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아트 러버들의 가장 사적인 프리즈 체험기

프리즈 서울이 지핀 예술의 열기로 숨가쁘게 흘러간 1주일. 프리즈가 대체 뭐길래?

프로필 by 윤정훈 2024.09.23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프리즈 서울 현장.

코엑스에서 열린 제3회 프리즈 서울 현장.

박재용 큐레이터, 비평가, 예술 전문 통번역가

‘프리즈 서울’이 열리는 9월 첫째 주가 나를 비롯한 여러 아트 피플에게 1년 중 가장 바쁜, 피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3년째인 이제야 자리를 잡은 듯하다. 첫 번째, 두 번째 해엔 너무 많은 사람이 지나치게 바빴다. 그저 아트 페어일 뿐인데 이 행사가 서울에 상륙한다는 소식에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유치한 것처럼 과도한 흥분이 감돌았달까. 각자의 위치나 입장에 따라 프리즈 서울 혹은 서울아트위크에 대한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오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정신이 없었다는 건 변함없겠지만 나에게 이 한 주는 ‘고체로 된 음식’을 먹을 순간이 거의 없었던 시간으로 남았다.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월·화·수요일을 지나 목요일 저녁에 비로소 ‘액체가 아닌 식사’를 했다. 몇 차례 ‘디너’ 자리에 참석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밥’은 없었고, 500원 동전만 한 고급 핑거 푸드만이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였다. 예술 전문 통번역가, 아트 저널리스트, 비평가, 큐레이터, 비영리 예술공간 운영자 등 여러 역할로 9월의 첫 주를 살았다. 우선 통번역가로서 몇 군데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요청받은 일을 맡았다. 저널리스트로서는 영국의 미술 잡지 <프리즈 Frieze>(‘프리즈’ 아트 페어와는 별개의 조직) 소속 컨트리뷰팅 라이터로 프리즈 서울 후반부에 이틀간 광주비엔날레 취재를 해야 했고, 비평가로선 국내외 미술 잡지에 싣기 위한 인터뷰와 프로필이 담긴 두 편을 위해 작가(마침 서울에 방문한)들을 만났다. 큐레이터 동료들과 함께하는 ‘큐레이팅 스쿨 서울’에선 9월 4일 ‘삼청 나이트’에 맞춰 밤 10시 30분에 토론을 겸한 공개 수업을 열었고, 역시나 동료들과 운영 중인 ‘서울리딩룸’에선 올해로 3년째 미술계 사람들이 소개하고 싶은 책을 추천받아 선보이는 ‘후 원츠 투 행아웃 인 서울’ 행사를 열었다. 이 와중에 프리즈 서울 측의 요청으로 ‘가이드 투어’를 맡아 프리뷰 기간 중 서울을 방문한 해외 VIP들에게 투어를 제공했다.

써놓고 보니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대여섯 명이나 되는 것처럼 1주일을 보낸 기분이다. 그러니 ‘액체가 아닌 형태의 식사’를 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충분히 납득된다. 런던, 파리, 바젤,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콩 등. 각자의 아트 페어나 아트 위크를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 온 친구나 동료들에게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이걸 어떻게 치러내니? 매년 어떻게 이 일을 반복하는 거야?”라고. 흥미롭게도 비명에 가까운 이 질문에 이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많은 일이 한 번에 벌어지는 곳은 서울밖에 없어.” 그들에겐 예술경영지원센터나 한국국제교류재단 같은 정부 산하 기관까지 발 벗고 나서서 그 누구도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행사가 이뤄지는 모습이 매우 생경한 듯했다. 이 역시 무척 한국적인(‘K’라는 글자를 붙일 수 있는) 광경이라고 말이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수면 사수’ 시간을 박제해 놓고 지낸 한 주. 그동안 마주친 광경들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의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이 21세기 서울에서 구현된 것 같았다. 밤늦게까지 문을 연 전시장 앞에 길게 늘어선 멋진 옷차림의 이들, 갤러리 리셉션에서 가져온 핑거 푸드를 들고 삼삼오오 길가에 앉은 사람들, 흥이 지나쳐 경찰이 출동해 해산시켜야 했던 몇몇 애프터 파티 등. 지난해에도 재작년에도 마주쳤고 올해 다시 한 번 마주했지만, 왠지 내년에도 또 보게 될 것 같은 모습이었다. 평소 작가나 큐레이터 동료들, 간혹 갤러리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미술에 대한 소통의 전부인 내게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9월의 아트 위크는 꽤 유용한 환기와 성찰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비록 몇 달 치 할 일, 몇 달 치 만날 사람을 한 번에 만난 듯한 이 시간을 제대로 소화하는 데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2025년의 아트 위크가 대략 언제일지 우리 모두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내년을 위한 준비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도 문자 한 통을 받았다. “2025년 9월 1~2일, 일정 괜찮으신가요?”

삼청 나이트 때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제시 천의 퍼포먼스.

삼청 나이트 때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제시 천의 퍼포먼스.

김해나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전시팀

세 번째 ‘프리즈 서울’이 끝났다. 갤러리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종료 호각 소리와 함께 크게 날숨을 내쉰다. 모두 숨 가쁘게 달려온 이 아트 페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다. 페어에 참가하는 갤러리만 출전하는 경기도 더더욱 아니다. 갤러리나 작가, 페어 등 다양한 분야가 몇 달 전부터 2인 3각, 아니 3인 4각으로 호흡을 맞추며 달려온 장거리 경주가 더 적절한 표현이겠다. 1년에 한 번 개최되는 아트 페어에 왜 이리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한국과 한국 미술계가 주목받고 있는 지금, 한국을 거점으로 열리는 국제 페어가 풍기는 무게감은 상당하다. 3년 차에 접어들어 익숙함 혹은 안도감이 들 법도 하지만, 프리즈는 그 안전한 경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간 듯하다. 경기는 하락세지만 프리즈가 국내에 미치는 영향이나 그것이 지닌 의미는 변곡점을 맞았다. 한국을 단순히 미술계에 떠오르는 보석이나 신흥시장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미술의 본거지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제 몸에 꼭 맞는 자리를 찾아 빙글빙글 매무새를 다잡는 강아지처럼 비로소 어엿한 색을 찾아간달까.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해외 작가들의 작품과 한국과 아시아 작가의 작품 비중이 높아지며 균형을 이뤘고, 윗집 그림자에 드리워졌던 키아프가 국내 최대 아트 페어로 위상을 되찾으면서 한층 풍부해졌다.

개인적으로 이번 프리즈를 둘러보고 남은 잔상은 텍스처의 향연이다. 내 취향이나 동선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으나 시각은 물론 촉각적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눈과 피부에 가득 들어왔다. 다케 니나가와(Take Ninagawa) 갤러리에서 선보인 요코 다이하라(Yoko Daihara)뿐 아니라 커먼웰스 앤 카운슬(Commonwealth and Council)의 로터스 L. 강(Lotus L. Kang), 티나 킴 갤러리(Tina Kim Gallery)의 이신자의 작품은 직조된 하나의 시각적 파동처럼 일렁이며 다가왔다. 텍스처와 텍스타일을 활용한 작품이 주목받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페어장 벽에 걸리거나 천장을 가로지르는 구조물에 매달린, 수많은 회화와 조각 사이를 비집고 자리한 일련의 작품은 새삼스럽게 트렌드 이상의 충격을 안겼다. 그 텍스처가 극치에 오른 곳은 바로 ‘프리즈 라이브’였다. 문지윤 큐레이터의 기획으로 페어장과 그 너머의 공간에서, 또 야외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그야말로 감격적이었다. ‘시’라는 매체를 통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작용하는 언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이번 프리즈 라이브는 서울이 지닌 복잡하고 과잉된 도시적 맥락과 맞물리며 미묘한 긴장감을 형성했다.
언어의 한계로부터 그 확장성을 골몰하는 작가 제시 천(Jesse Chun)은 시공간을 초월한 대화를 ‘마당극’ 형태로 풀어내며, 300명이 넘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국제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인 이마프(EMAP)와의 협업으로 진행된 프리즈 필름, 페어장 곳곳의 영상 작품도 반가웠다. 주로 포커스 아시아 섹션에 집중된 점이 아쉬웠지만. 여담이지만, 언젠가 만난 싱가포르 기반의 컬렉터가 한 말이 가끔 마음을 두드린다. 출장이나 발령이 잦은 탓에 영상 작품 컬렉팅을 시작했다는 그는 마음이 닿은 영상 작품을 늘 품고 있다가 거처를 옮길 때마다 설치하는데, 낯선 공간이 작품 한 점으로 집처럼 느껴진단다. 해외 페어의 무지막지한 존재감과 그들이 내세운 ‘한국미술의 세계화’라는 명제 아래 한국미술의 정체성이 오히려 흐려진다거나 아트 페어의 ‘파생’으로 소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분명 있다. 한국미술의 주류화는 ‘양날의 검’과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 소비되기 쉬운 형태로 변질될 위험도, 부분적으로 진행될 염려도 있기에. 하지만 이왕 뽑은(뽑힌) 검이니 잘 다뤄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아트 페어의 성공이 단지 대형 갤러리나 유명 작가들의 성취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국제 페어와 한국미술계가 서로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앞다투며 각자의 방향대로 고집스럽게 달려나가기를 바란다.

어떤 기사에서 페어를 ‘본게임’으로, 같은 기간 개최되는 외부 전시나 프로젝트를 ‘장외전’으로 표현한 걸 봤다. 개인적으로는 장외에서 봤던 것도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젊은 기획자나 작가들이 구심점이 돼 선보인 전시나 프로젝트, 공간들 말이다. 해외 갤러리와 협업해 국내외 작가들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전시부터 예술을 장치로 자신의 궤적을 탐구하는 젊은 작가의 퍼포먼스까지.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유용한 도구를 들고, 고유의 목소리를 통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국제 페어든, 갤러리든, 작가든, 신생 공간이든, 예술이라는 하나의 실타래에서 출발한 건 분명하다. 어디는 가늘고 어디는 굵어 보일 수도, 탄탄하고 또 느슨해 보일 수 있지만, 짜임새 있게 직조되는 실은 서로가 서로를 단단하게 지탱한다. 당기기도 하고 풀기도 하면서 한국미술계만의 무늬가 새겨지기를. 날카롭고, 대담하며, 때로는 불편할 정도로 생생한 이 무대에서.

구하우스 미술관에서 열린 컬렉터들의 전시.

구하우스 미술관에서 열린 컬렉터들의 전시.

이소희 4년 차 아트 컬렉터, IT 마케터

“휴가 안 가세요?” 사무실이 한산해지는 8월 여름휴가 시즌, 휴가 일정을 묻는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9월 초에 몰아서 가려고요!” 아트에 진심인 사람들에게 ‘프리즈 서울’은 축제나 다름없다. 낮에는 코엑스 페어장에서 좋아하는 작품 사이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고, 밤에는 곳곳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해 음식과 술을 즐기며 작가와 큐레이터, 갤러리스트들과 대화를 나눈다. 평소 딱딱한 분위기의 전시장에서는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미술 전공자가 아닌 내가 실례되는 질문을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얼어버리지만, 파티장이 돼버린 갤러리 앞마당에서는 모든 대화가 가벼워진다. 분위기를 즐기다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덧 새로 사귄 친구들과 2차로 치맥을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서너 차례 자리를 옮기다 보면 ‘술독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본격적으로 예술을 즐기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4년 전 팬데믹 시기에 시작한 아트 컬렉팅이 계기가 됐다. 사실 예술보다 더 미쳐 있던 건 배낭여행이었는데, 팬데믹으로 불가능해지자 서울 시내 곳곳의 전시장을 찾아다녔다. 여행을 위해 모은 예산으로 구입 가능(100만 원 이하)한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 충동적으로 작품을 샀고, 그렇게 수집한 작품이 지금은 50여 점에 이른다. 내 컬렉션은 주로 1980~1990년대생 국내외 동년배 작가들의 작품인데, 비슷한 생각과 고민이 담겨 있어 공감과 용기를 얻는다. 네모나고 동그란 캔버스는 내면의 세계로 향하는 통로가 돼주었다. 친구와 신나게 수다 떨고 현실을 잊는 것과는 또 다른, 혼자만의 깊은 사유로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렇게 저축과 생활비를 제외한 여유 자금을 모두 작품 구입에 사용하고, 성과급을 받아 평소 갖고 싶었던 작품을 사겠다며 야근을 일 삼다 보니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최근 회사를 옮기고 바쁜 시기를 보내서인지 이번 프리즈 서울이 더욱 기다려졌다. 사전 공개된 참여 갤러리 리스트에 국내 갤러리가 대거 포함된 걸 확인하고 더더욱 기대감에 휩싸였다. 메가 갤러리가 소개하는 세계적 대가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긴 하나, 영 컬렉터가 실제로 소장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격대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 내내 아쉬웠다. 이번엔 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출품될 국내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많을 것으로 예상돼 심장이 두근거렸다. 실제로 페어장의 국내 갤러리 부스는 영 컬렉터들로 붐볐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곳은 P21 부스. 최하늘, 안태원, 조한나 등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 동료 컬렉터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높았던 작가는 김지영이었다. 사회적·개인적 메시지를 담아 그린 촛불 작품은 때론 붉은 형상을 그대로 드러낸 채, 때론 희미한 불꽃 이후의 푸른 잔상만 남긴 채 시끌벅적한 페어장에서 관람자들을 사색의 세계로 이끌었다. 실제로 프리즈 서울 개막 첫날 동료 컬렉터 다수가 현장에서 앞다퉈 김지영 작가의 작품을 소장했는데, 희미한 촛불로 내 마음에 들어온 작품을 이미 다른 누군가가 소장했다는 사실을 알고 조금은 망연자실했다. 또 다른 고무적인 사실은 이번 아트 위크 기간 컬렉터의 역할이 소비자에서 중개자, 생산자로 확장됐다는 점이다.

영 컬렉터들은 작품 구매뿐 아니라 애호가의 열정과 시각을 바탕으로 전시 기획, 콘텐츠 제작에 개입하며 미술계를 다채롭게 장식했다.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인 구정순 디자인 포커스 대표가 설립한 ‘구하우스 미술관’에서는 국내 컬렉터 7인의 소장품 전시가 열렸다. 현남, 정수정, 배혜윰 등 젊은 층의 선호도가 높은 국내 신진 작가부터 우고 론디노네, 코헤이 나와, 매드사키 등 세계적 인기 작가의 작품까지 총 37점의 소장품이 컬렉터의 집을 잠시 떠나 미술관에 걸렸다. 한편 의사이자 아트 컬렉터인 정동희 원장은 그의 일터인 이태원동의 ‘엘리엇의원’에서 14명의 동료 컬렉터와 함께 박경률 작가의 구작과 신작을 망라한 소장품 전시를 진행했다. 병원이 한순간에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진풍경은 많은 컬렉터 사이에서 회자되기에 충분했다. 내가 소속된 2030 영 컬렉터 모임 ‘마이크로 컬렉터스 클럽(@art_micro_collectors)’은 예술 채널 ‘난트’ 매거진과 함께 프리즈 특집 영상을 제작했다. 소장 또는 기대되는 작품과 추천 작가 등 컬렉터와 일반인이 궁금해할 내용을 담아 해당 채널 콘텐츠 중에서도 높은 조회 수를 이끌었다.

다가올 네 번째 프리즈 서울 때는 컬렉터들을 위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시끌벅적한 아트 위크가 끝나고 일상에 복귀한 지금,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책상에 앉아 이 글을 쓰며 2025년을 기다리고 있다. 페어장에서 우리 집으로 새롭게 맞이하게 될 작품, 그 작품을 통해 비춰볼 나의 내면, 파티를 통해 만날 예술 애호가 친구들, 컬렉터로서 맞게 될 새로운 도전까지. 또 한 번의 두근거림을 선사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프리즈 서울 조 말론 런던 부스에 연출된 이광호 작가의 가구.

프리즈 서울 조 말론 런던 부스에 연출된 이광호 작가의 가구.

황솔아 아트드렁크 어소시에이트 디렉터

“살아서 만나!” ‘프리즈 서울’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짐작하게 하는 미술인(미술계 종사자)들의 인사법이다. 도대체 프리즈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지인이 많다. 처음에는 올림픽처럼 세계 각국에서 쟁쟁한 미술인들이 모여 각자 보유하고 있는 작품을 판매하기 위해 경쟁하는 세계적 아트 페어라고 설명했다. 한 달 같던 1주일 동안의 프리즈 서울을 세 번째로 보낸 후, 내 설명도 조금 달라질 것 같다. 세계 각국의 미술인이 모여 함께 기획한 미술계 명절이며, 이는 모든 지구인을 위한 것이라고. 명절을 맞아 다양한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TV에선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처럼 프리즈 서울도 크게 다를 것 없다. 갤러리와 미술관, 컬렉터, 럭셔리 브랜드까지 모두 그들만의 ‘서울아트위크 특집’ 프로그램으로 분주하니 말이다.

올해 프리즈 서울과 함께 열린 다양한 전시 프로그램을 보면 퀄리티는 말할 수 없이 화려하고 높아졌다. 파스텔로 마법을 부리는 스타 작가 니콜라스 파티가 호암미술관에서 선보인 <더스트 Dust>는 한국미술사와 초현실적 조화를 이루며 우리를 꿈의 세계로 초대했다. 개인적으로 파티의 팬인 나는 콘텐츠 촬영을 핑계로 방문했다가 이틀 뒤 프리뷰에도 참석했다. 도로에서 4시간 이상을 보냈지만, 이런 성덕의 작은 헌신에 불과했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거대한 설치미술 전시 <스페이스 Spaces>는 어떤가. 영화 세트처럼 벽 사이사이로 장면이 확확 달라지다 보니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라는 질문이 계속됐다. 마치 방탈출 카페에 온 것처럼 수수께끼와 위트 가득한 전시는 아트 위크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페이스 갤러리의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 전시는 2019년 뉴욕에서 비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울면서 귀국했던 나에게 ‘이제는 한국에서도 이런 전시를 볼 수 있다’고 위로하는 듯했다. 세계적인 블루칩 작가들의 전시가 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프리즈 서울의 역할은 저평가될 수 없다.

이런 동태에 맞춰 내가 몸담고 있는 예술 플랫폼 ‘아트드렁크(Artdrunk)’ 멤버들도 분주했다. 예술은 모두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믿음으로 다양한 현대미술 콘텐츠를 다루는 우리 역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트 명절을 맞아 많은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한 명이라도 더 예술에 흥미를 느끼고, 한 개의 전시라도 더 즐길 수 있는 나침반이 되자는 목표와 함께. 직접 만든 아트 가이드북을 더 많은 대중에게 나눠주고자 이동식 팝업 카트를 제작했고, 장소를 옮겨 다니며 매일 밤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아트드렁크를 이미 알고 있어 덕담을 해주는 팬도 있었고, 수줍게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 사운즈한남의 오르페오에서는 아트드렁크 무비나이트 행사를 열었다. 사진 예술 작가 JR과 영화감독 아녜스 바르다의 여정을 다룬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 시대를 앞서나간 천재 여성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 - 미래를 위한 그림>, 독일 예술가 안젤름 키퍼의 예술관을 다룬 <안젤름>까지 세 편의 영화를 무료 상영했는데, 개인적으로 <안젤름>에서 언급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온갖 파티와 디너로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아트 위크의 궁극적 핵심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들었다. 혹시 이 아트 위크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너무 쏠린 것은 아닌지, 파티 후 술기운에 잠드는 것이 아니라 그날 본 작품 하나, 작가 이름 하나 정도는 곱씹으며 아트 위크를 보내고 있는 건지 말이다.

아트 위크에 ‘명절’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유는 정말 다양한 업계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프리즈 서울 페어장에서도 갤러리 외 많은 럭셔리 브랜드가 작가와 컬래버레이션한 부스를 열었다. 사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프리즈 협찬사라는 명목으로 마련된 럭셔리 브랜드의 부스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여러 작가와의 협업으로 스토리텔링이 더욱 풍성해졌다. BMW 부스에서는 작가 김희민과 알바로 배링턴이 모빌리티라는 주제로 작업한 BMW i7 미니어처 에디션을 전시했고, 조 말론 런던 부스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답게 이광호 작가의 시그너처 가구 시리즈 작품과 향을 함께 연출해 일상 속 아트와 향의 조화를 강조했다. 쇼메 부스는 김희찬 작가의 조형 작품과 ‘비 마이 러브’ 컬렉션 스토리를 연결했다. 어떤 분야든 스며들어 유니크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미술의 차별적인 특수성은 ‘탈미(미술계 탈출)’를 불가능하게 한다.

프리즈 서울을 마무리하는 토요일 밤, 아트드렁크와 미술계 친구들은 성수동 ‘콤팩트 레코드 바’에 모여 서로 물었다. 몸무게가 몇 킬로나 빠졌냐고. 다들 그렇게 고생했지만 결국 우리는 또 즐거웠다. 모든 명절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있기 마련. 프리즈 서울이 쏘아 올린 공으로 마련된 아트 위크는 모두가 함께 준비하고 즐긴 명절이었다. 그렇게 미술은 우리 삶에 마땅히 스며들었다.

Credit

  • 에디터 윤정훈
  • 아트 디자이너 정혜림
  • 디지털 디자이너 오주영
  • COURTESY OF FRIEZE
  • COURTESY OF GALLERY HYUNDAI
  • COURTESY OF KOO HOUSE MUSEUM
  • COURTESY OF ARTDRU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