 임신・출산이라는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서 선택권조차 가질 수 없다면 과연 그것을 시원하게 납득하고 나아갈 수 있을까? 적어도 내 몸의 상태를 파악하고, 난자 냉동 시술을 비롯한 의료적 도움을 통해 가임 시기를 연장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이 길어진 인생에서 자유를 좀 더 만끽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오직 나 스스로 충분히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는 것일 테다. 아이를 가질 준비가 충분히 됐는지, 내 두려움과 믿음, 삶의 세세한 부분이 변화를 맞을 준비가 됐는지, 파트너도 가족도 가까운 친구의 의견도, 내 생식기의 노화 여부와는 더더욱 상관없이 말이다. 이처럼 결정의 기로에 선 여성들에게 미국의 사회복지 전문가이자 심리상담가인 메를 봄바르디에리(Merle Bombardieri)의 말은 깊은 위로가 된다. 이미 1981년에 출산을 망설이는 여성들을 위한 가이드북 <출산 결정: 어떻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The Baby Decision: How to Make the Most Important Choice of Your Life>를 펴낸 75세의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당신이 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아마 그건 두 가지 선택 모두에서 행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부디 당신 앞에 오직 더 큰 행복을 위해 고민할 미래만 남아 있기를!



Credit

  • 에디터 이마루
  • 일러스트레이터 DROR COHEN
  • 글 ILANA KAPLAN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이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