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LE DECOR
텍스트 힙 시대에 책을 만든다는 것
오늘도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기뻐하고 슬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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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은
북 디자이너. 홍익대학교에서 회화와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출판사 ‘열린책들’의 디자인 팀장으로 일했다. 
©unsplash
오늘의 유행이 내일이면 빠르게 낡는데, 인공지능이 글도 쓰고 이미지도 만들고 번역도 해주는데, 먼지 나고 냄새 나고 무겁기까지 한 책을 공들여 만드는 일이라니(물론 출판사의 하루하루는 매우 바쁘지만, 쓰거나 번역하고 편집하고 제작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호흡이 길다). 가끔 예전만큼 책이 팔리지 않는다며 자조와 푸념이 오가기도 하고, 옆자리에서 일하던 누군가는 어떤 업계에서 얼마를 더 받게 됐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동안에도 책 만드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지조차 못했다. 왜냐하면 지루한 답변이라 좀 머쓱하지만 ‘좋아해서’다. 나는 떡볶이를 좋아해 혹은 가을의 따뜻한 햇볕을 좋아해, 그런 종류의 마음이랄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지 이유를 묻는다면 덧붙일 말이 곧바로 생각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돌잡이를 하던 날 돈도 무명실도 아닌 책을 잡은 것에서 시작해 본다면 글을 읽을 줄 알 때부터 책이 좋았던 것 같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읽느라 밤새우는 어린이였다가, 수험 생활에 지칠 때면 국어 시험에 나오는 지문을 재미 삼아 읽는 고등학생이었다가 시간 날 때마다 도서관에 디자인 서적을 구경하러 가는 게 취미인 미대생이었다가, 결국 책 만드는 디자이너가 됐으니 사랑의 역사가 길다.
올해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에선 20~30대가 끝없는 줄을 서고, 한국에서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고, SNL에선 그의 수상 소감을 패러디한다. 당장 팔 것이 동날 만큼 책이 많이 팔렸다는 소식이 내 일처럼 기쁘다. 책 읽는 일이 어떤 사람에게는 ‘힙’한 것으로 여겨진다니 내 공이 아닌데도 뿌듯하다. 책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젊은이들이 진지한 독서는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다는데, 그러면 좀 어떤가 싶다. 책은 뭔가를 배우는 도구로 쓰여도 좋지만, 그냥 내 방을 장식할 소품을 구입하듯 예뻐서 사도 괜찮고 단지 재미를 위해 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업계인’인 나 역시 두 가지 이유나 목적으로 책을 구입하거나 읽을 때가 아주 많다는 걸 고백하며.
사랑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책 만드는 일은 오래 걸리고, 번거롭고, 어렵다. 이 일을 하며 한 번도 호황이라는 말을 들은 적 없었으니. 그 가운데서도 왜 책 만드는 일을 하느냐, 왜 그렇게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이번에는 몇 줄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다. 책은 예쁜 데다 재미도 있다. 어떤 날은 떡볶이에 곁들일 튀김 메뉴를 고르듯, 또 어떤 날은 가을날 데이트에 입고 갈 재킷을 고르듯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골라도 좋다. 크거나 작거나 두툼하거나 가벼운 책이 고루 준비돼 있으니. 당신의 공간 한편에 ‘예뻐서 산’ 책 한 권이 놓이고, 그것이 일상의 재미로 이어지는 날이 오도록 오늘도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기뻐하고 슬퍼하겠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김강아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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