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으로 예술가가 된 세레나 카론의 세라믹 유니버스
세라믹 아티스트 세레나 카론이 재현과 현실 공간을 넘나들며 빚어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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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타고 나오는 세라믹 뱀.

세레나 카론의 작업실 전경. 주변의 모든 사물이 그녀의 영감이 되는 것처럼 작업실 곳곳에 재미있는 그림과 오브제, 레이블들이 붙어 있다. 뒤로 보이는 천장을 장식한 것은 몇 해 전 소피 칼(Sophie Calle)의 전시에서 선보였던 100마리의 박쥐들.
10년 정도 됐다. 파리에서 아틀리에로 사용할 공간이 필요했고, 친구가 비어 있는 곳을 추천했다. 첫 방문 후 조용히 들어와 작업했는데, 알고 보니 흔히 말하는 ‘불법 거주(Squat)’를 2년쯤 한 것이다. 그러다 이곳이 경매로 나와 얼떨결에 구입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호기심의 방’처럼 재미있는 작품으로 가득하다
즐거운 공간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싸움과 고독, 절망의 공간이기도 하다. 내가 갖고 있는 온갖 감정이 혼재한다.

세레나 카론이 남부 작업실에서 세라믹으로 제작한 수탉 작품과 동물의 탈들. 세레나는 세라믹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기술로 작업한다.
작가인 어머니와 유명 사진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자라 항상 무언가를 만들고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자연스럽게 예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파리국립고등예술학교(파리 보자르)에 합격해 이틀 정도 출석하고 그만뒀지만(웃음).

작업실 한쪽에 마련된 침대. 누워 있는 여인은 지난 전시에서 선보인 세라믹 작품이며, 뒤편의 페인팅은 그녀가 작가 활동 초반에 그린 그림이다.
모델 역시 우연한 기회에 이룬 커리어다. 꽤 유명해졌지만 한 번도 그 직업을 진지하게 생각한 적 없었다. 어느 날 뉴욕에서 촬영을 기다리다가 너무 지루해 대기실에서 발견한 예쁜 우표를 보고 흰 봉투에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우체통에 넣고 ‘파리의 나’에게 보내곤 했다. 지방이나 다른 나라로 촬영 갈 때마다 그 일을 반복했다. 이후 내 앞으로 도착한 그림 봉투를 모은 전시를 열었는데 성공적이었다.
우표 작품에 얽힌 일화도 많겠다
말도 못한다. 한번은 내가 붙인 우표가 너무 비싼 가격이어서 우체국에서 해당 우표를 떼어내려 한 적도 있다. 전시가 끝난 뒤 경찰에 불법 우표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신고가 접수돼 제작 중인 작품을 제출하라는 통지서를 받기도 했다. 잔뜩 겁을 먹은 채 팔레트와 붓을 가지고 간 나를 보고 모두 웃었고, 해프닝으로 끝났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냄비에서 목욕하는 원숭이, 에어캡 비닐에 싸인 돼지 머리, 비닐부터 냄비까지 모두 세라믹으로 만들었다. 히터의 진동 소리를 줄이기 위해 벽과 히터 사이에 냄비를 끼워 넣고 그 안에 자신이 만든 세라믹 문어를 넣었다. 세레나를 둘러싼 주위의 모든 것이 영감이 된다.
점토로 프로토타입을 빚은 다음주형을 만들고 틴티드 왁스로 피부색을 구현한다. 틀에서 밀랍 인형을 꺼내 얼굴 디테일을 오일로 칠해 완성하는 형식이다. 꽃은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고 영화 속 캐릭터도 점토로 만든 다음 주형을 뜨고 엘라스토머(탄성을 지닌 플라스틱 소재)로 감싸 페인트를 칠한다. 캐릭터는 상자에 설치되고, 몸체나 배경에 마이크로모터를 보이지 않게 달아 움직일 수 있도록 고안했다. 상상을 구현하기 위해 맥가이버처럼 이것저것 찾아보고 배우면서 완성한다.

세레나의 작품으로 가득한 그녀의 작업실은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초현실주의나 다다이즘에서 영감을 받았다. 유머보다 감정과 기억,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겉으로 유쾌해 보여도 실은 절망적인 유머에 가깝다.

준비 중인 아스티에 드 빌라트를 위한 머그잔 시리즈.
절대 아니다. 내 머릿속은 항상 백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재미있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지만 이런 두뇌 때문에 포기했다(웃음).

작업실에서의 세레나 카론. 그녀 왼편에 있는 동물 작품은 ‘옷을 입어 슬픈 강아지’ 시리즈 중 하나다.
작품을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든다. 꾸준히 작업하지만 결과물은 그 시간에 비해 형편없을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스튜디오의 안락함, 나만의 성찰에 만족하고 있었다.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고독함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제 나만의 은신처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나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작업실 전경.
‘사냥과 자연 뮤지엄’에서 연 전시 오프닝에서 아스티에 드 빌라트 창립자인 베누아와 이반을 만났고, 협업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라. 처음 링 머그의 프로토타입을 보여줬을 때 베누아와 이반은 머그잔을 들고 있는 내 손을 보곤 반지 모양의 손잡이가 반지인 줄 알고 “너무 단순하니 손잡이라도 달아보는 게 어때?”라더라(웃음). 반지 모양이 세라믹 장식인 걸 알아차리곤 곧바로 컬렉션으로 채택했다.
어떤 방식으로 새로운 피스를 만드나?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미리 계획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업 속도가 느리다. 밀랍 조각도, 세라믹도 학교에서 배운 경험이 없기 때문에 모든 재료를 실험하면서 방법을 찾아낸다. 엘라스토머를 주조할 때, 기계공과 작업할 때, 엔진을 장착할 때 모두 마찬가지. 독학으로 나만의 기술을 개발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셀 수 없이 많은 시작과 수정을 거쳐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디테일에 대한 내 열정과 강박관념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하고 제작 시간만 더 늘어나게 한다(웃음). 가령 문어의 800개 촉수를 조각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지만, 미리 준비 작업을 하면 감정적으로 불안해진다. 이런 프로세스가 효율적이지 않은 건 알지만 바꿀 수는 없다.

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세레나의 작업 테이블.
루브르박물관을 좋아한다. 퐁피두 센터, 팔레 드 도쿄, 마레 지구의 갤러리도 자주 찾는다.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보는 것도 즐긴다. 재미있고 유쾌한 상상을 할 수 있거든. 항상 사소한 것을 유심히 관찰하고 상상한다. 누군가는 옷을 입은 강아지를 귀여워하지만 나는 그 강아지가 옷을 억지로 입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에서 영감을 받고 그걸 작업으로 연결한다.
당신을 도예가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고 싶은가
도예가보다 조각가 또는 아티스트로 정의되면 좋겠다. 그래야 앞으로 내가 시도할 다양한 재료나 기술을 이용하는 데 제약이 없을 테니 말이다.
Credit
- 에디터 이경진
- 사진가 MELVIN ISRAEL
- 컨트리뷰트 에디터 KIM-RHIE JIEUN
- 아트 디자이너 이유미
- 디지털 디자이너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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